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나이트클럽 '꽃뱀알바' 실태

  • 한종해 han1028@ilyosisa.co.kr
  • 등록 2012.02.10 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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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잘 아는 레스토랑 있는데…같이 가요"

[일요시사=한종해 기자] 연일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애인이 없는 남성들은 마음도 추운 날씨다. 이런 남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지갑을 활짝 열게 하는 얼굴만 예쁜 '꽃뱀알바'가 판치고 있다. 이들은 수려한 외모와 입심으로 남성들을 유혹해 식당에서 비싼 음식을 먹게 하고 부당이익을 챙기고 있다. 한 끼 식사가 180만원, 하룻밤 술값이 150만원이면 말 다했다. '꽃뱀'은 남자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몸을 맡기고 금품을 우려내는 여자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지난달 30일 이들 중 일부가 경찰에 적발됐지만 꽃뱀알바들의 미인계 영업은 아직도 성행하고 있다. <일요시사>가 꽃뱀알바 실태를 집중 취재했다.

꽃뱀 10명이 남성 720명에게 4억원 뜯어내
계산서 받아들면 늦어, 메뉴판 ‘꼭’ 확인해야

지난달 30일 수도권 일대 나이트클럽에서 만난 남성들을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으로 유인해 최대 180만원의 음식값을 내게 한 업주 A(41)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7월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레스토랑을 내고 이른바 '꽃뱀알바'들을 고용해 부천과 고양, 인천, 서울 구로구 등지의 나이트클럽에서 남성들을 유인해 30만원에서 최고 180만원 상당의 식사를 하도록 하는 등 지난해 11월까지 총 4억원 상당의 부당이익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 업소의 신용카드 거래내역과 금융계좌를 추적을 통해 720명의 남성이 최소 30만원에서 많게는 180만원에 식사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이번 단속에서 적발된 A씨 등 식당관계자 4명과 꽃뱀알바 여성 종업원 10명에 대해서는 사기혐의로 불구속 입건할 방침이다.

한 끼 식사가
180만원이라고?


꽃뱀알바의 실상을 확인하기 위해 경찰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9시 강남의 한 나이트클럽을 찾았다. 조금 이른 시간 때문인지 손님이 많아 보이게 하는 역할인 속칭 '바람잡이'들만 테이블에 앉아 있을 뿐 내부는 한산했다.

나이트클럽 관계자를 만나 기자 신분을 밝히고 취재 요청을 했다. '기자'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던 이 관계자는 꽃뱀알바에 관한 취재라고 밝히자 얼굴이 밝아졌다. 이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도 꽃뱀은 큰 골칫거리다"며 취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매상을 올려주는 남자손님을 빼가는 꽃뱀이 그 만큼 많다는 것.

관계자가 소개한 꽃뱀을 잘 알고 있다는 3년차 웨이터 김익철(30·가명)씨의 안내를 받아 나이트클럽 전경이 잘 보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밤 11시가 넘자 클럽 안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사람들과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들, 남녀 쌍쌍이 앉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김씨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을 데려와 기자의 맞은편에 앉혔다. "즐거운 시간 되십쇼"라고 말하며 돌아서는 김씨는 기자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드디어 꽃뱀이 나타난 것.

자신을 '24살의 간호사'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자연스럽게 기자의 옆 자리로 옮겨 앉았다. 몇 마디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담소를 나눈 지 20여 분이 지났을 무렵 이 여성은 기자에게 "답답하다. 잘 알고 있는 분위기 좋은 단골 칵테일바가 있다"며 "조용한 곳에서 술 한 잔 더 하자"고 말했다. 기자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는 말로 일단 여성을 돌려보냈다.

다짜고짜 나가서
술 마시자는 여성

어느덧 시간은 새벽 1시. 한 여성이 웨이터의 안내 없이 홀로 기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이 여성은 대뜸 "이 시간까지 여자 한 명 못 낚고 뭐하고 있냐. 시간도 늦었으니 나가서 바람도 쐬고 밥이나 먹자"며 기자를 이끌었다. 기자는 못 이기는 척 이 여성을 따라나섰다. 5분 정도를 걸었을까? 이 여성을 따라 고급스러워 보이는 레스토랑으로 들어섰다.

그녀는 레스토랑을 잘 알고 있는 듯 직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열어보지도 않고 자연스럽게 몇 가지 안주와 하우스와인 두 잔을 주문하고 메뉴판을 직원에게 다시 건넸다. 메뉴판을 금방 다시 받아드는 직원의 행동과 주문을 한 이 여성의 행동은 무척이나 자연스러웠다.


기자는 이쯤에서 신분을 밝히고 취재를 요청했다. 이 여성의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고 한동안 당황한 기색을 보이더니 허둥지둥 짐을 챙기고 레스토랑을 빠져나갔다. 직원을 불러 주문을 취소하고 메뉴판을 가져다 줄 것을 요구했다. 직원이 가져온 메뉴판을 펼치는 순간 기자의 눈이 의심스러워졌다. 이 여성이 주문했던 안주 몇 개의 가격은 각각 10만원에 육박했고 하우스와인 1잔이라는 글씨 옆에는 4만원이라는 가격이 적혀있었다. 이 레스토랑에서 팔리는 하우스와인은 시중에서 병당 5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카운터를 보고 있는 직원에게 다가가 "방금 나간 여성이 이곳에 자주 오느냐"고 물었다. 직원은 "오늘 처음 보는 사람이다"고 답하더니 "주문하지 않을 거면 나가달라"고 말했다.

"기다리겠다"는 여성, 계산하고 나오니 어디로?
이름도 모르는 싸구려 양주가 한 병에 50만원

경기도 성남시에 살고 있는 박모(34)씨는 비슷한 사례 때문에 쓴맛을 봤다. 박씨는 얼마 전 경기도 안양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우연히 만난 꽃뱀알바에 걸려 바가지 술값에 호되게 당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밤 11시께 나이트에 들어간 박씨는 담당 웨이터에게 팁까지 찔러주며 부킹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매번 퇴짜만 맞았다.

그러던 중 외모가 괜찮은 여성 두 명과 합석이 이뤄졌고 맥주 몇 잔을 주고받았다. 이 여성들은 그때까지 퇴짜를 놓던 여성들과는 다르게 매우 호의적으로 다가왔고 그런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박씨는 2차를 제의했다. 그러자 여성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양주 한 잔 사 달라"는 말을 하며 근처 호프집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박씨의 친구는 귓속말로 "뭔가 이상하다"며 박씨를 만류했지만 미모의 여성 둘이 달라붙는 통에 결국 친구는 집으로 돌아가고 박씨만 여성들을 따라 호프집 구석진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한 여성이 직원을 불러 양주와 과일안주를 주문했다. 여성이 주문한 양주의 이름이 생소했지만 박씨는 '고급 룸살롱도 아니고 일반 호프집 양주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겠냐'는 생각에 메뉴판도 보지 않고 술을 마신 게 실수였다.

순식간에 양주 한 병을 비워버린 일행은 추가로 같은 양주를 주문했다. 박씨는 술값이 걱정되기 시작했지만 친구의 파트너였던 여성이 "집에 간다"며 자리를 피하자 하룻밤(?)이 이뤄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안주까지 추가적으로 주문하면서 술을 마셨다.

시가 5만원 와인
한 잔에 4만원

양주 두 병을 다 비웠을 무렵 여성이 "그만 일어나자. 밖에서 기다리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게를 빠져나갔다. 카운터에서 계산서를 받아든 박씨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술값이 150만원이 나온 것. "주문이 잘 못 된 것 같다"며 직원에게 메뉴판을 요구해 가격을 확인했지만 여성이 시킨 양주는 한 병에 60만원에 팔리고 있었다.

여자가 기다린다는 생각에 할 수 없이 계산을 마치고 술집 밖으로 나왔지만 여성은 이미 사라진 상태. 이름도 모르는 양주 두 병과 과일안주에 자신의 월급 반을 날린 박씨는 홀로 설움과 분노를 삼켜야 했다.

지난 1일 오후 6시께 전날 갔던 강남의 나이트클럽을 다시 찾았다. 꽃뱀알바를 잘 알고 있다던 김씨를 다시 만나 꽃뱀알바의 모든 것을 들어봤다.

김씨의 말에 따르면 꽃뱀알바를 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다른 본업이 있다. 쉬는 날을 이용해 알바를 한다는 것. 꽃뱀알바들은 나이트클럽, 부킹호프, 클럽 등 즉석만남이 가능한 모든 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장점(?) 때문에 자신들의 본업을 하는데도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


짭짤한 부업 수단이라는 것. 정작 남성들을 꼬시지 못하더라도 그녀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는 없다.

꽃뱀알바들은 꼬신 남성들을 자신이 속한 고급 식당이나 술집으로 데려가고 미리 숙지한 메뉴를 주문한다. 꽃뱀알바들이 남성을 데리고 해당 술집에 들어서면 통상 술집 종업원들은 메뉴판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남성들이 메뉴판을 보지 못하게 하기 때문. 혹시라도 남성들이 메뉴판을 요구할 경우 갖가지 애교와 말발로 남성들의 마음을 현혹한다.

일단 주문에 성공하면 남은 것은 지속적인 추가주문을 통해 술집 매출을 올리는 것. 여성들은 술을 마셨다가 준비된 수건에 뱉거나 바닥에 쏟아버리는 식으로 빠르게 술을 소비하고 취할 듯 말 듯한 모습을 보이며 남성들에게 술을 주문할 것을 요구한다. 남성이 취기가 올랐을 경우에는 남자가 용변 등의 이유로 자리를 비웠을 때 술병의 술을 비워버리기도 한다. 일부 술집은 꽃뱀알바들이 앉는 의자 밑에 술을 버리기 위한 통도 비치한다. 단순한 쓰레기통으로 보여 남성들도 의심하지 않는다.

경찰 단속 나와도
'모르쇠'로 일관

꽃뱀알바들의 수입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남성과 마신 술값의 10~50%를 챙기는 수법으로 한 달에 50만원에서 많게는 300만원 이상 벌기도 한다. 비교적 조심스럽고 의심이 많은 남성들에게서는 적은 액수를, 완전히 넘어왔다 싶은 남성들에게서는 큰 액수를 주문하게 하지만 무리하지는 않는 게 지속적으로 뜯어먹을(?) 수 있는 요령이다.

경찰 단속을 피하는 법도 밝혔다. 단속이 뜨면 무조건 모르쇠로 일관하면 된다는 것. 업주와의 관계가 들통 난다 하더라도 "기왕 팔아줄 것 아는 사람 매상 올려줬다고 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나이트 등에서 여자를 만나 2차를 나가게 된다면 메뉴판을 꼭 확인해야 한다. 상대의 기본적인 신상정보를 알아 놓는 것이 꽃뱀에게 물리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최소한의 피해예방법"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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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경주 APEC’ 강대강 매치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오는 31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 APEC 정상회의(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이하 정상회의)가 경북 경주에서 열린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20개 나라 정상이 초청 대상으로, ‘외교 슈퍼 위크’가 시작된 셈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각국의 강경파들이 경주로 모이면서 서로 어떤 합을 보일지 관심이 쏠린다. 2025 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미 관세 문제가 급물살을 탔다. 지난 7월 협상 시한 하루를 앞두고 한미 간 무역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지 약 세 달 만이다. 정상회의를 계기로 관세 협상이 매끄럽게 마무리될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노브레이크 미국 관세 쟁점은 한국이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조건으로 미국에 투자하기로 한 3500억달러(약 500조원)에 대한 지불 방식이다. 한국은 직접 투자 비중을 줄이고 투자 기간을 늘리겠다는 방침이지만,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임기 내 최대한 현금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현금 선불 투자를 고집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설득할 수 있는지가 협상 타결의 관건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상회의가 며칠 남지 않은 시점까지도 협상은 난항을 겪었다. 큰 틀에서는 합의가 이뤄졌지만, 세밀한 부분이나 주요 쟁점이 해결되지 않는 등 의견이 모이지 않은 탓이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회담한 뒤 “진전이 있었다”면서도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김 실장은 ‘마지막 쟁점이 조율됐느냐’는 특파원들 질문에 “쟁점이 하나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두 개라고 했고, 아주 많지는 않다”며 “오늘 남아있는 쟁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고 진전이 있었다. 만나면 조금 더 상호 입장을 이해하게 된다”고 답했다. 양국의 대면 협의가 사실상 이날 종료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두 사람의 결단만 남았다. 미중 간의 관세 협상 결과와 이번에 이뤄질 두 정상의 만남이 한국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냐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중국과 미국은 지난 4월부터 보복 형식으로 서로를 향해 관세 허들을 높여갔다. 그러던 중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면서 질주하는 미국에 제동을 걸었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100% 관세를 추가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관세 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추가 관세가 현실화하면 중국이 미국에 내야 할 관세는 157%에 달하는 만큼 미중 간의 팽팽한 대립이 이어졌다. 좁히지 못한 ‘디테일’ 막판 협상 난항 이 “우리는 동맹…상식과 합리성 공유” 중국이 밸브를 잠그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고 희토류와 핵심 광물 공급 협력에 관한 협정에 서명했다. 이는 정상회의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나기 전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일본도 일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희토류 삼각 동맹이 이뤄진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1일 백악관 로즈가든 클럽에서 주재한 오찬 행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한국에서 만나 많은 것을 이야기할 것”이라며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이어 “우리가 협상에서 잘할 것으로 생각한다”며 “나는 시 주석과 좋은 합의를 하고 싶고, 시 주석이 중국을 위해 좋은 합의를 하길 바란다. 하지만 그 합의는 공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중 간 무역 갈등이 장기화되면 한국 경제 성장률을 비롯해 수출입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전망과 관련해 “조정·교정하는 데 상당히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투자펀드를 둘러싼 이견에 대해서는 “결국 이성적으로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합리적인 결과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왜냐하면 우리는 동맹이며 서로 상식과 합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갈등이 현재 진행형인 상황에서 다음 차례를 기다리는 한국이 어떤 입장을 취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11년 만에 이뤄진 시 주석의 방한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직 한중 관계에 큰 잡음은 없지만 훈풍이 불지 않는 만큼 개선의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이 대통령은 한중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대해 초점을 맞출 것으로 전망된다. 이재명정부의 첫 주중대사인 노재헌 신임 대사는 “(시 주석의) 국빈 방문이 계획됐기 때문에 한중 관계가 새로운 도약을 맞이할 수 있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한다”며 “양국 지도자 간에 우호와 신뢰 관계를 다시 굳건히 하고 그 초석 위에서 한중 관계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 친하지?” 서먹해진 중국 이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시험대에 놓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9월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열리는 ‘항일전쟁 및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80주년(전승절)’에 초청받았지만 의전 서열 2위인 우원식 국회의장이 대신 자리했다. 이 대통령의 전승절 참여 여부를 놓고 국민의힘이 친중 프레임을 굳히자 불필요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앞서 백악관은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축사를 하던 중 뜬금없이 “중국의 간섭과 영향력 우려”라며 중국을 향해 견제구를 날렸다. 한국이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임을 강조할 경우 미국이 제동을 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이처럼 한중 관계 개선의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인 만큼 한국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외교 전략을 펼쳐야 한다. 김지수 한반도 미래경제 포럼 대표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나오던 때랑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안보와 경제가 같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런 점에서 미국이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이 대통령 역시 안미경중 노선에 대해 “과거처럼 그런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상황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강력한 견제, 나아가 봉쇄 정책을 본격 시작하기 전까지 한국은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입장을 유지해 왔던 게 사실”이라면서도 “몇 년 사이 자유 진영과 중국을 중심으로 한 진영 간 공급망 재편이 본격적으로 벌어졌고 미국의 정책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 방향으로 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한국도 미국의 기본적인 정책에서 어긋나게 행동하거나 판단할 수 없는 상태”라며 “중국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운 데서 생겨나는 불가피한 관계를 잘 관리하는 수준으로 유지하는 상황”이라 고 부연했다. ‘여자 아베’ 경주 데뷔 김 대표는 “미국의 최대 경쟁국은 중국”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은 중국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을 향해 손짓하고 있다. 미중 패권 전쟁에서 유리한 전략을 모두 취하고 있는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중국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다. 미국과 가까이 지내기 위해 중국을 적대시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중국인 무비자 입국으로 한국 전역에 퍼진 반중 혐오 시위도 고려 대상이다. 최근 국민의힘 등 보수 세력을 중심으로 반중 정서가 확대되면서 외교 갈등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와 관련해 노 대사는 중국 주상하이 총영사관에서 주중대사관을 상대로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내 반중·혐중 시위를 묻는 말에 “당연히 우려되고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고 양국 국민의 우호 정서 함양·증진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며 “근거 없고 음모론에 기반한 행위에 대해서는 조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에 대한 자국민의 우려에 대해서도 “불법 체류 현황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범죄 같은 부분은 입국자 등을 잘 지켜보면서 필요하면 단속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지난 21일 선출된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신임 총리는 이번 정상회의를 시작으로 본격 대외 행보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보수 성향이 짙은 탓에 한일 관계가 틀어지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정권 초기인 만큼 우호적 태도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중의원 10선 의원으로 경제안보담당상, 총무상, 자민당 정무조사회장 등을 지낸 인물이다. 일본 정계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비세습 여성 정치인으로 강경 보수 성향이라는 평가와 함께 입지를 다져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4일 치러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하며 당권 티켓을 거머쥐었지만 1999년부터 자민당과 협력해 온 중도 보수 성향인 공명당이 연정에서 이탈해 표가 분산될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강경 보수 성향이자 제2야당인 일본유신회를 새롭게 끌어들이면서 극적으로 총리직에 당선됐다. 서로 싫다는 미·중, 사이에 낀 한국 일본까지 강경파 ‘폭풍 속 한반도’ 이 대통령은 신임 일본 총리가 선출된 것에 대해 “정상회의가 개최되는 경주에서 총리를 직접 뵙고, 건설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길 고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같이 밝히며 “우리는 새로운 한일 관계의 60년을 열어가야 하는 중대한 전환점에 서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아진 국제 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의 중요성 역시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 중대한 시기에 총리와 함께 양국 간, 그리고 양 국민 간 미래지향적 상생 협력을 한층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 아울러 셔틀 외교를 토대로 양국 정상이 자주 만나 소통할 수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훈훈한 축하 인사와 달리 한일 관계는 다시 시험대에 놓였다. 온건하다고 평가받았던 이시바 시게루 내각 체제만큼 협력 기조가 이어질지 확실치 않기 때문이다. 다카이치 총리는 2021년 총재 선거 당시 고 아베 전 총리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신임 보수 전사로 떠올랐다. 이번 총리 선거에서 역시 아베 전 총리의 파벌로 형성된 아베파의 지지가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 현지 신문은 자민당의 연정 상대가 공명당에서 유신회로 바뀌면서 다카이치 내각의 보수색이 선명해졌다고 해석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과거부터 야스쿠니 신사를 꾸준히 참배해온 만큼 한국 과거사와 독도 영토 문제 등 민감한 사안을 놓고 이정부와 충돌할 우려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다카이치 총리가 이번에 보여준 강경 보수 행보는 우익 세력을 끌어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한일 외교에 있어서는 이시바 내각과 마찬가지로 온건한 노선을 택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다카이치 총리는 취임 기자회견에서 한일 관계에 우호적인 뜻을 내비쳤으며 가을 예대제 기간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지 않을 것으로도 전해진다. 한일 관계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다카이치 총리의 온건 행보가 일시적일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역대 총리들이 그랬듯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고 반한 감정을 부추겨 보수 지지층 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점에서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이 대통령이 국가 간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한미, 한중, 미중 정상회담이 연쇄적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고 비핵화와 관련해 이 대통령이 남·북·미 간의 대화 물꼬를 튼다면 경주를 무대로 ‘평화 한반도’ 기조를 형성하는 일등 공신 역할을 노릴 수 있다. 눌리거나 손잡거나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관계자는 “이 대통령에게 가장 큰 변수는 아무래도 미국이다. 각 국가 정상마다 성향도 다르고 원하는 바도 다른 만큼 미국부터 삐끗하면 차후 일정도 줄줄이 꼬인다”면서 “조급하게 나서면 될 일도 안 되는 게 외교 문제다. 한국은 한국만의 강점이 있다. 우리 쪽에서도 몇 가지 카드가 있을 테니 지금으로서는 정부를 믿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하필 지금? 미사일 쏜 북한 속내 지난 22일 북한이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단거리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한미·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북한 문제가 다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미국을 향한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한미군과 우리 군의 반응이 엇갈린 점 역시 주목된다. 주한미군은 미국의 한미 동맹에 대한 공약이 굳건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불법적이고 불안정을 초래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비판한다. 북한에 유엔안보리 결의 위반 행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반면 우리 군은 통상 해오던 미사일 발사 규탄 성명을 내지 않았다. 정상회의를 앞두고 이정부가 남북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만큼 이를 의식해 톤 조절에 나선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