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루킹 특검’ 60일 성적표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9.03 14:06:51
  • 호수 11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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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놓치고 노회찬만 잡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빈 수레가 요란했다. ‘드루킹 댓글 여론조작’ 사건을 수사한 허익범 특별검사팀의 성적표다. 가장 큰 목표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별건 수사로 정의당 노회찬 의원만 죽음으로 내몰았다. 특검 사상 최초로 수사 기간 연장까지 포기했다. 일각에선 의혹만 남기고 면죄부만 줬다고 지적했다.
 

드루킹 일당의 댓글 공감 조작 범행 횟수가 1억 차례 가까이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허익범(사법연수원 13기) 특별검사팀은 지난달 27일 이 같은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특검은 댓글 조작 의혹 사건의 주범 드루킹 김모(49)씨와 그가 이끈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의 댓글 조작 범행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명암 엇갈린 
60일간 기록

특검팀에 따르면 드루킹은 지난 2016년 여름 한 정당 선거관계자로부터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댓글 작성 기계 200대를 구입, 운영해 효과를 봤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듣고 대응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에 드루킹은 지난 2016년 10월부터 이른바 ‘킹크랩’ 프로그램 개발을 시작했고, 다음달 초기 버전을 구현했다. 이후 드루킹은 그가 이끈 경공모 회원들과 함께 지난 2016년 12월부터 실제 댓글 조작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특검팀이 파악한 드루킹 일당의 범행 시기는 지난 2016년 12월4일부터 지난 3월21일까지다. 드루킹 일당은 킹크랩 프로그램을 이용해 총 8만1623개의 네이버·다음·네이트 뉴스 기사의 댓글 141만643개에 대해 총 9971만1788회의 공감·비공감 클릭 버튼을 조작한 것으로 밝혀졌다. 


앞서 검찰과 특검팀이 기소한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 횟수는 약 1300만회 수준이었다. 지난 6월27일부터 수사를 개시한 특검팀은 최첨단 장비를 동원해 드루킹 일당의 총 범행 횟수를 특정했다. 

특검팀은 지난달 24일 드루킹과 경공모 회원들을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기소 대상자로는 드루킹과 둘리 우모씨, 솔본아르타 양모씨, 서유기 박모씨, 초뽀 김모씨와 트렐로 강모씨, 파로스 김모씨와 성원 김모씨와 아보카 도모 변호사 등 총 9명이다.

기사 댓글 클릭 조작 1억 차례 달해 
김경수 범행에 대부분 공모한 혐의 

하지만 수사의 핵심이었던 김경수 경남도지사 수사 실패와 별건 수사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죽음을 자초해 ‘빈손 특검’이라는 평가에 무게가 실린다. 

허 특검은 지난 6월7일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수여받고 20일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6월27일 공식 수사에 착수했다. 수사 개시 이튿날 드루킹과 공범 4명이 수감된 서울구치소를 압수수색하고, 도·윤 변호사를 입건하며 수사 신호탄을 쐈다.

특검팀이 경기 파주의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 현장조사에서 휴대전화 21대, 유심카드 53개를 확보하면서 경찰의 초동수사 부실론이 불거지기도 했다. 특검팀은 경공모 창고를 압수수색하며 새로운 증거물 확보에 집중했다.
 

특검팀은 7월17일 드루킹의 측근이자 오사카 총영사 인사청탁의 당사자로 알려진 도 변호사를 긴급체포하면서 첫 강제 신병확보에 나섰다. 그러나 이후 잇따라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특검의 1차 위기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관련 수사에서 시작됐다. 이 과정서 특검은 언론을 통해 노 의원이 드루킹 일당에게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흘렸다. 수사 압박이 임박하자 노 의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치권과 여론이 들끓었다. 내심 수사성과를 기대해온 부분서 벽에 부딪혔고, 별건수사 논란까지 불거지며 특검팀은 크게 위축됐다.

기존의 의혹들
사실 다르기도

노 의원의 죽음으로 주춤했던 특검은 곧이어 드루킹 공범들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며 수사 재정비에 나섰다. 7월 말에는 김 지사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해 관사와 국회 의원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특검팀은 김 지사를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및 선거법위반 피의자로 입건하고 8월6일과 9일 두 차례에 걸쳐 38시간 동안 고강도 조사를 진행했다. 드루킹과 대질신문을 진행하는 등 김 지사 혐의 입증에 사활을 걸었다. 

김 지사가 2016년 가을 드루킹이 운영하는 파주 느릅나무 출판사 2층 강의장서 킹크랩 초기 버전 시연을 본 뒤 댓글조작 작업을 승인·지시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드루킹이 ‘킹크랩 시연회’에 대한 일부 진술을 번복하며 수사가 주춤했고, 법원은 김 지사가 댓글조작에 가담했거나 공모한 혐의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김 지사에게 드루킹을 직접 소개한 송인배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드루킹이 오사카 총영사 자리를 청탁한 도모 변호사를 직접 만난 백원우 청와대 민정비서관을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하지만 이미 김 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돼 수사 동력을 잃은 상황서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뚜렷한 혐의점도 발견되지 않았다. 

더불어 드루킹 특검수사는 사상 처음으로 연장 수사 없이 종료했다. 역대 13번의 특검 중 수사기간 연장을 포기한 최초의 특검으로 기록됐다.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밝히지 못하거나, 혐의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수사의 동력을 잃었다. 

부실한 수사?
면죄부 지적도

박상융 특별검사보는 “진상 및 수사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특검은 굳이 더 이상의 조사나 수사가 적절할 정도는 아니라고 보아 수사 기한 승인 신청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용두사미로 끝난 드루킹 특검을 두고, 현 정권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도 나온다.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지난해 대통령 선거 전부터 댓글조작을 벌였다는 혐의를 특정하면서도 특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되던 경찰의 부실수사와 청와대의 사건 연루 의혹 등에서 불법행위가 없다는 결론을 내놨기 때문이다.
 

최득신 특검보는 “제가 경찰이었더라도 그 이상 못했을 것이고, 짧은 기간을 감안했을 때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며 “의혹이 될 수 있는지 특검 수사 과정서 체크를 했으나 사법 처리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특검 수사 과정서도 경찰 부실 수사의 실체가 확인됐다는 점에서 이 같은 설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검은 경찰이 두 차례나 압수수색했던 드루킹의 경기 파주 느릅나무출판사 사무실 쓰레기더미서 댓글조작에 사용된 휴대전화와 유심칩 케이스 수십 개를 찾아냈다.  


잇단 영장 기각…기소만
특검 사상 첫 연장 포기

이를 토대로 특검팀은 재판서 뒤집기를 별렀다. 특검팀은 김 지사 공소장에 드루킹 일당의 댓글조작 공범임을 적시하고 컴퓨터등장애업무방해 및 공직선거법 위반(이익제공의사표시) 혐의를 담았다.

김 지사가 매크로를 활용한 드루킹 일당의 댓글 작업에 대해 인지했고, 이를 묵인한 것으로 의심했다. 킹크랩 시연회를 참관하며 김 지사가 드루킹 일당이 댓글 조작을 인지했고, 이후 드루킹 김씨에게 조작할 기사의 인터넷주소(URL)를 보내는 등 사실상 댓글 조작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반면 김 지사는 킹크랩의 존재를 모른다는 입장이다. 드루킹 측이 댓글 조작을 한다는 것을 경찰 수사 이후 언론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에 드루킹과 주고받은 기사 URL은 선플운동을 요청하는 차원이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법정서 양 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벌어질 전망이다. 다만 드루킹 김씨의 진술 외에 물적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면 혐의 입증에 난관이 예상된다. 현재 구속 기소된 드루킹 등 일당 6명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에 배당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특검팀의 추가 기소에 따라 기존 사건과 병합이 예상된다.

이제 재판으로
치열한 공방 예고


특검법은 특검이 공소제기한 재판을 신속 운영해 1심은 공소제기일 기준 3개월 이내에, 2심 및 3심은 전심의 판결 선고일로부터 각각 2개월 이내에 하도록 규정한다. 특검법에 따르면 유무죄 최종 판단이 7개월 안에 결정나지만, 전례에 비춰볼 때 다소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종료된 최순실 국정 농단 특검 역시 1년을 넘겼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등에 대한 2심이 지난달 24일에야 선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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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