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 부모 피살 전말&의문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3.25 10:43:15
  • 호수 1211호
  • 댓글 0개

돈이 뭐라고…죽음을 부른 채무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주가조작으로 실형을 받아 감옥에 있는 청담동 주식부자이희진이 없는 사이, 이씨의 부모가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살인 용의자로 체포된 김모씨는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해 이씨 부모를 살해하는 중범죄를 저지르고 현금 5억원 탈취, 시신유기를 하는 등 계획적으로 움직였다. 범행 후에도 모친 행세를 하거나, 이희진씨 동생을 만나는 등 수상한 행동을 보였다. <일요시사>는 사건의 전말과 함께 의문점을 살펴봤다.
 

▲ 이희진씨 ⓒ이희진 페이스북

김씨는 인터넷으로 고용한 공범 3명과 함께 지난달 25일 이희진의 부모를 살해한 뒤 현금 5억원과 이씨 아버지의 차 벤츠를 훔쳤다. 범행 이후 김씨는 이씨의 엄마 휴대전화를 이용해 엄마 행세를 하며 이씨의 동생 이희문씨와 연락을 취하는 등 신고를 최대한 늦췄다.

이희문씨는 엄마와 연락이 원활하지 않자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이씨의 어머니 시신을 발견한 후 CCTV를 분석해 용의자인 김씨를 체포했다. 김씨가 살해혐의로 체포된 후에도 미스터리한 점이 많다.

한 편의
영화 같은…

김씨는 과거 미국서 요트판매대행업체 사업을 하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아지자 귀국했다. 요트 임대업 경험을 가지고 다시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자를 모집했고 이씨 아버지를 여러 번 만난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의 권유로 투자했다가 손해를 본 상태였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하자 이씨 아버지가 거주한 경기도 안양 집을 찾아갈 계획을 세웠다. 김씨는 인터넷 구인 사이트에 경호 인력을 구한다는 글을 올려 중국 동포 3명을 고용했다.


지난달 25일 이씨 부모의 집을 찾은 김씨와 공범자 3명은 오후 351분쯤 이씨 부모의 부재 중인 집을 찾았다. 15분 뒤인 오후 46분 집으로 들어온 이씨 부부는 이희문씨가 부가티 베이런을 팔고 난 일부 금액인 5억원이 들어 있는 스포츠 가방을 갖고 왔다. 가방 안에는 100만원권 수표와 지폐 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따르면 부검 결과 이씨의 아버지는 두부외상과 목 졸림에 의한 질식으로, 어머니인 황씨는 목 졸림으로 인한 질식으로 각각 숨진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직후 중국으로 달아난 공범 3명이 5억원을 어떻게 분배했는지는 아직 밝혀진 게 없다. 김씨를 제외한 용의자 3명은 오후 1151분 인천발 항공편을 이용해 중국 칭다오로 출국했다.

사건 당일 오후 10시 김씨는 자신의 친구인 A에게 싸움이 났는데 중재해달라고 불렀지만, 친구 A씨는 상황이 여의치 않아 지인인 BC에게 대신 가달라고 부탁했다. 부탁을 받은 2명은 현장에 갔다가 쓰러져 있는 피해자를 발견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고 판단해 김씨에게 신고를 권유하고 현장을 빠져나간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사건 당일 이씨 어머니의 시신을 장롱으로, 아버지의 시신은 냉장고로 옮긴 후 집안을 깨끗이 치웠다.

다음 날인 26일 오전330분경 김씨는 대리기사를 불러 자신은 렉스턴 차량을 운전할 테니 이씨 아버지의 벤츠를 운전해 따라올 것을 부탁한 후 경기도 평택시에 임대해놓은 창고(보증금 1500만원, 월세 150만원) 인근에 주차하도록 했다. 김씨는 벤츠 차량 트렁크에 범행 당시 피해자들의 피가 묻은 이불 등을 실었다가 대리기사가 떠나자 이불을 꺼내 불로 태운 뒤 현장으로 다시 돌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주가조작 실형 사는 사이 살해
시신 유기하고 현금 5억원 탈취

현장에 돌아온 김씨는 이삿짐 센터를 불러 이씨 아버지의 시신이 담긴 냉장고를 베란다로 빼낸 다음 평택 창고로 옮겼다.


그 후 김씨는 집에서 가져온 이씨 어머니의 휴대전화로 이희문씨와 카카오톡을 하며 어머니 행세를 했다. 이희문씨는 메시지를 주고받다가 이상한 점을 감지하고 부모님 집으로 찾아갔다. 집 비밀번호가 바뀌어 들어가지 못한 이씨는 어머니에게 카카오톡과 전화로 연락을 했지만 응답이 없자 실종신고를 했다.

지난 16일 오후 4시경 신고를 받은 안양동안경찰서는 오후 6시경 안양 자택 옷장서 이씨 어머니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후 CCTV 분석으로 의심 차량을 추적해 17일 오후 317분 수원의 한 편의점 앞에서 김씨를 체포했다. 김씨의 자백을 들은 경찰은 이날 오후 4시경 평택 창고 안에 있는 냉장고서 이씨 아버지의 시신을 발견했다.

피의자 김씨는 이씨 아버지가 주식투자를 권유해 투자했는데 이 돈을 모두 잃었다고 진술했다. 이씨 아버지는 김씨에게 보유하고 있는 2000만원으로는 사업이 힘들다며 주식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투자 성과가 나오지 않자 둘의 관계는 악화됐다고 전해진다. 김씨는 이씨 아버지에게 수차례 돈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이 김씨로부터 회수한 돈은 1800만원이었다.
 

▲ 이희진 부모 살해 피의자 김모씨

하루가 지난 20일 김씨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어 경호목적으로 아르바이트처럼 3명을 고용한 것이라며 집에 침입해 피해자들을 제압하려고만 했지만 옆에 있던 공범 중 한 명이 남성(이씨 아버지)에게 둔기를 휘두르고 여성(이씨 어머니)의 목을 졸랐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범행 과정을 본인이 세운 것은 인정하지만 살해는 공범자가 한 것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그이씨 부모를 포박하고 돈을 요구하던 중 부부가 소리를 지르자 중국 동포가 살해해 본인은 말리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5억 관련해서도 말을 바꿨다. 피해자들에게서 탈취한 5억원을 고용비로 나눠준 것이 아니라 공범자들이 주도적으로 돈을 가졌다고 주장했다.

청부살인업자?
중국 어디로?

김씨는 범행 9일 전인 지난달 16일 재외 동포 구인·구직 사이트에 개인 경호팀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글 내용에는 20세부터 35세의 신체 건강한 남성을 우대하며 교포나 외국인뿐 아니라 불법체류자도 지원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뿐만 아니라 군인 출신 및 운동선수, 깡 있는 분을 우대한다는 내용까지 담았다. 주요 업무로 시설 경호, 개인 신변 보호, 범죄예방, 행사 경호로 급여에는 월 300만원서 월 1000만원까지이며 일당이 가능하다고 게시했다.

공범 3명은 사건 당일 오후 1151분 중국 칭다오로 출국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범행 뒤 곧바로 자국으로 돌아가기 위해 미리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일 안양동안경찰서에 따르면 공범 중 한 명인 D씨 가족은 사건 발생 이전에 중국으로 출국한 기록이 발견됐다. 구체적인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올해 초인 것으로 밝혀졌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에 포함된 중국 동포 공범들은 가족들을 먼저 중국으로 피신시킨 뒤 범죄를 저지르고 중국으로 떠난 계획 범죄일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경찰은 중국 동포 3명이 모두 동갑내기 친구로 예전부터 국내서 생활했다고 전했다. D씨를 제외한 나머지 중국 동포 2명은 가족 없이 혼자 한국서 지낸 것으로 보인다.

경찰은 인터폴 등을 통해 중국 체류 중인 것으로 추측되는 공범 3명에 대해 적색수배를 내린 뒤 국내 송환을 요청했다. 또 이들의 입국을 대비해 인천공항 등에 통보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적색수배란 인터폴의 8가지 수배 유형 중 가장 높은 단계로 흉악범죄를 저지른 후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에게 내려진다.

이 사건은 범행동기와 범행 과정 등 아직 명확히 밝혀진 것이 없다. 김씨와 피해자 간의 채무 관계에 주목해 단순히 20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하자 살인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김씨는 진술 과정서 2000만원을 돌려받기 위해 갔다고 주장했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2000만원을 받으러 가기 위해 중국 동포를 데려가는 건 이상하다동원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아 우발적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말했다.


김복준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도 중국인 세 사람을 고용하는 데 2000만원이 넘어 경호원을 고용해 사람을 살해하는 데 사용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라고 못 박았다. 범죄 관련 업계서도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인 범죄일 가능성을 높다고 봤다.

범행 동기·과정
계획 등 불분명

김씨 일당은 범행을 저지르고 5억원이 든 가방을 가지고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 5억원의 출처를 조사한 결과 사건 당일 오전 이희문씨가 성남의 한 카센터서 부가티 베이런을 20억에 판매한 기록을 확인했다. 15억은 이희문씨 계좌로 송금됐고 나머지 5억은 부모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 일당이 이씨의 부모가 5억원을 갖고 올 것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도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희문씨의 경우도 26개월 동안 교도소 생활을 했다. 이씨의 부모는 그동안 두 아들에게 생활비를 받지 못해 생활비 명목으로 5억을 받은 것으로 관측된다.
 

▲ ⓒ이희진 인스타그램

범행 과정서도 이상한 점은 한둘이 아니다. 김씨는 이씨 부모가 집안에 없던 것을 이미 알고 비밀번호를 알아내 집 안에 먼저 잡입해 있었던 것인지, 근처에 숨어 있다가 이씨의 부모가 현관문을 열 때 밀치며 함께 집안으로 들어간 것인지 아직 밝혀진 사실이 없다.

김씨가 모친의 시신은 장롱에 두고 부친의 시신만 평택 창고로 옮긴 것도 의문이다.


지난 19일 안양동안경찰서 관계자는 특별한 동기가 있는 게 아니라 두 시신을 모두 옮기기에는 힘들 것으로 판단해 아버지 시신만 옮긴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일부에서는 남편이 아내를 살해한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일부러 한 행동이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김 연구위원은 그러기 위해서라면 아버지 시체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겨야 하는데 이 사건 전에 임대해둔 평택 창고에 시신을 유기한 것은 그럴 의도가 없어 보인다분명히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어 “5억을 노린 거라고 해석하기는 힘들다이희진씨한테 증권 주식 투자과정서 피해를 본 다수의 사람들이 이희진의 아버지를 창고에 압박한 뒤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쓴 방법일 수 있다며 과거 사례를 되짚었다.

공범의 숫자가 많은 것도 의심스럽다. 중국 국적 공범 3명과 범행 후 뒤처리를 위해 요청한 2명 등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공범자가 이렇게 많은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뒤처리를 위해 현장에 간 이들은 단순 폭행 사건인 줄 알고 갔는데 살인 사건이라 빨리 신고하라는 말만 하고 바로 현장을 빠져나왔다고 진술했다.

공범 피의자 3명 출국
영원히 못 잡을 수도?

김씨는 범행 후 휴대전화를 이용해 엄마 행세를 했다. 김씨는 이 과정서 이희문씨를 만난 것으로 확인됐다. 엄마 행세를 해 내가 잘 아는 성공한 사업가를 만나보라는 말로 유인한 뒤 고깃집서 김씨를 만났다. 김씨의 변호인은 김씨가 범행 사실을 털어놓고 사죄하려고 했지만, 입이 안 떨어져 미국 유학 생활 등 개인적인 얘기만 하고 헤어졌다고 주장했다.

지난 21일 피의자 김씨의 어머니가 5억원 중 25000만원을 가지고 경찰서에 출석했다. 김씨의 어머니는 이날 오전 안양동안경찰서에 자진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경찰은 김씨를 검거하면서 김씨의 거주지를 압수수색했지만, 돈을 발견하지 못했다. 김씨 어머니는 아들이 가지고 온 돈을 받고 강도 살인의 증거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전전긍긍하다가 김씨의 변호사에게 털어놨고, 변호사의 설득으로 자진 출석한 것으로 밝혀졌다.

나머지 잔여금인 23200만원의 행방에 대해서는 수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지난 21일을 기준으로 체포된 사람은 김씨 1명뿐이다. 현재 김씨의 진술만으로 조사를 해야 하는 상황서 김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많이 떨어지고 있다. 체포 당시 수중에 가진 돈은 1800만원밖에 없다던 김씨였지만 어머니를 통해 25000만원을 반납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자 자신은 죽이지 않았다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지난 21일 경기 안양동안경찰서는 김씨와 범행에 가담한 후 중국 칭다오로 달아난 중국 동포 3명에 대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고 밝혔다. 중국 동포 3명은 사건 당일 오후 610분경 범행 현장서 빠져나와 택시로 자신들의 거주지인 인천으로 이동해 짐을 꾸린 뒤, 항공권 3매를 예약하고 다시 택시를 이용해 인천공항으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진술만으로···
수사 난항

이들은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거주지 관리인에게 전화로 월세 계약을 해지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씨의 진술만으로는 수사가 미궁속으로 빠지게 되는 형국이다. 중국 동포 3명을 이른 시일 내에 구속해 진술을 받아 조사를 진행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은 누구?

이희진은 1986년생으로 안양서 태어나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집안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극단적인 시도를 할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지 않았다. 이희진이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 2014년 <한경TV>에 증시전문가로 나오면서부터다. 당시 20대의 주식전문가이자 자수성가한 캐릭터로 입지를 구축하며 Mnet <음악의신2>, 채널A <풍문으로 들었쇼> 등에 출연하며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청담동 주식부자라는 별명을 얻은 이희진은 승승장구하다가 20169월 동생인 이희범씨와 함께 사기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이희진은 이희범과 함께 금융투자업 인가를 받지 않은 투자 매매회사를 만들어 170억원의 주식을 매매하고 시세차익 130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재판과정서 피해자 211명에 피해액이 271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자본시장법과 유사수신행위의 규제에 관한 법률 위반, 특정경제범죄가중 처벌법상 사기 등의 혐의로 징역 5, 벌금 200만원, 추징금 130억원을 선고받았다.

201610월 이희진이 활동한 온라인 카페에서는 이희진이 옥중서 쓴 자필 편지를 공개한 바 있다. 편지의 내용에는 회사를 잘 키워보려는 욕심이 와전돼 슬프다평생 회원들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돌아갈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어 회원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중국어, 베트남어, , 회계 공부를 병행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현재는 서울남부교도소에 수감됐으며 지난 18일 부모 장례절차 준비로 구속집행정지가 받아들여져 빈소를 지키고 발인식을 치른 후 다시 입소했다. <>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