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66)창업 투자금 날린 사연

수익금 준다더니…사라진 종잣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이어갑니다.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예순여섯 번째 주인공은 창업에 도전했다가 투자금만 날린 A씨 이야기입니다.
 

경기도 일산 등지서 학원사업을 하던 A씨는 노후 대비책으로 창업을 떠올렸다. 한때 학원가의 ‘미다스의 손’으로 불렸던 그는 2010년 학원 경기가 점차 불황에 접어들자 다른 사업을 통해 수익의 다각화를 꿈꿨다. 오랜 시간 학원사업에만 매진해왔던 A씨에게 다른 사업은 생소했을 터. 그래서 그는 ‘위탁 운영’ 방식으로 사업을 전개하려 했다.

1억 넘게 투자

A씨가 F사 B소장을 만난 것도 그때였다. F사는 경영컨설팅을 하는 회사로, B소장은 블로그를 통해 창업 노하우, 교육 등의 정보를 전달했다. 여러 사람의 소개를 거쳐 B소장을 만난 A씨는 서울 양재 하이브랜드 건물에 사무실 두 곳을 얻어 커리 전문점과 감자탕 가게를 내기로 했다. 계약기간은 2년이었다.

A씨가 B소장의 회사인 F사와 계약을 맺는 과정서 들인 돈은 투자금 6000만원, 임대보증금 4000만원 등 1억원을 웃돌았다. A씨는 F사에 두 가게의 영업 활동을 맡기는 대신, 매달 일정 금액의 투자수익금을 받는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일정기간 수익이 발생하지 않거나 A씨가 투자수익금을 지급받지 못할 경우 약정 해약과 제3자에게 가게 매매가 가능하다는 조항도 포함됐다.

A씨는 약정 조항에 따라 가게에서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원금은 손해 보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A씨의 생각은 계약이 이뤄진 지 두 달 만에 산산조각 났다.

노후 대비책으로 창업 도전
가게 두 곳 위탁운영 맡겨

당초 A씨가 받기로 한 투자수익금은 각 매장서 180만원씩 총 360만원. 하지만 가게 오픈 첫 달에만 투자수익금이 지급됐을 뿐 그 이후 점차 줄어들더니 이내 감감무소식이 됐다.

설상가상으로 가게가 들어선 건물 관리인과 임대인으로부터 관리비와 임차료를 내라는 독촉이 이어졌다. A씨에 따르면 건물 관리인과 임대인이 문제 삼을 때까지 8개월여가량 가게 관리비와 임차료가 지급되지 않았다.

이들은 A씨와 F사를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했다. 결국 A씨는 F사가 책임지고 마무리한다는 확인서를 받고, 미납된 관리비 2500여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집에 압류가 들어올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며 “내가 관리비를 전부 지급하고 나서야 소를 취하해줬다”고 털어놨다. 그 사이 A씨는 B소장에게 약정 조항대로 원금 지급을 요구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A씨는 2012년 9월 B소장과 F사를 상대로 투자금 반환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가게 두 곳을 오픈하는 과정서 들인 투자금 등의 돈과 F사 대신 납부한 관리비를 돌려달라는 내용이었다.

B소장은 당시 A씨의 청구를 기각해 달라며 제출한 답변서에서 “A씨가 1억원 이상을 회사에 입금해줬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임대보증금을 제외한 6000여만원 상당만 입금됐다”고 설명했다.

맡긴 돈 못 받고
관리비 대신 내고

이어 “투자계약의 조건상 위탁 운영하는 매장을 제3자에게 매매할 경우 A씨에게 투자원금을 지급하고 계약을 종료할 수 있다고 상호계약했다”며 “계약이 만료된 현 시점서 제3자 매매가 이뤄지지도 않았는데 원금을 원고에게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회사는 푸드 코트를 운영하며 많은 손실을 입었다”며 “공동명의로 투자해 운영돼온 매장의 손실을 온전히 저에게 돌리며 투자금 전액을 돌려달라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계약기간이 끝난 상황서 소장을 통해 투자계약에 대한 해지의사를 표시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A씨와 B소장의 엇갈린 주장을 두고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B소장과 F사가 관리비를, F사가 투자금을 A씨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변수가 발생했다. F사가 법원 판결 이전에 이미 폐업처리가 됐다는 점이다.

A씨에 따르면 F사는 2011년 9월 이미 폐업처리가 완료됐다. 그는 “법원 판결 이후 B소장이 개인회생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다. A씨는 B소장의 개인회생 진행 과정서 이의를 신청했고, 결국 B소장의 개인회생은 기각됐다.

소송과 개인회생 등의 과정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A씨는 B소장에게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A씨는 그 과정이 ‘구걸’에 가까웠다고 자조했다.

채무 조정했지만…

그러던 중 두 사람은 지난해 6월 채무를 재조정하고 공증을 받았다. B소장의 채무금을 8000만원으로 조정하고 그가 40개월에 걸쳐 200만원씩 A씨에게 갚는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A씨에 따르면 B소장은 첫 달부터 돈을 지급하지 않았다.

A씨는 “B소장은 나와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안에도 방송 출연, 언론 보도, 블로그 등을 통해 사업을 홍보해왔다”며 “개인적인 채무를 떠나 언제든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에 입을 열게 됐다”고 설명했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B소장 입장은?

B소장은 A씨의 주장에 대해 “채무에 대해서 서로 주장하는 바가 다르고 또 인정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갚을 수 있는 상환에 대한 부분과 조율을 자율적으로 서로 동의하는 것으로 했다”며 “개인적인 음해나 이런 것들은 하지 않는 조건을 붙였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각서를 썼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각서에는)기사 제보를 통해서 어떤 역할을 하겠다고 하면 채무가 소멸되도록 돼있다”며 “그 자료를 (기자가)못 봤을 수도 있지만 A씨가 하도 개인적인 음해를 해서 마지막에 서로 그런 약속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사를 통하든 뭘 하든 개인적인 음해가 나오면 강력하게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면서도 “개인적인 채무 내용은 기사거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소장은 “정상적인 다른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기사)을 통해서 개인적인 명예훼손을 한다거나 하면 변호사를 통해서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거듭 입장을 밝혔다.

B소장은 “1년 넘게 서로 연락이 없었다. 이런 식의 기사 제보는 예전에 A씨가 하려던 방법”이라며 “거기에 대해서는 받아놓은 각서나 사인이 있기 때문에 변호사를 통해 대처하겠다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채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할 부분은 맞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활동이 중단되면 경제활동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활동을 못하게 하겠다’ ‘매체에 보도를 하겠다’ ‘음해를 하겠다’ 등의 얘기들은 사전에 합의해서 하지 않기로 했던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내가 인정하지 못할 부분까지 채무를 더 인정해줬다”며 “그런데 일정 정도의 숙려기간 없이, 계속 통화하면서 어떻게 하겠다는 얘기가 나온 것도 아니고, 상환 방법을 찾은 것도 아니고. 1년 지나서 기자를 통해서 이렇게 말이 나오는 것에 대해 나도 당연히 할 말은 할 수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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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