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된 79명 의원들 백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5.07 10:44:54
  • 호수 1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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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단 금뱃지 ‘달랑달랑’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고발 정국’이 따로 없다. 여야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대치는 ‘역대급’ 고발 후유증을 낳았다. 극한 대치는 일단락됐지만, 여야는 서로에 대한 총부리를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요시사>는 21대 총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국회 고발 정국의 민낯을 파헤쳤다.
 

▲ 빠루를 들고 있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진공동취재단

 

헌정 사상 초유의 고발 정국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무려 79명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고발정국은 끝을 보기 전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을 예정이다. 서로를 고발하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취하했던 이전 분위기와는 다르다. 또 고발된 혐의들 중 일부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할 경우에만 처벌되는 ‘친고죄’에 해당하지 않아 만약 고발을 취하하더라도 검찰 수사는 계속된다.

아수라장
동물국회

몸싸움·고성·욕설은 지난 한 주 동안 국회를 관통했던 키워드다. 사태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문희상 국회의장의 집무실을 점거하면서 시작됐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오신환 의원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사·보임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앞서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오 의원을 사보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이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문 의장을 압박하러 출격한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집무실을 떠나려는 문 의장을 몸으로 막아섰다. 의장 경호 인력과의 몸싸움도 불사했다. 집무실은 고성으로 시끄러웠다. 충격을 받은 문 의장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최근 수술까지 받았다.


국회 곳곳서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 원내대표가 오 의원을 대신해 사개특위 위원으로 같은 당 채이배 의원을 지목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채 의원의 집무실을 찾아가 그를 6시간이나 감금했다. 이 사태는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해 채 의원을 탈출시킴으로써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한국당 간 전면전의 신호탄이었다. 국회 본청 7층 의안과 앞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의안과를 검거했다. 일부 의원들은 의안과 팩스를 부수는 추태를 벌였다. 
 

▲ 제5회의장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에 연장이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회 경호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이 점거한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빠루(쇠 지렛대)와 장도리, 망치 등을 동원했다. 한국당 당직자들은 경호원으로부터 빠루를 빼앗았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안과 복도서 진행된 긴급 의원총회에 해당 빠루를 들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의안과 만큼이나 치열했던 전쟁터가 있다. 사개특위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회의장 앞은 각 특위 위원장인 이상민·심상정 의원의 진입을 저지하려는 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복도에 줄지어 눕거나 스크럼을 짰다. 복도에서는 한국당 의원들이 부르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연장 들고
욕설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문 의장의 재가를 받아 경호권을 발동했다. 지난 1986년 이후 무려 33년 만이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경호원들과 국회 곳곳서 충돌했다. 국회에서는 몸싸움과 욕설, 고성이 난무했다. 이 과정서 한국당 최연혜 의원이 부상을 당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은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 끝에 정개·사개특위 개회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한국당 의원들을 제외한 특위 위원들이 선거법과 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함으로써 극렬했던 여야의 대치정국은 막을 내렸다. 현재 여야의 대치정국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1막 ‘대치 정국’이 끝나자 곧바로 2막 고발 정국이 무대에 올랐다.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 18명을 1차로 고발하고 며칠 뒤 19명을 추가 고발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 의원 고발과 관련해 최고위원회의서 “내가 직접 카메라 휴대폰으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들 사진을 30장 찍어놨다”며 “내 이름으로 고발 조치하겠다”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역시 “국회선진화법(이하 선진화법)이 어렵게 만들어졌고, 지난 7년간 이번과 같은 무질서하고 불법적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분명하게 선진화법에 따라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대치→고발, 전쟁은 지금부터 
고발 인원만 금뱃지 1/3 규모

정의당도 한국당과의 전면전에 동참했다. 한국당 의원 40명을 선진화법 및 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대상은 나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지도부와 정개특위 회의장 출입을 막은 한국당 의원, 그리고 채 의원을 감금한 한국당 의원 전원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상무위원회의서 “지난 박근혜 국정 농단을 능가하는 헌정 파괴 범죄며 전복 행위”라며 “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런 세력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있을 수 없다. 법치주의 아래서 폭력의 방식으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한국당은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홍 원내대표를 포함한 15명의 민주당 의원과 정의당 여영국 의원 등을 고발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상해) 등이 주요 혐의다. 홍 원내대표 등이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이들뿐 아니라 문 의장,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채이배·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시킨 행위가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문 의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며 그를 고소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당 의원들을 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한편 한국당이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에게 제기한 혐의는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상해다. 이 중 선진화법 위반 여부가 고발정국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화법은 2012년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서 여야의 합의로 도입됐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처리를 막자는 취지다. 

의원직 상실
피선거권도?

당시 국회법 165조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위반’과 166조 ‘국회 회의 방해죄’ 관련 조항이 추가됐다. 이를 살피면 국회 회의의 방해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인근서 폭행·체포·감금·협박·주거침입·퇴거불응·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 같은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막는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또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을 폭행하거나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 서류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을 손상 및 은닉한 사람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당 의원들의 의안과 점거가 국회 회의 방해죄에 해당하는 지가 핵심이다. 만약 벌금이라도 맞게 되는 날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공직선거법 19조에 따르면, 국회 회의 방해죄가 인정돼 5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은 자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의 전체 판세가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설사 여야가 합의해 상대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더라도 이미 법률상 고발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에 수사는 계속 진행된다.

불리한 한국당…총선도 차질 
벌금 500이면 피선거권 박탈

검찰에 직접 고발장을 제출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검찰청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을 개정해 회의 방해 자체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다시는 국회에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과 국회의원의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뜻을 계속 살릴 수 있도록, 특히 다음 21대 국회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송 의원과 동행한 이재정 의원은 “이후에도 불법행위를 추가 확인하면 추가 고발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기존 불법행위도 이미 확보된 자료를 검토해 추가 고발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에게 항의하는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한국당은 형법으로 맞불을 놓은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한국당이 느끼는 위기감에 비해 덜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 민주당·정의당 의원들과 보좌진, 국회 경호원이 한데 아우러진 상태서 몸싸움이 발생해 한국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렇듯 상반된 위기감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잘 나타난다. 최근 청와대 앞에서 열린 한국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서 나 원내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고발과 협박을 멈추라. 심지어 보좌진, 당직자도 고발장으로 위협한다. 이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정치탄압인가”라며 “수사를 하더라도 나를 수사하고 탄압하더라도 나를 탄압하라. 보좌진, 당직자, 의원에 대한 고발 취하를 즉각 해달라”고 요구했다.

21대 총선 
영향 받나

나 원내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고발을 취하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발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로 배당됐다. 한국당이 제출한 문 의장과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직권남용 혐의는 대검찰청에 접수됐다. 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건은 서울남부지검이 맡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토끼 챙긴 여야 ‘대치 정국’ 함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지지율이 동반상승했다. 선거법·공수처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벌어진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지지자들을 집결시키는 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무당층이 2주 연속 감소한 대신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율이 나란히 상승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9∼30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포인트가 오른 39.9%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충청권과 호남, 계층별로는 60대 이상과 50대, 30대, 중도층서 상승이 뚜렷이 나타났다.

한국당은 더욱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전주 대비 2.6%포인트 오른 34.1%를 기록했다. 이는 3주째 상승세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경기·인천, 계층별로는 40대와 60대 이상, 50대, 보수층서 지지율 오름세가 뚜렷했다.

사보임 사태로 내홍을 겪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지지율 역시 0.4%포인트 오른 5.7%로 나타났다. 반면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모든 지역과 계층서 지지층 이탈현상이 발생해 하락했다. 정의당은 2.3%포인트 내린 5.5%, 민주평화당은 1.4%포인트 내린 1.3%로 집계됐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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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