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확인된 ‘북한 암살부대’ 실체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9.01.21 10:31:53
  • 호수 12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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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직할 요인암살대, 대남 암해 공작 펼쳤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북한이 요인암살 작전을 전담하는 특수작전대대를 창설했다. 국방부가 발간한 <2018국방백서>의 내용이다. 북한의 비대칭전력 강화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우리 군이 북한 암살부대의 실체를 알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조선중앙TV

국방부는 지난 15일 국방백서를 발표했다. 암살부대에 대한 내용은 북한의 군사능력을 평가하는 부분에 실려 있다. 해당 내용에 따르면 북한은 요인암살 작전을 전담하는 특수작전대대를 창설했고, 특수전 부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특수작전군’을 별도의 군종으로 분류했다.

특수전 병력
20만여명

특수전 병력은 현재 20만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북한의 특수전 부대는 11군단과 전방군단의 경보병 사·여단 및 저격여단, 해군과 항공 및 반항공군 소속 저격여단, 전방사단의 경보병연대 등 전략적·작전적·전술적 수준의 부대로 다양하게 편성돼있다.

특수전 부대는 전시에 땅굴을 이용하거나 잠수함, 공기부양정, AN-2기, 헬기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해 침투작전을 벌인다. 전·후방지역에 침투한 후 우리 측 주요 부대·시설 타격, 요인암살, 후방 교란 등 배합작전을 수행한다.

백서는 “북한이 2016년 11월4일자 <노동신문>과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특수전대대의 전투 임무 등을 보도했다”고 밝혔다.

표적은 청와대와 정부·군 요직 인사들이다. 2016년 11월4일자 <조선중앙통신>은 인민군 제525군부대 직속 특수전대대에 대해 “(한국) 청와대와 괴뢰정부, 군부요직에 틀고 앉아 천추에 용서 못할 만고 대역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 추물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기본전투 임무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당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 대대를 시찰했다. 야외종합훈련장서 전투원들이 진행하는 장애물 극복훈련, 격술종합훈련, 사격훈련, 초저공 강하훈련, 직승기(헬기) 바줄(밧줄) 강하훈련, 습격훈련 등을 참관했다.

2016년 요인암살 특전대대 창설
타깃은 청와대·정부·군 요직

이때 그가 “전투원들이 펄펄 난다” “무쇠주먹, 무쇠덩이” “쏘면 쏜 대로 목표를 명중시키는 데 총알에 눈이 달린 것만 같다” “모두가 일당백” 등의 말을 하며 전투원들의 훈련성과를 높이 평가했다고 통신은 알렸다. 이 대대는 김정은이 직접 조직했다.

당시 김정은은 “전투원들을 잘 먹여야 훈련강도를 높일 수 있다”며 달걀과 생선을 비롯한 물자들을 급식 규정량대로 공급해줄 것을 지시했다. 또 전투원들에게 쌍안경과 자동보총(소총)을 기념선물로 주며 그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 국방부

김정은의 이번 시찰은 2016년 9월 전략군 화성포병부대 탄도로켓 발사 훈련을 참관한 지 두 달 만에 이루어졌다. 당시 전문가들은 김정은이 갑작스레 특수작전대대 시찰에 나선 이유에 대해 참수작전에 대한 대응이라고 해석했다. 

앞서 2016년 3월 한미 양국군은 연합군사훈련인 ‘키리졸브 훈련’서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개념을 담은 작계5015를 적용한 바 있다. 당시 북한의 지휘부와 핵·미사일 시설 등에 대한 정밀 타격을 포함한 ‘서지컬 스트라이크(surgical strike)’ 개념과 미 특수부대가 참가해 적의 지휘부를 제거하는 일명 ‘참수작전’ 내용이 알려졌다.

제525군 직속
특수전대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다. 자체 공중급유가 가능한 미군의 최신 특수침투용 수송기가 지형지물·적외선 레이더로 방공망을 피해 북한에 저공침투, 수송기 등에 타고 있던 공수특전대가 북한의 수뇌부를 섬멸한다.

우리 측 국방부장관이 김정은 제거를 위한 특수부대 조성 여부를 국회서 직접 밝히기도 했다. 2016년 9월 한민구 당시 국방부장관은 대정부질문에 나와 새누리당 김성찬 의원의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제거를 위한 특수부대를 만든다는 보도가 있었는데 사실인가’라는 질문에 “그런 계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이 같은 역량을 갖추는 과정이고, 여러 수단을 추가적으로 발전시켜가겠다”고 덧붙였다.

우리 군 당국은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북한이 핵 도발 징후를 보이면 김정은정권을 중심으로 한 군 지휘부를 궤멸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대량응징보복(KMPR) 개념을 발표한 바 있다. 
 

▲ 북한 특수전대대 ⓒ조선중앙TV

KMPR은 ‘3축 타격계획’의 일환이다. 3축 타격계획이란 1축인 킬체인(Kill Chain)과 2축인 한국형미사일방어(KAMD) 체계에 KMPR 계획을 더한 것이다. 1단계는 북한이 도발 징후를 보이면 킬체인으로 발사 전의 북한 탄도미사일을 제거한다는 것이다. 2단계는 발사된 미사일을 KAMD로 요격한다. 

만약 2단계도 실패할 시 3단계로 넘어간다. 정밀타격이 가능한 미사일 전력과 정예화된 특수부대를 운용해 북한 지도부를 응징하는 작전이 3단계다. 박근혜정부 당시 군 당국은 1개 여단 규모로 참수작전을 수행할 특수부대 편성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KMPR은 이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인 것으로 풀이된다.

참수작전
대응 성격

당시 북한은 이를 명백한 선전포고로 봤다. 북한의 선전매체 <메아리>는 2016년 9월 “우리의 최고 존엄을 헐뜯다 못해 이제는 감히 ‘북의 정권교체’와 최고 수뇌부 제거까지 운운하고 있는 박근혜의 무모한 광기로 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마지막 인내의 탕개마저 끊어져 나가고 있다”며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명줄을 끊어놓으려는 것이 우리의 징벌의지”라고 강조했다. 김정은의 요인암살 부대 시찰은 일련의 참수작전에 대한 대응 성격임을 알 수 있다.

2018 국방백서는 2016 국방백서와 비교해 많은 부분이 변화했다.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우리의 적으로 표현했던 문구를 삭제한 부분이 가장 대표적 변화로 꼽힌다. 대신 2018 국방백서는 “우리 군은 대한민국의 주권, 국토,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을 우리의 적으로 간주한다”며 적에 대한 개념을 명시했다. 북한을 특정하지 않고 적의 개념을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변경한 것이다.

백서는 북한군을 우리의 적으로 표현했던 문구가 삭제된 배경에 대해 “남과 북은 군사적 대치와 화해·협력의 관계를 반복해왔으나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한반도의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새로운 안보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한미 참수작전 훈련에 북 화들짝
김정은 직접 시찰…자동소총 선물

앞서 2016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 사이버 공격, 테러 위협을 언급하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표기했다. 북한군에 대한 국방부의 평가 등이 담긴 국방백서는 2년마다 발간된다.

또 킬체인과 KMPR과 같은 용어가 2018년으로 넘어오면서 폐기됐다. 백서는 해당 용어들을 대신해 ‘전략적 타격체계’라는 새로운 용어를 사용했다. 이명박·박근혜정부의 용어였던 킬체인과 KMPR 등이 남북 화해 국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용어를 변경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18 국방백서

2018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 능력이 2년 전보다 고도화됐으나 재래식 전력은 2016년과 비교해 두드러진 변화가 없다고 평가했다. 2016 국방백서에는 사거리 5000㎞ 이상으로 평가된 북한 미사일은 대포동(1만㎞ 이상)뿐이었지만, 2018 국방백서에는 대포동과 화성 계열을 포함해 6종류로 늘었다. 사거리 5500㎞ 이상인 ICBM도 5종류나 된다고 밝혔다.

국방부 장관도 
“제거계획 있다”

국방부 당국자는 특히 ‘화성-15형’에 대해 “미국 본토에 도달할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것으로 평가한다”고 설명했다. 화성-15형이 작전 배치되면 북한이 미 본토를 핵무기로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셈이다. 북한의 육·해·공군 등 재래식 전력은 병력(128만여명)와 전차(4300여대), 장갑차(2500여대), 야포(8600여대), 전투함정(430여척), 전투임무기(810여대) 등으로 2016년과 비교해 거의 변화가 없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백서로 본 한일관계 악화

2018 국방백서를 통해 우리나라의 달라진 외교관계를 엿볼 수 있다. 군사 교류와 관련해 일본과 중국과의 관계변화가 눈에 띈다.

2018 국방백서는 한일 국방협력과 관련해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표현했다. 2016 국방백서의 “북핵·미사일 위협 등 주요 안보 현안에 대해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지속적으로 협력해 나갈 것”이라는 표현서 한 발짝 물러섰다.

주변국 군사협력 순서도 ‘한일, 한중’에서 ‘한중, 한일’로 변경됐다. 일본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 외무성은 최근 홈페이지 ‘최근의 일한 관계’ 항목서 우리나라에 대한 소개 문구를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로 변경했다. 앞서 표현은 “우리나라(일본)와 자유와 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중요한 이웃 나라”였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한일 레이더 갈등과 강제 징용 배상 압류 문제가 변화의 원인으로 보인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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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