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끓는 ‘DDoS 파문’ 총공세 나선 민주당 전략

“공씨 ‘단독범행’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민주주의의 꽃’이 짓밟혔다. 독재시대에나 나올 법한 선거방해 행위가 드러나면서다. 지난 10‧26 재보선 당일 선관위 사이트는 ‘디도스 공격’을 받아 녹다운 됐다. 주범은 바로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비서 공모씨로 밝혀졌다. 이에 한나라당은 초토화 상태이고, 국민적 분노는 극에 달해 있다. 한나라당은 모르쇠로 발뺌하지만 풍기는 냄새는 심상찮다. 뜻하지 않은 최상의 호재를 만난 민주당은 배후세력으로 한나라당 윗선을 지목하며 숨통을 죄는 모양새다. 일단 경찰은 공씨의 단독범행으로 결론 짓고 검찰에 사건을 송치했다.  

윗선 지령 의혹 냄새 심상치 않아 민주 배후 캐기 나서
규탄대회·국정조사 등 압박수위 높여가며 연일 파상공세

‘디도스(DDoS·분산 서비스 거부) 공격=북한소행’ 공식이 깨졌다. 지난 10‧26 재보선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이트의 디도스 공격을 지시한 혐의자가 다름 아닌 여당 중진의원의 비서로 밝혀지면서다. 경찰은 최구식 한나라당 의원의 9급 수행비서인 공모(27)씨를 구속, 속전속결로 수사를 마치고 공씨 단독범행으로 마무리지었다. 

국민의 주권인 선거 방해 공작에 여당의원의 비서가 연루되며 파문은 일파만파 확산되는 양상이다. 그간 궁지에 몰려있던 민주당은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기사회생을 노리는 분위기다.

이승만ㆍ박정희 독재
능가하는 사이버테러
 
경찰에 따르면 경남 진주 출신인 공씨는 지난 10월25일 밤 고향 후배인 IT업체 G사 대표 강모(25)씨에게 전화를 걸어 선관위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 공격을 요구했다. 강씨는 직원인 황모(25)씨와 김모(26)씨를 시켜 지난 10월26일 오전 1시쯤 선관위 홈페이지가 디도스 공격으로 다운되는지 실험한 뒤 오전 5시50분~11시쯤에 공격을 실시했다.

선관위 홈페이지는 오전 6시15분부터 8시32분까지 다운됐다. 경찰은 지난달 30일 G사 사무실에서 강씨 등 3명을 체포했다. 이후 강씨 등은 “공씨가 범행을 사주했다”고 진술했고, 경찰은 지난 1일 공씨를 검거했다.

여당 비서가 체포되며 당장 디도스 파문의 최대 관심사는 한나라당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는지의 여부가 됐다. 10‧26 재보선 당일 유권자들은 선관위 홈페이지에서 투표장 위치 정보를 확인하지 못해 혼란을 겪었다. 투표소가 많이 바뀐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투표율이 낮으면 여당이 유리할 것이란 분석이 우세했다. 무엇보다 최 의원은 한나라당 홍보기획본부장으로 10·26 재보선 선거기획단에서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를 지원했던 전력이 있어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최 의원의 경우 공씨의 우발적인 단독범행이라며 선을 그었다. 최 의원은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저는 사건 내용을 전혀 모른다”며 “제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결백을 주장했다.

“사전제의와 협상 통해
디도스 공격 이뤄진 것”

하지만 비용과 목적 등을 추론할 때 독자적인 판단에 따른 실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일개 9급 비서인 공씨가 단독으로 사비를 들여가며 국가기관에 대한 테러를 감행할 이유가 없다는 것. 일명 ‘윗선 지령’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오죽했으면 원희룡 한나라당 최고위원조차도 “디도스 공격이 9급 비서의 단독 범행이라고 믿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다.

민주당은 즉각 한나라당을 배후세력으로 지목했다. 이어 당내에 백원우 위원장을 중심으로 지난 3일 ‘한나라당 부정선거 사이버테러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를 구성해 배후세력 캐기에 발 벗고 나섰다. 여기에는 민주당 의원 10명과 당내의 IT전문가들이 합류한 상태다.

진상조사위 소속의 문용식 인터넷소통위원장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윗선 개입이 당연하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는 “공씨와 공모한 업체가 본래 하던 일이 해외 사이버도박 사이트를 운영한 곳”이라면서 “겉은 IT업체로 포장하고 있지만 실상 이들은 해킹 등으로 상대방 영업 사이트를 공격하며 돈을 번다”고 주장했다.

문 위원장의 설명에 따르면 공범인 강씨 회사의 경우 주된 업무를 예로 들면 작은 쇼핑몰 등을 공격해 경쟁업체를 망가뜨리며 돈을 벌었던 회사였다는 설명이다.

그는 “작은 업체 공격은 최소 500-1000만원의 비용을 받는 것이 그쪽 바닥의 생리다”며 “특히 국가기관 공격은 리스크(위험)가 훨씬 크다. 최소 징역 1년의 구형을 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민주당은 비용이나 계획면에서 배후세력과 사전협의가 충분히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집중난타로 민주당 ‘정국 주도권’까지 잡을까?
호재 맞은 민주, 반(反)한나라 정서 주도 총선 진두지휘


이에 백 위원장은 지난 2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을 방문한데 이어 지난 5일에도 경찰청을 방문해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특히 백 위원장은 “꼬리 자르기식 수사는 절대 안 된다”며 경찰 수사를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선관위 내부 소행설’도 제기된 상태다. 특히 정봉주 전 의원은 지난 5일 라디오에 출연해 “선관위 홈페이지 전체가 다운된 것이 아니라 ‘투표소 찾기’ 기능만 먹통이 됐다는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며 선관위 내부자 소행 가능성을 강력하게 주장했다.

같은 날 라디오에 출연한 선관위 관계자는 “(재보선) 당일 홈페이지에선 투표소 정보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홈페이지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고 모든 정보에 대한 서비스 제공이 불가능했다”며 내부 소행설을 부정했다. 그는 이어 “합리적 근거 없이 선관위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공정한 선거관리를 저해, 민주적 기본질서를 침해하는 행위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 위원장은 “이것은 실질적 피해자인 선관위가 의혹을 자초한 꼴”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로그기록만 공개해도 내부소행 의혹을 씻어낼 수 있음에도 그 최소한의 것마저 하지 않아 의혹에 불을 질렀다는 주장이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6일 선관위 사이트와 함께 디도스 공격을 당했던 ‘원순닷컴’에 대한 IP 로그 파일 분석 시연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문 위원장은 “보통 기업이면 공격을 받더라도 10∼20분 내에 정상화되는데 이번에는 초보적 수준의 공격임에도 2시간20분간 무방비 상태로 당했다”면서 “이 때문에 일부러 방치한 것 아니냐는 의심과 내부 음모라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고 선관위를 몰아세웠다.

경찰은 “선관위 내부에서 문을 열어준 흔적이 없다”며 내부 소행설을 일축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경찰은 지난 9일 디도스 공격을 공씨 단독범행으로 결론지었다. 경찰은 "자신이 모시는 최 의원을 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는 공씨의 자백을 받아 냈다고 전했다. 

이제 사건은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의 수사결과에 검찰마저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한다"며 "재수사에 가깝게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별수사팀을 구성한 검찰은 오는 28일까지 수사를 마무리 짓는다는 계획이다.

경찰 수사결과에
더욱 미궁 속으로

경찰이 이번 수사에서 용의자로 여당의원의 비서를 지목한 것은 나름의 성과였다.

하지만 범행 전날 공씨와 함께 술을 마셨던 박희태 국회의장의 비서 김모(31)씨, 한나라당 공성진 전 의원의 비서 박모씨 등을 줄줄이 조사하고도 혐의점을 밝혀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경찰 수사력에 의구심과 함께 또 다시 ‘꼬리 자르기’식 수사라는 오명이 따라붙을 전망이다.

국가기관인 선관위의 사이트를 마비시킨 헌정사상 초유의 사이버 테러를 두고 ‘국가 반란급 사건’ 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이다. 때문에 디도스 파문의 후폭풍은 이제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은 “일이 터지면 희생양을 정해 대충 어느 선까지 정리하고 몸통은 빠지는 꼬리 자르기식 대응으로는 더 큰 후폭풍을 부르게 될 것이다”고 내다보고 있다.

게다가 9급 비서관이 혼자 결심하고 주도했다는 경찰의 수사결과에 이슈는 더욱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가 실린 상태다.

‘디도스 사태=북한 소행’
공식 깨지며 ‘불신’ 심화

그간 디도스 사건이 몇 차례에 걸쳐 발생했지만 결론은 모두 북한소행이었다. 하지만 이번 디도스 파문의 범인이 밝혀지며 정치권에 대한 국민적 불신은 더욱더 심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향후 대응책과 관련해 “수순대로 국정조사를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어 진상조사위에 수사권은 없지만 계속해서 자료와 정황들을 조사하며 배후를 밝히는 데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디도스 공격에 가담한 업체와 한나라당의 관계 및 협상대가를 밝혀 반드시 몸통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가뜩이나 ‘한미FTA 날치기’로 국민들의 반감을 사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선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민주당은 이번 사건으로 촉발된 반(反)한나라당 정서를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몰아간다는 분위기다.

내친김에 민주당은 디도스 파문의 국조ㆍ특검을 고리로 한나라당과 그간 쟁점사안이던 한미FTA 재협상 및 사과를 비롯해 미디어렙법, 조용환 헌법재판관 후보자 선출안, 정개특위 관련법 등과 같은 사안에 대해 양보를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