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판 붙은’ 검찰-공정위 파워게임 내막

  • 김세훈 기자 space0122@naver.com
  • 등록 2018.07.02 10:58:49
  • 호수 11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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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일-김상조 밀리면 집으로

[일요시사 취재 1팀] 김세훈 기자 =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위원장 김상조)를 압수수색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검찰과 공정위가 ‘전속고발권’을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권력을 가진 기관들이 밥그릇 싸움을 할 때 상대방의 비리를 이용해 선수를 치는 방법은 흔한 레퍼토리다.
 

대한민국서 검찰은 기소권을 독점한 기관이다. 공정위 역시 재계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 ‘재계 검찰’이라 불리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어떤 곳일까? 공정위는 불공정거래행위를 규제해 기업들이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기관이다. 특정 기업의 불공정행위가 있으면 적발해 소비자를 보호한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을 위반한 기업에 독자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기 때문에 준 사법기관으로 분류된다.

불공정위원회?
달라진 공정위

이런 권한을 가진 기관임에도 지난 정권까지 공정위는 이렇다할 존재감을 나타내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공정위의 위상은 다르다.

시작부터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갑질 근절'이란 강렬한 취임사로 화제를 모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은 재벌기업에 과도하게 몰려 있는 시장구조를 바꾸고 몇몇 기업의 편법적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주요 의제로 정해 활동했다. 

김 위원장이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한 후 공정위의 존재감은 이전과 확연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두 기관이 최근 불편한 관계로 만났다. 지난달 20일, 검찰은 공정위에 대한 압수수색을 단행했다. 이번 압수수색의 명분은 두 가지다. 먼저 공정위가 기업 비리 혐의를 알고도 눈감아 줬다는 것. 둘째 기업이 공정위 고위 간부들에게 취업을 알선하는 방식으로 보은을 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의 배임과 횡령 혐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서 부영그룹이 분양가를 부풀려 1조원대 부당이득을 챙긴 혐의를 포착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부영그룹의 혐의를 미리 알았지만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기업비리를 알고도 검찰에 고소하지 않은 것은 문제가 된다. ‘전속고발권제도’라는 것 때문이다. 공정거래법과 관련한 사건에 대해선 검찰이 독자적으로 기소할 수 없다. 

공정위가 먼저 검찰에 고발 조치해야 검찰은 해당사건에 대한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공정거래법 위반 사항에 관련한 사건은 이렇게 수사하도록 제도화돼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기업들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하여 공정위의 입단속만 잘하면 불법으로 기업을 운영해도 괜찮은 상황이다.

“전면 폐지” vs “단계적 과정 필요”
논란 많은 전속고발권 두고 신경전

어째서 이런 권한이 공정위에게 있는 걸까?

공정위는 경제 분야에 전문성이 있는 집단이 기업 고발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 형사고발제도처럼 경제관련 전문지식이 없는 집단이 기업 고발권을 가지면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경영활동이 위축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공정위의 주장이 시대착오적 이라는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2014년부터 감사원, 중소기업청, 조달청에도 고발 요청권을 부여했다. 이들 기관장이 고발을 요청하면 공정위는 의무적으로 고발해야 한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제도를 폐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두 수장 회동
엇갈린 주장

5월13일 서초동 대검 청사서 김 위원장과 문무일 검찰총장이 만났다. 그 자리서 양측 수장은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5월29일 대검 관계자는 “김상조 위원장이 대검을 찾은 건 처음 있는 일이다. 전속고발권의 전면 폐지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양측은 공정위가 독점적으로 행사한 전속고발권의 범위를 축소하는 대신, 현행 공정거래법 가운데 형법 적용범위를 대폭 줄이는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전면 폐지는 어렵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전속고발권 폐지에는 동의하지만 단계적 절차와 시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공정위는 담합 행위 가운데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 제도)를 공정위에 그대로 남겨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정위 관계자는 “은밀하게 진행되는 담합 사건의 경우 가담자의 형사 처벌을 감면해주는 자진신고 제도를 폐지하면 단속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이 제도는 행정 처분의 성격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압수수색한 두 번째 명분은 부정 취업 청탁이다. 공정위 고위 간부들이 재취업하는 과정서 공정위의 비호를 받은 기업이 그 대가로 한국공정경쟁연합회, 중소기업중앙회 같은 곳에 취업 알선을 해줬다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4급 이상의 공무원은 퇴직 전 5년, 퇴직 후 3년간 소속했던 부서 또는 기관의 업무와 관련성이 있는 곳에 취업할 수 없다. 그럼에도 공정위가 이 같은 특혜를 관행처럼 여겨 취업한 사실을 묵인해 온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이번 수사가 공정위 흠집내기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검찰이 취업 특혜를 받았다고 지목한 지철호 공정위 부위원장은 중기중앙회 상임감사서 공정위로 오면서 청와대 인사검증을 거쳤고 김 위원장을 도와 재벌개혁 실무를 총괄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공정위는 중기중앙회가 공직자윤리법서 정한 취업제한기관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실제 지난해와 올해 퇴직공직자 취업제한 고시 명단에 중기중앙회는 포함돼있지 않았다. 기획재정부와 중소기업청 출신의 전현직 중기중앙회 간부 2명도 재취업 과정에서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공정경쟁연합회도 취업제한 규정이나 심사 과정서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검찰이 전현직 공정위 간부의 과거 재취업을 형사상 문제가 있는 것처럼 무리하게 엮고 있다”고 반발했다. 
 

법조계의 한 인사도 “검찰이 전속고발권 폐지를 두고 공정위와 협상하는 도중 압수수색한 배경에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검찰은 오래 전부터 내사했고 공정위를 예우했으며 전속고발권과 수사와는 관련이 없다는 입장이다.

턱밑으로 향한 칼날
다음달 최종안 발표

일각에서는 검찰이 김 위원장에게 직접 칼날을 들이민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의 취임 후 직접 구성한 기업집단국을 검찰이 압수수색 했기 때문이다. 

기업집단국은 4대 재벌을 집중적으로 감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김 위원장의 정책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부서다. 다만 기업집단국이 만들어진 시기가 1년도 채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2013년부터 2015년까지 혐의가 있는 부영그룹 비리와 직접적으로 연관 짓기는 어렵다. 


검찰이 김 위원장을 타깃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황이다.

얼마 전 이뤄진 검·경 수사권 조정과 연관이 있는지도 세간의 관심사다. 

지난달 20일 정부서울청사서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에 서명했다. 합의안에 따르면 경찰이 수사하는 사건에 대해 검사의 수사지휘권한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종결권을 부여했다. 검사의 1차적 직접 수사는 특별히 필요한 분야로 한정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검찰과 경찰의 관계를 기존의 수직적 관계서 협력하는 수평적 관계로 설정했다는 평가다. 상대적으로 입지가 좁아진 검찰이 공정위의 압수수색을 통해 검찰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수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로선 무리가 있다.

전속고발권을 놓고 양측이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는 까닭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한 사건들이 대부분 굵직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반에 대한 범죄는 주로 기업들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사건의 규모가 크다.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하는 기관 입장서 전속고발권은 매우 매력적인 권한임이 틀림없다.

현재 검찰과 공정위는 협상 끝에 전속고발권을 선별 폐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폐지를 두고 양측 간 이견이 많이 좁혀져 마지막 절차만 남았다”며 “다음 달 초 최종 결론이 날 것”이라고 밝혔다.

압수수색 배경에 힘겨루기?
 자칫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라

현재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관련 법률은 공정거래법과 하도급법 등 모두 6개다. 이 가운데 가맹법과 유통업법, 대리점법 같은 유통 관련 법안의 전속고발권은 선별적으로 폐지된다. 하도급법은 기술탈취 부문에 한해 폐지 방향으로 잠정 결론났다. 표시광고법은 폐지에 앞서 형벌조항 정비가 필요해 논의가 더 이뤄질 전망이다.
 

최대 쟁점인 공정거래법은 담합 조항 일부를 폐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다만 공정위와 검찰은 공정거래법 위반에 관해 자진신고 시 처벌을 감면해주는 리니언시제에 대해선 아직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사정기관 특권의식
“당장 그만둬야”

전문가들은 이 사안이 한국경제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만큼 검찰과 공정위의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세부적인 조정이 많이 필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검찰과 공정위가 서로 협력하는 자세로 현명히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공정위는 전속고발권 폐지 범위에 관해 토론회를 열고 다음달 최종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에야 공정위가 재벌개혁의 분위기를 맞아 여론의 지지를 받지만 이전까지 공정위는 존재감 없는 기관이었다.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면 고발권 남용으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공정위의 주장은 친기업성향의 정권서나 받아들여질 이야기다. 기업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공정한 거래를 하면 해결될 일이다. 

현재 여론은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것이 검찰의 권한을 더 강화해야한다는 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신이 속한 조직서만 법률을 적용하고 해석해야 한다는 특권의식으로 수사기관들은 몇 십년 째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그들은 공직자들이다. 범죄를 저지른 기업을 잡아내는 일이 각 조직의 파워를 과시하는 게임으로 변질되는 것을 방치해선 안 된다. 공직자는 파벌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나.


<kimsehun@ilyosisa.co.kr>


<기사속 기사> '김상조 포비아' 재계 초비상

“하반기 최대 경영불안요소는 공정거래위원회다”라는 말이 기업 간에 나돌 정도로 공정위의 칼끝이 매섭다. 재계에선 ‘김상조 포비아’가 확산되는 분위기다.

지난달 25일 공정위는 기업 사익편취 금지제도를 도입했다. 대기업 내부 거래 비중 증가에 관한 규제를 강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SK하이닉스는 경쟁사 직원들과 이메일, 메시지 교환을 금지하는 내용의 사내교육을 진행했다. 공정위로부터 반도체 가격을 담합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수 차례 받은 탓이다.

현대차도 공정위 관련 이슈가 보도될 때마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한다. 

LG그룹의 사내 설문에는 '정도경영' 항목이 들어갔다. LG그룹 경영진들이 얼마나 공정한 경영을 하고 있는지 자체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다. 

동국제강 등 철강업체들도 업계 특성상 협력업체와 접촉이 잦은 만큼 업무처리 방식과 금품수수방지에 관한 교육을 하고 있다.

올해 공정위가 기업에 부과한 과징금과 과태료는 6월까지 1258억2334만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공정위 처분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반발하는 사례도 늘었다. 삼성SDS 소액주주들은 지난달 18일 김 위원장이 대기업 SI 계열사 지분 매각을 지시한 이후 주가가 급락했다며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항의하기도 했다. 이후 김 위원장은 "삼성SDS를 두고 한 발언이 아니었다"며 "비상장 계열사를 의미한 것"이라 해명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공정위에 적발된 LS그룹은 공정위의 계열사 부당 지원 심사에 반발하며 소송에 나설 의사를 밝혔다.

몇 군데 기업을 제외한 재계의 반응은 '일단 공정위의 눈치를 보자'는 분위기다. 공정위가 ‘바이러스 99% 제거’라는 제품 홍보 문구를 사용한 삼성전자, 코웨이 등 7개 공기청정기 제조사에 15억6300만원 규모의 과징금, 경고 처분을 내린 것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공정위 기준에 대해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의를 제기하진 않을 예정”이라며 “괜히 나섰다가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냐는 것이 경영진 판단”이라고 전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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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