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거물들의 ‘세 가지 법칙’

승천? 잠수? 기로에 선 잠룡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정치 거물들이 잇달아 ‘컴백’하고 있다. 최근 대권주자로 언급되는 정치인들이 차례로 정계 복귀 신호탄을 쏘고 있는 것. 정치권은 한바탕 출렁이는 모양새다. 이들은 연말, 정권 중후반기, 총선이란 키워드와 함께 돌아왔다. 
 

▲ (사진 왼쪽부터)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유승민 전 바른미래당 대표, 오세훈 전 서울시장

최근 정치권은 선거제 개편 논의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과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그리고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에게 선거제 개편을 지속적으로 제기했다. 거대 양당은 야3당의 제안에 소극적이었다. 

선거 개편
정계 개편

결국 야당은 선거제와 예산안을 연동하는 강수를 뒀다.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예산안과 선거법개정안을 연계하는 건 국회의원을 하면서 처음”이라며 날을 세웠다. 바미당 손학규 대표와 평화당 정동영 대표는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한다”고 응수했다. 여야 간 신경전은 감정싸움으로 번지는 모양새다. 

선거제 갈등은 지난 10월을 기점으로 격화됐다.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이하 정개특위)가 가동 중이지만 불씨를 살릴 시간은 길지 않다. 정개특위 활동 기한은 12월 말까지다. 특위 종료와 함께 본격적인 총선 국면이 시작된다. 주목되는 점은 선거제 개편의 이면이다.

선거제 개편이 무산된다면 현행 선거제도로 2020년 총선을 치러야 한다. 바미당과 평화당에겐 치명적이다. 낮은 지지도 탓에 당의 존립 가능성이 위태롭다. 정의당은 또다시 비교섭단체로 머물 공산이 크다. 최근 일부 국회의원들의 입당설, 복당설 등이 피어오른 것과 크게 무관하지 않다. 선거제 개편이 정계 개편과 분리되기 어려운 이유다.


정치권 최대 이슈로 선거제 개편과 정계 개편이 부상하면서 정치 환경의 변화 가능성이 대두됐다. 이 가운데 정치 거물들의 복귀 선언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거물들은 모두 이 기간에 복귀를 결정했다.

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는 지난달 20일 현실 정치 복귀를 선언했다. 홍 전 대표는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지방선거 때의 홍준표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며 복귀를 공표했다.

정치 환경 변화 감지, 잇달아 복귀 선언
악재 만난 정부 정조준, 너도나도 맹공 

같은 달 28일 바미당 유승민 전 공동대표는 ‘강연 정치’로 기지개를 켰다. 유 전 대표는 6·13지방선거 패배에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이후 5개월 만에 공식석상에 올랐다. 유 전 대표는 이화여자대학교 강연 이후 기자들과 만나 “지금 중요한 것은 보수에 등을 돌리고 있는 분들의 지지를 어떻게 얻는가 하는 것”이라며 “그 길을 고민하고 있고, 언젠가 결심이 굳어지면 국민들께 당당히 말씀드리고 행동할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튿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한국당에 입당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한국당에 입당서를 제출했다. 오 전 시장은 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 산하 기구 미래비전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게 됐다.
 

▲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와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오 전 시장은 입당 기자회견서 “보수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고자 다시 입당을 하게 됐다”며 복귀 이유를 설명했다. 오 전 시장은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민생정당, 4차 산업혁명으로부터 시작된 신문명의 시대를 열어가는 미래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연말 직전 야권 인사들이 차례로 복귀하면서 정치권은 출렁였다. 이들은 모두 선거제 개편 등 정치 지형에 변화가 꿈틀거릴 때 돌아온 셈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문재인정권의 집권 중후반기라는 것이다. 통상 대통령의 집권 2년 차를 지나 3년 차를 맞게 되면 여러 악재들이 터져 나온다. ‘집권 2년 차 징크스’ ‘집권 3년 차 징크스’라는 말이 생긴 까닭이다. 홍 전 대표와 유 전 대표 그리고 오 위원장은 복귀 선언과 동시에 문재인정부를 비판했다.


환경 변화
복귀 선언 

문재인정부는 최근 청와대 기강 해이를 비롯해 참모 책임론, 경제 문제, 민주당 내부 잡음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이하 특감반) 비위는 참모 책임론으로 이어졌다. 특감반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소속이다. 조국 민정수석은 경질론서 자유롭지 못했다.

비위는 특감반에 파견된 검찰 수사관서 비롯됐다. 수사관은 경찰청 특수수사과를 찾아가 특정 사건의 수사상황을 캐물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의 지인인 건설업자가 국토교통부 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준 사건이었다.

이 외에도 특별감찰관이 타부서로 승진을 시도한 점, 특감반 직원들이 근무시간에 골프 회동을 한 점 등이 속속 드러났다. 야당은 조 수석의 경질을 강하게 주장하며 지난 3일 총공세에 나섰다.
 

▲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국회서 열린 비대위 회의서 “기강 해이로 나사가 풀렸지만 풀린 나사를 조일 드라이버도 없다”며 포문을 열었다.

김 원내대표는 “조 수석은 자기 정치하지 말고 자기 검증이나 철저하게 하라”고 촉구했다.

바미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국회 최고위원회의서 “정권 말기에도 보기 힘든 일들이 청와대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며 “문재인정부가 임기 1년 반도 남지 않은 정부가 아닌지 착각이 들 정도”라고 쏘아붙였다. 

범여권으로 분류되는 평화당과 정의당도 비판에 가세해 눈길을 끌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청와대 직원 몇몇의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정권 자체의 구조적 문제”라고 비판했다. 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 역시 구두 논평을 통해 “청와대에서 연이어 기강 문란이 일어나고 있다”라며 “조 수석이 책임을 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민주당 이 대표는 같은 날 야권의 비판에 선을 그었다. 이 대표는 “야당서 조 수석의 문책이나 경질을 요구한다. 그건 야당의 정치적인 행위”라고 밝혔다. 야권이 반격에 나서며 여야 공방전이 지속됐다. 

한편 문 대통령은 사실상 조 수석을 재신임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김의겸 대변인은 지난 5일 브리핑을 통해 “문 대통령은 조 수석에게 청와대 안팎의 공직 기강 확립을 위해 관리 체계 강화와 특감반 개선 사항을 조속히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미 청와대는 경호처 직원의 시민 폭행과 청와대 김종천 의전비서관의 음주운전 등으로 곤혹을 치른 바 있다. 특감반 사태는 결정타였다.  


어려운 경제 상황 역시 악재다. 경제 회복이 불투명한 가운데 정부의 경제정책 변화는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 성과가 불투명한 상황서 기존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청와대 2기 경제팀 중 하나인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이 불발된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 안팎에선 문 대통령의 경제 점수에 연일 낙제점을 줬다.

민주당 내부 잡음은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은 이재명 경기지사와 그의 부인 김혜경씨를 둘러싼 ‘혜경궁 김씨’ 사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논란은 증폭됐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사건이 진행되던 중 이 지사는 ‘문준용씨 특혜 채용’을 언급해 파문이 일었다. 결국 이 지사의 발언은 민주당 최대주주인 친문 지지층의 적대감으로 이어졌다. 몇몇 민주당 의원들은 이 지사의 사퇴를 촉구했다.   

정부와 집권 여당을 둘러싼 일련의 사건·사고는 문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영향을 끼쳤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9주 연속 하락세를 보였다. 65%에 달했던 지지율은 결국 50%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최근 50% 회복에 간신히 성공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3∼5일간 진행하고 5일 발표한 주중집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50.0%로 전주 대비 1.6%p 상승했다. ‘매우 잘한다’ 25.6%와 ‘잘하는 편’ 24.4%를 합한 값이다. 부정적인 평가는 44.9%를 기록했다. ‘잘 못하는 편’과 ‘매우 잘 못함’은 각각 17.0%, 27.9%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응답률은 7.5%다. 이번 조사는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법과 무선(80%)·유선(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통계보정은 지난 7월 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기준으로 성, 연령, 권역별 가중치 부여 방식으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 ±2.5%p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구동성 
정부 비판

돌아온 거물들은 때맞춰 정부를 맹공격했다. 홍 전 대표는 지난 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에 대해 “남북정상회담이 지방선거를 겨냥한 이벤트였다면 이번은 경제 폭망을 뒤덮고 사회체제 변혁을 준비하기 위한 이벤트 행사로 보여진다”고 꼬집었다. 홍 전 대표는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다급했나 보다”라며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총선을 앞두고 쓸 카드라고 보았는데 미리 사용하는 것은 정권이 그만큼 위기감을 느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 전 대표는 지난 4일, 국회서 진행된 홍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서 문재인정부의 경제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유 전 대표는 “문책성 인사로 전임과 차별성을 말해야 하는데 경제정책을 바꾸지 않으면 무슨 기대를 하겠느냐”고 따졌다. 이어 유 의원은 “문재인정부는 공정경제·소득주도·혁신성장 경제정책을 계속 추진한다고 했는데 왜 굳이 부총리를 교체해야 하나”라고 되묻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은 한국당 입당 당시 “문재인정부의 무능하고 독선적인 행태와 싸워온 당원 동지 여러분들의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며 “미력이나마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현 정부를 둘러싸고 있는 악재에 주목, 공세를 통해 복귀의 명분과 정당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들은 총선 국면을 앞두고 돌아왔다. 선거제 개편 등으로 정치 환경 변화가 감지되는 시점에 복귀해 정계 개편 가능성에 합류하고, 징크스 국면에 빠진 정부를 비판하면서 총선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돌아온 3인방 중 오 전 시장은 총선 출마 의지를 직접 드러냈다. 오 전 시장은 입당 기자회견서 “다음 총선서 어디가 됐든 당에서 요청하는 곳이라면 험지라도 가서 제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라고 언급했다. 오 전 시장은 민주당 추미애 전 대표의 지역구인 광진을 출마를 시사했다. 홍 전 대표는 창원 보궐선거 출마설에 올랐다.

유 전 대표는 무난하게 총선 출마에 출마할 전망이다.

다가오는 총선, 출마 셈법 가지각색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이름 나란히

한편 이들 외에도 복귀를 노리고 있는 정치권 인사들의 움직임이 주목을 받고 있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와 안철수 전 공동대표가 대표적이다. 

황 전 총리는 지난 9월 출판 기념회를 통해 정계 복귀를 시사했다. 황 전 총리는 태극기 부대의 최대주주다. 그를 둘러싼 전당대회 출마설, 총선 출마설 등에 정치권이 주목하는 까닭이다. 황 전 총리는 복귀와 동시에 문재인정부를 향해 강한 비판을 쏟아냈다.

황 전 총리는 지난 4일 강원 동해시 현진관광호텔서 열린 제49회 극동포럼에 참석해 “국민은 남북 간 약속들이 이뤄지고 있느냐 이런 부분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다”며 “국내 정치가 안심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걱정과 불안을 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어 “국제 경제가 괜찮을 때도 우리가 발전하지 못했는데 국제 경기가 어려워지는 국면이 돼 앞으로 더 어려워질까 걱정된다”며 정국을 진단하기도 했다. 

안 전 대표의 복귀 시점도 주목된다. 유 전 대표의 복귀와 맞물려 그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게 됐다. 최근 안 전 대표는 우회적으로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전당대회 출마를 선언한 한국당 나경원 의원은 지난 3일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보수 통합론에 같이 하실 수 있는 분이라면 대한애국당 조원진 대표부터 바미당 안 전 대표까지 다 함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안 전 대표의 측근인 바미당 김철근 전 대변인은 이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안 전 대표 이름을 아무 데나 찍어 붙이지 마라”며 “안 전 대표는 지방선거 이후 현실 정치를 벗어나 독일 뮌헨서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바미당 관계자는 “안 전 대표의 몸은 독일에 있지만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존재감 확보 
정치력 제고

한편 홍 전 대표와 유 전 대표, 그리고 오 위원장을 비롯해 황 전 총리와 안 전 대표 모두 차기 대권주자로 꼽힌다. 정계 복귀의 중심에 있는 이들 모두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들의 복귀가 향후 어떤 결과를 낳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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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