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운설’ 청와대와 풍수지리 대해부

“북악산에 살기 감돈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청와대와 풍수지리.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집무실 광화문 이전’이 무산됐다. 공약 파기에 대한 비난이 불거진 가운데 때아닌 풍수지리설이 고개를 들었다. 그간 풍수지리학자들 사이에선 청와대 터를 두고 갑론을박이 있었다. ‘흉지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반박이 치열했다. 양 측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기 때문에 궁금증은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터는 정말 괜찮은 땅일까?
 

▲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화문대통령시대’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소통 부재가 탄핵 정국을 야기했다는 진단에 따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 대국민 소통을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책자형 선거공보를 통해 “퇴근 후 시장에 들러 넥타이를 풀고 국민들과 소주 한 잔 나누는 소탈하고 친구 같은 대통령을 꿈꿔왔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11개월 만에 
없던 일로∼

광화문대통령시대위원회 유홍준 자문위원은 지난 4일, 춘추관 브리핑서 광화문 이전 불가를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유 위원은 이날 “집무실을 광화문 청사로 이전할 경우 청와대 영빈관과 본관, 헬기장 등 집무실 이외 주요 기능을 대체할 부지를 광화문 인근서 찾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통령 임무를 수행하다 보니 경호·의전이라는 게 엄청 복잡하고 어렵다는 사실을 문 대통령도 인지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2월부터 활동을 시작했던 광화문시대위원회는 그렇게 11개월 만에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됐다.

야당의 비판은 거셌다. 야 4당은 이구동성으로 문 대통령의 공약 파기를 문제 삼았다.


자유한국당 이양수 원내대변인은 “집무실 이전 공약의 취지는 국민과의 상시적 소통이었지만 문 대통령은 취임 후 국민의 목소리조차 듣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바른미래당 김정화 대변인은 광화문 이전 공약을 “현실성 없는 거짓 공약”이라며 “국민을 우롱한 문재인정부는 국민께 사죄해야 한다”고 날을 세웠다.

범진보 진영도 예외는 아니었다. 민주평화당 김정현 대변인은 “공약을 못 지키게 됐으면 대통령이 우선 국민들께 경위를 직접 설명하고 사과하는 게 옳다”며 촉구했고,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지난 5일 “국민은 면밀한 검토 없이 제시된 ‘공약(空約)’에 속이 쓰리다”고 비판했다.

여당은 강하게 항변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현 상근대변인은 “모든 이슈에 대해 정치공세로 일관하는 야당서 나라를 걱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여야 공방이 가열되는 가운데 청와대 터를 둘러싼 풍수지리설이 슬며시 고개를 내밀었다.

광화문시대 무산되니 풍수 불쑥
민심 흉흉하니 흉지론까지 부상

논란에 단초가 된 것은 광화문시대위원회 유 위원의 발언이었다. 유 위원은 광화문 이전 공약 철회를 설명하던 중 “현재 대통령 관저가 갖고 있는 사용상의 불편한 점이 있다. 나아가 풍수상의 불길한 점을 생각한다면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풍수상 불길한 점의 근거가 무엇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유 위원은 웃으며 “수많은 근거가 있다”고 답했다.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 이름을 떨친 유 위원은 풍수에 대해서도 나름의 식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풍수가 등장하면서 여파도 거셌다. 지천타천으로 청와대 터에 대한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 문재인 대통령

물론 쟁점은 청와대 부지의 길흉 여부다. ‘청와대 흉지설’을 최초로 제기한 인물은 최창조 전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다. 최 전 교수는 자타공인 풍수지리 전문가로 풍수 관련 서적만 20권 넘게 집필했다. 최 전 교수는 행정수도 계획이 발표될 당시 ‘행정수도 불가론’을 내세우며 아홉 가지 이유를 들어 주목을 받았다.


최 전 교수는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를 통해 “청와대 터의 풍수적 상징성은 그곳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터가 아니라 죽은 영혼들의 영주처이거나 신의 거처”라며 “사람이 신적 권위를 부여받았으니 나쁠 것도 없지 않느냐고 얘기할 수도 있으나 풍수에서는 결코 인사(人事)가 천도(天道)를 넘보는 일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코에 걸면…
귀에 걸면…

김두규 우석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는 최 전 교수의 불가론에 대해 반박했다. 김 교수는 지난 2017년 12월 <월간 조선> 칼럼을 통해 “최 전 교수는 조선총독들뿐만 아니라 역대 대통령들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살다가 뒤끝이 안 좋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여기에 풍수술사들까지 덩달아 진지한 성찰 없이 그 내용을 확대시키면서 청와대 흉지설이 굳어졌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신의 거처, 즉 큰 사찰이나 성당이 들어서려면 풍수상 2가지 조건에 부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터는 흙산이 아닌 돌산이어야 하고, 좌우 산들이 이를 완벽하게 감싸줘야 한다. 김 교수는 두 번째 조건을 지적하며 “내백호와 내청룡의 지맥이 낮고, 서로 교차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터를 둘러싼 길흉 논란은 꽤 오래전부터 시작됐다. 세종 15년의 풍수관리 최양선이 ‘경복궁 이전’을 주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청와대는 경복궁 터의 일부다.

세종은 황희 등을 비롯한 신하들과 풍수가에게 직접 현장에 가서 확인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결론이 쉽게 나오지 않았다. 결국 세종이 직접 북악산에 올라 살펴본 뒤 “경복궁은 길지”라고 결론내렸다.

현재 청와대는 풍수지리학서 이상적인 배치로 여겨지는 배산임수 지형이다. 청와대 뒤편 북악산을 시작으로 좌우엔 각각 낙산과 인왕산이, 청와대 앞에는 청계천이 흐르고 있다. 청와대 터는 길지 중의 길지라는 해석이다.

청와대가 명당이라는 주장에는 청와대 경내서 발견된 글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청와대 관저 신축공사 도중 ‘천하제일복지’라는 글이 새겨진 바위가 발견됐다. 천하제일복지는 풍수지리상 최고의 명당을 일컫는 말이다. 바위에 새겨진 글은 약 300∼400년 전 쓰인 글로 추정됐다. 

“그걸 믿어?”
이견도 팽팽

청와대서도 현재 위치를 길지로 보고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위치한 지역은 ‘옛날부터 풍수지리학상 길지로 알려진 곳’으로 ‘890년 전 고려시대에 남경의 이궁이 있던 곳’이다. 남경은 고려 3경(개경·서경·남경) 중 하나를 뜻하고, 이궁은 임금이 왕궁 밖에서 머물던 별궁이다. 남경 이궁은 고려시대 숙종 때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도 청와대 터는 명당으로 지목됐다. 

반면 청와대 흉지설도 만만치 않다. ‘칠궁’에 대한 주목이 대표적이다. 칠궁은 조선시대 왕을 낳은 후궁 7인의 묘다. 조선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도 여기에 있다. 후궁 7인은 모두 왕을 낳았지만 그들의 위패는 종묘에 모셔지지 못했다. 종묘에 모셔진 건 후궁이 아닌 왕비였다. 


현재 칠궁은 청와대 서남쪽에 위치해 있다. 그 연유로 몇몇 풍수학자들은 청와대 터에 ‘한’이 서려 있다고 주장한다. 후궁들은 왕자를 낳고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채 소외됐기 때문이다. 

청와대 터가 내시와 무수리의 임시 무덤으로 쓰였다는 주장도 있다. 또 일부는 이곳이 무인들의 무예시험장소와 전국 유생들의 과거시험 장소였다고 말한다.

청와대가 북악산 바로 아래에 위치한 점도 흉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북악산은 화강암으로 이뤄진 바위산이다. 풍수학에선 바위가 크고 많은 산을 ‘살기’가 가득한 산으로 본다. 
 

▲ 신년 기자회견 갖는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대통령의 말로가 모두 혼탁했던 것 역시 흉지론에 설득력 갖게 한다.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참여했던 건축가 승효상씨는 지난 2017년 10월 청와대 내부 강연서 풍수지리를 신봉하지 않는다면서도 역대 대통령들의 후일이 좋지 못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가 풍수지리상 그리 좋은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지 않느냐”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그 누구도 임기를 순탄하게 끝내지 못했다. 수사와 구속은 물론이고 탄핵까지 그 결과는 암담했다.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청와대에 들어왔다. 당시 청와대의 이름은 경무대였다. 이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 뒤 6·25전쟁이 발발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4·19혁명이 있었다. 4·19혁명으로 하야한 이 전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해 5년 뒤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다음으로 윤보선 전 대통령이 선출됐다. 경무대의 이름이 청와대로 바뀌게 된 때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대통령 자리서 물러났다.

역대 대통령 말로 비참…정말 터 때문?
“기운 탓 아닌 사람 탓” 경계 목소리도

군사정변을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윤 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정권을 잡게 됐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육영수 여사 피살 사건을 겪었고, 자신도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의해 피살당한다. 

박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최규하 전 대통령이 선출됐지만, 1979년 신군부의 12·12사태로 최 전 대통령은 8개월 만에 물러나게 된다. 최 전 대통령은 역대 최단 대통령으로 기록됐다.

이어 전두환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장악했지만 다음 대통령인 노태우 전 대통령과 함께 수의에 고무신을 신고 나란히 법정서 재판을 받게 된다. 

김영삼 대통령의 당선과 함께 문민정부가 탄생했지만 IMF 사태가 터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 아들의 비리 연루 사건으로 홍역을 치렀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됐다.

끝이…
가시밭길

다만 일각에선 청와대 흉지론에 대한 맹목적 신뢰와 확대 해석을 경계한다. 국내 풍수학 박사 1호인 이몽일 박사는 <영남일보> 칼럼을 통해 “새 대통령이 나오면 얼풍수들은 으레 그 사람의 조상 묘터는 말할 것도 없고, 생가터를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대명당으로 미화한다”며 “그러다가 퇴임 시 정쟁이나 비리로 대통령의 위상이 추락되면 그것을 오롯이 ‘청와대의 터’ 탓으로 돌린다”고 비판했다. 이 박사는 “사람의 일을 탓하지 않고 땅을 탓할 때 풍수는 미신이 되고 만다”고 일갈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집무실 이전 추진 왜?

청와대 집무실 이전은 오랜 기간 단골 대선 공약 중 하나였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화문 정부청사로 집무실을 옮기려 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청와대 집무실을 쓰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 후보를 제치고 승리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행정수도로 집무실을 이전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경호, 의전, 예산 등을 이유로 집무실 이전은 무산됐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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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