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기획>친이계 집단 반발 부른 잔인한 ‘피의 숙청’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3.13 15:4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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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권가도 가로막는 ‘친이신당’ 등장할까?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새누리당 공천에서 탈락한 친이계가 술렁이고 있다. 공천신청을 하며 ‘무소속 출마를 하지 않겠다’는 자필서명을 했지만 막상 공천에서 탈락하자 탈당을 불사하고 출마를 강행하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 것이다. 낙천한 이들이 각개전투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연대 움직임까지 가속화 되고 있어 4년 전의 ‘친박연대’처럼 ‘친이연대’가 등장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또한 여야를 막론하는 신당 창당의 움직임도 보이고 있고 국민생각의 ‘이삭줍기’도 본격화 돼 4·11 총선이 안개 속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탈락자 대부분 강력 반발, 탈당 후 무소속 출마 시사 
동교동계와 상도동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신당 창당?

야권이 야권연대협상 타결 초읽기에 들어갔지만 여권은 혼란에 빠지고 있다. 자유선진당과의 연대가 일언지하에 거절된데 이어 공천에서 탈락한 후보들의 연이은 탈당으로 보수의 분열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이다.

낙천자들은 연합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4·11 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위협하는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들 세력을 어떻게 끌어안고 갈지가 또 다른 숙제로 남게 됐다.
 
줄 이은 탈당
보수분열 가속

현역의원이든 예비후보자든 총선을 한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라 공천 탈락자들의 움직임은 일사분란하다. 재선의 허천 의원(강원 춘천)이 지난 7일 공천결과에 불복해 새누리당을 탈당하며 첫 스타트를 끊었다. 허 의원은 무소속 또는 다른 정당에 입당해 3선에 도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허 의원에 이어 다음날인 8일에는 4선의 이윤성 의원(인천 남동갑)도 탈당을 강행하며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또 다음날에는 전여옥 의원(서울 영등포갑)이 전격 탈당을 선언하고 ‘국민생각’에 입당했다.

하루에 한명 꼴로 현역의원이 탈당을 강행하며 무소속 또는 다른 정당에 입당해 출마를 공식화 하고 있는 것이다.


친이계 신지호 의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낙하산 공천한다면 깨끗이 탈당해서 제 갈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고 유정현(서울 중랑갑)·장광근(서울 동대문갑)·정해걸(경북 군위·의성·청송)·이화수(경기 안산 상록갑) 의원도 재심을 요청해 이를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탈당과 무소속 출마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재할 수 없다.

이 같은 움직임은 앞으로 더욱더 활발해 질 것으로 여겨져 공천 탈락자들의 움직임이 주목되고 있다.

원외 후보자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가장 먼저 반발한 인물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 전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이었다.

김 전 부소장은 공천에서 탈락하자 새누리당을 전격 탈당했고 호남권 인사들을 포함한 무소속 연대를 추진하겠다고 밝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4년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으로 ‘친박 학살’의 주역이었던 이방호 전 의원(경남 사천·남해·하동)도 공천 탈락에 반발하며 탈당과 함께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아들인 김 전 부소장이 공천에서 탈락하자 매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8일 정몽준 전 대표와의 만남을 가진 김 전 대통령은 “비상상황인데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회가 독주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 위원장을 두고서는 “이번 (국회의원) 선거가 중요하고 어려운데 박 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비상시국이면 더 상의해야 하는데 왜 저렇게 독단적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이 잘 되길 바란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돕겠다”며 덕담을 건네 그동안 불편했던 두 사람의 관계가 호전될 것이라는 관측을 낳았지만 김 전 부소장의 공천 탈락으로 두 사람의 관계는 또 다시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대선을 앞두고 김 전 대통령이 박 위원장을 지원할 지도 의문으로 남아 향후 관계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상도동계와
동교동계 연대?

탈당과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들은 속속 연대를 꾀하고 있다. ‘상도동계’(김영삼 전 대통령 계보) 출신 김덕룡 전 의원과 안상수 전 대표 등이 친이계는 물론 민주통합당 공천에서 탈락한 ‘동교동계’(김대중 전 대통령 계보), 구민주계 인사 등 20여명을 참여시키는 신당을 모색 중이다.

김 전 부소장은 “안상수 전 대표와 만나 말씀을 나누고 있다”며 “무소속 연대를 하든, 제3의 정당으로 옮겨가든, 아니면 신당까지 만드는 3갈래 방향을 열어놓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안 전 대표가 지난 1일 집단탈당을 통한 무소속 연대 발언을 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김 전 부소장은 “벌써 이런 일을 예견하고 준비해왔다”고 덧붙이며 “외연의 폭을 야당과 같이 넓히자는 분도 있다. 소위 말하는 민주당의 구민주계”라고 했다.

YS(김 전 대통령 영문 약칭)의 상도동계와 DJ(김대중 전 대통령 영문 약칭)의 동교동계 인사들이 헤쳐모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김 전 부소장과 지난 2일 민주당을 탈당한 한광옥 상임고문은 지난해부터 김덕룡 전 의원과 새로운 정당 창당에 대한 논의를 가져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에게 당대표를 맡아달라고 제의했으나, 정 위원장은 이에 부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 위원장 측은 “여러 곳에서 압력이 온다. 당혹스럽다”고 했다. 또한 정의화·원희룡 의원, 인명진 갈릴리교회 목사 등과 접촉을 가졌고 새누리당과의 연대를 거절한 자유선진당 측과도 연대 논의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여옥 전격 영입한 박세일, 이삭줍기에 여념 없는 ‘국민생각’
“기성 정치권의 높은 벽 실감하고 사라진다?” 미풍 그칠 전망도

때문에 여야를 넘나드는 무소속 연대의 결성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어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연대에 합류하는 현역 의원이 20명을 넘으면 총선에서 기호 3번을 배정받을 만큼 단숨에 만만치 않은 세력을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2008년 18대 총선에서도 당시 한나라당 공천에서 탈락한 서청원 전 의원 등 친박근혜계 인사들이 ‘친박연대’를 결성해 비례대표 8석 등 모두 14석을 확보하는 돌풍을 일으켰고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이끈 자유신당(현 자유선진당)도 18석을 얻은바 있어 새누리당을 더욱더 긴장케 만들고 있다.

지난 9일 전여옥 의원이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전격 입당한 국민생각도 또 다른 변수다.

박세일 대표가 “(공천에서) 밀린 분들 중에서 정치적 경륜이나 소신이나 철학이 저희하고 같은 부분이 꽤 있을 수 있다”며 여야 이삭줍기에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여야 낙천자들과의 지속적으로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으며 “많은 분들이 물론 긍정적으로 나온다”고 밝혔고 낙천자 가운데 국민생각에 합류하기로 한 사람이 있다고 밝혀 낙천자 다수가 합류할 가능성을 열어 놨다.

박 대표의 이 같은 움직임에 이상돈 새누리당 비대위원은 “그야말로 낙엽정당”이라고 힐난하자 박 대표는 “권력 투쟁에서 일찍이 밀려난 분들 가운데서도 아까 말씀드린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있다”며 “저는 보석 찾기라고 본다”고 강변했다.

그는 또한 “좋은 미래의 정치적 자산이 있다면 그 분들과 같이 한다는 것이 대단히 바람직한 거지, 어찌 그게 낙엽인가”라고 반문한 뒤, “권력투쟁이 아닐 경우에는 낙엽일 수 있겠지만 권력투쟁에서 밀린다고 해서 다 잘못되고 부적합한 정치인이라고 보면 크게 잘못된 것이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생각에 입당하며 비례대표 1번을 부여 받은 전여옥 의원도 “낙천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해봤는데, 제 생각과 일치하는 분들이 몇 분 있다”며 국민생각에 합류할 생각이 있는 의원이 있다고 밝혔다.

향후 낙천자들이 대거 합류한다면 국민생각 또한 이번 총선에서 발휘할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역기반이 탄탄하고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들이 나선다면 총선에 새로운 판도가 그려질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삭줍기?
보석찾기?

정치권은 공천 탈락자들이 여야를 넘나드는 연대를 형성하는 것을 예의주시하고 있지만 미풍에 그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08년 총선 때 친박계는 ‘박근혜 마케팅’으로 바람을 일으켰지만, 친이계는 내세울 마땅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친이계가 ‘이명박 마케팅’을 펼 수 있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이상돈 비대위원은 “무소속이나 제3당으로 출마하더라도 당선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평가절하 했다.

그 예로 2004년 17대 총선에서 정몽준 의원을 중심으로 한 ‘국민통합21’은 정 의원을 제외한 전원이 낙선했고 2000년 조순·김윤환 의원 등의 민주국민당도 16대 총선에서 2석만 얻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도 ‘3김 타파’를 내세운 유명 정치인과 시민운동가들이 통합민주당 간판 아래 출마했으나 대부분 낙선했다.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 중 상당수는 기성 정치권의 높은 벽만 실감한 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권이 단일화 협약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서 새누리당 낙천자들의 무소속 출마와 신당 창당·3당행은 박 위원장과 당을 위협하는 요인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총선에서 승리를 하지 못하면 박 위원장의 대권 가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여겨져 이들의 움직임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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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야당발 ‘채 상병 특검’ 파장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채 상병 특검법)이 야당 주도로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해 7월19일 사건 발생 10여개월 만이다. 국민의힘은 표결에 반발하며 퇴장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할 것으로 관측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이날 본회의서 ‘이태원참사특별법’을 합의 처리된 뒤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하며 채 상병 특검법 상정을 요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해병대 채수근 상병이 실종자 수색 작전 중 순직한 사건을 초동 조사하고 경찰에 이첩하는 과정서 대통령실·국방부가 개입했다는 의혹을 특검이 수사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경찰 이첩 개입 의혹 김진표 국회의장이 이를 수용해 의사일정 변경동의안에 대한 표결이 이뤄졌고, 재석 168명 전원 찬성표로 가결됐다. 표결에는 야당만 참여했고, 국민의힘은 반발해 사실상 표결에 불참했다. 민주당은 원래 본회의 안건에 없었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기 위해 의사일정 변경을 우선 시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은 이번 본회의에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 올라가는 것 자체를 반대해 왔다. 당초 김진표 의장도 여야가 합의해 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양당 원내대표를 의장석으로 불러서 마지막으로 중재를 시도했지만 5분 뒤 김 의장은 여러 가지로 고려한 끝에 의사일정 변경 동의의 건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양당의 마지막 협상도 결렬됐고, 국민의힘에서는 유일하게 자리에 남았던 김웅 의원만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방청 중이었던 해병대 예비역연대 법률 자문, 김규현 변호사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년의 해병대 예비역들도 연신 눈물을 흘렸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 겸 당 대표 권한대행은 이날 야당이 강행 처리한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윤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서 규탄대회를 열고 “그간 우리 당은 이태원참사특별법에 합의 처리하는 조건으로 의사일정에 동의했다. (민주당과 김 의장이)채 상병 특검법을 애초에 처리하겠다고 했으면 저희는 오늘 본회의 의사일정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처럼 이태원법 합의 처리를 통해 협치 분위기가 조성되고 의회정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있는데 오늘 의사일정 변경까지 해서 채상병법을 처리하겠다는 것은 정치 도의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채 상병 특검법 표결 시 본회의장을 퇴장하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채 상병이 의사일정으로 상정되는 것 자체를 반대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규탄대회 뒤 거부권 행사 건의와 관련한 질문에 “입법 과정과 법안 내용을 볼 때 거부권을 건의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국힘 퇴장 속 야당 전원 찬성 조각난 협치···대통령 또 거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의사일정 변경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날 본회의는 이태원특별법 처리를 위해 여야 합의로 잡은 일정인 반면, 여당이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상황서 입법을 강행하기 위해 의사일정을 변경해 본회의 부의를 시도하겠다는 의도였다. 대통령실은 이날 야당의 강행 처리 예고를 예의주시하면서도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서 “민주당이 오늘 국회 본회의서 채 상병 특검법을 의사일정까지 바꿔가면서 일방 강행 처리한 것은 대단히 유감”이라며 “엄중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입장 표명은 특검법에 대한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실장은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정치적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며 “공수처와 경찰이 이미 본격 수사 중인 사건인데도 야당 측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특검을 강행하려고 하는 것은 진상규명보다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여권에선 채 상병 특검법 자체의 법리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이미 수사 중인 사안에 특검을 도입하는 배경에 정쟁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바라봤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서 진행 중인 수사가 끝난 다음, 그 과정이나 결과를 토대로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순리라는 것이다. 야당이 특검을 당장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대통령실은 무엇보다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해병대수사단에 수사권이 없어졌기 때문에 야권이 주장하는 ‘수사외압’ 논리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해병대수사단이 기초 조사는 할 수 있겠지만, 관계자 수십명을 소환하고 연루자가 몇 명이고 하는 것은 법에 규정된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당시 박정훈 해병대수사단장의 ‘월권’ 가능성을 지적한 셈이다. “정치적 의도” 대통령실 발끈 또 과거 공수처 설치와 군사법원법 개정을 주도했던 민주당이 특검을 추진하는 모순을 거론하며, ‘참사의 정쟁화’를 시도하는 것 아니냐고 지적하는 분위기다. 이날 정 실장은 “현재 공수처와 경찰서 철저한 수사를 진행 중이므로 수사 당국의 결과를 지켜보고 특검을 도입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공수처와 경찰이 우선 수사해야 하고 그 결과에 따라 특검 도입 등의 절차가 논의되고 이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공수처는 민주당이 패스트트랙까지 동원해 설치한 기구다. 당연히 수사 결과를 기다려보는 것이 상식이고 정도”라며 “지금까지 13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여야 합의 없이 이뤄진 사례는 단 한 차례도 없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야당이 단독으로 주도한 이유도 있다. 채 상병 사건 수사 과정서 윤 대통령,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이시원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 등이 수사를 왜곡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관련 정황은 이미 상당 부분 나왔다. 국방부는 사단장 등 고위 지휘관들의 혐의를 축소하려 했고, 경찰에 넘긴 수사기록도 매끄럽지 않은 과정을 통해 회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실과 국방부 관계자들이 전화와 문자메시지 등으로 조율한 흔적도 엿보였다. 국민의힘은 특검법 협상에 나서지 않으면서 “공수처 수사가 우선”이라는 주장이다. 다만, 공수처 수사가 1년 가까이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야권서 반발이 터져 나왔다. 과거 대통령실이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조그마한 사고’라고 언급한 사건도 국민적 분노를 유발했다. 지난 3월22일 채 상병 순직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매체와 인터뷰서 ‘조그마한 사고’로 표현하고 “전 지휘관이 법적인 문책을 받는 건 부적절하다”는 취지로 실언한 바 있다. 더구나 공수처는 지난해 8월 고발장을 접수한 이후 인력 부족, 수사 의지 등을 핑계로 현재까지 ‘수사 진행 중’이라는 변명만 되풀이했다. 해병대를 비롯한 국민 여론도 특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눈물 흘린 해병들 왜? 해병대예비역연대는 지난 2일,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국민의힘 당사를 찾아 채 상병 특검법 상정과 통과를 강하게 요구하기도 했다. 해병대를 상징하는 붉은 옷을 입은 이들은 이날 오후 1시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당사 앞에 모여 “채 상병 특검법 통과, 박정훈 대령 탄압 중지”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고 “(채 상병 특검법에 반대하는 국민의힘 같은)이런 세력들이 우리나라의 집권여당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을 대표해 마이크를 잡은 정원철 해병대예비역연대 회장은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이 나라의 안보를 생각하는 사람들인가. 국민의힘과 대통령은 민심을 외면하지 말고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하길 바란다”고 외쳤다. 해병대예비역연대에 법률자문을 하고 있는 해병대 출신 김규현 변호사는 “(국민의힘은)처음엔 ‘독소 조항이 있다’고, 지금은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니 그 수사가 끝난 다음에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과거 특검 때에는 (앞서)경찰·검찰이 수사를 안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사실상 가장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방법은 법정 수사 기간을 최대 3개월로 정해놓고 있는 특검밖에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해병대 측은 이날 “3개월이 지나면 우리 군은 본연의 임무로 돌아가 안보에 전념할 수 있고, 정치권도 채 상병 문제를 일단락하고 지금 산적한 안보, 민생 정책을 논의할 수 있게 된다”며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는,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수사를 기다리며 이 정권이 끝날 때까지 채 상병 문제로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국민의힘은 오후 2시에 열리는 국회 본회의에 전원 참석해 채 상병 특검법을 통과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집회를 마친 해병대 예비역 연대 회원 45명은 채 상병 특검법의 상정·통과 여부를 보기 위해 곧장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했다. 앞서 채 상병 특검법은 지난해 10월 민주당 주도로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후 180일의 숙려 기간을 거쳐 지난달 3일 본회의 자동 부의 요건을 충족했다. 여야는 지난 1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처리에는 합의했지만, 채 상병 특검법과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안에는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의 채 상병 특검법을 처리하겠다는 강한 의지가 통한 것이다. 1년 가까이 진척 없는 수사 역풍 뻔한데···용산 선택은? 특검법 통과에 대해 대통령실은 야당을 향해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해석했다. 다만, 수세에 몰린 대통령실이 야당을 지적할수록 부정 여론만 키우는 분위기다. 더구나 대통령실은 스스로가 수사 대상이 되는 사안서 ‘협치’를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으나, 이로 인해 역풍을 맞게 되는 형국이다. 당장 여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용산의 뜻을 따를지 의문이다. 윤 대통령이 어렵사리 여당 의원들을 단속하더라도 다음 달에 시작하는 22대 국회에서는 궁지에 내몰릴 것이 분명하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여부에 신중한 모습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거부권을 행사할지는 예단하기 어렵다”며 “김진표 국회의장은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분”이라고 일축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여야 합의 없이 거대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법안들에 대해선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며 거부권을 행사해 왔다. 그러나 ‘젊은 병사의 죽음’과 관련된 민감한 사안인 데다 야권과 언론이 국가안보실과 공직기강비서관실 등 대통령실 연루 의혹을 잇달아 제기한 상황이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여당의 총선 참패 한 달여 만에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도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이다. 국회 재표결 시 여당 이탈표도 우려해야 하는 부분이다. 윤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용산 대통령실 회담서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채 상병 특검법의 적극적인 수용을 요구한 데 대해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은 것도 복잡한 상황을 반영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채 상병 특검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공수처는 특검 출범 여부와 별개로 ‘채 상병 순직 사건 조사 외압 의혹’과 관련된 핵심 인물들을 불러 조사하며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국방부가 채 상병 사건을 회수하고 재조사하는 과정서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대통령실 등 ‘윗선’으로부터 외압이 있었는지 의혹을 풀어줄 핵심 인물들을 중심으로 소환조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수사는 진행 중 공수처 수사4부(부장검사 이대환)는 지난 2일 오전 9시25분쯤 박경훈 전 국방부 조사본부장 직무대리를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이날 공수처는 박 전 직무대리를 상대로 국방부 조사본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을 재조사한 후 혐의자를 축소해 경찰로 넘기는 과정서 외압이 있었는지 등을 캐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