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정동영의 불안한 ‘오월동주’ 행보

‘앙숙’마저 손잡게 한 ‘안풍’ 위력 “그대도 대권은 포기 못해”

[일요시사=서형숙 기자] 민주당 지도부가 똘똘 뭉쳤다. 특히 ‘한지붕 맞수’라 불리는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이 공동전선을 구축한 모양새다. ‘안풍’의 폭발력과 당 안팎의 공격에 두 사람 모두 입지가 좁아지자 급기야 손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 모두 대권을 노리기에 그 연대가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과연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안풍’ 파급력에 직격탄 맞은 손정 대권행 안개 속 국면
공방 일삼던 두 정적 뭉쳐…통합 올인해 위기 탈출 모색

현재 민주당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날로 더해지는 ‘안풍’의 파급력이 민주당을 위협하면서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은 안풍을 등에 업은 무소속 박원순 시장에 밀리며 불임정당이라는 오명을 썼다.

재보선에서 야권단일후보의 승리를 위해 최전방에서 도왔음에도 “죽 쒀서 개줬다”는 비아냥이 돌아왔다. 게다가 당 내부에서 야권통합과 한미 FTA 처리에 따른 불협화음도 심각하다.

충돌 일삼던 손‧정
이제는 의기투합!

팽배해진 위기 속에서 손학규 대표와 정동영 최고위원이 뭉치는 모양새다. 당내에선 ‘오월동주(吳越同舟)’라는 얘기도 나온다. 사실상 그간 두 사람은 앙숙으로 불리며 요소요소마다 정면충돌하여 파열음을 빚어온 사이다.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대북정책 기조를 놓고 ‘종북진보’라는 설전을 펼친 바 있다. 한 EU FTA 비준안 처리 과정에서 책임 공방을 벌였고, 대북정책과 ‘희망버스’ 탑승 문제를 놓고도 신경전을 펼쳤다. 얼마 전에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경선방식을 놓고 충돌했다.

하지만 장외에서 안풍이 정치권을 강타하자 민주당의 입지가 좁아졌음은 물론 두 사람의 존재감도 상실됐다. 그야말로 지지율이 곤두박질 친 것. 지난 427 재보선을 통해 손 대표의 지지율은 15%대까지 치솟으며 일순 탄력을 받는 듯했다. 하지만 곧 ‘안풍’과 ‘문풍’의 파급력에 직격탄을 맞으며 손 대표의 지지율은 순식간에 반토막 났다.

지난 15일 리얼미터 여론조사에 따르면 손 대표는 3.6%까지 폭락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에도 밀려 5~7위권에 불과한 것. 정 최고위원 역시 지난 대선 후보였음을 무색케 할만큼 존재감이 상실되며 지지율 열세를 면치 못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대권을 꿈꾸는 두 사람 모두 동반추락하며 절박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연대를 구축해 위기상황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 이에 두 사람은 공동보조를 취하며 야권통합에 올인하는 모양새다.

두 사람의 본격적인 공조는 여야 원내대표 사이에 합의된 한미FTA 절충안에 대한 결사저지 태세에서 시작됐다. 손 대표는 지난달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내년 총선에 FTA를 내걸고 국민의 뜻을 묻겠다”며 비준안 처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정 최고위원 역시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도)라는 독소조항을 걷어내야 한다”며 뜻을 같이 했다.

맞장구 친 손‧정
한목소리 나와 

이어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한미FTA 저지를 위한 야5당 대표 결의대회에 함께 참석하면서 연대를 과시했다. 민주당 온건파 의원들이 지난 8일 ISD 조항에 대한 새로운 절충안을 마련하고 당 전체 의원 87명 가운데 45명의 동의를 받았다. 그럼에도 두 사람 모두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두 사람의 ‘찰떡궁합’은 야권통합 논의에서 빛을 발했다. 손 대표는 지난 3일 연내 ‘민주진보 통합정당’ 건설 플랜을 발표한 데 이어 4일에는 12월18일 이전에 ‘원샷’ 통합 전당대회를 추진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일찍이 통합 전당대회를 주장해 오던 정 최고위원도 이에  적극 동조했다.


당권 도전에 나서려는 김부겸박지원이종걸 의원 등이 민주당 단독 전당대회를 주장하며 지도부를 비판했다. 게다가 지도부가 야권통합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기득권 유지의 방편이라는 불만도 끊임없이 터져 나왔다.

이에 손 대표는 주초 ‘국회의원-지역위원장 연석회의’에서 “통합 전대와 관계없이 당헌 규정대로 다음달 18일 이전에 당 대표를 사임하고 그 이후 어떤 경우라도 당직을 맡지 않을 것”이라며 당내 반발 진화에 나섰다.

이어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통합 전당대회에 사력을 다하고 있다. 오는 20일 야권통합 연석회의 개최를 목표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 이해찬 전 총리, 문(재인) 이사장, 시민사회단체 출신 인사 등이 모인 ‘혁신과 통합’은 이미 연석회의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등에도 손을 뻗은 상태이고, 야권통합 합류 여부를 기다리는 상태다. 때문에 야권통합 연석회의가 가동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손-정 연대’를 두고 현 상태로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상승세를 꺾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두 사람의 의기투합을 불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1026 서울시장 선거 후 야권통합이 피할 수 없는 대세란 점을 두 사람 모두 확인했다. 이에 통합이라는 당면과제를 양자 간의 협력을 통해 향후 재편될 정치지형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한국노총 100만 당원과 진보세력 연합하면 대권 탄력?
대권행은 단 한자리…두 잠룡의 의기투합은 연말까지만?

자신들이 주도해 야권통합에 나서지 않을 경우 잠재적 대권주자인 안 원장과 문 이사장 등 이른바 시민세력에게 ‘제3신당’ 창당의 빌미를 주거나 통합과정에서 주도권을 빼앗길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은 최근 진보정당 및 새로운 세력들을 대통합에 참여할 수 있도록 앞장서는 분위기다. 특히 FTA 투쟁 과정에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등과 공조를 강화한 상태라 진보진영까지 포함하는 대통합이 자신들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정 최고위원은 일찍이 한진중공업 사태 등 노동현안에 발 벗고 나서는 등 민주당의 진보성을 보다 강력히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진보정당과 양대 노총에서 진정성을 인정받아 왔다. 여기에 최근 손 대표도 정 최고위원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손 대표 역시 거리로 향해 FTA 반대투쟁에 나선 것.

손 대표는 아울러 정당 외로 눈길을 돌리며 한국노총에 적극 구애중이다. 특히 통합정당이 들어서면 한국노총 등 노동세력에 20명 이상의 공천을 검토한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는 실정이다. 한국노총의 이용득 위원장 역시 야당 성향에 가깝고 통합정당 참여를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노총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과 정책연합을 했지만, 지난해 1월 한국노총 내부의 반발을 산 노동법 개정안 문제로 정책연대가 파기된 상태다. 이에 책임론으로 전 지도부가 물러나고 올해 1월 이 위원장이 당선됐다.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가 파기되면서 손 대표는 이 위원장 등 한국노총 지도부와 자주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공식적으로 한국노총을 방문한 것만 4~5차례라는 것.

게다가 손 대표와 한국노총의 인연은 각별하다. 손 대표가 경기도지사이던 시절, 한국노총 경기지방본부는 손 당시 지사와 함께 외국인투자 유치를 위해 해외를 뛰어 다녔다. 한국노총은 지난 4·27 분당 보궐선거 때도 손 대표를 공개적으로 지원했다. 한국노총은 특히 조합원이 100만명에 육박하는 거대조직이다. 손 대표에게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단체인 셈이다.

정, 진보세력 껴안기
손, 한국노총 구애

그래서일까. 손 대표는 지난 7일 여의도의 한 호텔에서 이 위원장과 오찬자리를 갖고 야권통합에 한국노총의 참여를 제안했다. 이 위원장은 “요청에 감사하다”며 “한국노총은 조직적 방침이 결정되고 100만 조합원들의 총의가 담긴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조심스러우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안풍’의 직격탄에 이어 당 안팎의 풍랑을 만나 현재 한 배를 탄 손 대표와 정 최고위원. 두 사람의 행보에 당 내부에서는 비판이 거센 상태다. 두 사람의 연대가 통합에만 매몰돼 당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는 것. 게다가 손 대표의 본래 성향과 다르게 FTA 투쟁을 계기로 좌측으로의 이동이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정권교체라는 통합의 총론은 같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두 사람의 최종 종착역이 ‘대권’으로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연대가 연말 통합정당이 들어설 때까지만 이어진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본격 내년 선거정국에 들어서면 숙명의 대결을 피할 길이 없다. 때문에 두 사람의 불안한 오월동주 행보가 과연 어디까지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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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