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제작자협회, 박신양 출연정지 ‘왜 박신양인가?’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래”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최근 <쩐의 전쟁> 고액 출연료를 문제 삼아 배우 박신양의 드라마 출연정지는 물론 그와 계약한 제작사 이김 프로덕션을 상대로 편성 금지 요청, 드라마제작사협회 회원사로의 입회 당분간 금지 등을 의결했다. 이런 조치를 두고 드라마제작사협회 측은 드라마 산업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상식 테두리 범위 내라는 입장이지만 일각에서는 박신양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주장이 일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는 제작사협회 차원을 넘어 최근 방송 3사 드라마국과 드라마PD협회 등 관련 단체가 ‘드라마 산업의 위기’를 공론화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이번 조처가 드라마 산업의 위기를 타개할 실마리가 될 것인지 아니면 그저 일벌백계 차원의 본보기에 그칠 것인지가 관심사다.


사건의 발단은 박신양이 지난해 7월 종영한 <쩐의 전쟁> 4회분을 연장 출연하는 조건으로 출연료 6억2000만원을 추가 지급하기로 제작사와 계약했으나 이 가운데 3억4100만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소를 제기하면서다.
외주 드라마 제작사들의 모임인 드라마제작사협회는 지난 5일 박신양이 과다 출연료를 요구했다는 이유로 박신양에 대해 무기한 출연정지, 제작사 방송사편성금지 요청 등을 의결했다.
이 같은 조치에 대해 배우들과 함께 작업을 하는 일선 PD들은 “박신양은 고액 출연료 문제의 희생양이다”라며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 방송사의 드라마PD는 “솔직히 요즘같이 경기가 좋지 않을 때 박신양이 드라마 한 회당 2억원에 가까운 출연료를 요구했다는 사실은 국민적인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게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박신양을 희생양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PD는 박신양의 독특한 할리우드식 출연료 정산방법을 주목하며 “박신양의 할리우드식 출연료 요구는 궁극적으로 우리 드라마 업계에 도입되어야 할 부분이지만 현재 제작현실에 비추어 봤을 때 너무 이른 것 같다”며 “다른 이들은 밤샘 촬영 뒤 2~3시간 자고 다시 새벽같이 모여 촬영을 하는데 자신은 계약서상의 심야촬영거부안을 들어 프로듀서를 대신 보내고 거액의 출연료를 챙긴다면 협동작업인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미운털이 박힐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박신양의 출연정지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들도 “박신양 씨 드라마 무기한 출연정지를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을 내고 거세게 반발했다. 현재 4200여 명의 네티즌이 서명에 참여했다. 박신양을 두둔하는 네티즌들은 “박신양에게만 출연 정지를 시키는 것은 마녀사냥”이라고 들고 나섰다.
비판의 화살은 드라마제작협회로 돌아갔다. 지상파 방송사에 배우 출연 정지와 편성 금지를 요청한 것에 대해 ‘칼만 안들었지 배우를 죽이는 강도’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박신양을 비판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한 네티즌은 “다른 배우들은 전부 4회 연장 계약을 했는데 박신양 혼자서 회당 1억7000만원이라는 거액을 제시했다. 박신양이 훌륭한 연기력을 가진 배우인 것은 인정하지만 융통성이 있어야지 이것은 양심이 없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한류스타 배용준과 비교하며 “배용준은 회당 2억원 이상씩 요구해도 해외에 드라마를 수출하면 수익이 나기 때문에 가능하지만 국내시장만 노리는 작품에서 터무니없는 금액을 요구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박신양을 향한 질타에 경기 불황도 한몫을 했다. “이번 일은 박신양의 지나친 욕심과 자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어려운 시기에 많은 국민들에게 좌절과 상실감을 안겨줬다”는 댓글도 이어졌다.
드라마제작사협회의 결정에 찬성표를 던진 다른 네티즌은 “제작비용이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이 집중될 경우 다른 출연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드라마 출연정지 결정은 자신을 한번 돌아보고 반성하라는 의미에서 근신하라는 조치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동안 입을 닫고 있던 박신양은 지난 10일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에 근황을 전했다. 지난 4일 <바람의 화원>의 마지막 촬영 후 가족이 머물고 있는 미국 뉴욕으로 떠난 박신양은 자신의 팬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뒤 “빠른 시일 내에 새로운 프로젝트로 다시 만나 뵙겠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는 “한동안 만나지 못했던 나의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줘야 하는 약속을 지켜야 하고 강아지를 데리고 함께 놀아준다는 약속도 지켜야 한다”며 가족과 조우한 기쁨을 나타냈다.

드라마제작자협회, 박신양 출연정지·제작사 편성 금지 요청
네티즌 ‘배우 죽이는 강도’ vs ‘박신양 지나친 욕심과 자만’


이어 “드라마를 본 아이들이 바닥에 엎드려서 그림을 그리는 흉내를 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하는 일이 절대로 무책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는 최근 드라마제작사협회가 자신에 대한 무기한 출연 정지를 의결한 것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으나 “매년 혹독하고 긴 시간들이 지나면 어김없이 들판에는 꽃들이 피어났다”며 “그 꽃은 노란 민들레였다. 노란 민들레가 빨리 많이 피었으면 좋겠다”고 최근 자신의 심경을 돌려 말했다.
드라마 제작 위기론 속에서 박신양의 고액 출연료 파문이 맞물려 업계에는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일단 박신양에 대한 조치는 확실히 고액 몸값을 받은 스타들의 본보기가 되고 있는 듯하다. 박신양의 사례를 토대로 앞서 방송사에서 호소한 출연료 1500만원 상한선과 비슷하게 스타들이 파격적인 몸값 낮추기 대열에 속속 합류하고 있다.
<못된 사랑>에서 회당 5000만원을 받은 권상우는 박신양 파문 이후 차기작 <신데렐라맨>에서 1500만원을 받기로 했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제대 후 첫 드라마인 <카인과 아벨>에서 회당 3000만원을 받기로 했던 소지섭도 2000만원으로 몸값을 낮췄다. 현재 방영 중인 <에덴의 동쪽>에 출연하는 송승헌은 회당 7000만원에서 50% 삭감해 3500만원만 받기로 했다.
내년 방영 예정인 <선덕여왕>의 고현정, <친구, 못 다 한 이야기>의 현빈, 김민준 등 톱스타들의 출연료 조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스타들은 드라마 위기의 고통을 분담하는 차원에서 몸값 낮추기에 동참한다고 한다. 불황을 겪고 있는 드라마제작사협회와 방송사가 한 목소리로 스타들의 몸값 낮추기에 높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계속된다면 몸값 낮추기는 표면적으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드라마제작사협회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제작 편수가 줄고, 생계 위협을 받는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늘어난 상황에서 스타 출연료와 제작비를 낮추면 저예산 드라마 시스템이 구축돼 드라마의 다양성을 찾을 수 있다”며 “방송사 쪽과 출연료 상한제 등 필요한 조처를 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논란이 출연료를 둘러싼 제작사와 소속사간 힘겨루기 양상으로 치달으면서 드라마 산업 위기를 타개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은 뒷전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형 매니지먼트의 한 관계자는 “드라마 산업이 위기라는 사실엔 공감한다. 하지만 최근 논란은 일부 톱스타와 잘못된 관행을 가진 소속사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한 방송관계자도 “당장 톱스타들과 소속사, 드라마 제작사들이 심리적 위축은 되겠지만 부풀려지고 왜곡된 드라마 제작 관행과 제작비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송사와 제작사가 추진 중인 출연료 상한제나 등급제 재조정 등의 조처가 실제로 잘 지켜질지, 또 이를 통해 드라마 제작비의 거품을 얼마나 걷어낼 수 있을지도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선 톱스타를 기용하려고 특정 제작사가 업계 관행보다 많은 출연료를 지급하는 ‘이면계약’을 한다 해도 이를 일일이 규제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100여 개에 이르는 제작사들 가운데 37개 회원사를 대표하는 제작사협회가 법적으로 다른 제작사들을 감시하거나 규제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또 한정된 방송 시간을 따내기 위해 경쟁을 벌이는 제작사들 가운데 단 한 곳이라도 약속을 깨고 거액 출연료를 지불해 방송사의 편성을 따낸다면 그나마 제작사협회의 자구책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방송사가 우월적 지위를 남용해 제작사를 관리한 사례들도 있어 불공정 거래가 사라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상대를 규제하고 퇴출시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드라마 제작 관계자들 각자가 자신의 원칙을 만들고 합의해 나가야 할 때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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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