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된 79명 의원들 백태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5.07 10:44:54
  • 호수 12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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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단 금뱃지 ‘달랑달랑’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고발 정국’이 따로 없다. 여야 패스트트랙(신속처리 안건) 대치는 ‘역대급’ 고발 후유증을 낳았다. 극한 대치는 일단락됐지만, 여야는 서로에 대한 총부리를 내릴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일요시사>는 21대 총선의 최대 변수로 떠오른 국회 고발 정국의 민낯을 파헤쳤다.
 

▲ 빠루를 들고 있는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사진공동취재단

 

헌정 사상 초유의 고발 정국을 만들어낸 주인공들은 무려 79명으로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고발정국은 끝을 보기 전까지는 결론이 나지 않을 예정이다. 서로를 고발하더라도 종국에 가서는 취하했던 이전 분위기와는 다르다. 또 고발된 혐의들 중 일부는 피해자가 고소·고발할 경우에만 처벌되는 ‘친고죄’에 해당하지 않아 만약 고발을 취하하더라도 검찰 수사는 계속된다.

아수라장
동물국회

몸싸움·고성·욕설은 지난 한 주 동안 국회를 관통했던 키워드다. 사태는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이 문희상 국회의장의 집무실을 점거하면서 시작됐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 오신환 의원의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 사·보임을 저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앞서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 지정에 반대하는 오 의원을 사보임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이 최종 승인 권한을 가진 문 의장을 압박하러 출격한 것이다.

한국당 의원들은 집무실을 떠나려는 문 의장을 몸으로 막아섰다. 의장 경호 인력과의 몸싸움도 불사했다. 집무실은 고성으로 시끄러웠다. 충격을 받은 문 의장은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최근 수술까지 받았다.


국회 곳곳서 격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김 원내대표가 오 의원을 대신해 사개특위 위원으로 같은 당 채이배 의원을 지목하자, 한국당 의원들은 채 의원의 집무실을 찾아가 그를 6시간이나 감금했다. 이 사태는 경찰과 소방대원이 출동해 채 의원을 탈출시킴으로써 마무리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한국당 간 전면전의 신호탄이었다. 국회 본청 7층 의안과 앞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패스트트랙 법안 제출을 막기 위해 의안과를 검거했다. 일부 의원들은 의안과 팩스를 부수는 추태를 벌였다. 
 

▲ 제5회의장 앞에서 스크럼을 짜고 있는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진공동취재단

국회에 연장이 등장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국회 경호원들은 한국당 의원들이 점거한 의안과 문을 열기 위해 빠루(쇠 지렛대)와 장도리, 망치 등을 동원했다. 한국당 당직자들은 경호원으로부터 빠루를 빼앗았다.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의안과 복도서 진행된 긴급 의원총회에 해당 빠루를 들고 등장해 화제가 됐다.

의안과 만큼이나 치열했던 전쟁터가 있다. 사개특위와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 회의장 앞은 각 특위 위원장인 이상민·심상정 의원의 진입을 저지하려는 한국당 의원들의 육탄전으로 아수라장이 됐다. 복도에 줄지어 눕거나 스크럼을 짰다. 복도에서는 한국당 의원들이 부르는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연장 들고
욕설까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은 문 의장의 재가를 받아 경호권을 발동했다. 지난 1986년 이후 무려 33년 만이다. 이에 한국당 의원들은 경호원들과 국회 곳곳서 충돌했다. 국회에서는 몸싸움과 욕설, 고성이 난무했다. 이 과정서 한국당 최연혜 의원이 부상을 당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한국당을 제외한 4당은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눈치작전 끝에 정개·사개특위 개회를 성사시켰다. 그리고 한국당 의원들을 제외한 특위 위원들이 선거법과 공수처 법안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데 찬성함으로써 극렬했던 여야의 대치정국은 막을 내렸다. 현재 여야의 대치정국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1막 ‘대치 정국’이 끝나자 곧바로 2막 고발 정국이 무대에 올랐다. 민주당은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 18명을 1차로 고발하고 며칠 뒤 19명을 추가 고발했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한국당 의원 고발과 관련해 최고위원회의서 “내가 직접 카메라 휴대폰으로 불법행위를 한 사람들 사진을 30장 찍어놨다”며 “내 이름으로 고발 조치하겠다”고 전면전을 선포했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 역시 “국회선진화법(이하 선진화법)이 어렵게 만들어졌고, 지난 7년간 이번과 같은 무질서하고 불법적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문제만큼은 분명하게 선진화법에 따라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강경 대응을 예고했다.

대치→고발, 전쟁은 지금부터 
고발 인원만 금뱃지 1/3 규모

정의당도 한국당과의 전면전에 동참했다. 한국당 의원 40명을 선진화법 및 형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대상은 나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지도부와 정개특위 회의장 출입을 막은 한국당 의원, 그리고 채 의원을 감금한 한국당 의원 전원이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상무위원회의서 “지난 박근혜 국정 농단을 능가하는 헌정 파괴 범죄며 전복 행위”라며 “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런 세력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도 있을 수 없다. 법치주의 아래서 폭력의 방식으로는 그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 한국당은 법치주의에 정면 도전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한국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홍 원내대표를 포함한 15명의 민주당 의원과 정의당 여영국 의원 등을 고발했다.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공동상해) 등이 주요 혐의다. 홍 원내대표 등이 한국당 의원과 당직자를 상대로 폭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한국당은 이들뿐 아니라 문 의장,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를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했다. 오신환·권은희 의원을 채이배·임재훈 의원으로 사보임시킨 행위가 직권을 남용한 경우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한국당 임이자 의원은 문 의장으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입었다며 그를 고소하기도 했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국당 의원들을 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한편 한국당이 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에게 제기한 혐의는 자기 당 소속 의원들에 대한 상해다. 이 중 선진화법 위반 여부가 고발정국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선진화법은 2012년 19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서 여야의 합의로 도입됐다. 국회의장의 직권 상정과 다수당의 날치기 법안 처리를 막자는 취지다. 

의원직 상실
피선거권도?

당시 국회법 165조 ‘국회 회의 방해 금지 위반’과 166조 ‘국회 회의 방해죄’ 관련 조항이 추가됐다. 이를 살피면 국회 회의의 방해 목적으로 회의장이나 인근서 폭행·체포·감금·협박·주거침입·퇴거불응·재물손괴의 폭력행위를 하거나 이 같은 행위로 의원의 회의장 출입을 막는 사람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릴 수 있다.

또 위험한 물건으로 사람을 폭행하거나 재물을 손괴하는 경우, 서류나 물건 또는 전자기록 등을 손상 및 은닉한 사람에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당 의원들의 의안과 점거가 국회 회의 방해죄에 해당하는 지가 핵심이다. 만약 벌금이라도 맞게 되는 날에는 한국당 의원들이 대거 21대 총선에 출마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공직선거법 19조에 따르면, 국회 회의 방해죄가 인정돼 500만원 이상의 벌금을 선고받은 자는 선거에 출마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검찰 수사와 재판 결과에 따라 내년 총선의 전체 판세가 좌우될 수 있는 상황이다. 설사 여야가 합의해 상대에 대한 고발을 취하하더라도 이미 법률상 고발이 이뤄진 상태이기 때문에 수사는 계속 진행된다.

불리한 한국당…총선도 차질 
벌금 500이면 피선거권 박탈

검찰에 직접 고발장을 제출한 민주당 송기헌 의원은 검찰청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국회법을 개정해 회의 방해 자체를 처벌하도록 한 것은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이 다시는 국회에 들어올 수 없게 해야 한다는 국민의 뜻과 국회의원의 결의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그 뜻을 계속 살릴 수 있도록, 특히 다음 21대 국회에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송 의원과 동행한 이재정 의원은 “이후에도 불법행위를 추가 확인하면 추가 고발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기존 불법행위도 이미 확보된 자료를 검토해 추가 고발할 수 있다”고 가능성을 열어뒀다.
 

▲ 심상정 정개특위위원장에게 항의하는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

한국당은 형법으로 맞불을 놓은 상태다. 그러나 민주당이 느끼는 위기감은 한국당이 느끼는 위기감에 비해 덜하다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한국당 의원들과 보좌진, 민주당·정의당 의원들과 보좌진, 국회 경호원이 한데 아우러진 상태서 몸싸움이 발생해 한국당 의원들이 민주당 의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밝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이렇듯 상반된 위기감은 나 원내대표의 발언을 통해 잘 나타난다. 최근 청와대 앞에서 열린 한국당 현장 최고위원회의서 나 원내대표는 “제1야당에 대한 고발과 협박을 멈추라. 심지어 보좌진, 당직자도 고발장으로 위협한다. 이 얼마나 치졸하고 부끄러운 정치탄압인가”라며 “수사를 하더라도 나를 수사하고 탄압하더라도 나를 탄압하라. 보좌진, 당직자, 의원에 대한 고발 취하를 즉각 해달라”고 요구했다.

21대 총선 
영향 받나

나 원내대표의 요구가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고발을 취하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고발된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로 배당됐다. 한국당이 제출한 문 의장과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의 직권남용 혐의는 대검찰청에 접수됐다. 한국당 임이자 의원이 문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건은 서울남부지검이 맡았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토끼 챙긴 여야 ‘대치 정국’ 함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의 지지율이 동반상승했다. 선거법·공수처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놓고 벌어진 여야의 강 대 강 대치가 지지자들을 집결시키는 효과를 낳은 것으로 보인다. 무당층이 2주 연속 감소한 대신 민주당과 한국당의 지지율이 나란히 상승했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지난달 29∼30일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101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1.9%포인트가 오른 39.9%로 집계됐다. 지역별로는 충청권과 호남, 계층별로는 60대 이상과 50대, 30대, 중도층서 상승이 뚜렷이 나타났다.

한국당은 더욱 큰 폭의 상승률을 보였다. 전주 대비 2.6%포인트 오른 34.1%를 기록했다. 이는 3주째 상승세다. 지역별로는 대구·경북(TK)과 부산·울산·경남(PK), 경기·인천, 계층별로는 40대와 60대 이상, 50대, 보수층서 지지율 오름세가 뚜렷했다.

사보임 사태로 내홍을 겪고 있는 바른미래당의 지지율 역시 0.4%포인트 오른 5.7%로 나타났다. 반면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모든 지역과 계층서 지지층 이탈현상이 발생해 하락했다. 정의당은 2.3%포인트 내린 5.5%, 민주평화당은 1.4%포인트 내린 1.3%로 집계됐다.(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또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참조)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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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