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추적> ‘개쌍도 VS 전라디언’ 지역감정 부추기는 인터넷카페 기승

  • 김설아 sasa7088@ilyosisa.co.kr
  • 등록 2012.03.30 17:17:38
  • 댓글 0개

“홍어·좌빨 or 개쌍도인들을 몰아내야 이 나라가 산다?”

[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오는 4월 11일 총선을 앞두고 인터넷상에선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카페들이 활개를 치고 있다. 특정 지역민을 왜곡·비방하는 내용의 글들이 대부분. 별다른 이유도 없이 한 지역을 조롱하는 투의 글들은 다시 상대지역의 비난으로 이어져 때 아닌 싸움을 부추기고 있다. 대한민국 최대의 고질병인 지역감정은 인터넷상에서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그 문제점은 무엇일까. <일요시사>에서는 이러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인터넷카페문화에 대해 취재해 보았다.

선거철 인터넷 카페에서 가열되는 때 아닌 지역감정 싸움
빨갱이·보수꼴통…서로를 폄훼하는 단어 동원해 비방전

오늘날 우리 사회를 좀먹는 폐단 가운데 하나인 지역감정. 특히 영호남 지역감정은 골이 깊은 상처처럼 아직도 엄존하고 있다.

그야말로 원수진 일도 없는데 무조건 서로 으르렁댄다. 똑똑해도 밉고, 미우면 더욱 미운 묘한 감정이 영남과 호남에는 지금도 식을 줄 모른다.

그리고 지난 수십 년간 한국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이런 지역감정의 망령은 최근 인터넷 공간에서 다시 부활하고 있다.
 
국가의 암덩어리?
‘도 넘은’ 지역비방

“홍어 좌빨(좌익 빨갱이) 전라디언들을 몰아내고, 온라인을 우익세상으로 만들고자 한다.”“지역감정 유발에 총력을 기울여라. 전라도만 때려잡으면 경상도가 대한민국 정권을 영구히 잡을 수 있다. 정권은 곧 권력이요 이는 곧 밥그릇이다.”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려는 경상도 패권주의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 “개쌍도가 죽어야 이 나라가 산다! 일본으로 좀 꺼져라. 대한민국 지도에서 파버리거나 분리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인터넷에 들어가 보면 전라도나 경상도를 비방하는 이 같은 문구들이 적잖이 눈에 띈다. 근거 없는 비방이나 악플 등이 그간의 인터넷 문화에 만연했던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특정지역을 비방하는 목적의 카페까지 만들어지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일례로 R2카페에서는 전라도를 조롱하고 폄훼하는 내용들이 주류를 이룬다. R카페는 지난 1월 지역감정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포털로부터 영구접근제한 조치를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속카페 R2로 재탄생한 것이다. 카페 내에서는 우익 지지와 호남지역을 이유 없이 비하하는 글들이 주를 이룬다.

작성자 라도미***는 “전라도인들의 문제점들”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전라도인들은 인색하고, 교활하며 폭력적이고 잔혹하다. 또 정이 없고 욕심이 많다”라고 썼다.

이어 작성자는 “전라도인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한테만 쓰는 돈만 안 아까워하고 그 밖에 본인이 써야할 돈은 너무도 더없이 아까워하는 그런 더없이 인색한 최악의 자린고비들이라서 욕을 먹는 것이고, 또한 전라도인들은 돈 욕심이든 음식에 대한 욕심이든 아님 그밖에 여러 가지 부분에서 오로지 자기네들이 제일 많은 이득을 챙겨먹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그런 최악의 욕심쟁이들이라서 욕을 먹는 것이고, 남들 사이를 이간질하는 교활한 간신배들이라서 욕먹는 것이고, 본인들보다 연약한 사람들한테는 더없이 잔혹한 폭행과 폭력을 가해서 본인들보다 약한 자들을 더없이 잔혹하게 폭행 살해하는 그런 무서운 최악의 폭군들이기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회원들이 올리는 글들이 대부분 이런 유이고 댓글들도 온통 이런 내용 일색이다.

지난해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렸던 광주인화학교에서 일어난 ‘도가니 사건’이 다시 회자되며 전라도를 비방하는 댓글이 잇따르기도 했다.

한 네티즌은 “전라남도 쓰레기들을 고발한 영화가 바로 도가니”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이 80년도 5·18 전라도 광주 반란폭동을 진압했던 것처럼 그렇게 전두환 전 대통령 같은 정의의 남성이 다시 한 번 출현해서 이 세상 최악의 악인들인 전라남도 인간들을 다시 한 번 훈계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호남인들을 맹비난했다.


이외에도 최근 전라도 지역에서 발생한 폭행·강간·살인 사건 뉴스들을 스크랩한 뒤 ‘국가의 암덩어리’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또 다른 전라도 비방사이트인 D카페는 자유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한민국 애국우파들의 모임’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을 반역자로 분류하는 등 비방전을 펼치고 있었다.

또 다른 쪽에서는 반(反) 경상도를 표방하는 S사이트가 있다. 아예 초기 화면에 우리나라 지도를 그려 놓고 지역별 선호도를 표시해 놨는가 하면 “라도가 까이니 쌍도가 까이는 게 진리 아니겠는가”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영남지역을 깎아내리고 있다.

한 네티즌은 “그래서 ‘개쌍도 것들’이라 욕한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지난 반세기 이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먹을 때는 ‘우리가 남이가’ 지역주의 하면서 지역 이기주의를 사회 고발하는 건전한 비판에 대해서는 방귀뀐 놈이 성질낸다고 도리어 지역주의성 코멘트로 폄하하거나 욕하고 물타기한다”며 “민족 대화합이나 지역균형발전에는 가장 소극적인 저 집단 돼지 떼가 서식하는 개쌍도 지방을 독립시켜야 고요한 아침의 나라가 올 것으로 믿는다”라고 썼다.

이 외에도 영남지역 출신 정치인에 대한 험담은 물론 ‘개쌍도=쪽빠리, 조작과 날조는 취미생활’(반경전), 개상디언 구별법 등의 글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이러한 망국적인 지역감정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에서 유래한다는 견해가 압도적으로 많다. 물론 그 시대의 정책이 일정부분 책임질 바가 있지만 지역감정은 실상 역사적으로 훨씬 더 오래된 것으로 적어도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지역감정
아닌 ‘혐오증’

그러나 원인이야 어찌됐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인터넷카페들의 행태는 반사회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다. 아무리 표현의 자유가 있다고는 하지만 이 같은 지역감정 조장이나 국론 분열 행위는 누가 뭐라 해도 옳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해당 사이트 운영진이나 회원들 스스로 자정하는 노력을 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 카페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지역감정을 내포한 글들이 특정 인물에 대한 비난에서 그치지 않고 호남·영남 지방 주민을 일반화시켜 비방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는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는 지적이다. 전라도 혹은 영남 출신 주민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이 인터넷상에 확산되고 왜곡된 이미지를 다양한 사례에 접목시키며 패러디를 즐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전라도 사람에게 사기를 당했다는 식의 구체적인 피해사례가 화재로 오르면, 못된 짓을 한 ‘바로 그 사람’은 중요하지 않고 오직 전라도 사람이라는 것만 부각되어 전라도 사람이니까 당연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또 이러한 현상들은 다시 영남과 호남의 지역감정으로 비화되어 영남에 대한 조롱으로 이어진다. 반대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소수의 문제를 전 지역의 문제로 끌고 가는 ‘일반화의 오류’
문제의식 없는 수용이 더 큰 문제…“스스로 자정 노력해야”

이에 대해 한 네티즌은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수의 사람을 그 지역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으로 확대 해석하고 있는데 굉장히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것은 지역감정도 아닐뿐더러 타 지역을 깎아내리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지 지역을 깎아내릴 소재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지역감정이 그대로 투영된 인터넷 문화의 영향이 현실 속에서 개인에게 어떻게 수용되고 있느냐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지역에 대한 비난이나 조롱을 한 때 웃고 즐길 수 있는 유머라고 여겨 별다른 여과 없이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취사선택 잘해서
받아들여야…

만약 이제 막 인터넷 콘텐츠를 접하기 시작한 중?고등학생이라고 한다면 문제는 더 커진다. 이 시기의 학생들은 개인의 가치관이나 역사관 등이 제대로 확립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역감정이 섞인 글들을 접하면서 잘못된 시각을 가질 확률이 높다.

또 특정 지역 사람들에 대한 글이나 뉴스기사만 모아놓은 과거의 사건들을 접함으로써 그 지역전체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가령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제대로 된 관점을 확립하기도 전에 특정 지역 비방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접하게 되면 역사적 사건에 대해 왜곡된 시각을 가지기 십상이다.

이에 대해 인터넷 문화협회 관계자는 “과거부터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던 지역감정이 인터넷상에서 너무 가볍게 다뤄져 자칫 그것이 의미하는 시대적 배경과 영향조차 희석되어 버릴 수 있다”며 “일상생활에서 이러한 지역감정과 관련된 언급을 아무런 여과 없이 쉽게 수용하는 경향은 개인의 가치관 형성에는 물론이고 대인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덧붙여 “때와 장소를 알고 정도를 지키면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감정이 단순히 웃음의 소재로 쓰이기에는 적절치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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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