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제로 묻힌’ 제천 토막살인 사건 전말

15년 동안 경찰은 뭐했나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15년 동안 미제였던 ‘제천토막살인사건’이 마무리됐다.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숨진 채 발견된 것이다. 그는 변장에 능했고 여러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살아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허무하게도 지병으로 사망하고 나서야 세상에 자신을 드러낸 용의자. 찝찝하게 마무리된 이 사건의 전말을 되짚어본다.
 

2003년 3월, 충청북도 제천시의 한 배수로 공사현장서 작업을 하던 인부들은 끔찍하게 토막난 사체를 발견했다. 사체는 토막낸 시신을 다시 원래 위치로 배치한 듯한 모습이었으며 부패가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운좋게도 시랍화가 됐기에 지문이 간신히 남아있었다.

토막난 사체

시신을 수습한 수사기관은 확보한 지문 복원을 통해 간신히 신원을 파악했다. 확인 결과 서울 출신의 50대 독신 여성이었던 구모씨로 밝혀졌다. 그녀는 제천에는 아무런 연고가 없었던 사람이었다. 

사체 발견 4개월 전 용인에서 실종됐다는 신고가 있었다.  

구씨의 직접적인 사인은 교살로 밝혀졌다. 경찰은 구씨가 교살된 후 공구 등에 의해 토막난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피해자 주변 인물과 휴대전화 통화 목록 그리고 피해자의 계좌서 4200만원을 인출한 남자의 CCTV 화면을 통해 용의자들을 추려나갔다. 


그 결과 범인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 용의자 신모씨가 등장했다.

경찰이 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한 신씨는 당시 45세의 춘천 출신으로 주소 등록은 부산으로 돼있었다. 그는 제주도를 시작으로 경상도, 충청도 등을 돌면서 사기 전과 10범의 사기꾼이었다. 

사기혐의로 여러번 고발됐지만 대부분 벌금에 그쳤고 징역도 기소유예 식으로 거의 유야무야되며 감방행을 피했다. 그는 골프 동호회를 운영하며 여성 회원들에게 접근해 관계를 맺고 돈을 갈취했던 속칭 ‘제비족’이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출연한 한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신씨는 경제적으로 본인이 취할 수 있는 이득이 있는 대상이면서 고립돼 있는 사람, 그리고 피해자의 고립된 상태를 이해해 준 상태서 가해자에게 정이 들다보니 피해자가 신고하기도 꺼려지게 된 심리까지 노려서 집요하게 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피해자 구씨가 신씨의 이 같은 사기 행각을 눈치챘고 다른 여성 회원들에게 사기 행각을 폭로하겠다고 신씨와 다툼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 신씨는 다시 감방으로 들어가야 했고 그동안 갈취했던 돈도 도로 내놔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입막음을 위해 구씨를 살해했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신씨가 범인으로 지목된 또 하나의 계기는 피해자가 실종된 이후에도 3개월 간 동호회 활동을 지속했으며 자신이 살해한 여성의 아이디로 동호회에 접속해 다른 회원들과 대화를 나눴기 때문이었다. 

이는 피해자가 아직 살아있는 것처럼 위장하는 동시에 자신과 관계있던 여성 회원들과 정리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러한 분석을 토대로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을 피해자와 같은 골프 동호회에 소속돼있던 사기 전과자 신씨로 지목한 것이다.


신씨는 살인 전후에도 구씨의 지인과 가족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정체는 숨기면서 친오빠에게는 “당신 여동생이 사기를 쳐서 그 돈을 안 갚으면 고발하겠다”고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 했다. 

배수로 공사 현장서 50대 여성 시신
허무한 결말…유력한 용의자 숨져

지인들에게는 “구씨는 외국에 가있다. 사정이 있어서 당분간 돌아오기 어려울 듯하다”는 식으로 둘러댔다. 

이후 신씨는 구씨의 유품을 일부 처분 할 때도 그녀를 따르던 여성 지인에게 대리 거래를 시켰다. 신분을 속이고 다른 사람인 척하는 신씨를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 도용당한 명의는 신씨와 아무런 관련도 없던 사람들과 베트남서 사업하던 사업가 등 다양했다.

방송서 범인의 딸과의 인터뷰가 있었다. 그녀는 “유년기 이후로 아버지 얼굴을 본 적이 없으니 아는 게 없다”며 “그러니 내 엄마와 동생에게도 연락하지 말라”고 말했다.
 

방송을 통해 추가적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2015년 이후로 전라도 일대서 신씨와 비슷한 식으로 사기를 치는 사람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한 호남지역 원룸 집 주인이 그에 대해 제보했고 이후로도 제보가 이어졌다.

집 주인에 따르면 그는 방을 등록할 때도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를 제대로 적지 않았는데, 항상 그럴싸한 이유로 집 주인을 안심시키며 넘어갔다. 또 그는 멀티모니터를 갖추며 주식 투자를 하고 있었고 주변사람에게 주식을 권유해서 주식 사기를 쳤다. 이때 집 주인도 소액투자해서 4200만원을 날렸다고 회고했다.  

신씨는 사건 이후에도 버젓이 지역 골프 동호회 활동을 했는지, 회원들과도 면식이 있었다. 회원들은 그를 신씨가 아닌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동호회에 올려놓은 사진으로 인해 범인인 것 같다는 제보가 빗발쳤다. 

실제로 카페에 올린 사진과 구씨를 살해한 이후 피해자의 계좌서 현금 인출 당시 현금인출기 CCTV에 찍힌 얼굴을 영상 분석 전문가에게 의뢰한 결과 80% 이상 일치한다는 소견이 나오기도 했다. 

명의도용 수법도 이전과 비슷했다. 강씨, 박씨, 서씨, 휴대폰 명의 1개, 휴대폰 명의 2개 등 최소 5개 이상의 가명을 사용했다. 그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자가용이나 대중교통을 일절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만 타고 다니는 치밀함을 보였다.

또 생활에 필요한 물품들은 마트에 직접 가지 않고 일정한 텀으로 다량 구매 후 배달받는 방식을 택했다.  

원룸 집 주인이 기억하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자전거만 빼고 모든 물품을 둔 채로 도망갔다는 것이다. 이후 인근 은행 CCTV서 그가 도피 자금으로 활용할 거금을 인출하는 모습이 포착된 이후로 그의 흔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2017년까지 제보로 봤을 때 해외 도피 가능성이 낮고 국내에 상주할 것으로 추정했다. 

사건 이후 15년 동안이나 자취를 감추고 살아오던 신씨가 드디어 발견됐다. 하지만 그는 이미 싸늘한 주검이 돼있었다. 

지난달 27일, 제천경찰서는 “지난 22일 강원도 속초의 한 원룸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유력 용의자 지목되던 신모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경찰은 신씨가 당뇨 등 지병을 앓다가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신씨의 방에서는 약봉지가 발견됐으며 외부 침입은 없었다. 경찰은 신씨가 당뇨 등 지병을 앓다가 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찝찝한 마무리

범인을 발견했지만 이미 죽어버렸기 때문에 신씨에게 법의 심판을 내리지는 못하게 됐다. 게다가 사건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더 조사하기가 힘들게 됐다. 15년이나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이렇게 끝이 났다. 인과응보로 보기에는 너무도 시원치 못한 사건 종결이다. 현재 피해자 가족과 지인들은 허탈감에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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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건진법사 ‘5000만원 관봉권’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5000만원 관봉권’ 출처를 두고 소문이 무성하다. 검찰은 대통령실 특활비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전씨는 그저 ‘기도비’라고 진술 중이다. 검찰이 김건희씨까지 수사 대상에 올린 점을 보면 전씨의 진술은 허위일 가능성이 크다. 전씨가 전방위 로비를 벌인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김씨의 소환조사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윤석열 일가를 향한 수사는 그간 서울중앙지검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건진법사 전성배씨의 로비 사건은 중앙지검이 아닌 ‘여의도 저승사자’로 불리는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부장검사 박건욱)가 포문을 열었다. 전씨는 통일교와 캄보디아 사업 및 정·재계를 가리지 않고 돈을 받았다. 윤석열 일가와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수상한 증거들 남부지검은 전씨를 수사하기 이전에 한 가상자산 사기 사건을 수사 중이었다. 최근 정식 부서로 신설된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부는 지난해 7월 ‘퀸비코인(QBZ)’ 관계자 이모씨 외 3명을 사기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사업 진행 능력이 없음에도 허위 자료를 제출해 스캠 코인을 상장했다. 1만명이 넘는 투자자로부터 가로챈 금액은 300억원에 육박한다. 남부지검은 수사 과정서 퀸비코인 관계자 이씨가 2018년 1월 자유한국당 경북 영천시장 후보 경선에 나선 정모씨를 전씨와 연결한 정황 및, 이들 간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했다. 취재를 종합하면 당시 정씨는 전씨 법당을 찾아 1억원을 건넸다. 이 사실을 파악한 남부지검은 지난해 12월 전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그의 법당과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두 달여 전에는 경기 성남의 카카오 판교 서버를 압수수색해 전씨의 카카오톡 기록까지 확보했다. 전씨는 2022년 제20대 대통령선거 당시 윤석열 전 대통령 대선캠프 네트워크본부서 상임고문으로 활동했다. 그의 처남으로 알려진 ‘찰리’ 김모씨도 전씨와 같이 활동했다. 전씨는 김건희씨가 운영하던 전시기획회사 코바나컨텐츠의 고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전씨의 딸도 잠깐이지만 코바나컨텐츠서 근무한 이력이 있다. 남부지검은 전씨가 윤 전 대통령과 김씨와의 친분을 이용해 로비 행위를 벌였다고 보고 수사를 시작했다. 실제 전씨가 로비 창구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남부지검은 지난달 30일 윤 전 대통령 사저인 아크로비스타를 압수수색했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피의자들이 2022년 4월부터 8월 사이 공직자의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됐다. 청탁 사유로 ▲캄보디아 메콩강 부지 개발 ODA(공적개발원조) 사업 ▲YTN 인수 ▲유엔 제5사무국 한국 유치 ▲교육부 장관 통일교 행사 참석 ▲대통령 취임식 초청 등이 담겼다. 이 압수수색은 전씨를 통해 통일교 세계본부장 출신이자 2인자였던 윤모씨가 수천만원 상당의 그라프(Graff) 다이아몬드 목걸이, 샤넬 가방, 천수삼 농축차 등을 김씨에게 전달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절차였다. 남부지검은 윤씨가 지난 2022년 7월 전씨에게 ‘김 여사가 물건(천수삼) 잘 받았다더라, 건강이 좋아지셨다고 한다’고 보낸 문자메시지 내용을 확보하기도 했다. ‘한국은행’ 찍혔는데…통상 정부 예산 활용 금융권 “개인이 갖고 있을 수 없다” 일축 검찰이 지난 3일 전씨를 청탁금지법 위반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한 만큼 김씨에 대한 소환조사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 남부지검 수사팀 내부에서는 김씨를 대선 직전에 소환조사해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전씨는 “목걸이와 명품백을 잃어버렸다. (김 여사가 잘 받았다는 문자는) 거짓 문자”라고 부인하는 상황이다. 김씨 측도 “전씨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우선 검찰은 윤씨가 전씨에게 윤석열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 추진을 청탁했는지 여부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검찰은 윤씨가 “윤 전 대통령과 독대했고 국가 단위 ODA 연대 프로젝트에 동의했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2022년 3월 윤씨가 당선인 신분이었던 윤 전 대통령과 김씨를 인수위서 만난 뒤 캄보디아 사업을 추진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통일교는 같은 해 메콩강 핵심 부지에 ‘아시아태평양유니언 본부’를 건립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윤씨는 훈센(Hun Sen) 당시 캄보디아 총리와도 이 사업을 논의했지만 자금난으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윤씨는 2022년 5월 한 통일교 행사에서 “3월 22일 대통령을 만나 1시간 독대를 하면서 이 나라가 가야 할 방향을 이야기하고 암묵적 동의를 구한 게 있다”고 말했다. 이어 “ODA는 비영리기구(NGO)가 펀딩 가능하고 국가가 지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검찰은 이 직후인 2022년 6월 기획재정부가 제4차 한-캄보디아 ODA 통합 정책협의서 대(對)캄보디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차관 지원 한도액을 기존 7억달러에서 15억달러로 늘리는 기본 약정을 체결한 점을 주목했다. 한도액이 늘면 중기후보사업 승인 절차가 간소화돼 ODA 사업 수주가 쉬워지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에 김씨가 나토 순방 당시 착용했던 6000만원대 반클리프 앤 아펠 목걸이와 관련해 재산 신고 누락 논란이 불거지자, 윤씨는 전씨에게 “김 여사에게 빌리지 말고 하고 다니라”며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건넸다. 검찰은 지금까지 김씨 명의 휴대전화 3대를 확보했다. 이 중 1대는 김씨가 지난달 11일 서울 한남동 관저서 나오면서 보안 비화폰(안보폰)을 반납한 뒤 개통한 휴대전화다. 나머지 2대는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서 사용하던 휴대전화로, 사실상 공기계로 알려졌다. 자택 압색 그 이후… 검찰은 100여개에 달하는 압수 대상에 윤씨 선물 명목으로 전씨에게 제공했다는 그라프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샤넬 가방, 인삼주 등도 적시했지만 확보하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는 윤씨의 청탁이 성사됐거나 윤씨와의 직무 관련성 등이 입증된다면 김씨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와의 전화 통화에서 “카톡 기록과 전달됐거나 전달되려 했던 물품들은 이미 수사팀이 확보했으니 김씨가 대면 조사를 피하긴 힘들다”며 “남부지검서도 성역 없이 수사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현행법상 공직자의 배우자를 청탁금지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니 직무 관련성 입증이 관건”이라며 “입증만 된다면 알선수재 혐의 적용이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가장 중요한 건 전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할 당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2월 서울 서초구 전씨의 집을 압수수색하면서 5만원권 3300매(1억6500만원)를 확보했는데, 이 중 5000만원은 비닐 포장이 벗겨지지 않은 상태였다. 검찰은 전씨에게 이 관봉권의 출처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했다. 관봉권은 ‘제조권’과 ‘사용권’ 두 종류로 나뉜다. 제조권은 한국조폐공사에서 한은이 받아온 신권으로 돈다발에 십자 형태의 띠를 두르고 비닐로 싸 압축한 형태다. 사용권은 한은이 시중은행서 회수한 돈을 검수해 낡은 돈은 폐기하고 사용하기 적합한 돈만 골라낸 것이다. 발견된 돈다발 김씨와 전씨 사건서 등장하는 관봉권은 모두 사용권이다. 전씨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 돈다발은 한은이 적힌 비닐로 포장돼있었고, 비닐엔 기기 번호와 담당·책임자 일련번호도 적혀 있었다. 그러나 김씨 측이 옷값을 치를 때 썼던 관봉권은 비닐 없이 띠지만 둘러져 있는 돈다발 형태였다. 관봉권은 국가 예산으로 편성되는 대통령실(청와대)과 검찰, 국가정보원 등 사정기관의 수사나 조사에 필요한 특수활동비로 쓰이기도 한다. 과거 정부에서는 이 특활비가 로비 자금으로 악용됐다. 한은은 전국에 16개 지역 본부를 두고 금융기관에 관봉권을 보낸다. 서울엔 남대문 본점 및 강남본부 등 두 곳이 있다. 이 중 강남본부가 대통령실과 사정기관 등에 예산 조달을 담당해 왔다. 다만 민간인의 집에서 관봉권이 발견될 수 없다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다. 대개 일반 정부 예산은 관봉권 형태가 아닌 계좌이체 등을 통해 전달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수천만원 상당의 관봉권이 묶인 채로 남아 있는 건 영수증 내역도 남지 않는 특활비”라며 “통상 정보와 사정기관이 ‘돈의 주인’”이라고 말했다. 실제 검찰도 전씨의 자택서 발견된 5000만원 관봉권이 강남본부서 나왔다고 보고 있다. 이 관봉권에는 ‘2022년 5월13일’이라는 날짜가 기재돼있다. 윤 전 대통령 취임일 사흘 뒤다. 전씨는 검찰 조사에서 주로 돈은 ‘기도비’ 명목으로 받아왔지만 관봉권은 정확하게 누구에게 받은 돈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진술했다. 검찰은 한은 방문 이후 전씨의 집에서 발견된 관봉권에 적힌 ▲기기번호 ▲담당자 ▲책임자 ▲발권국 항목 등의 의미를 확인했다. 기기번호의 뜻은 정사기(검수기) 기기번호와 기기호수를 뜻하고, 발권국 정보에는 정사 업무를 담당하는 발권국 화폐관리1팀을 의미하는 숫자인 것으로 전해졌다. MB 때 국정원 ‘입막음·로비’ 용도로 사용 검·정보 “이번엔 아니다”…남은 건 용산 포장지에 적힌 ‘2022년 5월13일 오후 2시5분59초’는 한은이 검수를 마친 시각이라고 한다. 다만, 한은은 개별 사용권이 어느 시점에 어느 금융기관으로 지급됐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고 한다. 금융기관서 화폐를 요청하는 경우 ▲지급한 금융기관명 ▲지급일자 ▲권종 ▲금액 등만 기록할 뿐, 어떤 사용권 묶음을 제공했는지는 별도 기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관봉권이 지난 대선 기간 전씨가 운영했던 윤 전 대통령 선거캠프 운영비일 수 있다고 보고 금융 흐름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올해 초 당시 네트워크 본부장으로 있던 오을섭씨를 소환조사하면서 양재동 캠프의 운영비 출처를 물어본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서는 해당 관봉권 출처가 불분명한 만큼 특활비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범죄 수사 경험이 풍부한 한 변호사는 “출처를 확인하기 어려운 한은 뭉칫돈은 대부분 특활비”라며 “특활비라면 한은 검수 이후 수천만원 상당의 돈이 필요한 곳은 보통 사정기관이다. 일반적으로 정부 예산은 뭉칫돈으로 전달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결국 사정기관 담당자들을 불러 확인해봐야 하는데 정보기관에서는 특활비 활용 자체가 보안으로 분류돼 확인도 어려울 것이다. 출처 규명에 꽤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와 접촉한 복수의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정원 특활비’는 아니라고 단언했다. 앞서 이명박정부 청와대는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바 있다. 지난 2011년 장진수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주무관은 국정원의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을 폭로했는데, 당시 국정원은 관봉 형태의 특활비 5000만원을 장 전 주무관에 ‘입막음비’로 전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검찰 수사와 공판 등을 통해 청와대서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장 전 주무관에 전달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불분명한 출처 어디? 한 정보기관 관계자는 “과거 국정원 특활비와 흡사해 보이지만 2022년 이후의 특활비 활용이나 대통령실을 통해 쓰인 ‘국정원 특활비’ 등에 대해서 들여다봤을 때 불법적이거나 위법하게 쓰인 사실이 없다. 한 개인에게 갈 일은 더더욱 없다”고 못 박았다. 검찰 관계자도 “남부지검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검찰 특활비는 아니다. 남부지검 수사팀도 검찰과는 상관없는 관봉권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