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이냐 달걀이냐’ 심·청사건 재구성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18.10.08 10:03:57
  • 호수 11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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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블랙홀’ 국회는 시계제로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시작부터 진흙탕이다. 자유한국당(이하 한국당) 심재철 의원의 미인가 행정정보 무단유출 사건으로 여야가 무한 대치 중이다. 심 의원을 필두로 한국당은 연일 문재인정부 청와대에 대한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청와대는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한국당 측의 공세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있다. 정국은 삽시간에 경색됐다. <일요시사>는 ‘심(재철)·청(와대) 사건’을 재구성, 검찰 수사의 핵심 쟁점을 솎아냈다.
 

사건이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은 지난달 21일, 미인가 행정정보 무단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이진수)가 심 의원실을 압수수색하면서다. 검찰은 이날 심 의원 보좌진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앞서 기획재정부(이하 기재부)는 지난달 17일 한국재정정보원이 운영 중인 재정분석시스템(OLAP·올랩)을 통해 미인가 행정정보가 무권한자에 의해 유출된 사실을 확인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검 압수수색
뒤집힌 한국당

심 의원실 측은 지난 9월3일부터 12일까지 재정정보시스템에 접속해 자료 47만건을 내려 받았다. 심 의원실 보좌진 중 한 명이 지난달 3일, 과거 2012년 발급받은 아이디(ID)로 접속했으며, 9월4일과 5일에는 심 의원실의 다른 보좌진들이 재정정보시스템 아이디를 각각 새로 발급받았다.

심 의원실은 같은 달 6일에 “재정정보시스템 교육을 해달라”며 시스템을 관리하는 한국재정정보원 관계자를 호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재정정보원은 기재부 산하 기관이다. 이후 심 의원실 측은 같은 달 12일까지 190여차례에 걸쳐 47만여건의 미인가 정부예산 자료를 내려 받았다. 이날은 심 의원실 보좌진의 접속기록을 확인한 한국재정정보원이 심 의원실 측에 확인전화를 걸었던 시점이다.


확인된 바로는 크게 5단계를 거쳐야만 미인가 예산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재정정보시스템 ‘예산배정결과’ 메뉴 이동→검색결과가 나오지 않는 ‘잘못된’ 키워드와 검색 시기 입력→백스페이스 키 클릭→‘뉴루트’라는 관리자 화면이 뜬 뒤 특정 메뉴를 5차례 클릭 순이다.

심 의원 측은 “재정정보시스템에 백스페이스 키를 누르다가 우연히 접속하게 됐다”고 해명하고 있다. 반면 기재부 측은 재정정보시스템 운용되면서 지난 12년 간 이런 방식으로 뚫린 사례가 없다는 점을 들어 다분히 고의적이라고 반박한다.

기재부가 고의성을 지적하자 심 의원 측은 ‘시스템 오류’로 맞대응했다. 같은 달 18일, 심 의원은 자신의 SNS에 “프로그램에 오류가 있는 것 같다”는 한국재정정보원 측의 말을 전했으며 “9월14일에도 본 의원실에 찾아와 현장을 살펴보고는 역시 시스템 오류를 확인하고 돌아간 바 있다”고 부연했다.

핵심 쟁점 둘
고의성 관건

곧 이 문제는 법정공방으로 이어졌다. 심 의원은 기재부의 고발이 허위사실로 이뤄졌다며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등을 무고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법리상 규명이 필요한 핵심 쟁점은 크게 두 가지다. ▲올랩을 보안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 ▲‘감사관실용’이라는 문패를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다. 

올랩을 보안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는 심 의원실 행위의 위법성을 따지기 위해, 감사관실용이라는 문패를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는 심 의원실의 고의성을 따지기 위해 밝혀져야 할 쟁점이다.
 


심 의원은 올랩을 국가정보원 등이 관리하는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보안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심 의원은 지난 2일 김 부총리에 대한 대정부질문서 “애시당초 올랩은 디브레인과 분리돼있고 주요통신기반시설로 지정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보안대상이 아니다. 그리고 (국가)정보원서 지난 6월서 8월까지 보안점검을 했지만, 올랩은 보안 대상이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반면 기재부는 올랩이 정부의 기간 정보시스템인 점을 들어 보안대상이라고 반박한다. 

최상대 기재부 재정혁신국장은 “디브레인은 2007년에 구축돼 올해 1월에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로 지정됐는데 심 의원 쪽 주장대로라면 10년간 보안대상이 아니었다는 말이 된다”며 “정부의 예산 편성·집행 시스템이 어떻게 보안대상이 아닐 수 있겠나. 디브레인이든, 올랩이든 기간 정보통신망은 전부 보안대상이고, 그중 일부를 주요 정보통신 기반시설로 지정해 보안을 강화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감사관실용’이라는 문패를 경고로 해석할 수 있는지 여부도 뜨거운 관심을 받는 사안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심 의원의 고의성 여부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미인가 예산정보 유출, 국회 발칵
“우연히 접속” VS “다분히 고의적”

심 의원 측은 미인가 정보를 내려받는 과정서 ‘뉴루트’ 화면에 이어 나타난 여러 폴더 가운데 ‘재정집행실적(감사관실용)’이라고 적힌 폴더를 클릭했다. 기재부 측은 감사관실용이 사실상의 경고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 부총리는 대정부질문서 심 의원이 ‘(기재부의)재정 관리가 굉장히 허술하다’고 지적하자 “감사관실용이라는 경고가 떠 있다. 기재부도 감사관실 외에는 볼 수 없는 자료들”이라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반면 심 의원은 “들어가면 안 된다. 여기는 미인가다라는 표시가 아무 데도 없었다”며 오히려 기재부의 관리가 허술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감사관실용이라는 문구가 있다는 점은 양측 모두 인정하지만, 그것이 경고성 문구인지 아닌지를 두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는 심 의원실 측이 자료에 접근하는 과정서 불법성을 인지했느냐는 문제와 열결되기 때문에 양측의 줄다리기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검찰은 자료를 취합·공개하는 과정 외에도 심 의원실이 내려 받은 자료 자체의 ‘중대성’에 대한 법리검토도 하고 있다. 자료 중에는 청와대 건물의 정보통신 설비 관련 설치·유지·보수업체 자료, 청와대 식자재 납품업체 명단 등 ‘안보’ 차원의 자료도 포함돼있어 실제로도 법리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다.

검찰은 심 의원실 압수물 분석 작업을 마친 뒤 기재부로부터 고발된 심 의원실 보좌진 3명을 불러 자료 확보 경위 등을 조사할 방침이다. 법조계 및 정치권 일각에선 ‘해킹’에 준하는 처벌이 내려질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반면 국정감사를 앞두고 국민의 알권리 차원서 자료를 취합해 공개했다면 죄를 묻기 어려울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정치권 공방
치명상 불가피

검찰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심 의원과 한국당, 김 부총리와 청와대 모두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심 의원은 입수한 미인가 예산정보 자료를 활용해 연일 문재인정부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폭로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폭로 내용이 청와대의 반박에 별다른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는 결정적 한 방이 없다. 심 의원은 지난 2일 대정부질문 시작에 앞서 보도자료를 통해 청와대 직원들이 세월호 미수습자 5명의 마지막 참배일 당일(지난해 11월20일) 심야시간대에 고급 LP바서 업무추진비 카드를 사용했으며, 영흥도 낚시어선 전복 사고일인 지난해 12월3일 저녁 시간대에 맥줏집을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심 의원의 주장을 사안별로 반박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실은 세월호 미수습자에 대한 마지막 참배일 심야에 고급 LP바를 이용했다는 주장에 대해 “사유는 정부 예산안 민생관련 시급성 등 쟁점 설명 후 관계자 2명과 식사를 한 것”이라고 밝혔다. 


총무비서관실은 밤 11시가 넘어 사용했기 때문에 사유서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또 영흥도 낚시어선 전복사고일인 지난해 12월3일 저녁 시간대에 맥줏집을 이용했다는 심 의원의 주장에 대해 “12월 중순 중국 순방을 위한 관련 일정 협의가 늦어져 저녁을 못 한 외부 관계자 등 6명과 치킨과 음료 등으로 식사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밀양세종병원 화재참사일인 지난 1월26일 술집서 업무추진비 카드가 사용됐다는 주장에는 “총무비서관실 자체 점검 시스템에 의해 오후 11시 이후 사용 사유 불충분으로 반납 통보 후 즉각 회수조치가 완료된 사안”이라고 해명했다.

검, 심 의원실 고의성 규명 집중
대정부질문서 격돌 “사퇴하라!”

이밖에 지난해 을지훈련 기간(2017년 8월21∼25일)에 4차례 술집을 출입하고 포항 지진 당시 호화 레스토랑, 일식집 등을 이용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사실과 전혀 다른 추측성 호도며 모든 건을 정상적으로 타당하게 집행했다”고 선을 그었다.

청와대 내부에선 심 의원의 폭로에 ‘불법적 사용’ ‘고급’ ‘호화’ 등의 수식어가 붙는 점을 미뤄볼 때 국면을 확전시킬 만한 결정적 한방이 없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변수 없이 사태가 이대로 이어질 경우 심 의원의 정치적 타격은 불가피해 보인다. 한국당·바른미래당을 제외한 복수의 정당이 심 의원에 대한 공세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강병원 의원은 “국민의 알 권리, 업무추진비를 가지고 얘기하지만, 그 이전에 사건의 발단은 (국회)기재위원인 심 의원이 국가정보망에 불법적으로 침입한 것”이라며 “기재부와 심 의원은 맞고발을 한 상태라 (심 의원의) 제척 사유가 분명하다. 서로 맞고발 상태서 감사위원과 피감기관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옳지 않다. 수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재위원을 사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4일 tbs라디오에 출연해 “심 의원의 폭로는 실패로 정의할 수 있다”며 “오랜 경험으로 봤을 때 심 의원이 내부자의 제보나 공범을 통해 미인가 자료를 확보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수세 몰려
반격카드는?

심 의원과 김 부총리의 대정부질문을 관전한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지난 3일 tbs라디오와 인터뷰서 “여론상으로는 심 의원이 판정패를 받은 것으로 본다”며 “심 의원의 의혹에 대해 김 부총리가 감사원에 의뢰해 밝히겠다고 했기 때문에 게임이 끝났다고 봐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문재인정부 청와대와 집권여당 입장서도 사태를 낙관할 수만은 없다. 

지난 4일에 열린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서 민주당 측이 심 의원의 기재위원 사퇴를 거론하자 한국당 엄용수 의원은 “의원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문제제기를 했다고 사임하라면, 기재부장관부터 사임해야 한다”며 “근본적으로 기재부 장관이 보안을 허술히 한 데 대한 대국민사과부터 해야 하는데, 고발부터 하는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이종구 의원도 “2일 김 부총리가 발언하는 걸 보고 경악했다”며 “심 의원에게 국회 보직 운운하면서 ‘당시에 (비슷하게)쓴 게 있었다’고, 국무위원이 이런 식으로 말한 걸 처음 들었다. 정치인 뺨치는 물 타기 아닌가. 그때 김 부총리가 자격이 없구나, 물불을 가리지 않는구나 생각했다”고 비난했다.

캐스팅보트를 쥔 바른미래당이 한국당의 손을 들어줬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정부여당에 악재가 될 수 있다. 바른미래당은 지난 1일 해당 사건의 책임이 정부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문제의 본질은 청와대 업무추진비 이용과 기재부 정보관리 실패라는 입장이다.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서 “심 의원의 미인가 행정정보 유출 사건의 본질은 정보유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와대 업무추진비 유용문제”라며 “자료 유출 경위는 정보관리 실패인 정부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같은 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민주당은 (심 의원의 행위가)국가기밀 탈취, 국기문란이라고 주장하는데 이자카야와 와인바에 가고, 사우나를 한 것이 국가기밀 탈취나 국기문란인가”라며 “적어도 심 의원이 공개한 내용 중에서는 국가기밀이라고 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고 강조했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메랑된 김성태 ‘4억’ 발언

과거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가 같은 당 심재철 의원에게 한 발언이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최근 정부여당은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을 문제 삼고 있는 심 의원이 과거 국회부의장 신분으로 사용한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심 의원의 특활비 문제는 김 원내대표에 의해 세상에 알려졌다. 

지난 7월12일 한국당 비공개 의원총회서 김 원내대표는 자신에게 지방선거 책임론을 제기한 심 의원에게 “당의 혜택을 받아 국회부의장을 하면서 특활비를 받았는데 밥 한 번 산 적 있느냐”고 따져 물은 게 화근이 됐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청와대 업무추진비를 문제 삼는 심 의원에게 “김 원내대표가 당시 심 의원이 거액의 특활비를 받고 밥 한 번을 안 샀다고 했는데, 그 4억원의 특활비를 어디다가 썼는지 궁금하다”고 따져 물었다. 

홍 원내대표는 심 의원이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민주평화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일 YTN라디오와 인터뷰서 “심 의원이 국회부의장이던 시절 특활비를 많이 썼다”며 “오히려 사용된 국회부의장실 특활비가 (청와대 업무추진비보다)더 부적절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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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