<창간 23주년 특집 특별대담> 이주영 국회부의장에게 듣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5.20 10:12:35
  • 호수 12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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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향 폭주, 서민경제도 지나쳤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이주영 국회부의장은 최근 여의도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중 한 명이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체제서 핵심 중진의원으로 꼽힌다. 현재 자유한국당에서는 중진이 중심을 잡아줘야 한다는 ‘중진역할론’이 부상하고 있다. <일요시사>는 23번째 생일을 맞아 중진역할론의 주인공인 이 부의장과 대담을 나눴다.
 

▲ 이주영 국회부의장이 일요시사와 대담을 갖고 있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민생투쟁 대장정’을 이어가고 있다.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문재인정권과 여당의 실책을 직접 알린다는 취지다. 대장정은 여야4당이 주도한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법의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시작됐다. 당시 국회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여야가 극렬히 대치했다. 과연 국회 정상화의 길은 찾을 수 없는 것일까.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오후 4시 이주영 국회부의장실서 이 부의장과 허심탄회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이 부의장과의 일문일답.

-<일요시사>가 창간 23주년을 맞았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국회부의장 이주영입니다. ‘잉크 냄새가 아닌 사람 향기 나는 신문’ <일요시사> 창간 2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창간 23주년을 맞기까지 <일요시사> 발전을 위해서 도움 주신 많은 분들과 이용범 발행인을 비롯한 <일요시사> 가족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지금의 <일요시사>가 있게 해준 독자 여러분들께 축하의 인사를 전합니다.

-사보임과 패스트트랙으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우선 국회의장단의 한사람으로서 이번 국회 혼란에 대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며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문제의 시작은 여야4당이 각 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아무런 연관도 없는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을 억지로 묶어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기로 합의한 것입니다. 2012년 당시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도입된 국회법 85조의2 안건신속 처리제, 즉 패스트트랙의 기본 취지는 민생을 위한 안건이 국회서 장기간 표류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지, 선거법과 같은 중차대한 문제를 야합으로 처리하기 위함이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사보임이 불법적으로 자행됐다고 보는 이유는?
▲국회법 48조 6항에 따라 사보임은 임시회기 중 불가하고 예외적인 경우, 위원이 질병 등 부득이한 사유로 의장의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국회법 해설> 책자에도 임시회기 중 개선 불가와 위원 개선의 오남용 방지를 위해 질병 등 위원회 활동이 곤란한 경우에 한정해 엄격히 운영돼야 한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 해당 위원이 질병 등 위원회 활동이 곤란하지 않았고 사보임을 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 사보임을 팩스로 처리한 과정은 그야말로 불법적 상황이었습니다.

-사보임 문제에 대해 문희상 국회의장께 어떤 요청을 하셨는지?
▲저는 당시 문 의장께 “병상서 이 문제를 절대 다루지 마시라. 국회에 출근하셔서 여러 경로의 의견을 수렴한 뒤에 결정을 해주시기 바란다” 이렇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통화 연결이 되지 않아 국회 정론관에 가서 공개적으로 부탁을 드렸습니다. 하지만 병상서 전격적으로 사보임 승인 결정을 해서 결국 무수한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치 인생을 영예롭게 마무리하셔야 될 분이 이번에 큰 오점을 남기신 것이라 평가합니다.


여의도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황 체제’ 부상하는 중진역할론 핵심

-전자입법발의시스템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전자입법발의시스템을 사용한 것은 이번이 최초라고 합니다. 대부분 전자입법발의가 있는지조차 몰랐고, 그간 선례도 없었던 이 방법을 유독 논란이 많은 사안에 사용했다는 것이 꼼수로 의심받는 이유입니다. 이마저도 공수처법은 의안번호가 중복으로 등록돼 유효한지에 대한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습니다.

-청와대는 여야정협의체 재가동을 원하고 있습니다.
▲패스트트랙 추진 시 여야4당과 정부는 한국당을 패싱했습니다. 그런데 원하던 대로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을 패스트트랙으로 태우고 나니 민생을 빌미로 청와대가 여야정협의체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민생이 우선이었다면 왜 민생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선거법·공수처법·검경수사권조정을 패스트트랙으로 추진하는 데 그 오랜 시간 사활을 걸고 제1야당을 따돌렸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회 정상화를 위해서는 우선 패스트트랙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입장이신지?
▲그렇습니다. 패스트트랙 사안부터 대화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5일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로 오신환 의원이 선출되면서 사보임을 원상복구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사보임을 당한 당사자가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는 것은 이전의 독선적 리더십에 대한 일침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민주평화당, 더불어민주당의 원내사령탑도 새로이 선출됐습니다. 새로운 원내대표들이 각 당의 의견을 성실히 수렴하고 특정 정당에 대한 패싱 없이 모두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합니다.

우리 국회의 상징인 돔(Dome)은 다양한 의견들을 하나로 잘 모으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국회의 각 정당이 이 의미를 잘 새겨서 상호 소통하고, 우리 국민들이 기대하는 민의의 전당으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지혜와 역량을 모으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 국회부의장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의 상징인 ‘돔’의 의미는…
패싱 없이 모두 같이 머리 맞대야
 

-여야 고발정국에 대한 입장은?
▲앞서 밝힌 바대로 국회 질서유지의 책임이 있는 국회의장단의 한 사람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참담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다수의 직원과 의원님들이 부상을 입었고, 우리 국회의원 300분 중에 100여명에 달하는 의원님들이 고발을 당하셨습니다. 저도 그중 한 사람입니다. 폭력적 행동 하나 없었는데도 고발을 당했습니다. 불법성이 있는 사보임과 패스트트랙 지정 시도에 대해 이를 반대하는 쪽은 평화적 연좌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해머와 쇠지렛대가 등장했습니다. 불법 무기 반입과 사용, 의도적 폭력 행사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민생투쟁 대장정을 지척거리에서 지켜보셨습니다. 현장 분위기는?
▲지난 8일 제 지역구인 경남서 황교안 대표와 일정을 함께했는데 열기가 정말 뜨거웠습니다. 먼저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와 기록전시관을 방문, 평생을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시고 금융실명제라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정책을 단행하셔서 오늘날 투명한 경제거래가 가능하도록 하신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되새겼습니다.

대우조선 매각 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 간담회를 개최해 어려운 조선업계의 사정과 근로자들의 구조조정 상황에 대해 듣고 해결방안을 강구하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왔습니다.

그날이 어버이날이었던 만큼 어르신들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기도 했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의 피와 땀으로 번영을 이뤄주신 나라서 감사한 마음을 갖고 어르신들의 노고가 헛되지 않도록 잘 모시고, 더 발전된 나라를 후세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드렸습니다. 또한 청년몰 상가 방문과 지반침하지역을 방문,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방문하는 곳마다 현 정권의 실정으로 아우성입니다.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대장정이 마무리돼 전 국민의 목소리가 다 모아지면 더 실질적인 민생 살리기 정책 구상이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도 정책위의장을 2번이나 역임한 경험을 살려 당 정책 입안을 돕도록 하겠습니다.

-황교안 대표, 나경원 원내대표의 호흡은?
▲당이 어려운 시기에 훌륭한 분들이 가장 적합한 자리서 소임을 다해주고 계십니다. 당원의 대표인 당 대표와 소속 국회의원의 대표인 원내대표는 모두 선출 절차를 거쳐 선택된 분들입니다. 우리 당원들과 국민들, 국회의원님들의 선택이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계십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황 대표는 원외로서 전국을 돌며 밖에서 민생 대장정을 벌이고 계시고, 나 원내대표는 원내서 협상과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야당에 딱 적합한 지도부 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스트트랙부터 바로잡아야
황-나 호흡은? 야당에 ‘딱’

-문재인정부가 집권 2주년을 맞았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는 헌법서부터 입법·사법·행정의 3권 분립을 천명하고 있습니다. 서로 견제하고 감시해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 정부는 행정권만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법·국제인권법 연구회’라는 좌파성향 단체 인사들로 장악된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으로 사법부를 장악하고, 선거의 룰을 이행하고 감시해야 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캠프 출신 인사로 장악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선거법을 패스트트랙에 태워 선거의 룰까지 바꿔 입법부를 장악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

경제문제도 심각합니다. 지난 2년간 좌향 폭주로 시장경제를 뿌리째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각종 경제지표는 폭락하고 경제성장률마저 마이너스로 돌아섰습니다. 빈부 격차는 사상 최악으로 벌어졌고 청년들은 물론, 가장들의 일자리까지 사라졌습니다. 골목상권은 붕괴되고 대기업은 정권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국민세금을 퍼부어 정책실패를 땜질하고 있습니다.

대북정책과 외교는 또 어떠합니까? 이 정부가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대북정책에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답하고 있습니다. 잇따른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어설픈 중재자론은 미국과 북한 모두로부터 퇴짜를 맞았습니다. 한국과 미국이 그동안 쌓아놓은 한미동맹도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대북 식량지원에 대한 입장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은 비핵화에 대한 일보의 전진도 없는 일방적 퍼주기입니다. 북한만 바라보는 ‘북한바라기’입니다. 물론 인도적 차원서 식량지원이 필요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미사일로 도발하고 있는 북한에 비핵화에 대한 답변 요구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논의도 같이 요구해야 합니다.

-<일요시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언론은 민주사회를 떠받치는 기둥입니다. 언론환경의 급속한 변화, 또 정치 환경의 변화 속에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많으시겠지만, 부디 지금처럼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사회공헌에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정의롭고 유익한 언론, 독자들과 소통하는 언론이 되어주십시오. 국회 차원서도 언론의 부흥과 언론인들을 위한 정책적 배려 방안을 더 꼼꼼히 살피고 챙겨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희망하는 언론의 역할이 실현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지난 23년과 같이 앞으로도 <일요시사>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chm@ilyosisa.co.kr>

[이주영 부의장은?]

▲경상남도 마산 출생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 석사
▲제20회 사법시험 합격
▲전 부산지방법원 부장판사
▲제16·17·18·19·20대 국회의원(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전 여의도연구원 원장
▲제17대 해양수산부 장관
▲제20대 국회 후반기 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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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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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