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대반격 막전막후

진흙 속에서 꽃 피울까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요즘 자유한국당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한국당은 탄핵정국 이후 줄곧 하락세를 걸었지만 최근 광폭행보를 보이며 재기를 시도하고 있다. 당 내외서도 그 움직임은 뚜렷하다. 한국당은 공공기관 채용 비리 의혹으로 국정 이슈를 선점하고, 당협위원장 교체 등 인적 쇄신에 시동을 걸고 있다. 동시에 정치적으로 중량감 있는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보수 진영의 통합과 몸집 키우기에 나서는 모양새다.
 

최고중진회의서 모두발언하는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탄핵정국을 관통하면서 힘을 상실했다. 국정 농단 사태로 여론의 비판이 들끓었고, 보수 진영은 새누리당(한국당의 전신)과 바른정당으로 분열됐다. 바른정당은 국민의당과 합당으로 바른미래당(이하 바미당)을 창당했다.

탄핵 후 분열
국민적 외면

반면 새누리당은 당명을 한국당으로 교체해 명맥을 이어갔다. 한국당은 ‘박근혜 꼬리표’를 쉽사리 떨쳐내지 못했다. 한국당은 쇄신을 위해 박 전 대통령과 핵심 친박(친 박근혜)을 ‘정리’했다. 실제로 박 전 대통령은 출당 조치를 당했고, 서청원 의원은 탈당했다. 그러나 한국당을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았다.

지난 6월 지방선거 결과가 단적인 예다. 한국당은 6·13지방선거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에게 크게 졌다. 한국당은 광역단체장 선거서 대구와 경북 그리고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제주를 제외한 나머지 선거구서 참패했다. ‘민주당 싹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당의 기세는 크게 꺾였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한국당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올해 최대 이슈로 꼽히는 남북 관계 개선과 비핵화 문제서 활로를 찾지 못했다. 비핵화를 바라보는 한국당의 시각은 남북 평화 무드를 지향하는 여론과 큰 차이를 보였다. 한국당의 주장을 두고 ‘낡은 대북 프레임’이란 비판이 제기된 이유다.


한국당은 정국 주도권 경쟁서도 큰 성과를 보지 못했다. 드루킹 특검과 국정조사 요구가 대표적이다. 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단식농성까지 벌이며 드루킹 사건을 최대 쟁점 사안으로 부상시키고자 했다. 다만 결과는 가시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당은 지난달 있었던 국정조사를 통해 존재감을 한껏 키우는 데 성공했다. 한국당 유민봉 의원이 제기한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이 결정적이었다. 김 원내대표와 한국당 의원 등 여러 관계자들은 서울시 국정감사장을 찾아 몸싸움을 벌이면서 여론의 시선을 한껏 끌어모았다.

한국당은 서울교통공사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 강경 대응하고 있다. 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까닭은 정부와 여당을 향한 공세가 여느 때보다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특별시 산하 공공기관이다. 공공기관서 채용 비리 의혹이 발생한 것이다. 이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는 문재인정부에게 뼈아픈 대목이다. 이번 달부터 예산정국이 펼쳐지는데, 핵심쟁점은 공공부문 관련 ‘일자리 예산’이다.

여야는 정부의 예산안이 발표된 시점부터 일자리 예산을 두고 갈등 조짐을 보였다. 이 가운데 공공기관 채용비리가 발생한 것이다. 일각에선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의 동력 상실 가능성도 제기한다.

한국당, 지방선거 전후 연일 헛발질
채용비리 의혹 후 정국 주도권 잡아

여론 역시 한국당에게 유리한 편이다. 최근까지도 청년들의 일자리 세태와 관련, ‘청년 빈곤’이라는 화두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여론이 분노의 공감대를 형성한 까닭이다. 한국당은 이 상황에 발맞춰 ‘국가기관 채용비리 국민 제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당은 홈페이지를 통해 서울부터 제주까지 전국 17개 시도 비리제보센터를 설치해 제보를 받고 있다.


서울교통공사에 국한되지 않고 범위를 넓혀 확실한 성과를 내겠다는 의지다.

한국당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판을 키우고 있다. 민주당을 제외한 야3당(바미당, 민주평화당, 정의당)의 협조도 구했다. 다만 민주당에선 감사 결과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을 통해 “감사원 감사가 대략 3개월 정도 걸린다고 들었다”며 “국회가 예산, 법안 심사로 매우 바쁜 시점인 만큼 휴지기인 12월을 거쳐 내년 1월에 국정조사를 해도 충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시는 지난달 23일 채용 의혹에 대한 감사원 감사를 청구했고, 감사원은 일주일 후 감사를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도 본격적인 대응에 나서고 있다. 이낙연 총리는 지난달 30일 정부서울청사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공공기관 채용비리를 없애기 위해 신고센터 운영과 상시점검을 실시하기로 했다”며 “국민권익위원회 주도로 범정부 추진단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근절 추진단’은 지난 2일 출범했다.

한국당은 채용비리 의혹으로 이슈를 주도하면서 당 내부를 향한 쇄신 작업을 진행 중이다. 한국당은 당협위원장 교체를 내년 1월까지 마무리할 예정이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인적 쇄신으로 불리는 까닭은 그 자리가 곧 국회의원 공천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태극기 집회 갖는 보수단체 회원들

당협위원장은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줄임말이다. 국회의원 지역구별로 당원협의회가 있는데 이곳을 대표하는 사람을 당협위원장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한 지역을 관리하는 사람’이다. 그렇다 보니 다음 공천서 비교적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다. 당협위원장은 통상 현역 국회의원이나 차기 출마자 등이 맡는다.

국정조사로 반등
내친김에 쇄신까지

결국 당협위원장 교체는 다음 국회의원 공천을 받을 사람의 교체와 같은 맥락이다. 당협위원장 교체가 ‘물갈이’ ‘인적 쇄신’ 등으로 불리는 이유다. 한국당은 지난달 29일부터 전국 당원협의회 실태조사에 나섰다. 조사 대상은 전국 253개 당원협의회 중 사고 당원협의회 17곳을 제외한 236곳이다.

다만 당협위원장 교체에 따라 당 내외 갈등과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역위원장 교체가 있을 경우 계파 갈등이 터질 공산이 크다. 한국당 의원들은 최근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두고 한차례 계파 갈등을 겪었다. 친박과 비박(비 박근혜)의 해묵은 대결이다.

발단은 지난달 31일 열린 한국당 비대위원-중진의원 연석회의였다. 친박계 홍문종 의원은 “탄핵에 앞장 서고 당에 침을 뱉으며 저주하고 나간 사람들이 한마디 반성도 하지 않고 돌아왔다”며 바미당 복당파를 비판했다. 홍 의원은 “박 전 대통령이 무엇을 잘못해서 탄핵을 받았나. 탄핵백서를 만들어달라”며 탄핵백서 제작을 요구했다.

비박계 정진석 의원은 “탄핵백서를 만들어 시시비비를 가리자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 표결은 2년이 다 됐는데 시의적절한 아이디어는 아닌 것 같다”고 되받아쳤다.

그렇다고 해서 당내 계파에 눈치를 보고 원외 당협위원장을 대상으로 하기엔 무리가 있다. 원외 당협위원장의 교체가 주를 이룬다면 ‘빈껍데기 쇄신’이란 역풍이 불 수 있어서다. 한국당은 당협위원장 교체 이후 내년 2∼3월 전당대회에 돌입할 예정이다.


한국당은 보수 진영의 외연 확장에도 힘쓰는 모양새다. 한국당 전원책 조강특위 위원은 ‘보수단일대오’를 주장하며 바미당과의 통합을 시사했고, 태극기 부대의 수용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 위원은 지난달 4일 보수단일대오를 주장하면서 보수통합론에 불을 지폈다. 전 위원은 이날 국회서 기자회견을 통해 “내년에는 보수 통합 전당대회로 가야 되고, 보수단일대오로 가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혔다.

전 위원의 보수단일대오 발언은 바미당 손학규 대표의 격앙으로 이어졌다. 손 대표는 전 위원의 발언에 대해 “한국당과 통합이라는 건 전혀 없다”며 “만약 우리 당에서 갈 사람이 있다면 가라”고 받아쳤다. 이후 바미당 인사 중 누가 한국당행을 택할지 예측과 가설이 분분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지난달 17일 “바미당서 11명이 빠져나가 한국당으로 갈 것이란 소문이 여의도에 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 가운데 최근 바미당 이언주 의원을 두고 한국당행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이 의원은 최근 ‘신보수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이 의원은 보수 유튜브 채널 <고성국 TV>에 출연해 ‘주사파의 실체를 직시해야’라는 주제로 문재인정부를 비판한 바 있다.

보수대통합
태극기도?


최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천재’라고 부르기도 해 화제가 됐다.

이 의원은 지난달 22일 <일요서울 TV>에 출연해 “대통령제는 현대판 황제다. 현대판 황제가 되려면 외교, 국방, 경제까지 완벽하고 전지전능하게 알아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있느냐”며 “독재를 했다는 측면에서는 비판을 좀 받지만, 박정희 같은 분이 역대 대통령 중에는 천재적인 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 의원의 잇따른 보수 발언은 그의 당내 행보와 맞물리며 한국당행의 현실화 가능성이 가시화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이 의원은 그간 당내서 남북문제를 두고 지도부를 직접 겨냥하는 등 불협화음을 보였다. 특히 이 의원은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안 동의 문제를 두고 이견을 보였다.

정치권서도 이 의원을 향한 의구심은 이어졌다. 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에 이 의원이 ‘나라꼴이 독재 시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때는(박정희, 전두환 시대) 경제라도 좋았는데’라며 게재한 글을 지적하면서 “지리하게 이어지는 처절한 러브콜입니다. 어서 노력한 만큼 화답이 있어야 할 텐데”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김경협 의원도 다음 날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정치적 주장과 진짜 속뜻’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김 의원은 이 의원의 ‘박정희 천재’ 발언을 “한국당으로 옮겨서 부산에 출마하고 싶으니 받아달라”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한국당이 태극기 부대를 끌어안을지도 주목된다. 전 위원은 지난달 22일 KBS 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와의 인터뷰서 태극기 부대를 언급하며 “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고 직전 대통령을 구속시켜서 추락한 국격을 걱정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어 “물론 객관적으로 볼 때 조금 강경하거나 지나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들 빼고 뭐 어떻게 하느냐”고 반문했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

전 위원의 태극기 옹호 발언은 정치권을 한차례 떠들썩하게 했다. 한국당 내부서도 이를 두고 이견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비대위원장은 진화에 나섰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5일 국회서 열린 비공개 비대위회의 이후 “(전 위원이) 개인적 학자 또는 변호사로서 피력하는 게 있고, 조강특위 위원으로서 입장을 피력하는 부분이 있는데 구분이 잘 안 돼 혼란이 많은 것 같다”며 “저 같은 사람이 받아들일 때 (전 위원이) 조강특위 위원으로 발언하는 것인지, 평론가로서 발언하는 것인지 (다르게) 느껴지는데 일반 국민은 그렇지 못하다”고 언급했다.

인적쇄신·보수통합 두고 갑론을박
외부보고서 공개…당 재건 성공할까

전 위원의 태극기 발언은 황교안 전 국무총리의 정치 재개와 맞닿아 있다. 황 전 총리는 태극기 부대의 최대주주로 꼽힌다. 태극기 부대는 한국당의 차기 당 대표로 황 전 총리를 꼽고 있다. 황 전 총리는 최근 출판 기념회 등을 시작으로 문재인정부를 비판하면서 정치 재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황 전 총리는 지난달 28일 자신의 SNS 페이스북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순항 속에 우리 경제는 거꾸로 하강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며 “멀쩡한 경제를 망가뜨리는 정책실험들이 계속되고 있다”고 포문을 열었다. 이어 “정책 실패를 국가재정으로 덮으려고 하지만 재정 퍼붓기만으로 일자리, 생산성을 끌어올리기 어렵다”며 날을 세웠다.

황 전 총리가 한국당의 입당 러브콜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면서 황 전 총리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한편 한국당은 지난달 30일 국회서 의원총회를 열고 서울대 한국정치연구소와 사회발전연구소에 의뢰한 ‘한국 보수정당의 위기와 재건’ 연구용역결과 보고서를 공개했다. 부제는 ‘한국당 선거 패배와 지지율 하락 원인 분석’이었다. 한국당이 줄곧 답보 상태에 머물게 된 원인을 진단하기 위해서였다. 김 비대위원장 체제 이후 공표된 ‘가치와 노선의 재정립’을 실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당은 ‘지지도와 위상 추락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시간이 지나면 좋아질 것이란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보수정당 위기의 현실을 근본적 수준에서 진단, 희망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보고서는 한국당의 강경한 대북·안보 정책을 고수한 점을 지적하면서 제1 보수정당으로서의 핵심가치를 ‘포용성’ ‘사려 깊음’ ‘진정성’으로 재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계파를 인정하는 집단지도체제 구축의 고려와 공천 제도 개혁, 인적 구조 개편과 새로운 정치세력의 유입도 언급했다.

다만 한국당 의원들의 참여도는 높지 않았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의총 후 “아까는 꽉 차 있었는데 지금 이제 한 40명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당의 지지율은 콘크리트 지지층 외에 외부 유입이 막혀 있다. 지지율이 연일 답보상태를 보이는 까닭이다. 향후 한국당의 재기 여부에 따라 지지율은 지금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당 내부 진단
의원들 반응은…

지난달 29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CBS의 의뢰로 지난달 22∼26일까지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정당 지지도서 한국당은 19.5%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반면 여당인 민주당은 42%를 기록했다. 이번 여론조사는 전국 19세 이상 유권자 3만3128명을 대상으로 통화를 시도해 총 2505명이 응답했고 무선 전화면접(10%), 무선(70%)·유선(20%) 자동응답 혼용 방식, 무선전화(80%)와 유선전화(20%) 병행 무작위생성 표집틀을 통한 임의 전화걸기 방법으로 실시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서 ±2.0%p다. 응답률은 7.6%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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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