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 추천>2012여수엑스포로 떠나는 1박2일 가족여행_여수~남해~진주

청정 봄 바다와 강변?성곽이 어우러지다

2012여수세계박람회장에서 남해, 진주로 가는 길은 맑은 봄길이다. 바다에 기댄 마을과 강변 성곽이 따뜻한 동행이 된다. 봄의 향기는 남해 깊숙이 들어설수록 완연하다. 가천 다랭이마을은 바다로 이어지는 계단식 밭 곳곳이 꽃으로 화사하게 단장됐다. 다랭이마을길은 남해 바래길의 주요 코스이기도 하다. 남해 끝자락의 미조항은 봄이 무르익으면 멸치잡이로 분주해진다. 미조항에서 시작되는 물미해안도로는 독일마을, 원예예술촌의 이국적인 풍취가 더해져 더욱 아름답다. 창선교 아래 원시 멸치잡이인 ‘죽방렴’을 구경하며 숨을 고른 뒤 3번 국도를 내달리면 진주다. 남강변 진주성에는 우리나라 3대 누각인 ‘촉석루’가 들어서 있다.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아픈 사연과 함께 성곽길을 걸으며 1박2일 나들이를 호젓하게 마무리하기에 좋다.

위치 : 전라남도 여수시, 경상남도 남해군·진주시


세계인의 축제인 ‘2012여수세계박람회’가 드디어 개막됐다. ‘살아있는 바다, 숨 쉬는 연안’을 주제로 지난 12일부터 오는 8월12일까지 전라남도 여수시 여수신항 일대에서 열리는 이번 박람회에서는 바다를 통해 지구 생태계와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접할 수 있다. 첨단 운송 선박의 개발, 심해저 광물자원 탐사, 심층수 해양자원 개발, 해양오염방제, 해양보안 및 안전시스템 등의 첨단 기술이 그것.

공간 곳곳의 볼거리도 다양하다.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형태의 스카이타워, 뉴미디어 버라이어티쇼와 100여 개 참가국가의 문화공연 무대인 빅오(The Big-O), 갯지렁이와 따개비를 닮은 바다 위의 주제관, 다도해를 상징하는 국제관 등이다. 박람회장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거대한 건축 예술을 접할 수 있는 흥미로운 장소이다.

첫째  2012여수세계박람회 관람을 마치고 다음 일정인 남해, 진주로 가는 길은 완연한 봄길이다. 바다와 강이 어우러지고 향긋한 미역과 꽃향기가 동행한다. 하동을 거쳐 푸른 남해의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청정한 봄 여행은 시작된다. 녹색, 감색 지붕들은 숨었다 나타나기를 반복하며 어서 오라고 유혹한다.

세계인의 축제
‘2012여수세계박람회’ 개막


봄의 향기는 남해 깊숙이 들어설수록 완연하다. 남해도의 해변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섬의 정취가 묻어나는 가천 다랭이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봄기운은 이곳에서 가장 활기차다. 섬 끝자락 가천마을은 절벽 위로 해안도로가 아슬아슬 달리고, 도로 밑에 밭과 마을이 있고, 꽃이 피어난 마을 아래 바다가 놓인 재미있는 형상이다. 

응봉산 자락 아래 가천마을의 108개의 계단식 밭은 기하학적 아름다움 때문에 관광명소가 됐지만 한편으론 남해 사람들의 애환의 현장이기도 하다. 구수한 돌담길이 이어지는 마을에 들어서면 할머니들이 막걸리를 평상에 내어 놓고 판다. 이곳을 찾은 외지인들에게 손두부와 어우러진 가천 할머니 막걸리는 별미로 통한다.

가천마을은 외부에 알려지면서 드라마나 영화의 단골 촬영지로 유명세를 탔다. 영화 <맨발의 기봉이>와 <인디안 썸머>가 가천폐교에서 촬영됐고 드라마 <상두야 학교가자>도 이곳에서 찍었다. 남해 바래길의 주요 코스인 마을길 초입에는 토속신앙인 암수 미륵바위도 들어서 있다.

다랭이마을에서 남해읍내로 들어서면 볼거리는 더욱 풍성해진다. 읍내로 가는 길에는 유배문학관과 국제탈공연예술촌이 자리 잡았다. 유배문학관은 국내 최초의 유배 관련 문학관으로 실제로 유배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마련돼 있다. 세계각지의 탈을 구경할 수 있는 국제탈공연예술촌 인근으로는 화려한 봄꽃들이 만개한 장평저수지가 들어서 있다.

가천 다랭이마을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로 유명

서포 김만중이 실제로 유배생활을 했다는 노도와 일몰, 일출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금산 보리암을 지나 남동쪽으로 달리면 상주은모래해변 너머 미조항이다. 미조항은 ‘미륵이 돕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을 정도로 어장이 기름진 곳이다. 멸치잡이배의 집어항으로 지난 5월 19~20일에는 이곳에서 멸치축제도 열렸다.

미조항에서 시작되는 동쪽의 물미해안도로는 이국적인 풍취와 옛 것들이 조화를 이룬다. 이국적인 풍경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곳은 독일마을과 원예예술촌이다. 귀화한 독일 교포들이 아기자기한 집을 짓고 살아가는 독일 마을 언덕 위에는 세계 각국의 정원을 모아놓은 원예예술촌이 문을 열었다.


인근 해오름예술촌 역시 물건리의 폐교를 예술촌으로 꾸민 곳으로 다양한 공예체험을 할 수 있다. 독일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물건리의 포구 풍경은 아늑하다. 방조, 방풍림은 해안가를 따라 가지런하게 도열해 있다. 300년 이상 된 아름드리나무들은 거센 파도와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 고기를 끌어 모으는 역할을 했다.

섬 동북쪽 창선교 아래로는 아직도 멸치잡이 ‘죽방렴’이 늘어서 있다. 인근 지족해협은 수심의 차이가 크고 조류가 거세 예전부터 전통 멸치잡이가 성했다. 최근에는 나무 데크로 된 바닷길이 조성돼 죽방렴을 가까이서 보며 호젓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남해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길’ 대상을 차지했던 창선 삼천포대교를 거쳐 3번 국도를 달리면 진주로 이어진다. 진주나들이의 명물은 단연 진주성이다. 진주성에는 우리나라 3대 누각중 하나인 ‘명품’ 촉석루가 들어서 있다. 남강변 절벽 위에 세워진 진주성은 임진왜란 3대첩지 중 한 곳으로 왜군과의 전투에서 7만 명의 민관군이 전사한 사연이 서린 곳이다.

진주성은 여러 위치에서 바라보는 묘미가 있다. 강 건너편 산책로에서는 성곽의 자태가 도드라진다. 강변 산책로에는 대숲이 들어서 있고 대숲 곳곳에 전망대와 벤치가 있어 강에 드리운 성의 여운을 홀로 만끽할 수 있다. 성 앞에는 돛단배가 떠 있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길’ 대상
창선 삼천포대교 거치면 진주

둘레가 약 1.7km인 진주성은 성곽문 어느 곳으로 들어서나 한적한 길이 이어진다. 사람들의 마지막 발길이 닿는 곳은 촉석루다. 진주 주민들은 봄꽃이 피어나는 촉석루 난간에 기대 진주강변을 음미하는 상쾌한 휴식을 즐기곤 한다. 촉석루 아랫길로 내려서면 깎아지른 절벽에 의암이 있다.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강물에 뛰어들어 순절한 곳으로 촉석루를 받치고 있는 벼랑만큼이나 의연한 모습이다.

성내에는 국립진주박물관도 들어서 있는데 임진왜란 때 유물이 전시된 진주박물관은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가 김수근의 작품이기도 하다. 성 밖으로 나서면 골동품을 파는 골목으로 연결된다. 특이하게도 이곳 이름 역시 인사동이다. 인사동 성벽 길을 거닐며 진주 일대의 전통 공예품들을 여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자료출처 : 한국관광공사
www.visitkorea.or.kr

 

<여행정보>
♣1박2일 코스
- 첫째 날 : 2012여수엑스포 → 남해 다랭이마을 → 유배 문학관 → 국제탈공연예술촌 → 보리암 → 미조항 → 독일마을
- 둘째 날 : 원예예술촌 → 물건리 → 해오름예술촌 → 죽방렴 → 창선 삼천포대교 → 인사동 → 진주박물관 → 진주성

♣대중교통
[버스] - 여수에서 순천으로 이동, 순천에서 남해행 버스 하루 4회(09:20 13:00 15:40 19:30) 운행, 1시간30분 소요. 
- 남해터미널에서 진주행 버스는 30분 간격으로 운행, 1시간30분 소요. 진주터미널에서 진주성까지 도보로 15분  
- 서울 센트럴에서 여수, 하루 25회 운행, 약 4시간10분 소요
[기차] - 서울 용산역-여수엑스포역, 주말 기준 하루 84회 운행(여수엑스포 기간 특별 운행열차 포함)
[비행기] - 김포-여수, 하루 8회 운행(월~토), 약 50분 소요
       
♣자가운전
- 여수에서 남해 : 여수 → 순천IC → 남해고속도로 → 하동IC → 19번 국도 → 남해대교 → 1024번지방도 → 다랭이마을
- 남해에서 진주 : 물미해안도로 → 창선교 → 창선 삼천포대교 → 3번 국도 → 진주교 → 진주성

♣숙박업소
힐튼남해골프&스파리조트 : 055-860-0100, www.hiltonnamhae.com
남해스포츠파크호텔 : 055-862-8811, www.namhaehotel.co.kr
남해편백자연휴양림 :  055-867-7881
진주 동방관광호텔 : 055-743-0131, www.hoteldongbang.com
진주 아시아레이크사이드호텔 : 055-746-3734~5, www.asiahotel.co.kr

♣주요 먹거리
여수 - 동백회관 : 한정식 (061-664-1487)    
여수 - 우리회관 : 한식뷔페 (061-666-4947)
여수 - 삼학집 : 서대회 (061-662-0261)
남해 - 남해 대청마루 : 쌈밥 정식 (055-867-0008)
여수 - 남해 수협회센터 : 활어회 (055-867-7363) 
여수 - 달반늘장어구이 : 장어구이 (055-867-2970)
진주 - 진주 아리랑 : 교방한정식 (055-748-4556)    
여수 - 설야 : 진주비빔밥 (055-762-0585)
여수 - 하연옥 : 진주냉면 (055-741-0525)

♣주변 볼거리 : 용문사, 남해스포츠파크, 남해편백자연휴양림, 상주은모래해변, 진주 진양호, 비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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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