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내려놓는 의원들의 ‘금단현상’ 백태

  • 이주현 jhjh1313@ilyosisa.co.kr
  • 등록 2012.03.02 2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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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배지는 떼도 특권은 못 버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4·11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한창이다. 생존이 걸린 공천권획득을 위해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이다. 공천을 받고 당선된 이들은 엄청난 특혜를 받으며 4년을 호의호식할 수 있지만 낙선한 이들은 엄청난 데미지를 입는다. 현직의원이 도전에 실패해 직함 앞에 ‘전(前)’자를 달게 된다면 데미지의 강도는 더욱더 크다. 엄청난 특권들이 사라져 버리고 나서 일상생활에 불편함을 느껴 일종의 ‘금단현상’도 겪는다고 한다. 특권을 갈망하는 그들만의 금단현상을 살펴봤다.

권력·돈·비서에 공항 이용 특전까지, 낙천·낙선 땐 금단현상
불출마 선언한 정장선 “금배지 특권 내려놓기 쉽지 않네요”

국회의원들이 맛보는 특권의 달콤함은 일반 국민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평생연금에 열차표와 항공권, 유류비, 비서들 월급까지…. 이 모든 것이 ‘공짜’다. 회장님들도 부러워 할 엄청난 혜택이다.

여기에다 헌법으로 보장된 불체포·면책특권까지 더해진다면 이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외에도 금배지를 다는 순간 생기는 특권이 2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본지 835호 ‘무소불위 국회의원 그들만의 특권 집중분석’ 기사 참조).

2만5000원짜리 의원배지가 ‘금배지’로 불리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어서다.

금배지가 뭐기에


이런 달콤함을 맛본 이들에게 특권을 한순간에 털어내 버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자신들의 손발 역할을 하던 수행비서가 없어지니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하는 불편함부터 겪는다.

금단현상의 첫 번째로 찾아오는 증상은 걸려온 전화를 스스로 받을 때 느끼는 처량함이라고 한다. 예전 같으면 수행비서가 다 받아주었는데 이젠 스스로 전화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이 자신을 초라하다고 여기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금단증상은 심리적으로 도저히 견디기 힘든 정신적 공황상태를 초래한다고 한다.

한 전직의원은 “공항에서 출입국 심사를 받을 때마다 배지가 떨어진 것을 실감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요금을 몰라 어려움을 겪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민주당 사무총장을 지내고 19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3선의 정장선 의원은 “국회의원직에 따르는 권력과 특권을 하나씩 포기하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솔직한 고백을 할 정도였다.

검소하게 살았다고 자부하는 정 의원은 ‘내려놓기’ 연습을 위해, 지난달 해외에 나갈 땐 직접 수속을 해봤다고 한다.

지난해 12월 출국 때는 “이런저런 의전을 받아가며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할 일이 있었는데, 배지를 뗀 뒤에는 공항 이용이 얼마나 고단할지 걱정되더라”고 말했다.

출국수속은 공항 측에서 해주고, 보안검색은 약식으로 받으며, 의전실을 무료로 이용했던 ‘특권’과의 작별이 두렵다는 것이다.


주변의 태도 변화 또한 그들에게 적잖은 공허감과 허탈감을 안겨준다. 정 의원은 “굉장히 가깝게 대했던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지는 일도 생겼다”며 “주류사회에서 역할을 하다가 갑자기 떨어져 나갔을 경우 생기는 허탈감과 공허감을 이겨나갈 수 없다”고 밝혔다.

민주통합당의 한 전직의원은 불교·기독교 등을 전전하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퇴임 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하면 되는 법조인과 사업가 출신을 제외한 다수의 정치인들은 생계도 걱정이다.

정 의원 역시 최대 고민거리이기도 하다. 그가 지난해 신고한 재산은 3억9800여만 원이다. 행정공무원 출신이라 별다른 자격증도 없어 취업도 마땅찮다.

방송인 출신의 한 전직의원은 “앵커는 떨어지면 백수가 된다. 변호사들이 부럽다”고 밝힐 정도다.

정 의원은 65세 이상 지급되는 120만 원의 지원금 대상도 아니라 생계를 위해 친구들이 하는 중소기업에서 사외이사를 맡을까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낙선한 의원들은 ‘정치 백수’가 되거나 칩거하는 사람도 적잖다고 한다. 이번 총선에서 원내 재입성을 노리고 있는 한 후보자는 “금배지를 다시 달 수 있다면 처·자식 빼고 다 바꿀 수 있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할 정도다.

정 의원도 고민을 거듭하다 아내(중학교 교사)에게 “다시 나서볼까”라고 했더니 “이혼하고 출마하라”는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설을 통해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면 물러날 때 물러나는 것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이롭다는 사실을 잘 알 텐데 제발 좀 그만두라고 해도 막무가내인 걸 보면 중독증상이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다”고 염려했다.

또한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인 보좌제가 아닌 비서진 풀(pool)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정착시키면 특정 상임위에서 오랜 경험을 한 보좌진을 분야별로 활용할 수 있어 입법 활동이 더 활발해질 수 있고 보좌진의 직업적 안정성이 확보되는 것은 물론 보좌진의 비리 연루도 막을 수 있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지고 온다는 것이다.

생계유지도 걱정

이처럼 국회의원들은 금배지를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공천권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이 생기고 중진의원들이 ‘용퇴 압력’을 받으면서도 버티는 것은 이러한 이유들이 크게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 전면에 섰을 때의 화려함을 잊지 못하고 금배지를 향한 열망이 심중에 깊게 깔려 있는 것이다.

최근 웰빙시대를 맞이해 금연열풍이 드세다. 금연에 반드시 수반되는 금단현상을 잘 이겨내면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듯이 국회의원을 꿈꾸는 이들이 특권을 내려놓는 금단현상을 잘 이겨낸다면 대한민국은 더욱더 건강하고 깨끗한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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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