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기부-청계재단-정수재단 전격비교

‘재단’과 ‘기부’라는 명칭아래 너무나 다른 ‘실체’

[일요시사=이주현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지난달 15일 1500억원대의 주식을 기부하기로 한 이후 안철수연구소도 전담팀을 만들어 사회공헌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또한 안 원장은 기부한 금액을 ‘성실공익법인’으로 재단을 설립하기로 해 이래저래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과 박근혜 전 대표의 ‘정수재단’과 비교되고 있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선주자 2인의 재단과 기부를 전격 비교해 보았다.

안철수 재단, 설립하지만 ‘성실공익법인’ 설립으로 가닥 잡힌 듯
청계재단 ‘공익법인’, 사위 및 지인들이 이사진 대거 포함돼 논란


안철수 원장은 지난달 1500억대의 주식 환원으로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안 원장이 2위 박근혜 전 대표와의 격차를 더욱더 벌리는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정치권에서는 기부를 대권을 겨냥한 일종의 정치적 행보로 보는 시각이 많았지만 안 원장은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던 걸 실행에 옮긴 것뿐이다” “그간 사회에 대한 책임, 사회 공헌을 많이 말했는데 그걸 행동으로 옮긴 거다”는 두 마디로 일축했다.

한국사회 롤모델 될
안철수 원장의 기부

 
세간의 관심은 자연히 1500억원의 용도와 사용 방식에 몰렸지만 안 원장은 입을 굳게 다물었었다

. 하지만 안 원장의 한 지인은 지난달 말 기부방식과 관련해 “정치인들의 기존 기부방식과는 차원이 다른 성격이 될 것”이라며 “기부금 운용은 초저금리 혹은 무이자로 돈을 빌려줬다가 상환 받는 방식이 유력하다”고 전했다.

“학생들에게 장학금 등을 몇 차례 나눠주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기부의 초점을 ‘자활’에 맞추겠다는 게 안 원장의 뜻”이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 안 원장의 기부금 1500억원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무이자나 거의 제로금리로 학자금을 대출해 주는 데 쓰이게 될 듯하다.

안 원장은 또한 주식을 박원순 서울시장이 이끌었던 ‘아름다운재단’ 같은 단체에 기부하지 않고 직접 복지재단을 설립하되 재단형태는 ‘성실공익법인’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공익법인 중 주식 배당금 같은 운용소득을 원래 목적에 80% 이상 사용하고, 이사 자리에 특수관계인을 5분의 1 이하로 쓰면 성실공익법인으로 인정받는다.

그만큼 많은 금액을 원래 목적인 기부에 사용할 수 있고 이익관계가 없어 보다 투명한 재단을 운영할 수 있다.

주식을 기부해 증여세를 내야 하는 안 원장으로선 세금 부담을 덜고 기부액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성실공익법인을 택할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이 법인은 당국의 관리감독을 더 철저하게 받되 주식을 기부할 때 비과세 범위가 두 배로 늘어난다.

안 원장의 이 같은 행보에 발맞춰 안철수연구소는 지난 1일 경기도 판교 사옥에서 안 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회공헌팀’ 신설과 이를 체계적·혁신적으로 발전시켜 한국 사회의 롤모델 기업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안 원장과 함께 사회공헌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안 원장은 간담회에서 “사실 안철수연구소는 창업 당시부터 이윤보다는 사회공헌을 생각해온 ‘소셜벤처(사회적 기업)’였다”며 “제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선 지 7년째 접어드는데 구성원들과 경영진이 제가 생각한 마음을 간직하며 발전시키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이사장 송정호)은 과연 어떠할까? 일단 재단의 성질부터 안 원장이 설립하게 될 성실공익법인이 아닌 ‘공익법인’이다.

청계재단은 이사진에 이 대통령의 사위 및 지인이 대다수 포함돼 논란이 있었다. 지인을 배치해 ‘원래의 목적인 기부는 등한시 하고 재산관리를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이 대통령은 처남 김재정씨 사후에 그가 가졌던 ‘다스 지분’ 5%의 ‘청계재단 기부’가 문제 되기도 했다. 이 주식기부 행위는 2007년 대선 당시 논란이 되었던 BBK와 다스의 실소유주가 누구냐는 문제를 다시 불러일으키는 파장을 몰고 왔다.

청계재단 주식기부에는 진통이 있었다. 다스의 주식은 비상장 주식이다. 서울시교육청 담당 교육지원청은 주식배당금 등 수익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청계재단 측의 서류를 반려했다.

그 후 청계재단 측은 주식배당을 하겠다는 다스 측의 확인서를 담당 교육지원청에 제출했지만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임대수입 대부분 MB 빚 갚는데 사용, 실제 기부는 연간 3억 수준
박근혜 ‘정수재단’ 이사장직 놓았지만 측근 배치로 영향력 행사 논란

또한 세금을 조금이라도 줄여 기부를 많이 하기 위해 노력하는 안 원장과 달리 청계재단의 연간 기부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청계재단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청계재단의 연간수입은 약 15억~16억원 수준이다. 수입의 대부분은 이 대통령이 기부한 세 건물의 임대료가 차지한다. 이 중 장학금으로 지출된 액수는 지난해의 경우 약 6억2000만원이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이 중 3억원은 이 대통령의 사위가 부사장으로 있는 한국타이어가 기부한 것이다.
 
따라서 청계재단이 지출한 실질 장학금 금액은 3억2000만원에 불과하다. 15~16억원의 수입을 올리는데 비해 순수 목적인 장학금 금액이 적은 이유는 청계재단에 부채가 많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의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은행에서 30억원을 대출받아 사용했다. 여기에 대한 이자만 해도 연간 2억6000만원에 이른다.

연간 장학금과 별반 차이가 없는 금액이 재단 설립자인 이 대통령 개인채무탕감에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부채 변제 액수를 제외하더라도 장학금 액수가 너무 작아 또 다른 논란이 되고 있다. 본래 목적인 장학사업을 등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청계재단의 목적사업은 장학사업이다. “장학사업보다는 이 대통령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재단이 아니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청계재단’ MB 재산
지키기 위한 수단?


안 원장과 함께 최고의 잠룡으로 분류되는 박근혜 전 대표도 재단과 관련해 골머리를 싸매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부산일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정수재단 이사장직에서 2005년 물러났지만 본인의 비서였던 최필립씨를 이사장으로 앉혀 실질적 운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이런 <부산일보>가 지난 1988년 편집권 독립 쟁취 투쟁 이후 23년 만에 신문이 발행되지 못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폐쇄됐다.

사건의 발단은 노조와 편집국이 이날 자 신문 1면에 이호진 노조위원장에 대한 해고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기사와 2면에 해설기사를 싣기로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김종렬 <부산일보> 사장이 이런 신문을 발행할 수 없다며 돌아가는 윤전기 가동 중단 지시를 내린 것이다.

앞서 <부산일보> 사측은 지난달 28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수재단으로부터의 경영권 독립’을 요구해 온 이호진 노조 위원장에 대해 업무질서 문란 등을 이유로 최고의 징계 수위인 ‘면직’을 결정한 바 있다.
 
사측은 또한 노조의 ‘정수재단 사회 환원 투쟁’ 기사를 <부산일보> 18일자 1~2면에 보도하고 사측의 입장을 담은 사고 게재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이정호 편집국장까지 징계위에 회부시켰다. 이 국장은 ‘편집국장 직선제’에 의해 선출된 편집국장으로, 노조와 입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측이 이처럼 극단적 대응을 하고 있는 것은 노조가 내년 총·대선을 앞두고 보도의 공정성 확립을 이유로 ‘정수재단 사회 환원 투쟁’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내년 선거 공정보도를 위해선 최 이사장이 퇴진하는 등 명실상부한 정수재단 사회환원 조치가 필요하다는 게 노조 측 주장이다.
 
이 같은 노조 주장에 대해 언론노조를 비롯해 언론관련 시민사회단체들이 전폭적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으며, 야당도 이에 가세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우위영 대변인은 “박근혜 전 대표가 <부산일보>의 소유주인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정치인이 언론사 하나를 통째로 소유하고 그 보도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상식에도 부합하지 않고 민주주주와도 관련이 없다”며 “결국 <부산일보>발행 중단 사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박 전 대표에게 있다”고 압박을 가했다.

따라서 <부산일보> 파문 확대는 대선 레이스가 본격 시작된 시점에서 박 전 대표에게 또 하나의 악재가 될 전망이어서, 향후 박 전 대표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23년 만에 신문 발행
못 한 <부산일보> 논란


이처럼 이 대통령과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로 손꼽히는 안 원장과 박 전 대표의 기부 및 재단운영 방식은 180도 다른 모습을 보이며 비교대상이 되고 있다.

재단의 본래 목적과 기부라는 순수하고 좋은 행위에 정치적 색깔을 입히고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이유는 없다.

다만 보다 더 효율적인 기부를 하려고 하는 모습에 시민들은 감동할 것이고, 역으로 기부라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한다면 국민들은 이를 좌고우면 하지 않을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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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