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충격과 파란의 6·13 ⑥화제의 당선자 10인

사연도 가지각색 사정도 각양각색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6·13지방선거가 마무리됐다. 선거는 끝났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당선인들이 있다. 남들과는 다른 사연 때문에 거머쥔 색다른 타이틀 때문에 화제의 중심에 선 이들. 화제의 당선인들을 뽑아봤다.
 

조은희 서초구청장이 전형적 ‘보수텃밭’으로 알려진 ‘강남 3구’에 푸른 바람이 분 가운데, 당선의 기쁨을 안았다. 조 청장이 주목받는 이유는 서울 25개 자치단체 중 유일하게 당선된 자유한국당 후보였기 때문이다. 

서초구청장 조은희

그는 1961년생 경북 청송 출신으로 경북여고, 서울대 대학원서 국문학 석사를 학위를 받았다. 이후 <영남일보>와 <경향신문> 등 언론서 10년간 기자생활을 했으며, 지난 1998년부터 3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행사기획비서관과 문화관광비서관을 역임했다.

이후 회사 및 시민단체 대표와 교수직을 맡다가 2008년 서울특별시 여성가족정책관으로 일했으며 2010년부터 1년여간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직을 맡아 일했다. 
 

당시 조 청장은 ‘국내 첫 여성 부시장’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전통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정무 파트를 맡아 좋은 평가를 받았으며 부시장 퇴임 후에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후학 양성에 힘썼다. 


지난 2014년 ‘민선 6기’ 서초구청장에 출마, 성공해 구청장직에 올랐으며 지난달 연임을 꿈꾸며 또다시 도전해 당선의 기쁨을 안게 됐다. 

성남시장 은수미

은수미 성남시장이 첫 대도시 여성시장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제2의 강남’으로 불리는 부촌(富村) 분당을 품은 성남은 이재명 전 시장의 경기지사 출마로 무주공산이 된 선거구다. 선거 초반부터 은 시장은 상대 후보의 거센 네거티브 공세에 도덕성 시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의혹이 커지자 민주당은 최고위원회의서 재심 여부를 논의하기도 했지만, 곧 후보로 확정됐다. 개표결과, 상대적으로 진보성향 후보에게 우호적인 성남 구시가지인 수정(59.64%)·중원(60.25%) 외에 분당(55.69%)서도 과반을 넘겼다. 
 

득표율 2위인 한국당 박정오 후보(수정 27.59%-중원 28.7%-분당 33.75%)를 압도했다.

은 시장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역임한 노동전문가로 지난 19대 국회서 비례대표 의원을 지냈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 통과를 반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에 나서 무려 10시간18분 동안 연설해 정치인으로서 주목받기도 했다. 


이후 20대 총선 때 성남 중원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문재인정부서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을 지냈다. 

영등포구청장 채현일

채현일 영등포구청장이 3선을 노리던 현역 구청장, 3선 시의원과의 경쟁을 뚫고 당선에 성공했다. 채 후보는 득표율 52.1%%를 기록, 김춘수 자유한국당 후보(25.2%)를 압도적인 차이로 앞서 당선을 결정지었다. 

이번 영등포구청장 선거는 민주당 공천에 탈락한 현역 조길형 구청장이 탈당 후 무소속으로 출마해 다자 구도로 치러졌다. 한국당은 3선 서울시의원인 김춘수 후보를 공천했으며 미래당은 두차례 구청장 선거에 도전한 경험이 있는 양창호 후보를 투입했다. 

여풍 버틴 서초, 성남 첫 여성시장 당선
무소속 3선 기장, 8전8승 불패 충북지사

총 5명이 도전장을 내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채 청장은 50%를 넘기며 여유있게 승리를 거뒀다. 박원순 시장 정무보좌관, 문재인정부 청와대 행정관을 거친 국정·시정 경험이 풍부한 ‘젊은 구청장’을 앞세워 구민들을 파고든 것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채 청장은 “그동안 갈고 닦았던 청와대 국정경험과 서울시정 경험, 국회 정책경험을 살려 새로운 영등포를 만드는데 혼신의 힘을 쏟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채 청장은 1970년 7월26일생으로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기장군수 오규석

오규석 기장군수가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양당 후보를 가볍게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지난 두 번의 선거를 내리 무소속으로 당선된 오 군수의 저력은 민주당 바람도 잠재웠다. 오 군수는 ‘기장 나훈아’로 불릴 정도로 유명 인사다. 
 

보통 20대 젊은 계층은 기초단체장 후보의 이름을 잘 모르지만, 그만은 예외다. 1년 동안 계절을 가리지 않고 하얀 목티셔츠에 파란색 재킷, 그리고 등산화만 고집해 ‘현장형 군수’의 대명사로 불렸다. 

유세 방법도 입소문을 타고 높은 득표율을 이끌었다. 오 군수는 대규모 유세를 벌이지 않고, 아내와 단둘이서 기장을 누비는 조용한 유세로 실속을 챙겼다. 

기장은 농촌과 신도시의 특징이 섞여 있는 도농 복합도시지만, 오 군수의 득표는 도심과 농촌을 가리지 않았다. 매일 이른 새벽 출근하는 근면함과 행사마다 큰절을 올리며 어르신을 챙기는 모습으로 노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특히 젊은 계층이 많이 사는 정관에는 민주당의 이현만 후보가 앞설 것이라는 예측이 있었지만, 오 군수는 이런 예상을 깨듯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충북도지사 이시종

이시종 충북도지사가 ‘8전8승 불패신화’를 세웠다. 이 지사는 오전 1시10분 기준 60.76%(37만2810표)의 득표율을 올려 자유한국당 박경국(29.92%, 18만3606표), 바른미래당 신용한(9.30%, 5만7108표) 후보를 꺾고 충북지사 3선에 성공했다. 

그는 이번 충북지사 당선으로 8번 선거에 나서 8번 모두 승리하는 ‘불패’ 기록을 달성했다. 1947년 충북 충주서 태어난 이 지사는 충주중, 청주고,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행정고시(10회)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995년 민자당 소속으로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주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된 그는 민선3기까지 내리 충주시장을 지냈다. 이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충주지역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18대 국회에도 무난히 입성했다. 

2010년 당시 한나라당 정우택 충북지사에 맞설 대항마가 나오지 않자 직접 의원직을 포기하고 민주당 후보로 나섰다. 


초반 열세를 극복하고 충북지사에 당선된 그는 2014년, 2018년 지방선거서도 연승을 이어감으로써 선거서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정치인이 됐다. 

연수구의원 조민경

조민경 연수구의원이 전국 최연소로 정치에 입문한 여성이 됐다. 대한민국 정치 입문을 위해선 ‘만 25세 이상’이 돼야만 한다. 하지만 피선거권이 주어진다고 해도 정치 문턱을 넘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조 의원은 2017년 2월 서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 후 더불어민주당 가입과 동시에 6·13지방선거에 출마해 당선의 깃발까지 꽂았다. 
 

젊은 패기로 똘똘뭉친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유세차를 쓰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뚜벅뚜벅 걸어다니며 자신을 알렸다. 시민들도 선거운동기간 동안 패기있고 성실하게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그를 보며 조민경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6·13지방선거 개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현 연수구의원인 자유한국당 이강구(45) 당선인 보다 4419표를 더 받은 2만1305표를 끌어모으며 당당히 1위로 이름을 올렸다. 

조 의원은 “이젠 최연소 의원이라는 딱지를 떼고 연수구 의원으로서 주민분들이 필요로 하는 곳엔 어디든지 달려가 주민분들과 소통하고 문제점을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감을 말했다. 

구미시장 장세용

장세용 구미시장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고향이자 보수 텃밭의 상징이었던 경북 구미서 당선됐다. 장 시장의 당선은 이변이라 할 만하다. 보수 성향이 강한 대구·경북지역 단체장 중 유일한 민주당 당선자이자 구미시장으로는 첫 민주당 계열 출신이기 때문. 
 

장 시장의 당선은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 요인이 겹친 데 기인한 것으로 분석됐다. 북미·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한반도 평화 흐름과 한국당에 대한 실망 등 외부 요인에 내부적으로 진보 후보인 장 시장에 맞설 보수 후보 3명이 난립한 게 당락을 결정짓는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8선 신기록 군의원, 구미·TK 유일 민주 깃발
25세 최연소 여성의원, 4년 만의 신안군수

특히 선거 쟁점의 하나로 부각된 대구취수원 구미 이전에 장 시장은 반대 입장을 보인 반면 한국당 이양호 후보는 당론 때문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어중간한 태도를 보인 것도 당락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젊은 층의 높은 투표율이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역 정가에선 이번 선거서 ‘샤이진보’ 유권자들이 사전투표 등 선거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을 당선의 원동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안양시장 최대호

최대호 안양시장(더불어민주당)이 전·현직 시장 간 네 번째 맞대결서 승리했다. 최 시장과 자유한국당 이필운 후보의 전적은 지난 2007년 안양시장 재선거서 이 후보가, 2010년 지방선거에선 최 시장이 승리해 각각 1승1패를 기록하다 지난 2014년 선거서 이 후보가 다시 승리했다. 

이번 선거에선 바른미래당 백종주 후보가 두 후보의 치열한 선거판에 가세하면서 선거 구도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각종 변수에도 불구, 치열한 접전이 예상됐던 이번 선거서 예상과 달리 최 시장이 두 후보를 따돌리며 탈환에 성공했다. 

최 시장은 “오늘의 승리는 최대호의 비전과 정책 그리고 깨끗한 준법 선거운동을 올바르게 평가해 주신 안양시민의 위대한 승리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며 “시민 최대호가 지난 4년간 안양시민께 배운 대로, 들은 대로, 약속드린 대로 그 약속 실천해 안양시민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이겠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한편, 이번 선거서 이 후보가 패배하면서 전·현직 시장 간 맞대결 결과는 2승2패로 동수를 기록하게 됐다. 

신안군수 박우량

박우량 신안군수가 4년 만에 재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박 군수는 무소속 고길호 후보와 막판까지 가는 접전 끝에 힘겨운 승리를 거뒀다. 

박 군수는 지난 2006년 지방선거서 당선돼 재선에 성공한 고 후보가 취임도 하지 못한채 퇴진한 이후 실시된 재선거서 당선됐다. 
 

이후 재선에 성공하면서 낙후된 신안군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 하지만 당선이 확실시 됐던 2014년 지방선거의 중도사퇴를 두고 갖은 억측에 시달려야 했다. 당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세월호사건의 ‘유병언 연루설’과 ‘비리 수사’ 등의 루머가 꼬리를 물었다.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당에서 권유했던 입당을 두고 민주당 중앙당은 후보 자격을 박탈했고 그는 무소속 출마로 선회해야 했다. 추미애 당 대표실 부실장을 전략공천하면서 유력한 경쟁자인 박 군수를 밀어내기 위한 잔꾀였다는 것을 자인하고 말았다. 

박 군수는 “신안군민은 정당을 넘어서 인물과 능력을 보고 무소속 후보인 저를 선택했다”면서 “정치적 의사결정에 자율권을 보여주신 주민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영광군의원 강필구

강필구 영광군의원(더불어민주당)이 8선 도전에 성공하면서 전국 최다선 신기록을 수립했다. 강 의원은 전국적으로는 경북 안동시의회 무소속 이재갑 후보와 공동으로 8선 진기록을 수립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서 2명을 선출하는 영광군 가 선거구에 출마해 7명 중 1위(23.9%)로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강 의원은 1991년 당시 40세의 나이로 지방의회에 첫 입성한 뒤 내리 연이어 당선되는 저력을 과시했다. 

당선 이력을 살펴보면 이번 선거까지 민주당 2차례, 무소속으로는 6차례 당선됐다. 직업이 ‘군의원’이자 ‘의리의 정치인’ ‘민원 해결사’로 통하는 그는 ‘강필구를 사랑하는 모임’ 등 절대불변의 탄탄한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다. 

통상 기초의원 3선을 한 경우에는 광역(도)의원에 도전하는 후보들이 많지만 강 의원은 27년간 한결같이 ‘주민 곁에서 호홉’하는 군의원의 길만 고집해왔다.

강 의원은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주민이 행복한 영광을 만드는 심부름꾼이 되어 지역발전을 앞당기고, 영광을 지키는 빛과 소금이 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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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