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친문 불화설 내막

‘독주 막아라’ 견제구 툭툭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체제 출범 이후 민주당은 이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다. 강한 리더십을 내세운 ‘이해찬 효과’다. 이 대표는 수직적 당청관계를 수평적 관계로 전환해 당의 존재감을 키웠다. 민주당이 현안에 대해 제 목소리를 내는 까닭이다. 그러나 당내 일각에선 이 대표의 독주를 우려하며 견제에 나서는 모양새다. 이 대표를 향한 견제구가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지난 8·25전당대회에 출마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대표의 출마 자체만으로 당권 경쟁구도가 출렁였다. 이 대표는 당권을 잡은 이후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과시했다. 

그는 ‘강한 여당’의 기치를 내걸었다. 이 대표가 본격적으로 행보에 나서면서 민주당은 청와대와의 관계를 유지하되, 할 말은 하는 여당이 됐다. 이 대표의 전임자였던 추미애 대표는 민주당을 이끌 당시 ‘청와대에 끌려 다닌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대표의 민주당은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해찬호 출범
강한 여당으로

이 대표는 취임 후 열린 첫 워크숍서 이전과 다른 여당의 모습을 예고했다. 이 대표는 지난 8월31일 충남 예산군 덕산 리솜 리조트서 민주당 의원 워크숍을 가졌다. 당시 그는 “어제 고위당정회의를 했다. 추석 민생에 대비해 여러 가지 정책에 관한 정부의 보고를 듣고 우리의 의견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특히 부동산 동향이 심상치 않아서 각별히 부동산으로 인한 국민들의 걱정을 완화시키는 조치를 취해줄 것을 정부 측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워크숍을 통해 청와대를 향한 지적을 아끼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이전의 민주당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대목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소신 있는 집권 여당’으로 나아가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됐다.

민주당 내에서도 새로운 분위기를 맞고 있다. 이 대표 체제 이후 청와대에 가로막혀 계류하고 있는 사안들이 하나 둘 해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그거, 내가 (청와대에) 전화해 끝냈어’라는 이해찬의 말을 듣고 환호한 당직자가 많다”고 전했다.

‘강한 여당’을 내세우는 이 대표 체제가 연착륙하는 모양새다. 이 대표는 당의 존재감을 끌어올리면서 여당의 위상을 높였다. 동시에 이 대표는 자신의 존재감도 끌어올리게 됐다. 그간 불거졌던 불통, 건강 이상설, 올드보이 비판 등을 스스로 불식시키고 있는 셈이다.

이 대표 취임 이후 당정청 관계는 크게 흐트러지거나 어긋나지 않았다. 또한 이 대표는 전국을 돌며 지역별로 예산정책협의회를 여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힘 있는 여당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의 경륜과 중량감이 한몫했다는 평가다.

반면 이 대표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당내 친문(친 문재인) 그룹은 존재감이 약해지고 있다. 그 연유로 친문 세력들의 이 대표 견제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최근 민주당 홍영표 원내대표는 당 대표의 ‘고유권한’인 최고위원 지명에 반기를 들었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 내 대표적 친문인사다. 동시에 그는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해체됐던 ‘부엉이 모임’의 일원이다. 홍 원내대표는 추 대표 임기 말에 원내대표로 선출됐다. 그 까닭에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친문의 강력한 지지 속에서 당선된 것도 한몫했다.

그는 7·8월 임시국회 때 민주당 선두에 나서며 법안 처리를 놓고 여야 간 합의를 종용하는 등 당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의 존재감은 이 대표의 취임 이후 변화를 겪었다.


이 대표가 당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자 홍 원내대표의 무게감은 다소 미약해진 것이다. 당 ‘투톱’으로 평가받는 대표와 원내대표지만 사실상 이 대표 ‘원톱’으로 당이 움직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 강한 여당 강조…당청관계 수정
당 전면에 등판, 원내대표와는 삐걱

홍 원내대표는 이 대표가 취임한 이후 공식 일정을 제외한 외부 일정을 거의 하지 않았다. 예산정책협의회의 전면에 나선 것도 이 대표다. 통상 예산정책협의회는 원내대표가 주도한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인천시서만 예산정책협의회를 주재했다. 홍 원내대표의 지역구는 인천 부평을이다. 반면 이 대표는 전국을 순회하며 예산정책협의회를 이어갔다. 이 대표는 전남, 세종, 충남, 경기, 경남, 부산 등을 돌며 전국 시·도청을 방문했다.

이 대표의 광폭 행보에 우려가 제기됐다. 원내대표의 협상력 때문이다. 정기국회 회기로 접어들면서 여야 간 접촉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통상 정당 간 협의는 원내대표가 나서게 된다. 

그러나 이 대표 체제가 공고하게 구축된 상황서 홍 원내대표의 협상력은 다소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홍 원내대표가 이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홍 원내대표가 지난 정기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이 대표에게 삼고초려까지 하며 부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홍 원내대표가 이 대표와 한 차례 부딪히면서 이들의 경쟁 구도가 조명됐다.

홍 원내대표는 지난 9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서 이 대표가 이수진 전 민주당 전국노동위원장과 홍미영 전 부평구청장을 최고위원에 지명하자 반대 의사를 드러냈다. 

당 대표의 최고위원 지명은 ‘고유권한’이다. 홍 원내대표는 이에 반기를 든 것이다. 민주당은 얼마 뒤 최고위를 열어 지명직 최고위원에 홍 전 구청장 대신 이형석 광주 북구을 지역위원장을 최고위원으로 의결했다. 이 전 위원장은 변동이 없었다.

홍 원내대표가 홍 전 구청장에 대해 반대 의사를 표한 것을 두고 두 사람 간의 갈등 관계가 주목을 받았다. 지난 6·13지방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예비경선서 홍 전 구청장은 인천시장 예비후보로 등록했다. 경쟁자는 박남춘 예비후보였다.

당내 투톱인데…
실상은 원톱?

당시 인천시당 공천관리위원장이었던 홍 원내대표는 박 예비후보의 공약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에 홍 전 구청장은 “공천관리위원장이 중립 의무를 저버렸다”며 홍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이 사건으로 두 사람 사이에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두 사람 간의 갈등 관계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일 뿐 실상은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한다. 홍 원내대표의 이 대표 견제로 해석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친문 세력의 이 대표 견제로 보기도 한다.

당시 홍 전 구청장의 지명을 반대했던 사람은 홍 원내대표만이 아니었다. 민주당 박광온 최고위원 역시 홍 전 구청장 반대에 동조했다. 주목할만한 점은 홍 원내대표와 박 최고위원이 친문 세력이면서 부엉이 모임의 멤버라는 사실이다. 

이에 홍 원내대표가 이 대표 체제를 단독으로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세력 간 견제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다만 민주당 당직자는 보도된 한 매체와의 통화서 “홍 원내대표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할 말 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계파 간 견제라기보다 당내 건전한 긴장 관계로 보는 것이 맞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홍 원내대표와 박 최고위원이 최고위원 지명을 거부한 사안에 이어 당내서도 친문 세력의 결집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친문 세력은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해체된 부엉이 모임을 구심점으로 세력을 결집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계파주의 논란으로 해체된 부엉이 모임은 공개 싱크탱크로 모습을 드러낼 전망이다. 특히 새롭게 결성될 모임에는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진표·송영길 의원을 지지했던 친문 인사들이 들어설 것으로 점쳐진다.


김 의원과 송 의원을 지지했던 친문 인사들이 결집한다면 이 대표를 견제할 세력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다.

친문세력 결집
견제? 균형추?

김진표·송영길 의원은 전당대회서 이 대표와 함께 치열한 선거전을 펼쳤다. 김 의원은 선거 당시 이 대표를 겨냥해 “여소야대 상황서 당대표 임기를 마무리해야 하는 운명을 지닌 당대표가 자꾸 야당을 궤멸 대상이나 혁파 대상으로 느끼게 하는 언동을 해서는 안 된다”며 정면 비판했다.

송 의원 역시 이 대표를 향해 날을 세웠다. 송 의원은 당시 추 전 대표가 “확신을 가지고 잡고 끌고 갈 수 있는, 그런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이 대표를 지지하자 제동에 나섰다. 
 

송 의원은 “당 대표도 특정 후보를 지지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공정해야 할 당 대표 입장으로 좀 더 신경 써 달라는 것”이라며 조심스럽게 비판했다.

김 의원과 송 의원은 이 대표를 상대로 협공을 하기도 했다. 이들은 지난 전당대회 첫 TV토론회에 출연해 이 대표를 향해 공세의 고삐를 당겼다. 

김 의원은 “(이 후보의) 보수 궤멸, 20년 집권계획 같은 불필요한 비판과 논란은 야당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들지 않느냐”며 반문했다. 이 대표가 비판을 받았던 소통 문제에 대해 언급한 것이다. 

송 후보 역시 “원팀과 당정청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 후보님과 과연 원활한 소통이 될지 의구심이 제기된다”며 공세를 이어갔다.

전당대회 이후 이 대표는 김 의원을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에, 송 의원을 동북아평화협력특별위원회 위원장에 위촉했다. 민주당 내 원팀을 강조하며 두 의원을 각각의 전문분야에 배치한 것이다.

그러나 김 의원과 송 의원은 전당대회를 거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친문 구심점’을 시험하는 자리였던 만큼 두 의원은 검증을 해내지 못한 셈이다. 

송 의원은 선거에서 2위를 차지해 입지를 다지는 데 그쳤다. 김 의원의 경우 타격이 컸다. 김 의원은 전당대회 과정서 친문 인사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3철' 중 하나인 전해철 의원의 지지를 받은 것도 김 의원이었다. 

전 의원은 김 의원을 우회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게재했다가 당 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조치를 받기도 했다.

친문세력 견제 움직임
당내 새나오는 불협화음

새로 결성될 부엉이 모임이 주목을 받는 것도 그 연유에서다. 두 의원의 참여 여부를 떠나서 그들을 지원했던 인사들이 싱크탱크에 참여하게 된다면 또 다른 친문 세력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 

<매일경제> 보도에 따르면 한 여권 관계자는 “송 의원이 86계 의원들과 여러 가지 수를 구성하고 있다. (이 모임도) 그 중 일환”이라며 “재단 설립까지는 아니고 계속 논의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부엉이 모임은 친문 세력과 86계의 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띠게 될 전망이다. 모임이 결성된다면 이 대표를 견제할 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소위 ‘이해찬 대 부엉이’의 구도다.

반면 견제세력이 아닌 당내 균형추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최근까지 이 대표가 보였던 광폭 행보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것이다. 당이 대표 1인 체제로 기울 가능성을 차단하고, 부작용 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서다.

그러나 일각에선 이 대표에 대한 견제 자체를 시기상조라고 본다. 이 대표는 지난 8월 당권을 잡았다. 대표에 취임한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았다. 또, 이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여당의 위상과 당 내 분위기가 상당 부분 변화했다. 

당 내외서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 대표를 향한 견제가 이른 시기부터 이뤄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편 이 대표는 민주당 창당 63주년을 맞아 ‘힘 있는 여당’을 넘어 ‘힘 있는 민주당’을 재차 강조했다. 이 대표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서 열린 민주당 창당 63주년 기념식서 “63년간 달려온 민주당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키고 문재인 대통령을 당선시켰다”며 “앞으로 대통령 열 분은 더 당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의 창당 기념일은 1955년 9월18일이지만 남북정상회담 일정으로 올해 창당 기념식을 하루 일찍 앞당겼다. 이 대표는 이 자리서 “민주당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이끌어가는 유일한 기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남북정상회담은 대립과 갈등을 평화와 공존의 현대사로 바꾸는 매우 중요한 행보”라며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헤쳐 나가는 민주당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는 문 대통령 취임 이후 조성된 한반도 평화 무드에 민주당이 함께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역할 재차 강조
갈등보단 원팀

이 대표는 창당 기념식서 민주당의 역할에 대해 강조했다. 향후 이 대표가 나아갈 방향과 그 궤를 같이 할 공산이 크다. 이 대표는 여당으로서의 민주당과 정당으로서의 민주당을 강조했다. 

또, 대통령 당선을 거론한 것은 하나 된 민주당을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의 공언은 당이 하나가 됐을 때를 전제로 한다. 이 대표의 말처럼 민주당이 당내 갈등 없이 원팀으로 명맥을 이어갈지, 당내 갈등을 피할 수 없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해찬의 집권 50년론

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민주당 창당 기념일서 ‘집권 50년론’을 주창했다. 남북정상회담 하루 전 시행된 기념식서 나온 발언이었다. 앞서 제시한 집권 20년론보다 30년 앞섰다. 이 대표는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 ‘집권 20년론’을 제시했고, 지난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선 ‘20년 집권플랜’을 제시했다.

야당은 즉각 반발에 나섰다. 한국당 윤영석 수석대변인은 “권력 욕심 부릴 시간에 민생에 집중하는 여당 대표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비판했다. 

바른미래당 김삼화 수석대변인은 “이 대표가 필요하게 오만하고 독선적으로 비치는 발언을 자꾸 내뱉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밝혔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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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