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구 하이마트 회장, 검은돈 미스터리#5 <밀착해부>

해외로 돈 꼬불치다 집안 다 말아먹게 생겼다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의 ‘검은돈’이 발각됐다. 해외에서 풍겨오는 썩은 내를 감지한 건 검찰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수부. 중수부는 총부리를 선 회장의 미간에 정조준 했다. 하이마트 본사는 물론 선 회장의 자택, 자녀들의 회사까지 샅샅이 뒤졌다. 그야말로 먼지 하나까지 털어내겠다는 각오다. 특히 중수부는 선 회장의 혐의에 대한 정황증거를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 선 회장이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대우그룹 종합 유통판매 위해 차명으로 만든 회사
김우중 출자한 지분 15%로 비자금 조성 의혹

검찰에서 ‘저승사자’로 통하는 중앙수사부가 선종구 하이마트 회장에 칼을 빼들었다. 1000억원대의 자산을 해외로 빼돌려 자금 세탁을 한 혐의를 잡고서다. 검찰은 선 회장이 빼돌린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세탁하고 자녀에게 불법 증여한 혐의를 포착한 상태다.

중수부는 하이마트 본사와 관계사, 선 회장의 도곡동 타워팰리스 자택 등을 차례로 압수수색하며 수사에 나섰다. 국세청에 역외탈세 전담조직과 공조 수사를 벌일 방침이다. 먼지 하나까지 샅샅이 털어내겠다는 각오가 비장하다.

#1. 사태의 원인=기이한 태생?

업계는 이번 사태의 원인을 하이마트의 ‘기이한 태생’에서 찾고 있다. 본래 하이마트(당시 한국신용유통)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대우전자의 국내영업을 담당케 하기 위해 별도로 만들었던 회사다. 수출에 강점이 있지만 내수에 취약하던 대우그룹의 내수영업을 강화한다는 취지에서였다.

그러나 대우전자 제품 뿐 아니라 타회사 제품까지 종합적인 유통판매를 하기 위해 그룹사 소속이 아닌 별도회사로 만들어야 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설립자본금 50억원 가운데 15%에 해당하는 7억5000만원을 출자, 차명을 이용해 주주로 참여했다. 그리고 지분 55%는 대우그룹 위장계열사인 신한기공, 고려피혁, 신성통상, 세계물산 등이 참여했다. 결국 한국신용유통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는’ 서자의 신분인 셈이었다.


대우그룹 몰락과정에서 한국신용유통은 대우전자의 국내 영업부문과 합쳐져, 1999년 가전양판점인 하이마트로 재탄생 했다. 당시 대우전자 판매총괄본부장(이사)이던 선 회장이 이 작업을 주도했고, 하이마트의 대표에 취임하게 됐다.

당시 재계에선 하이마트의 태생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언젠가 숨어있던 문제가 터져 나오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 회장은 이런 우려를 뒤로 한 채 하이마트를 국내 대표 전자회사로 키워냈다. 그리고 이런 공로를 높이 평가 받아 선 회장은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서 유진그룹으로 최대주주가 바뀌는 과정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2. 자금 출처는 김우중 전 회장?

아직 검찰은 비자금의 출처에 대한 결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업계는 김 전 회장이 한국신용유통에 출자한 자금을 바탕으로 비자금이 조성된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대우그룹이 해체될 당시 선 회장은 무주물이나 다름없는 김 전 회장의 지분 15%를 임의로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분 55%를 가지고 있었던 다른 대우 위장계열사들도 그룹 해체와 함께 법정관리로 넘어가면서 이들 주식이 장부가(액면가)로 선 회장 등에게 헐값에 처분된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지분을 관리하던 구조조정본부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 2002년에야 이를 눈치 채고 선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소송을 위해 실질주주인 김 전 회장이 구조조정본부의 정주호씨에게 주식을 증여했다. 김 전 회장이 아닌 정씨를 원고, 선종구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 시작된 것이다.

소송을 시작한 주된 이유는 하이마트를 대우그룹 부활의 발판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그룹을 되살리기 위해선 주력회사인 대우건설, 대우인터내셔널, 대우조선의 인수가 필요했다. 당시 이들 회사는 산업은행, 캠코로 소유권이 넘어가 공개매각입찰을 앞두고 있는 상태였다. 이를 인수하기 위해선 일종의 전략적투자자(SI)가 필요했는데, 여기에 하이마트가 제격이라고 대우그룹은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소송은 고발자인 정씨와 피고인 선 회장이 수십억에 달하는 합의금을 주고받으며 합의했다. 당연히 법원은 기각판결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이는 김 전 회장이 22조원을 추징당한 상태여서 지분이 증명되더라도 바로 국고로 귀속되기 때문에 재판을 계속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선 회장은 수차례 증자과정에 참여하고 주식을 매각?매입하면서 재산을 불려나갔다. 특히 지난해 하이마트가 상장하면서 선 회장의 재산은 크게 늘어났다. 바로 이 돈 가운데 일부가 비자금의 조성에 사용됐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3. 자금의 사용처는 골프장?

검찰은 비자금이 선 회장 일가가 투자한 골프장 사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선 회장 일가는 2009년부터 사업비 1500억원 규모로 강원 춘천시 일대 51만여평의 대지에 27홀 규모의 골프장 엔바인리조트 개발 사업을 벌여왔다.

투자금 대부분은 선 회장의 호주머니에서 나왔다. 선 회장은 지난 2005년 이후 하이마트 경영권이 어피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단계적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보유 지분 약 14%를 매각해 확보한 1000억여원을 골프장에 투자했다. 여기에 자신의 월급은 물론 하이마트 관계사에 취업한 아들과 딸로부터 투자금을 모아 개발투자에 집중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골프장에 선 회장 일가 투자 집중…금융권 차입도
자녀 연루돼 있는 사실 드러날 경우 일가 쑥대밭

그러나 사업은 시작 직후부터 위기에 직면했다. 금융위기가 불어 닥치면서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 이 때문에 선 회장과 그의 자녀는 부지 매입비를 제외하고도 약 1700억원 이상의 조성비용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준공 이후까지 이어졌다. 회원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이 사업은 당초 최소 300~400명의 회원 모집을 목표로 추진됐다. 그러나 골프장과 리조트가 준공된 지난해 중순까지도 회원 모집률은 당초 계획의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처럼 사업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예상보다 많은 자금이 소요됐고 자연스레 공사대금이 체납되기 시작했다. 체납된 대금 역시 선 회장 본인이 부담했다. 이 과정에서 선 회장은 여유자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비용을 매우기 위해 하이마트 지분을 담보로 한 금융권 차입까지 동원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손실을 메우기 위해 회사 돈과 개인 자산을 해외로 빼돌린 뒤 자녀들에게 불법 증여를 하는 수법으로 탈세를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검찰의 견해다.

#4. 자녀 직접적으로 연루돼 있나?

압수수색 대상에는 선 회장의 아들 현석씨와 딸 수연씨가 요직을 맡고 있는 계열사도 포함됐다.  이번 검찰의 수사를 보라보는 재계의 관심사 가운데 하나는 현석씨와 수연씨가 사건에 직접적으로 연루돼 있느냐다.
현석씨는 하이마트 계열사인 HM투어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항공권 발권, 국내외 여행서비스를 제공하는 이 회사는 혼수제품 고객이 많은 하이마트와 연계 마케팅을 통해 신혼여행 사업 등을 하고 있다.

또 수연씨는 하이마트가 광고 전량을 담당하고 있는 커뮤니케이션윌의 지분 37.5%를 보유한 주요주주다. 하이마트는 커뮤니케이션윌이 창립된 지난 2000년도 이후부터 공개경쟁 절차를 생략한 채 광고 전량을 몰아줬다.

검찰은 선 회장이 빼돌린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세탁하고 자녀에게 불법 증여한 혐의를 포착했다. 현석씨와 수연씨는 일단 간접적으로는 연루돼 있는 셈이다. 이에 검찰은 계좌를 추적하는 등 자녀들에 대한 수사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검찰은 또 압수물 분석과 실무자 조사를 마치는 대로 선 회장과 자녀를 소환한다는 방침이다.

지금까지는 선 회장 한 명만 입건돼 있다. 그러나 현석씨와 수연씨의 혐의가 드러날 경우 추가로 입건자가 늘어날 수 있는 상황. 선 회장 일가 전체가 아예 쑥대밭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5. 선 회장 재기 가능할까?

검찰은 선 회장이 수백억원의 기업 자금을 조세피난처를 거쳐 해외로 빼돌렸다는 첩보를 금융정보분석원(FIU) 등 금융 당국으로부터 넘겨받은 뒤 한 달 넘게 내사를 진행해 상당한 혐의를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마트 본사를 공개적으로 수색한 것이 비자금 혐의와 관련, 충분한 정황 증거를 확보했다는 자신의 표현이다.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더라도 선 회장을 믿고 따르던 직원들의 신뢰는 바닥으로 떨어진 모습이다. 하이마트를 국내 대표 가전업체로 일으켜 세운 그의 명성에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됐음은 물론이다. 여기에 골프장 사업 부진으로 재정적인 어려움마저 겪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혐의가 사실로 드러나고 선 회장이 실형을 선고 받을 경우 사실상 재기가 불가능 하리란 게 재계의 관측이다.

현재 선 회장은 임직원들에게 사과의 메시지를 남기고 잠적한 상태. 출근은커녕 연락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선 회장이 멀리 뛰기 위해 웅크린 것인지, 검찰의 서슬 퍼런 칼끝에 몸을 피한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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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