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말 3초’ 한국당발 정계개편 시나리오

꼬리에 꼬리, 그 나물에 그 밥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기해년을 맞아 정치권이 다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정계개편’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바른미래당과 민주평화당은 선거제 개혁 여부에 따라 정계개편을 관통할 전망이다. 야권 외에도 자유한국당 역시 순위에 들어서면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차여차 치열한 정치셈법이 난무하는 형국이다.
 

▲ 유승민·안철수 바른미래당 전 공동대표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있다.’‘ 새판을 짜겠다’는 야당의 신년사는 결연했다. 정계개편을 목전에 둔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은 이구동성으로 ‘생존’을 강조했다. 양당은 정계개편의 소용돌이 앞에서 바짝 긴장한 모양새다. 단초를 제공한 건 지난 6·13지방선거였다. 바미당과 평화당으로선 국민에게 받는 첫 번째 평가였다. 결과는 참담했다. 6월 지선 이후 정치권 안팎에선 양당의 존립을 회의적으로 바라봤다.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양당 존립
회의적 시각

지난해 6월 지선 이후 바미당과 평화당은 전당대회를 실시, 재정비에 나섰다. 전대 결과에 따라 양당은 각각 손학규·정동영 체제로 들어섰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와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정의당과 연대해 ‘선거제 개혁 연대’를 구축했다. 이들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에 당력을 총동원했다. 선거제 개혁을 위해 손 대표는 단식에 돌입했고, 정 대표는 천막농성으로 힘을 보탰다. 

새로운 선거제도는 지지율만큼 의석수를 가져가기 때문에 원내 진입 장벽이 낮아진다. 소수정당의 의석수 확보에 유리한 제도다. 정당의 생존이 의석수와 직결되는 만큼 선거제 개혁은 이들의 생존과 맥을 같이한다. 야3당은 진통 끝에 여야 합의를 이끌어냈지만 입장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못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서 바미당 이학재 의원의 탈당은 결정적이었다. 이 의원은 지난달 18일 바미당을 탈당해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이후 바미당의 ‘지방선거 영입 1호’였던 신용한 전 바미당 충북도지사 후보와 ‘우수인재 영입 1호’ 박종진 전 바미당 송파을 국회의원 후보, 전·현직 지역위원장 등이 연이어 탈당을 선언했다.  


무소속 의원들의 민주당 입당 선언도 파장을 일으켰다. 지난달 28일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은 민주당 입당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의원과 손 의원은 평화당의 전신인 국민의당 출신이다. 평화당은 두 의원의 입당을 위해 공을 들였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평화당은 “유권자의 뜻을 배신하는 것”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의 탈당과 복당, 그리고 입당은 바미당과 평화당이 추구하던 선거제 개편의 동력을 상실케 했고, 반대로 정계개편에 힘을 실어줬다.

신년부터 정계개편의 당사자로 지목받은 바미당과 평화당은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바미당 손 대표는 지난 1일 단배식서 “정치개혁에 앞장서겠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양당제를 타파하고, 민심 그대로의 민주주의로 정치의 새 판을 짜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선거제 지지부진…정계개편 성큼성큼
 복잡해진 셈법, 주판 두들기는 야권 

평화당 민영삼 최고위원은 같은 날 단배식을 통해 “2019년은 우리 평화당이 죽느냐, 사느냐, 존립하느냐, 확대 발전하느냐 하는 기로의 해라고 생각한다”며 “똘똘 뭉쳐서 이 난국을 헤쳐나가고 힘을 합치자”고 당부했다.

정치권에선 바미당과 평화당의 존립을 두고 부정적인 시각이 만연하다.

정치권 관계자는 “선거제 개편은 기대를 걸기 어렵다”며 “결국 두 정당이 21대 국회의원 총선거 이후에도 남아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계개편의 시동은 2월 말과 3월 초 사이인 ‘2말 3초’에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2말 3초는 한국당의 전대 일정서 비롯됐다. 한국당은 다음달 27일 차기 당 대표를 선출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한국당의 전대와 정계개편이 연동되는 까닭은 한국당의 차기 당 대표가 누가 될지에 따라 정계개편의 향배가 잠정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한국당 차기 당 대표는 친박(친 박근혜)계와 비박(비 박근혜)계의 경쟁 구도로 흘러갈 공산이 크다. 현재 한국당은 김병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위원장 체제다. 김 위원장은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하면서 한국당에 잔존 중인 계파 청산을 외쳤다. 비대위 산하 조직강화특별위원회는 ‘인적쇄신’을 단행했다. 다만 그 칼날은 무뎠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친박계는 지난달 11일에 실시된 한국당 원내대표 경선 과정서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켰다. 친박계는 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에게 표를 몰아주며 당선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나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김 비대위원장의 인적쇄신에 대해 “의원 임기가 남아 있는 상황서 우리 당의 대여투쟁력이 많이 약화될까 걱정”이라며 비대위 체제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친박이냐
비박이냐

친박계의 존재감이 과시된 셈이다. 한국당 전대서도 친박계의 입김은 지속될 전망이다.

한국당 전대서 친박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바미당 의원들의 셈법은 복잡해진다. 친박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보수개혁을 외치며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을 탈당해 바른정당(바미당의 전신)을 창당한 의원들을 곱게 보지 않는다. 친박계는 이들을 향해 ‘당에 침 뱉고 나갔던 사람’이라며 공공연하게 비판했다. 

현재 바미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은 오신환·유의동·유승민·이혜훈·정병국·정운천·지상욱·하태경 의원으로 모두 8명이다. 친박계의 한국당 당권 확보는 이들의 운신에 제한을 걸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바미당을 탈당해 한국당으로 복당한 이학재 의원은 친박계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이용주 민주평화당 의원

반대로 비박계가 당권을 꿰찰 경우 이들 8인의 움직임은 다소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바미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다만 보수개혁을 외친 유 전 대표가 ‘정치적 명분’ 없이 단순히 한국당 복당을 선택하긴 어렵다. 한편 바미당은 바른정당 출신 이혜훈 의원을 국회 정보위원장으로 내정해 임명 절차를 밟게 했다. 이를 두고 정계개편 이후 거취에 빗장을 걸기 위한 손 대표의 포석이란 분석이 나왔다.

친박계에선 신당 창당이 주목을 받고 있다. 친박계는 차기 당권에 실패할 시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언급했다. 친박계로 분류되는 한국당 홍문종 의원은 지난달 6일 MBC 라디오 <심인보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현재 신당의 실체가 있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든지 당 안으로 끌어들여서 하나가 돼야 된다”고 주장했다.

다만 친박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한국당 나 원내대표가 당선된 이튿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선 “나 원내대표 당선을 계기로 탈당의 원인이 제거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친박의 탈당은 없을 것”이라며 말을 바꾸기도 했다. 

평화당의 움직임은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바미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한국당행이 가시화된다면 평화당은 ‘어게인 국민의당’을 바라볼 수 있다. 당시 바른정당과의 합당을 반대했던 국민의당 의원들은 대열서 이탈, 평화당을 창당했다. 바미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탈당으로 평화당과 바미당 내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의 연대에 힘이 실린다는 해석이다.

바른정당
국민의당


변수는 바미당 안철수 전 공동대표다. 어게인 국민의당이 제기되는 까닭은 안 전 대표가 현재 정치권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평화당 창당은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에 반대한 결과다. 평화당 입장서 안 전 대표는 ‘당을 깬 사람’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지선 당시 서울시장 선거서 패배한 뒤 바미당 선거 참패를 책임지면서 당 공동대표직서 물러났다.

안 전 대표가 물러난 상황은 평화당과 바미당 내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에겐 정계개편의 적기로 여겨진다. 반대로 안 전 대표의 복귀는 새로운 장면을 연출할 것으로 예측된다.

또 다른 변수는 평화당 내 의원들의 탈당이다. 평화당 김경진·이용주 의원은 탈당 여부를 내비춰 한 차례 논란을 야기했다. 당시 이 의원은 ‘선거제 개편 여부와 양당 체제로의 회귀가 정계개편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김 의원도 이에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과 이 의원의 탈당이 이뤄진다면 정치적 성향상 민주당의 문을 두드릴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입당 활로는 무소속 이용호·손금주 의원이 어느 정도 열어뒀다.
 

▲ 김경진 민주평화당 의원

결국 한국당 비박계의 당권 장악이 바미당 내 바른정당 의원들의 행보에 영향을 끼칠 것이고, 나아가 바미당 내 국민의당 출신 의원들과 평화당 의원들 간 교집합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할 것이란 해석이다. 친박계의 신당 창당도 관전 포인트다. 반대로 친박계가 당권을 잡을 경우 바미당 내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의 거취 반경이 줄어드는 만큼 어게인 국민의당의 실현은 다소 어려울 전망이다.

정계개편은 한국당 전대 이후인 2말 3초 외에도 4월에 또 한 번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점쳐진다. 오는 4월3일에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2일을 기준으로 이미 2곳이 확정됐다.


전대 언제쯤?…틈 노리는 바미·평화 
‘2+α’ 4월 재보선 민심 현주소 촉각

선거 지역은 향후 7곳 정도 더 추가될 수 있다. 선거 지역의 추가로 4·3 재보선은 ‘미니 총선’으로 격상될 공산이 크다. 4·3재보선은 2020년 4월15일에 치러지는 총선을 약 1년 앞두고 치러지는 선거로 민심의 향방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점검할 수 있는 기회로 꼽힌다. 

확정된 두 지역은 경남 창원시 성산구와 경남 통영·고성이다. 창원시 성산구는 정의당 고 노회찬 전 의원의 지역구였다. 지난해 7월 고 노 전 의원의 작고로 성산구는 일찌감치 재보선 지역구로 확정됐다. 통영·고성은 한국당 이군현 의원의 지역구였다. 이 의원은 대법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아 의원직을 상실했다.

이 의원은 보좌진 급여를 빼돌려 직원 급여와 사무실 운영비 등으로 쓴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4월 재보선에 추가될 기로에 있는 지역구는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 경북 칠곡·고령·성주, 경기 용인시갑, 경북 경산, 인천 미추홀갑, 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 등이다. 순서대로 한국당 엄용수·이완영·이우현·최경환·홍일표·황영철 의원의 지역구다. 무소속 이정현 의원의 전남 순천도 포함된다. 이들은 모두 1심 등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다.
 

경남 밀양·의령·함안·창녕의 엄 의원은 지난해 11월, 1심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6개월, 추징금 2억원을 선고받았다. 경북 칠곡·고령·성주의 이 의원은 지난해 5월, 1심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 등으로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500만원, 추징금 854만원을 선고받았다. 경기 용인시갑의 이 의원도 지난해 7월 뇌물 혐의 등으로 1심서 징역 7년, 벌금 1억6000만원, 추징금 6억82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경북 경산의 최 의원은 지난해 6월 국가정보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로 1심서 징역 5년, 벌금 1억5000만원, 추징금 1억원을 선고받았다. 인천 미추홀갑의 홍 의원은 지난해 8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 등으로 1심서 벌금 1000만원과 추징금 1900만원을 선고받았다. 강원 홍천·철원·화천·양구·인제의 황 의원은 정치자금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심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500만원, 추징금 2억8700만원을 선고받았다.

순천의 이 의원은 지난달 14일 방송법 위반 혐의로 1심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4·3재보선
민심 풍향계

4월 재보선 결과에 각 정당은 촉각을 곤두세울 공산이 크다. 지난해 6월 지선과 함께 치러진 재보선 결과는 민주당의 압승으로 매듭지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지지율은 여타 정당들에 비해 압도적이었지만 최근 들어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 역시 부정평가가 긍정평가를 앞지른 바 있다. 선거 결과가 6월과 같을 것이라 예단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결과에 따라 각 당의 입지에 변화가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4·3재보선은 정계개편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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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