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김설아 기자] 죽은 자는 있지만, 사체가 없는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 명백한 상황에서 용의자는 잡혔다. 그러나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완벽한 반전드라마를 내놓는다. 살인죄를 인정한 1심과 달리 항소심에서는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자신은 죽었다고 사망신고를 한 뒤, 사라진 20대 여성의 행세를 하며 살던 40대 여성. 도대체 그와 얽힌 이 기묘한 사건의 실체는 무엇일까?

억대의 빛, 연하 남친과의 핑크빛 미래 위해
20대 여성의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거액의 보험금을 받아 챙기려 한 혐의(살인 등)로 기소돼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40대 여성이 항소심에서 살인죄에 대해 무죄판결을 받았다.
부산고법 형사2부(황적화 부장판사)는 살인, 사체은닉,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손모(41·여)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이 유죄로 판단한 살인혐의에 대해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으며 사체은닉 혐의에 대해서는 원심과 달리 유죄로 인정했다.
무기징역 vs 무죄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자를 유인해 살해했을 것이라는 강한 의심이 들지만 공소사실에 구체적인 범행방법이 적시돼 있지 않고 사망원인이 객관적으로 밝혀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살을 인정할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증거재판주의 원칙과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1명의 무고한 사람을 만들 수는 없다’는 법 정신을 고려할 때 피고인에게 살해동기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불분명하거나 의문이 남아 있는 이상 살인죄를 인정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심근경색에 의한 돌연사 가능성과 자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 타살 가능성도 제법 있지만 완전히 확신할 수 없어 사망원인은 의학적으로 원인불명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사체은닉 혐의에 대해 “일반적인 화장절차를 거쳤지만 피해자의 시신을 피고인이 자신의 시신으로 가장해 화장하는 바람에 유족에게 애도의 예를 표하지 못한 점 등을 고려할 때 유죄”라고 판시했다.
손씨는 2010년 5월부터 24억원 상당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6월 중순 대구의 모 여성쉼터에서 소개받은 김모(26·여)씨를 부산으로 데려온 다음 날 새벽 불상의 방법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화장한 뒤 자신이 숨진 것처럼 속여 보험금을 받으려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손씨가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르게 된 데는 억대의 빛 청산과 내연남이었던 김모씨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씨는 자신의 과거 결혼경력 및 딸아이의 존재를 숨긴 채 지난 2003년부터 당시 대학생이던 13살 연하의 김모(28)씨와 연인으로 지냈다.
손씨는 김씨와 그의 부모에게 “아버지로부터 20억원 상당의 유산을 상속받았으니, 결혼하여 함께 외국에 나가 살자”는 등의 재력을 과시하면서 김씨에게 용돈과 값비싼 선물을 주고 고급음식점에서 함께 식사를 하는 등 많은 돈을 소비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연남 김씨에게 그동안 숨겨오던 자신의 과거사가 알려져 결별을 통보받자, 손씨는 김씨에게 “아이를 임신했다”고 거짓말을 했다.
손씨는 또 인터넷에서 타인의 태아사진을 내려 받아 김씨의 새로운 여자친구 휴대전화로 전송하여 결국 김씨와 여자친구가 헤어지도록 하는 등 김씨에게 과도한 집착을 보였다.
김씨와의 불화로 심한 정신적 압박을 느낀 손씨는 관계 복원 및 새 출발을 위해 많은 자금과 새로운 신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가운데 손씨는 형사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까지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합의할 능력이 되질 않아 구속될 위기에 처하자 곧바로 다른 마음을 먹게 됐다.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다음, 사회적 인관관계가 단절되어 사라지더라도 주변 사람이 찾지 않을 여성 노숙자를 구해 살해한 후 마치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위장해 보험금을 수령하는 기막힌 스토리가 나왔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함과 동시에 진행 중인 형사재판도 처벌을 면할 수 있고, 남은 보험금으로 연인인 김씨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세탁한 다음 김씨와 함께 외국으로 나가 새 출발을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인생을 훔친 여자
곧바로 손씨는 적당한 피해자 물색에 나섰다. 한 목사가 운영하는 쉼터의 카페에 자신을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이라고 속여 “어린이집의 보모를 구하는데 월급으로 130만원을 주고 가까운 대학에서 공부를 시켜 자격증을 취득하게 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피해자 김씨를 만나 살해했다.
손씨는 시신을 화장하고 자신이 죽은 것처럼 사망신고를 한 뒤 본인이 직접 사망보험금을 타내려다 덜미가 잡혔다.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사건’이 된 것이다.
검찰은 손씨가 2010년 4월부터 범행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독극물, 여성쉼터, 사망신고 절차 등의 단어를 검색했고 실제 독극물을 구입한 사실이 있다는 점 등을 증거로 제시하면서 살인죄를 적용했다.
그러나 무기징역을 받은 1심과 달리 항소심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이 사건은 대법원에서 최종판단을 받게 됐다.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시신 없는 살인사건에서 간접증거를 바탕으로 유죄판결이 확정된 경우도 다수 있어 대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