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②노무현-MB ‘대통령 사저’ 전격비교

‘아방궁’이라 비난하더니 ‘천황궁’ 세우냐!

[일요시사=손민혁 기자]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건립을 두고 다운계약서 작성, 불법증여, 부동산실명제 위반 등 갖은 의혹이 증폭되는 가운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와 비교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과거 노 전 대통령의 사저를 ‘아방궁’이라 힐난했던 한나라당은 역풍을 맞고 있고, 최전방에서 아방궁을 비난했던 보수언론들은 입을 다물고 눈치 보기에 급급한 형국이다. 두 대통령의 사저와 관련한 논란과 정치인들의 입장을 정리 해봤다.

경호부지 노무현 사저의 16배 비용 들어 비난 쇄도
한나라당마저 “경호동 대폭 축소해야” 제동, 선긋기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원내대표 시절인 지난 2008년 10월 국정감사 점검회의에서 “전직 대통령이 살고 있는 현황을 보라. 김영삼 전 대통령도 상도동 집 앞에는 주차할 데도 없다”며 “지금 노무현 대통령처럼 아방궁을 지어놓고 사는 사람이 없다”고 공격했다.

‘봉하마을’을 ‘아방궁’에 비유하며 비난해 논란이 불붙었고, 여권의 노무현 전 대통령 때리기는 그칠 줄 몰랐다. 공격의 핵심은 국민세금과 측근인사들의 자금으로 국민정서와 어긋나게 너무 크고, 비싼 호화시설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홍반장이 시작한
‘아방궁 논란’

당시 ‘아방궁’ 논란을 제기했던 여권에서는 봉하마을에 집터와 주변 대지를 합쳐 1만평이 넘는 ‘노무현 타운’이 들어설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왔고, 사저 가까이에 대통령 형의 전용 골프 연습장, 저수지, 정원 등 호화시설이 들어선다는 근거 없는 루머도 떠돌았다.

하지만 실제 노 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는 대지 4262㎡(1289평), 1층 단독주택인 건물 372㎡(112평)로 이뤄졌다. 대지 구입과 건물 설계, 공사비까지 총 12억원 가량이 들어갔다.

그에 반해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는 건물 부지 463㎡(140평), 경호관들이 활용할 경호시설용 부지 2143㎡(650평) 총 9필지 2606㎡(788평) 매입에 54억원을 썼다.

부지매입에만 이미 노 전 대통령 사저의 총 비용의 4배가 넘는 금액을 쓴 것이다. 특히 경호시설 부지는 봉하마을 경호시설 부지(1155㎡ㆍ350평) 매입비 2억5900만원의 16배가 넘는다.

유선호 민주당 의원은 지난 11일 대정부질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봉하마을 사저를 홍 대표가 아방궁이라 불렀는데, 그럼 봉하사저 택지구입비의 16배가 넘는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는 ‘울트라 아방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비난했다.

엄청난 금액을 들여 샀지만 금액부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대통령의 장남 시형씨는 본인 및 친척명의 등으로 대출을 받아 내곡동 사저 부지를 공시지가 12억8697만원보다 1억6697만원 싼 11억2000만원에 샀다.

반면 대통령실은 42억8000만원을 주고 땅을 샀다. 이는 공시지가 10억9385만원의 4배에 달한다.

특히 공동명의로 된 20-30번지를 보면, 시형씨는 공시지가 5364만원의 대지를 2200만원에 샀지만 대통령실은 3874만원의 공시지가 대지를 1억4800만원이나 주고 구입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또한 현 청와대 대통령실 경호처는 이 대통령의 사저의 규모가 논란이 되자 봉하마을 경호시설 규모를 거론하며 “큰 게 아니다”고 주장했다. 350평의 봉하마을 경호시설을 541평으로 부풀린 것이다.

김경수 노무현재단 사무국장은 지난 11일 자신의 트위터에 글을 올려 “봉하마을 경호시설이 350평에서 541평으로 둔갑했다”며 “이명박 정부 경호처가 봉하마을 경호시설 부지 면적을 541평이라고 밝혔는데 이는 경호관들이 머무는 읍내 아파트 30평형 6채까지 억지로 포함시킨 수치”라고 주장했다.

김 국장은 이어 “650평이 너무 커서 부담스러우니 어떻게든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한 경호처의 애처로운 노력이 눈물겹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라고 비판했다.

부메랑으로
날아온 ‘불똥’

내곡동 사저는 과거 봉하마을을 “아방궁”이라고 비난했던 한나라당을 곤혹케 하고 있다. 불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튀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 대변인이었던 나 후보는 “사저와 경호용 건물 외에 형 노건평씨와 노 대통령 주변 인사들이 소유한 땅까지 합치면 1만1028평에 이른다고 한다”며 “‘노무현 마을’ 내지는 ‘노무현 타운’으로 불러야 할 것 같다”고 ‘노무현 타운’이란 신조어를 만들었다.

나 후보는 이어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에 성주로 살겠다는 것인가?”라고 비아냥댄 뒤, “후보 시절부터 서민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한 노 대통령이 퇴임 후 살 집 치고는 규모가 좀 지나치지 않나 싶다”고 비난했다.

그는 더 나아가 “가방 2개만 달랑 들고 대통령궁을 떠난 인도의 칼람 대통령이 떠오른다”며 “우리 국민도 빈손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다 빈손으로 청와대를 나오는 그런 대통령이 보고 싶을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총 12억원 가량이 소요될 예정이며 현재 노 대통령 내외가 가진 돈은 6억원 정도로 나머지 6억원은 대출을 받을 계획”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자 나 후보는 “서민들에게는 꿈같은 이야기다. 부족한 돈 6억원은 은행대출로 충당한다고 하는데 부동산값 잡는다고 집 없는 서민들의 은행대출을 막아 놓고 정작 대통령은 6억이나 대출을 받겠다니 과연 가능한 것인지 지켜보고 싶다”며 거듭 노 대통령을 비아냥댔다.

노무현 원색 비난하던 나경원, 할 말 잃어
트위터에서 ‘사회 환원’ 청원 운동 벌어져 주목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도, 나 후보는 거듭 봉하마을을 문제 삼았다.

특히 2008년 1월11일 숭례문이 전소되자 당시 나 후보는 논평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께서 봉하마을에 쓰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문화재 방재에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고 비아냥대 논란을 자초했다.
 
이에 대해 당시 진중권 교수는 “나경원 대변인이 참새 아이큐의 10분의 1만 가졌어도 대통령 사저와 숭례문 사이의 인과관계를 설정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나 후보는 노 전 대통령 퇴임 직전에도 또다시 청와대를 떠나가는 노 전 대통령을 원색 비난했다.
 
그는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노무현 대통령’이란 제목의 논평을 통해 “당초 서민대통령을 자임했던 노 대통령이 퇴임 후에 소박한 집 한 채로 돌아갔다면 존경받는 일이 될 것이다. 역대 어느 대통령이 퇴임 후 돌아가 살 집 주변을 노 대통령처럼 세금을 들여 시끄럽고 떠들썩하게 꾸몄을까 싶다. 세금을 주머니돈처럼 쓰겠다고 하는 발상이 매우 경이롭다”며 “노무현 대통령께서 최소한의 도덕과 염치를 가지고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재임기간 내내 온갖 자리를 만들어 국민혈세를 낭비하더니 이제 퇴임 후를 위해서 국민혈세를 물 쓰듯 하고 있다”며 거듭 비난했다.

이처럼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던 나 후보는 노 전 대통령 때보다 15배나 많은 국민세금을 사저 건축에 투입하고 있는 이 대통령에 대해 ‘서울시장 후보초청 토론회’에서 할 말이 없는 듯 보였다.

나 후보는 이 대통령의 퇴임 후 사저를 위한 내곡동 땅 매입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실질적으로 사정이 있겠지만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며 “(국민이) 납득할 만한 설명이 있어야 할 것 같다”고 짤막히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을 원색비난 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태도다.

특히 토론 진행자가 “지난 2007년 한나라당 대변인 시절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 땅 매입에 대해 ‘최소한의 도덕도 없는 대통령’이라는 논평을 낸 것이 맞느냐”고 묻자, 나 후보는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당시 봉하마을 신축과 관련해 정부 측으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은 적이 있었다. 그 부분을 말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노 비난하던 모습과
사뭇 다른 나경원

야당의 반발은 거세다. 민주당 이윤석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경호실 부지와 가격이 16배 차이가 나는 것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겠느냐”며 “이 대통령이 부르짖는 공정사회와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석현 의원은 “봉하마을이 아방궁이라면 여기는 천황궁”이라고 꼬집었다.

이용섭 대변인은 “과거 한나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저를 ‘아방궁’에 비유하며 도를 넘는 정략적 정치공세를 펼쳤다”며 “그러나 ‘아방궁’의 진실은 단정한 현대식 주택이 들어선 시골마을 풍경에 다름 아니었다. 봉하마을 사저를 두고, 현지를 다녀간 수십만명 국민들 중 어느 누구도 ‘아방궁’이라 부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고 덧붙였다.

논란이 계속되자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12일 “경호동을 대폭 축소하도록 청와대에 요청했다”며 “사저 자체는 대통령 사비로 짓기 때문에 문제될게 없지만 세금이 들어가는 경호동 문제는 대폭 축소해야 한다”고 청와대와 분명한 선긋기에 나섰다.

한편, 한 트위터 이용자는 “취임 전에는 ‘도곡동’, 임기 말에는 ‘내곡동’ 파문에 휩싸인 MB, 곡자 좋아하다가 퇴임 후에 ‘곡’소리 나겠네~”라고 비난했고 트위터 상에서는 내곡동 땅 ‘사회 환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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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엘리엇 1300억원 소송’ 마지막 남은 반전 기회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2015년 진행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정부는 당시 합병으로 인해 외국계 투자회사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및 메이슨 캐피탈과 국제투자 분쟁에 휩싸였다. 국제상설중재재판소의 판정으로 정부는 이들에게 약 2100여억원을 배상해야 하는 상황 중 아주 작은 소생의 실마리가 나왔다. 엘리엇 분쟁 사건의 판정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승소한 것이다. 정부가 미국계 해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와의 8년간 진행 중인 국제투자 분쟁에서 반전의 기회를 잡았다. 1300여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 분쟁 판정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의 항소심에서 승소하면서다. 이로 인해 배상 판결이 취소될 가능성도 되살아났다. 사건 발단 짚어보니… 법무부에 따르면 영국 항소법원은 지난 17일 한국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1심 법원인 고등법원에 사건을 환송했다. 이에 따라 사건을 되돌려받은 영국 고등법원은 엘리엇에 대한 한국 정부의 배상을 결정한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의 재판 관할권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한국 정부로서는 중재판정 자체를 무효화할 가능성을 다시 확보하게 된 셈이다. 엘리엇 배상 사건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정부가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엘리엇은 해당 의혹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서야 7억7000만달러의 손해를 입었다며 ISDS를 제기했다. 엘리엇의 ISDS 제기는 대한민국 정부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만약 엘리엇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막대한 국민 세금이 배상금으로 지급돼야 하는 상황이었다. 또 국제 중재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국가의 대외 신인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법무부를 중심으로 전담팀을 구성하고 국제 법률 전문가들과 협력해 엘리엇의 주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양측은 수년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서 치열한 법적 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국정 농단 사건의 재판 결과와 국민연금 관계자들의 증언 등이 중요한 증거로 활용됐다. 기나긴 법적 공방 끝에 지난 2023년 6월20일, 네덜란드 헤이그의 PCA는 엘리엇의 ISDS 사건에 대한 최종 판정을 내렸다. 판정 결과는 대한민국 정부에게 상당한 충격이었다. 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에 5358만6931달러(당시 환율로 약 690억원) 와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엘리엇이 청구한 금액인 약 7억7000만달러의 약 7%에 해당하는 금액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중재에서 패소해 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점에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PCA는 판정문에서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행위가 한국 정부에 귀속되는 행위며, 이로 인해 엘리엇에 손해가 발생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국민연금이 공적기금으로서 정부의 통제 하에 있으며, 그 의사결정이 정부의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해 엘리엇의 정당한 주주 권리를 침해하고 투자가치를 훼손했다고 봤다. 배상 취소 소송 항소심 승소 한미FTA상 성립 불가능 판단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이 판정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았다. 법무부는 판정 직후 즉각적으로 불복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7월18일, 정부는 중재판정부에 판정의 해석·정정을 신청하는 동시에,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는 판정에 법리적 오류가 있거나 중재 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주장하며 판정을 뒤집기 위한 총력전을 펼쳤다. 특히, 정부는 엘리엇 사건이 한미 FTA상 ‘성립 불가능’한 사건이라는 점을 취소소송에서 가장 크게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국제투자 분쟁은 해외 투자자가 ‘투자국’의 협정 위반 행위에 대해 제기하는 국제중재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상업적 행위’일 뿐 국가의 행위로 볼 수 없다는 게 정부의 논리였으나 1심 법원에서는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정부는 해당 판결에 대해서도 항소를 진행했고 지난 17일 영국 항소법원은 우리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였다. 이에 따라 사건은 다시 1심 법원인 영국 고등법원으로 환송됐으며, 영국 고등법원은 배상 판결을 한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애초 재판 관할권이 있었는지부터 다시 심리하게 된다. 이 판결은 한국 정부가 거액의 배상을 면할 수 있는 반전의 기회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엘리엇 배상 사건의 발단은 삼성물산 제일모집 합병에서 촉발됐다. 지난 2015년 5월26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 계획을 발표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제일모직이 삼성물산을 1대 0.35의 비율로 흡수합병하는 방식이었다. 이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 및 지배력 강화를 위한 것으로 해석됐으나,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는 불리한 합병 비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8년 소송 결말은? 당시 제일모직의 주가는 삼성물산의 약 3배였지만, 자산총액 기준으로는 삼성물산이 제일모직의 3배에 달했기 때문이다. 이에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는 삼성물산 지분 7.12%를 보유하고 있음을 공시하며 합병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합병 금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하는 등 적극적인 반대 운동을 펼쳤다. 당시 엘리엇은 삼성물산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됐으며 합병 조건이 불공정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시 법원은 엘리엇의 가처분신청을 모두 기각하며 삼성의 손을 들어줬다. 합병의 가장 중요한 변수는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이었다.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합병 반대 의견을 내놨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거쳐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결국 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이 통과됐고, 그해 9월1일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박근혜정부 국정 농단 사건이 불거지면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의 불법성 의혹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특별검사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이 이뤄졌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하는 등 불법 행위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도록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관련 인사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2025년 7월17일, 대법원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 부정과 관련한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해 전부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로써 이 회장은 약 10년간 이어져 온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게 됐다. 리스크 해소 다양한 반응 엘리엇 배상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으면서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는 항소심에서 ‘한국 승소’로 뒤집히자, 취소 청구를 주도한 법무부 장관으로서 환영했다. 한 전 대표는 “최선을 다하고 성과를 낸 많은 ‘좋은 공직자’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제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지휘했던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중재판정의 취소소송 항소심에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이 저 소송(취소소송 제기) 관련해 저를 많이 비난했었다”고 정쟁적 비판을 상기시켰다. 그는 “‘국익’이 걸렸지만 결과가 나쁠 수도 있는 위험 부담이 큰 문제를 결정할 때, 몸 사리면 공직자들은 편하다. ‘지면 네 돈 낼 거냐’는 폭력적인 질문 앞에서 ‘안 하고 말지’ 생각이 들게 마련”이라며 “그래도 몸 사리지 않고 국익을 생각한 좋은 공직자들이 있다. 이 경우가 그랬다”고 설명했다. 특히 “엘리엇 항소에 대해 ‘질 가능성이 크니 항소하지 마라, 그래서 지면 한동훈 사비로 돈 대신 내라’는 감정적 비난이 많았고, 그런 제목의 언론 사설까지 있었다”면서 공직사회에 “피 같은 국민 세금 아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혼신의 노력을 해온 것을 제가 잘 안다”고 격려를 보냈다. 한 전 대표는 “의미있는 승리지만 이 사안은 아직도 갈 길이 먼, 쉽지 않은 싸움”이라며 “끝까지 최선을 다해 국익을 지켜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법조계에서는 엘리엇 배상 사건처럼 메이슨 캐피탈이 같은 이유로 제기했던 ISDS의 중재판정 취소소송 항소 포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 국제통상 전문 변호사는 “엘리엇과 메이슨은 같은 이유로 ISDS를 제기했다”며 “엘리엇은 취소소송의 항소심을 진행하면서 메이슨은 지연이자 등으로 항소심을 진행하지 않았다. 하지만 엘리엇 사건이 항소심에서 승리하면서 메이슨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울 따름”이라고 평가했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 4월 정부 대리 로펌 및 외부 전문가들과 논의한 끝에 정부의 메이슨 ISDS 중재판정 취소 청구를 기각한 싱가포르 국제상사법원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발단 “이재명정부가 구상권 제기해야” 메이슨은 지난 2018년 9월 우리 정부가 자유무역협정(FTA)을 위반했다며 손해배상금 1억9139만달러(약 2609억원)와 판정일까지 연 5% 월 복리이자를 지급하라는 ISDS를 제기했다. 정부는 한미 FTA상 ‘정부가 채택하거나 유지한 조치’는 공식적인 국가 행위를 전제로 하는데, 개별 공무원의 불법적이고 승인되지 않은 비위 행위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중재판정부는 지난해 4월 우리 정부를 향해 메이슨 측에 3203만876달러(약 438억원)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싱가포르 법원은 메이슨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한국 정부 측에 손해배상을 명한 중재판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법무부는 "법리뿐 아니라 항소 제기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 및 지연이자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결정했다"고 항소 포기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이번에 항소심에서 정부가 승리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국민 세금으로 내야 할 배상액이다. 정부가 메이슨에 지급해야 할 돈은 지연이자까지 포함해 약 887억원이 됐다. 엘리엇에 배상해야 할 금액은 당초 1300억원에서 지연이자까지 더하면 약 1500억원가량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민단체에서는 엘리엇과 메이슨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며 소송을 제기한 만큼 당시 합병을 주도한 이 회장과 두 기업의 합병 과정에서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상대로 구상권을 제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리이자가 계속 쌓이면서 배상액도 천문학적으로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 이재명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5월 대선을 앞두고 참여연대는 대선후보들에게 엘리엇·메이슨 ISDS 배상금 구상권 행사 여부를 듣기 위해 질의문을 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질의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러자 참여연대는 “단순한 침묵이 아니라 대통령 후보로서 세금 수천 억원의 손실을 되돌리기 위한 의지와 책임을 보여야 할 자리에서 책무를 방기하고 있다는 점이 중대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지난 17일에는 이재용 회장의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직후 다시 한번 “재벌 봐주기 판결로 사회 정의를 무너뜨리고 총수 일가의 전횡을 용인하는 해로운 판례를 남긴 법원을 강력히 규탄한다”는 주장과 함께 정부를 향해 구상권 청구를 요청했다. 구상권 문제는? 다만 국제통상 전문가로 활동한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실 국정상황실장에 있다는 점에서 변화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송 실장은 변호사 시절 “법무부는 당시 중과실로 불법 행위한 대한민국 공무원들, 이들과 공모 관계라고 인정된 이재용 회장을 상대로 신속하게 구상권 청구를 해야 한다”며 “박 전 대통령 등 공무원에겐 국가배상법에 따라 당사자에게 청구하고, 이 회장에 대해선 민법상 공동불법행위자로서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