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사법부 개혁, 어디로?

사공이 많으니 배가 산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법은 정의의 최후 보루로 여겨졌지만 최근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너져 내렸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는 정도를 넘어섰고, 국회의 사법개혁 의지는 요원하다. 사법개혁이 공전을 거듭하면서 되돌릴 수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사법 농단 사태는 지난해 2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 실체가 드러났다. 이탄희 판사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관련 지시를 받고 법원행정처 근무를 거부했다. 이 판사는 그 해 같은 달 법원행정처 기획2심의관으로 발령받았다. 발령 후 이 판사는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으로부터 “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에 비밀번호가 걸린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 좋은 취지로 한 것이니 나쁘게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 판사는 근무 거부 후 겸직해제됐다.

하자고만 하고
요란한 빈수레

이 판사에 대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법관의 동향과 성향을 파악한 문건의 존재가 조사를 통해 밝혀지면서 사법 농단 사태가 모습을 드러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후 사법 농단과 관련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손해배상 민사소송 개입 ▲전교조 법외노조 소송 개입 ▲통합진보당 전원합의체 회부 검토 ▲‘정운호 게이트’ 및 법원 집행관 수사 기밀 유출 ▲판사 블랙리스트 작성 및 관리 ▲각급 법원 공보관실 예산 동원, 행정처 비자금 조성 ▲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진료 특허소송 관여 ▲상고법원 추진 위한 정치권·언론 로비 ▲부산 법조비리 사건 재판 개입 ▲헌법재판소 평의 내용 등 공무상 비밀 유출 ▲일선 법원의 위헌법률제청심판 결정 관여 등 의혹만 10여개에 이른다.

검찰은 사법 농단의 핵심 축으로 대법원과 행정처를 꼽았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당시 행정처가 이행했다는 게 골자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정점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그러나 검찰 수사는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에 번번이 부딪혔다. 법원은 사법 농단 의혹 사건에 연루된 전·현직 판사들을 대상으로 한 영장을 줄줄이 기각했다. 법원의 판단이 ‘줄기각’이란 비판을 받게 된 까닭은 기각률이 일반 사건에 비해 월등히 높기 때문이다.

블랙리스트로 촉발된 불씨, 사법 농단 
청구·기각 반복…법원-검찰 ‘영장 대결’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지난 10일,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이 온전히 발부된 건수는 0건이라고 밝혔다. 대법원이 발간한 <사법연감>을 박 의원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 7월20일부터 10월4일까지 검찰이 사법 농단 수사를 위해 청구한 압수수색 영장의 27.3%가 기각됐다. 일부 기각률은 72.7%를 기록했다.

사법 농단 사건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대부분 기각된 것과 달리 일반사건은 청구된 압수수색 영장 대부분이 발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13∼2017년 5년간 일반사건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발부율은 평균 90.2%를 기록했다. 

영장이 완전히 기각된 비율은 0.8∼1.0% 사이였고, 일부 기각률은 7.4∼10.4%로 나타났다. 일반사건에 대한 영장기각률이 약 1%인 점을 감안했을 때 사법 농단 수사서 유독 영장 발부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법원은 제 식구 감싸기를 넘어 전직 수장을 ‘비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 횟수와 사유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사법 농단의 주요 피의자로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30일 그의 자택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법원은 양 전 대법원장이 퇴임 이후 사용 중인 차량에 한해 영장을 발부했다. 서울중앙지법 명재권 부장판사는 ‘주거 안정의 가치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영장을 기각했다.


갈피 못 잡고
우왕좌왕∼

이후 검찰은 지난 8일, 양 전 대법원장의 자택이 아닌 주거지에 영장을 청구했다. 검찰 수사 결과 양 전 대법원장이 경기도 소재의 한 주거지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이마저도 기각했다. 

심리를 맡은 서울중앙지법 이언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주거, 사생활의 비밀 등에 대한 기본권 보장의 취지에 따라 압수수색은 신중해야 한다’며 기각 사유를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 기각은 벌써 4번째였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진 이후 검찰과 법원은 대결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검찰은 수사망을 좁혀 양 전 대법원장을 겨냥하고 있지만 법원은 줄기각을 통해 수사에 제동을 걸었다. 사법 농단 수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면서 여론의 비판은 거세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서 여야 의원 관계없이 사법부를 향해 거침없이 날을 세운 이유다.
 

지난 10일, 서초구 서초동 대법원 청사서 열린 법사위 국감은 양 전 대법원장 시절 불거진 사법 농단 사태를 지적했다. 법사위 소속 의원들은 사법 농단 의혹(법관 사찰·재판 거래)과 검찰 수사에 대한 법원의 영장 줄기각, 사법부 개혁 등을 따져 물었다. 

대법원장의 용퇴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국감 질의에선 검찰 출신 의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검찰과 법원이 영장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라 묘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검사로 일했던 민주당 백혜련 의원은 “제가 법조 생활이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지만 여태까지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는 듣도 보도 못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달 30일, 양 전 대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된 것을 정조준한 말이었다.

백 의원은 안철성 행정처장에게 “법관으로 생활하면서 주거의 평온과 안정을 이유로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사례를 알고 있느냐”고 질문했고, 안 처장은 “그런 사례를 경험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날 같은 자리에 있었던 행정처 김창보 차장과 이승련 기획조정실장도 마찬가지였다. 백 의원은 “이런 기각에 대해 어떤 국민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쐐기를 박았다.

검사 출신인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주광덕 의원도 송곳 질의를 이어갔다.

주 의원은 “법원이 전·현직 법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에 있어서 일반 국민에 대한 사건과는 천지차이의 태도를 보이지 않느냐”며 “법원이 수사에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결국 치부가 드러날 위기에 처하자 조직 보호, 제 식구 감싸기에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게 국민들의 보편적인 시각”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사법 농단을 밝히자는 거냐, 덮자는 거냐”라고 비판했다. 

민주평화당(이하 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김 대법원장이 진심으로 사법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선택과 집중을 해서 개혁하고 용퇴해야 한다. 사법부를 위해 순장하라”며 발언 수위를 높였다.

사법부 개혁에 대한 요구도 있었다. 

평화당 박 의원은 “국민 73%가 특검 도입을, 77.5%가 특별재판부 설치를 지지한다”며 “국민 열 명 가운데 일곱 명 이상이 현재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당 주 의원 역시 “지금 수사로 법원에 기소하면 국민 여론과 같이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법관들로 특별재판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역시 긍정적이었다. 

민주당 법사위 위원들은 지난달 11일, 국회 정론관서 기자회견을 열어 “공정한 재판을 위해 필요하다면 특별재판부 설치도 추진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검 vs 법
힘겨루기

국회 법사위원들의 특별재판부 주장은 사법부 개혁을 위한 조치 중 하나다. 실현 여부를 떠나 의원들의 사법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사법부 개혁을 위한 정당 간 협의는 매끄럽지 못했다.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이하 사개특위)는 원 구성 합의를 쉽게 이뤄내지 못했다. 올해 연말까지 운영될 사개특위는 지난 7월26일 국회 본회의서 구성 결의안이 통과됐다. 국회법상 본회의서 특위구성결의안이 통과되면 5일 이내에 원 구성을 해야 한다. 

지난 7월 결의안이 통과됐지만 국회는 스스로 규정을 어겼다.

사개특위원 구성이 이번 달 안에 마무리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부족하다. 연말까지 이번 달을 포함해 약 두 달 정도 남았다. 사개특위가 다룰 현안 역시 만만치 않다. 

사개특위는 사법 농단 규명을 비롯한 검경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설치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사개특위가 시간을 허비하면서 국회 스스로 사법 개혁의 의지가 없다는 것을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지난 8일 SNS, 페이스북을 통해 “행정처 폐지 등 사법 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며 입법 조치를 국회에 요청했다. 조 수석은 “(사법개혁은)사법부가 주도하되, 입법사항인 만큼 국회가 매듭지어야 한다”며 “국회 사개특위의 활동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사실상 조속한 사개특위 구성을 당부한 것이다.

사개특위 위원장인 민주당 박영선 의원도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최근 국민에게 좌절감을 안긴 양 전 대법원장 시절 행정처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법리 검토 문건 작성 사실 등을 봤다”며 “법원 개혁도 피할 수 없는 사법개혁의 중요한 과제임을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 국감이 종료된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를 시작한다 해도 연말까지 사법 개혁을 마무리 짓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국회뿐 아니라 대법원서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대법원장의 자문기구를 구성했다. 대법원은 지난 2월 ‘국민과 함께하는 사법발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대법원은 위원회를 발족하면서 ‘재판 중심 사법행정’ 등 개혁과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사법 농단 사태가 불거졌던 당시 대법원이 사건의 중심축으로 작용했던 만큼 상응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위원회의 활동기간은 올해 말까지다. 필요 시 6개월 이내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국회-대법원 개혁 투트랙…가능성은?
상황 진척 없어, 국민적 비판 임계점 

위원회는 ▲적정하고 충실한 심리를 위한 재판 제도 개선 ▲재판 중심의 사법행정 구현을 위한 제도 개선 ▲좋은 재판을 위한 법관인사제도 개편 ▲전관예우 우려 근절 및 법관 윤리와 책임성 강화를 통한 사법신뢰 회복방안 마련 등 4대 개혁과제 관련 안건을 심의한다. 위원회는 심의 결과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건의하게 된다.

위원회는 지난 3월16일 첫 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일까지 총 9차례의 회의를 진행했다. 위원회는 최근까지 행정처의 사무처 변경 권고안과 법관 인사 이원화 완성, 영상재판 등 스마트법원 4.0 사업, 검찰개혁, 판결문 공개 확대 사안 그리고 민·형사 판결서 통합 검색·열람 시스템 도입 등을 도출해냈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 10일 대법원서 열린 법사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향후 개혁 계획에 대해 설명했다. 김 대법원장은 이날 “(위원회서 건의된 사항들을)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이 곧 활동을 개시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대법원서 법사위 국감이 열린 다음날 사회원로와 시민사회, 민중단체, 정당 등 각계 단체 인사 300여명이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모여 사법 적폐 청산을 주장했다.

이날 최병모 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은 “사법 농단 피해를 입은 피해자를 구제하기엔 기존의 재심제도 조건이 너무나 까다롭다”며 “특별법 제정을 검토해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다 결국
흐지부지?

하태훈 참여연대 공동대표는 “전관예우 사태가 계속되면 특별 재판부와 특별영장담당 법관을 지명할 수 있는 특별법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이번 정기 국회서 반드시 해결돼야 하지만 지금까지 보여준 리더십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정치권에 일침을 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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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지르고 보는 정청래 두 번째 카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스스로 리더십 도마 위에 올라섰다. 1인1표제 재추진과 조국혁신당과의 합당이라는 두 개의 승부수를 동시에 던지면서다. 양쪽에서 후폭풍이 몰아치는 형국이다. ‘자기 정치’ VS ‘당원의 뜻’이라는 명분과 명분이 거칠게 붙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의 합당 논의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지난달 22일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혁신당을 향해 “지방선거를 따로 치를 이유가 없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민주당의 반발과 ‘흡수 합당은 싫다’는 혁신당의 주장이 부딪히면서 합당 테이블조차 마련되지 못하고 있다. 중구난방 가쁜 숨만 합당 논의 초반부터 혁신당 측의 반발이 이어졌다. 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본격적인 통합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오해가 형성되는 것에 강력한 유감을 표한다. 통합은 뻔한 몸집 불리기가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가치 연합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이 합당과 관련해 “민주당이라는 큰 생명체 내에서 혁신당의 DNA도 잘 섞이게 될 것”이라고 밝히자 이를 ‘흡수 합당’이라고 받아들인 것에 대한 유감 표명으로 풀이된다. 혁신당이 합당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다. 서 원내대표는 MBC 라디오를 통해 “이미 민주당은 162명 거대 정당이고 (여기에) 혁신당 12명이 합쳐지는 것은 단순한 몸집 불리기”라며 “그 이상 의미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어 “합당 논의 자체를 본격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제안 방식이나 준비된 내용 자체가 없고, 오히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지방선거에 상당히 악영향이 있으니 당장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합당 논의라는 것 자체가 불가피한데 우리 원칙과 기준에 맞게, 질서 있게 논의는 진행할 필요는 있다는 긍정적 입장도 상당히 있었다”고 설명했다. 민주당에서도 합당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다. 지도부에서 친명(친 이재명)계로 불리는 이언주·황명선·강득구 최고위원은 합당 발표 다음 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통합을 위해서라도 정청래식 독단은 이제 끝나야 한다”며 정 대표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들은 “이번 합당 제안에 앞서 정 대표와 이재명 대통령 간 교감이 있었던 것처럼 언론 보도가 됐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어 “당무는 당의 책임이고, 당이 결정해야 한다. 마치 대통령이 관여하는 것처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방식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합당 논의에 이 대통령을 끌어들인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기자회견 말미에 ▲정 대표의 공식 사과 ▲독선적 당 운영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 마련 ▲합당 제안을 언제, 누구와, 어디까지, 어떻게 논의하였는지 등을 밝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합당·1인1표제, 쏟아지는 안건 “뭐부터 해결해야…” 여당도 혼란 이런 상황서 정 대표의 대표 공약인 ‘1인1표제’가 최종 관문인 당 중앙위원회(이하 중앙위) 표결에 다시 부쳐지면서 논란이 재점화할 전망이다. 당 대표 및 최고위원 선출 시 대의원과 권리당원의 표 행사 가치 비율을 현행 20대 1 이하에서 1대 1로 변경하는 것을 골자로 지난해 중앙위원회에서 재적위원 과반수를 채우지 못해 부결됐다. 정 대표가 압도적 당심으로 당선된 만큼 정치권 일각에서는 1인1표제 통과로 인한 권력 재편을 견제해왔으나 두 달 만에 또다시 날 선 공방이 예고된 것이다. 지난달 19일 당무위원회는 해당 안건 상정을 중앙위서 결정한 뒤 같은 달 22~24일 권리당원 투표 절차를 마무리했다. 1인1표제 안건에 대한 투표 결과 ▲찬성 85.3%(31만5827명) ▲반대 14.7%(5만4295명)로 집계됐다. 당은 이달 2일 중앙위원회를 개최해 당헌·당규 개정에 대한 안건을 투표로 부칠 예정이며 중앙위원 온라인 투표는 3일까지 진행된다. 권리당원 투표 결과가 발표되자 정 대표는 “당원들의 압도적 다수의 뜻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1인1표제 굳히기에 나섰다. 정 대표는 “당원들의 뜻을 받들어 민주당을 더 좋은 민주주의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당의 모든 의사와 진로는 당원들이 가라는 대로 가고 당원들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조승래 사무총장도 페이스북에 “참여율은 지난번 16.81%에 비해 15% 가까이 높아졌고, 찬성률은 비슷하다. 압도적인 찬성 여론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며 힘을 실었다. 1인1표제를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질 때마다 정 대표는 이 대통령을 방패처럼 소환했다. 정 대표는 “1인1표제는 당원이 주인 되는 정당, 당원주권정당, 당원주권시대 등 여러 가지 표현으로 이재명 당 대표 시절부터 3년여간 꾸준히 요구되고 논의했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이리 튀고 저리 튀고 이어 “당원과 대의원 1대 20 미만을 결정할 때도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며 “1인1표제는 논의할 만큼 논의했고 영남권 등 전략 지역 원외위원장들께서도 그 당시 어느 정도 이해하고 양해했던 사안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다. 1인1표제는 이 대통령이 추진했던 사안인 만큼 민주당이 이를 반대할 명분이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과 당원들은 정 대표가 충분한 논의 없이 중요한 사안을 본인 페이스대로 밀어붙인다는 것에 불만을 제기했다. 지난해 27표 차이로 1인1표제가 처음 부결됐을 당시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과반에 가까운 상당수 최고위원이 우려를 표하고 숙의를 원했음에도 강행, 졸속 혹은 즉흥적으로 추진된 부분에 대해 유감”이라며 정 대표를 공개 지적하기도 했다. ‘자기 세력 강화’를 위해 합당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의심이 가라앉기도 전 1인1표제로 또다시 당을 흔들면서 반청(반 정청래) 정서가 퍼졌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여당이 흔들리자 정 대표의 진퇴를 물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합당 발표 이튿날 서울 여의도 민주당 당사 앞에선 당원들이 주도하는 합당 반대 집회가 열렸다. 이들은 ‘정청래 사퇴’ 등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합당 반대”를 외쳤다. 민주당 일각에도 정 대표의 ‘졸속 추진’ 행보가 이어진다면 사퇴 요구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이들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대표의 모든 행동이 ‘자기 정치’ 프레임으로 귀결되면서 승부수가 자충수가 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에 정 대표는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 전문을 자신의 SNS에 공유했다. 자신의 선택을 두고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우회적으로 심경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이를 겨냥한 듯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자신의 SNS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당원의 뜻은 독단으로 결코 꺾을 수 없나니, 흔들리는 것은 뿌리 없는 꽃뿐”이라며 저격 글을 게시했다. O? X? △도 필요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혁신당과의 합당과 1인1표제 추진에 큰 이견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문제는 사전 논의 없이 진행된 점 등 정 대표의 독단적인 행동이 우려스럽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지호 대변인 역시 “당내 문제 제기는 합당 자체보다는 의견수렴 절차가 급작스럽게 진행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정 대표가 당권을 쥐었을 당시 잡음은 예상됐으나, 일단 지르고 수습하는 예측 불허한 행동이 반복되면서 신뢰를 잃은 게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정 대표 취임 이후 ‘명청 갈등’ ‘당정 불협화음’ 등으로 민주당은 계속해서 흔들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발 역시 당에서도 정청래 체제에 대한 위험성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근거로 해석된다. 당 대표 임기 종료까지 반년이 남았지만 정 대표의 연임 의혹은 여전한 만큼 갈등 역시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당원주권시대를 거듭 강조했지만 막상 중요한 사안은 독단으로 결정하면서 당 안팎으로 불만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진다. “1인1표제로 당원 중심 원칙을 강화하자”면서 합당 등 중요한 사안을 대표 혼자 결정하는 건 모순이라는 설명이다. 혁신당과의 합당 제안에 당내 반발이 이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당원들이 이 문제를 최종 결정할 것”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박 수석대변인은 “(합당이라는) 당 대표의 제안은 정무적 판단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단의 영역”이라며 “그렇기에 앞으로 이런 문제에 대해 전 당원 토론, 투표 등 정해진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활발하게 당원의 의견을 묻는 그런 토론의 장을 마련하겠다”며 “당원주권시대에 걸맞게 당원의 뜻을 최종적으로 묻고,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거듭 강조했다. 아울러 “당원이 합당하라면 하는 것이고 하지 말라고 하면 못 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나 정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당원에게 ‘예’ ‘아니오’로만 의견을 묻는 행위가 당원주권정당의 취지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말로만 당원 주권 시대? “이제는 숙의 민주주의로” 이에 한 정치권 관계자는 “1인1표제의 경우 정 대표는 당원들의 찬성률이 압도적이었다고 말하지만 투표율은 저조했다. 이것이 무엇을 시사하는지 들여다 보지 못하고 숫자에만 매몰됐다”며 “이것을 당원주권정당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현재 소수의 당원이 당의 여론을 이끌고 있다. 일반 국민의 시선에서 ‘나머지 당원들은 무책임하게 방관하느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과정을 보면 당 대표가 논의를 띄우고 ‘자, 여기에 O, X로만 투표해!’ 하는 식이니 당과 당원 간의 간극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1인1표제와 혁신당과의 합당 모두 찬성 여론이 높다. 그럼에도 정 대표를 향한 반발은 거칠다. 결국 민주당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니라 배의 키를 쥔 선장을 향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합당 방식에 반발한 민주당 최고위원들 역시 “정 대표의 선택적 당원주권”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대통합을 가로막는 정 대표의 독선과 비민주성을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다”며 “선출된 최고위원들이 의견조차 낼 수 없는 구조, 대표 결정에 동의만 강요하는 구조는 민주적 당 운영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가고자 하는 방향은 같지만 목적지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서 파열음이 나는 만큼 결국 정 대표의 리더십이 관건이다. 3대 개혁의 빠른 추진, 혁신당과의 합당을 통한 지방선거 승리, 이정부의 성공 등 각종 요구가 쏟아지면서 이를 한데 어우르는 ‘통합형 당 대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 대표의 자기 정치 프레임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 그동안 자기 정치 의혹이 숱하게 제기된 만큼 조 사무총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당내 가장 큰 경쟁자인 한동훈 전 대표를 내치려고 하는 것은 당권을 계속 강화하거나 유지하기 위한 그야말로 자기 정치 아닌가”라며 “반면 정 대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조국 대표와 함께하자고 하는 것인데 이걸 자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엄호에 나섰다. 민주당의 민주주의 체제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모자이크 민주주의 평화 그룹 백왕순 대표는 <일요시사>를 통해 “숙의 민주주의의 부재”를 꼬집었다. 민주주의 제자리걸음 백 대표는 “1인 1표제가 맞냐 틀리냐 갑론을박이 이어지는데 당원주권시대에는 이 방법이 옳다. 다만 이득을 놓고 계파 간의 힘겨루기만 이어지니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이라며 “혁신당과의 합당도 마찬가지다. 통합하면 이기고 분열하면 진다. 그런데 이를 차기 당권 문제와 연결해 해석하니 복잡해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대한민국은 숙의 민주주의가 아닌 절차 민주주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찬반이 극명한 사안에 대해 쉽게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당원이 직접 토론하고 의견을 내는 오프라인 공간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안한 민주당 혁신당도 ‘흔들’ 합당이라는 중대한 사안을 놓고 조국혁신당이 자당 의원들 입단속에 나섰다. 혁신당 황운하 의원이 “민주당과 합당할 경우 혁신당 조국 대표가 통합한 당의 공동대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경고한 것과 더불어 입조심을 당부한 것이다. 혁신당은 조국 대표가 즉각 황 의원의 이날 발언에 경고했다고 밝혔다. 혁신당 대변인실은 입장문을 통해 “혁신당 최고위는 이 문제(황 의원 발언)에 대해 논의하고, 이 같은 논의를 전혀 한 바가 없으며 매우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지적했다”며 “조 대표 역시 강한 경고를 했음을 알린다”고 밝혔다. 이어 “혁신당은 공식적 기구를 통해 합당과 관련된 논의를 해왔으며 위와 같은 논의는 전혀 언급된 바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다. 조 대표를 비롯한 혁신당 구성원 누구도, 민주당과 합당과 관련된 실무 논의를 진행한 바가 없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