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대권도전 선언'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7.02 12:0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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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패의 사나이' 대권경쟁에서도 기적 이뤄낼까?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정책위의장 2번, 원내대표 1번, 당 대표 3번' 남들은 한번 하기도 힘들다는 당직을 두루 거치며 일명 '당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바 있는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달 26일 대선출마를 선언했다. 정 고문은 대선출마선언문을 통해 "이명박 새누리당 정권 4년 반 만에 중산층과 서민의 삶이 완전히 무너졌다. 대다수 국민들은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불안감 속에서 아침을 시작하고, 고통과 무력감 속에서 하루를 마치고 있다"고 탄식했다. 출마선언문을 읽어 내려가는 정 고문의 목소리에선 팍팍하고 불행한 삶을 살고 있는 서민에 대한 연민과 정권교체에 대한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지난 달 26일 자신의 지역구인 종로 광장시장에서 민주당 의원 40여 명과 지지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빚 없는 사회, 편안한 나라, 든든한 경제대통령"을 구호로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지난 4.11 총선에서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 대결에서 친박계의 좌장격인 홍사덕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며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바 있다.

낮은 존재감
저평가 우량주?
 

서울 종로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민주당 후보가 당선된 적이 없는 불모지와 같은 곳이었기에 정 고문의 기쁨은 더욱 컸다. 정 고문 스스로도 "종로에서 국회의원이 돼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이번 승리를 통해 정 고문은 '무패의 사나이'라는 자신의 닉네임을 이어가게 됐다. 정 고문은 지금까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해본 적이 없는 무패의 사나이다. 그야말로 승승장구의 인생을 살아온 그다.

지난 1978년 쌍용그룹의 평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 고문은 쌍용에서 상무이사의 자리까지 오르며 승승장구 했다. 지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된 후엔 내리 5선을 했다. 민주당의 사지라고 불렸던 종로에서도 살아 돌아온 그다. 이 과정에서 정 고문은 정책위의장을 2번, 원내대표를 1번, 당대표를 3번 맡으며 '당직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하기도 했다. 노무현 정권에서는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무척 화려한 경력을 가진 정 고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낮은 존재감'이다. 

일각에선 관리형 정치인의 숙명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정 고문은 자신을 '저평가 우량주'라고 자평한다. 지금까지 정치를 하면서 많은 성과를 얻어냈는데도 전혀 부각이 안 됐다는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당대표를 3번이나 맡을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항변이었다.


당직 트리플크라운 달성했지만 낮은 존재감 '굴욕'
"든든한 경제대통령 될 것" 경제전문가 이미지 부각

정 고문은 대선출마선언을 통해 '경제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또 이 과정에서 '분수경제'라는 특이한 용어를 사용해 주목을 받았다. 정 고문은 "분수경제는 경제성장 동력을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에서 찾겠다는 의미로 대기업의 수익이 사회로 돌아간다는 '낙수경제'에 대비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분수경제'는 정 고문이 직접 만들어 낸 개념으로 서민과 중산층, 중소기업 등 경제의 하층부에 실질적인 혜택을 줘 그 효과가 분수처럼 솟구쳐 올라 경제 전체로 퍼지도록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 출신인 정 고문이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강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겠냐는 비판도 있다. 이에 대해 정 고문은 "대기업을 제대로 알면 중소기업도 잘 아는 법이다. 2차방정식을 잘 풀면 1차방정식은 쉽다. 대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중견기업과 중소기업 중심의 허리가 튼튼한 '항아리형' 산업구조로 바꿔 내수진작의 힘으로 투자와 생산이 강화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정 고문은 종로 광장시장을 대권선언 장소로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4.11 총선에서 승리를 이룬 지역구로서 종로는 정치 1번지라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고 '광장'이라는 이름은 소통과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말이며, 시장이라는 장소는 분수경제의 서민경제를 대변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분수경제론 주장
서민 살리기 주력

한편 정세균 고문은 지난 1950년 전북 진안에서 4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가족으로는 배우자 최혜경씨와 1남 1녀가 있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오지의 환경에서 자란 그는 검정고시를 치르고서야 중학교 졸업 자격증을 얻을 수 있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전주공고에 입학했던 그는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전주 신흥고로 전학하게 된다. 그는 신흥고에서 뛰어난 성적을 바탕으로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한 그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과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며 유신체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대학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그는 졸업 후 <동아일보>에 입사지원 했지만 유신정권의 <동아일보> 백지광고 사태에 충격을 받고 1978년 쌍용그룹에 입사했다.


그는 쌍용그룹에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 쌍용그룹의 종합상사 주재원으로 일했다. 그런 가운데 뉴욕 주재원 시절 뉴욕대학교에서 행정학을 공부하고 LA주재원 시절엔 페퍼다인 대학교에서 MBA까지 취득하게 된다. 이후 그는 쌍용그룹에서 상무이사 자리에까지 오르며 1995년까지 수출입 업무를 맡았다.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오랫동안 기업인으로 활동한 경험은 유독 그가 경제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다.

이렇듯 기업인으로도 승승장구의 행보를 가고 있던 정 고문은 지난 1995년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제안을 받고 김대중 총재 특별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다. 정고문은 정치 입문 후 불과 1년 만인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이후 정 고문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이 내리 다섯 번이나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특히 지난 19대 총선에서는 종로에서 홍사덕 의원을 꺾었다. 야당 의원이 종로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24년만의 일이었다.

미스터 스마일맨
허허실실 '외유내강'

그는 정치에 입문한 이후 기업에서의 경영 경험을 살려 지난 1998년 IMF 외환위기 상황에서 노사정위원회 간사와 상무위원장직을 수행하며 현대자동차 노사 분쟁을 원만하게 해결해내는 등 경제통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다. 또 2002년 대선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중앙선대위 국가비전 21위원회 본부장과 경제특보를 맡아 대선 승리에 일조하기도 했다. 이후 열린우리당에서는 정책위의장을 거쳐 2005년 당의장직에 올랐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등 여파로 분열된 당을 통합하는 데 기여했으며 2007년에는 열린우리당의 의장으로 선출돼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합당되기 전 열린우리당의 마지막 의장이 됐다. 2006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신임을 얻어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을 역임하며 글로벌 경제 감각을 단련했고, 2008년에는 민주당 대표로 당선돼 세 번째로 당을 이끌었다. 이후 2010년에도 당대표 경선에 출마했으나 손학규 상임고문에게 밀려 최고위원에 머물렀다.

정 고문은 당내에서 '미스터 스마일맨'으로 통한다. 항상 웃는 얼굴로 빈틈이 많아 보이지만 실상은 '허허실실' 웃으면서도 성과를 내고 실적을 착실히 쌓는 '외유내강'형 인물이라는 뜻이다. 정 고문을 지지하는 세력은 강기정, 문희상, 원혜영, 유인태, 이미경, 전병헌, 최재성 의원 등 현역의원만 45명이나 된다.

정 고문의 씽크탱크 격인 '국민시대'에는 장하진 전 여성부장관과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가 공동대표로 포진하고 있고 김근식(경남대), 박찬표(목포대) 교수 등 260여 명의 정책위원 등이 참여하고 있다. 후원회장은 <은교>로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씨가 맡고 있다.

'야당필패' 종로서 24년만의 승리 일궈낸 저력
민주 대권, 다자구도 형성…대권경쟁 '흥미진진'

정 고문의 가장 큰 장점은 특별한 도덕적 결함이나 약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정 고문에 대해 "대통령을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실제로 현재 당내 대권주자들 간의 순위경쟁에서는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 등 ‘빅3’에 밀려있다. 그들과 비교해서 소위 '꿀릴 것'이 없는 경력과 능력을 자랑하지만 막상 지지율에선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 고문은 이에 대해 "지금 당장은 지지도가 낮지만 저의 진정성과 경험, 전문성을 알리고 후보들을 검증하는 프로세스가 진행된다면 국민들에게 신임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정 고문의 이번 대권도전에 대해 전문가들은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정치 전문가는 "이제는 정치적으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 고문이기 때문에 대권은 그가 언젠가 한 번은 도전해봐야 할 숙명적인 목표였다. 하지만 박근혜와 안철수, 문재인 등의 3강 체제가 이미 고착화되어 있는 이번 대선에서 과연 정 고문이 얼마만큼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종로구에서의 값진 승리를 바탕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는 정 고문의 정치적 행보에 찬물만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정 고문은 경제 전문가라는 강점을 살려 당내 경쟁자들과 최대한 차별화를 시도하겠다는 계획이다.

경제전문가 부각
경쟁자와 차별화

정 고문은 "현재 우리나라는 내수기반이 무너지고 일자리와 수출도 줄고, 금융위기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으로 특히 농어업은 이미 벼랑 끝까지 내몰렸다"며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가계부채 해결 및 일자리 창출과 소득증대를 통한 빚 없는 사회, 남녀와 세대, 지역, 학력의 구분 없이 국민이 편안한 사회, IT융합산업과 의료·바이오산업, 신재생 에너지사업 등 첨단, 선도산업의 육성을 통해 제2의 IT신화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이제 제18대 대선이 불과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무려 17년간의 정치생활에도 불구하고 '존재감'이 없다는 주위의 평가에 굴욕을 당해왔던 그가 이번 대권도전으로 확실히 존재감을 부각시킬 수 있을지, 다가오는 대선은 그의 도전으로 점점 더 흥미로워 지고 있다.

 

<정세균 고문 프로필>

▲ 1969년 전주 신흥고 졸업
▲ 1973년 고려대학교 총학생 회장
▲ 1974년 고려대학교 법학과 졸업
▲ 1978년 쌍용그룹 입사
▲ 1995년 새시대새정치연합청년회 전북도지부 회장
▲ 제15~19대 국회의원
▲ 산업자원부 장관
▲ 열린우리당 당의장
▲ 민주당 대표
▲ 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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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