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괴물’ 넷플릭스의 독주 내막

  • 김세훈 기자 space0122@naver.com
  • 등록 2018.06.11 11:07:58
  • 호수 11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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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한국? 미드 어디까지 봤니?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세훈 기자 = 현대인들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실시간 스트리밍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구조적 변화를 마친 미디어 시장서 전 세계를 단일 시장으로 묶어낸 기업 넷플릭스(Netflix)를 소개한다.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영역의 사업을 가능케 했다. 스트리밍이 가능해지자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사업자가 나타났다. 지난 2005년 유튜브(YouTube)가 등장해 개인 미디어 시장의 글로벌 플랫폼을 구축했다. 이어서 2009년 넷플릭스가 등장했다. 넷플릭스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고도화된 콘텐츠를 제공하는 플랫폼이다. 미국 시장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는 지난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을 시작했다.

분할시장서 
단일시장으로

방송이 주를 이룬 시대의 미디어 산업은 국가별로 독자적인 환경서 발전했다. 방송 서비스는 공공자원인 주파수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뉴스 같은 영역은 국가별로 다른 시스템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스트리밍을 이용한 엔터테인먼트 영역은 세계 시장으로 확대, 통합되고 있다.

기존의 미디어 시장은 광고 시장의 부산물에 가깝다. 지난 2016년 방송통신위원회가 발표한 ‘국내 방송 시장 매출 구조 분포’에 따르면 국내 방송 시장 규모는 약 7조원이다.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인 3조8000억원이 광고 시장서 발생했다. 

프로그램을 판매해 발생한 금액은 전체 수익의 약 30%에 머물렀다. 해외 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광고 기업 덴쓰(Dentsu)가 발표한 2017년 자료에 의하면 지상파 방송전체 매출의 44%가 광고 수익이다.


TV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대부분은 광고를 시청하는 대가로 만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각 나라별 미디어 시장의 규모는 그 나라의 광고시장의 규모에 비례한다.

다만 미국의 미디어 시장은 약간 다르다. 미국은 광고수익에 비해 소비자에게 직접 받는 사용료의 비중이 더 크다. 이는 콘텐츠 제공업자들이 방송사에게 지속적으로 사용료 인상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유료방송 서비스 가격은 평균 50달러 이상이다.

결과적으로 미국의 미디어 시장은 광고 시장서 유입되는 막대한 자금과 소비자에게 거둬들인 이용료가 더해져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큰 미디어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미디어 시장서 사용자에게 이용료를 받는다는 의미는 크다. 완성도 높은 콘텐츠를 만드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좋은 콘텐츠는 시청률을 높인다. 높은 시청률은 다시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는 원동력이 된다.

특히 스포츠 시장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진다. 유럽의 축구 산업이 그렇다. 연봉이 높은 선수와 감독을 리그에 영입한 결과는 경기력 향상으로 이어진다. 수준 높은 경기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인다. 결과적으로 현재 유럽축구는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

이러한 구조에 소비자의 이용료가 더해지면 시장은 급격히 확대된다. 미국의 스포츠 시장을 예로 들 수 있다. 지난해 포브스가 발표한 미국 내 2016·2017 시즌 스포츠 리그의 사업 규모는 연간 36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는 유럽 축구리그를 모두 합친 규모의 세 배에 이른다.

전 세계 집어삼킨 콘텐츠 공룡
투자 연 8조원…비교대상 없어


다국적 공인회계기업 PwC가 2017년 발표한 NFL(미식축구리그)의 매출 구성표에 따르면 티켓 판매 수익이 전체의 27.9%, 광고 수익 24.2%, 중계권 수익 27.6%, 기념품 판매 수익이 20.2%로 미국의 스포츠 중계료는 광고 수익을 넘어선다.

글로벌 미디어 시장도 비슷한 구조다. 넷플릭스를 비롯한 스트리밍 사업자들은 소비자에게 콘텐츠 이용료를 받는다. 그럼에도 미국 내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률은 60%에 이른다. 유럽과 아시아서도 유료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글로벌 시장 조사기관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는 2017년 기준 국내 스트리밍 유료회원 수를 38%로 집계했다.

넷플릭스는 광고시장에 의존하던 기존의 미디어 시장의 틀을 깨고 자생력을 갖춘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의 창업자 리드 헤이스팅스(Reed Hastings)는 우편을 이용해 DVD를 대여해주는 아이템을 가지고 1997년 넷플릭스를 창업했다. 

미국의 넓은 토지면적 때문에 DVD의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한 점을 공략한 사업이었다. 사업은 순조로워 보였으나 DVD시장이 VOD 스트리밍 시장으로 바뀌며 넷플릭스는 위기를 맞았다. 

이에 넷플릭스는 미디어 콘텐츠를 구입해 제공하는 개념의 스트리밍 플랫폼을 만들어 서비스하는 것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케이블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무제한 시청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젊은 층의 큰 호응을 얻었다.

지속적으로 미디어 콘텐츠의 가격이 오르자 넷플릭스는 자체적으로 상품을 만들었다. 지난 2013년 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를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를 만들어 독자적 미디어 상품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높은 완성도를 선보이며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었다. 넷플릭스의 독자적 컨텐츠는 새로운 가입자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스트리밍 시장서 콘텐츠와 플랫폼의 결합 시너지는 막강하다. 넷플릭스에 가입하면 한 장의 영화표로 하나의 영화를 보는 것과 달리 누적된 콘텐츠를 모두 시청할 수 있다. 전 세계 1억2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들로부터 매월 거둬드리는 수입은 수 조원 규모다. 

이 돈은 다시 넷플릭스의 독자 콘텐츠 개발에 투자로 이어진다. 넷플릭스가 밝힌 작년 한 해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비용은 약 60억달러(약 6조원)다. 넷플릭스는 올해는 80억달러(약 8조원)를 자체제작 콘텐츠에 투자할 계획이다.

광고 넘어선 
판권수익 

넷플릭스가 만든 미디어 콘텐츠는 양적, 질적으로 후발 사업자들과 격차를 벌리고 있다. 아마존(Amazon)과 훌루(Hulu) 같은 경쟁사도 자체 콘텐츠 제작을 통해 유사한 사업 전략을 유지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그 규모나 비용 측면서 넷플릭스와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재 미디어 생태계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유투브 프리미엄(YouTube Premium), 아마존, 에이치비오(HBO), 훌루, ESPN+ 등이 스트리밍 산업을 점유하고 있으며 디즈니(DiSney)와 애플(Apple)도 시장에 진입할 전망이다.


기존 미디어 시장서 확고한 입지를 누리던 디즈니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의 변화에 고전했다. 디즈니는 케이블 가입자 감소에 따른 매출 감소를 상쇄하기 위해 지난 4월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작년 12월 ‘21세기 폭스’가 보유한 판권을 인수해 콘텐츠 강화에 나섰으며, 오는 2019년에는 넷플릭스와 같은 자체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을 갖고 있다. 미디어 업계는 디즈니의 시장진입이 늦은 것 아니냐는 평가와 디즈니의 막강한 콘텐츠 라이브러리가 넷플릭스와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항마라는 평가를 동시에 내놓고 있다.

아마존은 스트리밍 서비스를 맴버십 가입자 확대 방안으로 활용하고 있다. 아마존 프라임(Amazon Prime)은 연회비 199달러(약 12만7000원)에 ‘전국 이틀 내 무료 배송’을 보장하는 서비스다. 

아울러 각종 영화나 TV 프로그램의 스트리밍을 무료로 제공한다. 현재 아마존 프라임의 가입자 규모는 1억명 정도다. 아마존이 스트리밍 서비스를 위해 쓰는 콘텐츠 구매 비용은 연간 4조8000억원 수준이다. 아마존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회원들의 시선이 상품구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미국 내 아마존 스트리밍 이용률은 넷플릭스와 훌루에 이어 3위에 해당한다. 다만 190개 국가와 제휴를 맺고 활발한 로컬 콘텐츠를 제작·보급하는 넷플릭스와 비교해 9개 국가(미국, 캐나다,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멕시코)서 서비스하고 있다는 측면서 넷플릭스와 비교해 한계를 갖고 있다.

신규 가입자
증가 선순환


음원 플랫폼 시장도 스트리밍 산업의 진출 작업이 한창이다. 지난 2015년 6월 출시해 올해 4월 기준 가입자 수 4000만명을 넘은 애플뮤직은 가수들과 팬들의 직접 소통을 가능케 하는 커넥트(Connect)기능을 제공하는 등 음악 관련 콘텐츠를 바탕으로 스트리밍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올해 애플뮤직은 스트리밍 콘텐츠 개발 비용으로 10억달러(약 1조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지난 2017년부터 스티븐 스필버그 같은 유명 감독 및 배우들과 ‘Amazing Stories’ ‘Central Park’ 같은 자체 콘텐츠 제작 계약을 체결했다. 

애플뮤직은 이르면 내년 초 공식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직까지 선두 사업자인 넷플릭스와 콘텐츠 비용 격차는 상당히 큰 편이다.

지난 2016년 해외사업을 시작한 넷플릭스는 앞으로 빠르게 신규가입자 수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1억2000만명의 유료 가입자 가운데 해외 가입자 수는 전체의 54%로 미국 내 가입자 수를 넘었다.
 

현재 미국의 가입자는 5500만명으로 전체 가구 수 대비 보급률은 44%에 이른다. 그럼에도 연간 10% 이상의 성장세가 유지되고 있다. 이미 성숙단계로 진입한 미국 시장과는 달리 해외 시장의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초기단계에 불과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앞으로 충분해 보인다.

해외 시장서 넷플릭스가 향후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정량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국가별 소득수준과 미디어 산업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 내 영화시장 규모와 해외시장의 규모를 비교해 넷플릭스가 해외 시장서 얼마나 힘을 발휘할지 추정해볼 수 있다. 

영화 산업의 규모는 전반적인 미디어 콘텐츠의 구매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가 진출하지 못한 중국시장을 제외한 글로벌 박스오피스는 약 221억달러(약 23조6700억)이다. 이는 미국시장 내 영화산업 규모인 100억달러(약 10조원)의 2배 이상이다.

단순히 영화산업으로 비교했을 때 넷플릭스의 해외 가입자 유치는 미국 시장의 2배 이상 까지 예상해볼 수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앞으로 2021년 까지 넷플릭스의 전체 가입자가 매년 8%씩 증가해 2억5000만명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추정했다.

디즈니 아성 무너뜨려
고 퀄리티로 경쟁력 견인

넷플릭스는 지난 2007년 첫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현재 넷플릭스의 월간 이용료는 10.99달러(약 1만2000원)다. 지난해에는 13.99달러(약 1만5000원)의 프리미엄 요금제를 출시해 연평균 8%이상의 높은 증가세를 보였다.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는 가입자 이탈이나 신규 가입자의 증가세가 둔화하는 움직임은 관찰되지 않고 있다. 넷플릭스가 제공하는 콘텐츠와 플랫폼의 가치가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높게 인식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소비자가 느끼는 넷플릭스 서비스의 가치는 누적된 콘텐츠 양에 비례한다. 넷플릭스의 일반 요금제는 영화 한 편을 관람하는 금액에 불과하지만 각종 드라마, 영화, 다큐멘터리를 비롯해 다양한 장르의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시청할 수 있다는 점이 소비자들을 만족시키고 있다. 

특히 흥행에 성공한 드라마는 시즌제를 도입해 소비자의 충성도를 높이는 데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또한 넷플릭스 플랫폼은 TV, PC, 스마트폰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기기서 콘텐츠를 관람할 수 있게 한다. 미디어 소비 패턴이 다변화된 시대에 이용자가 느끼는 가치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넷플릭스의 핵심 경쟁력은 콘텐츠에 있다. 지난 2013년부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에 집중적으로 투자한 결과 여러 편의 드라마가 시리즈로 흥행했다.

흥행에 성공한 대표작들로는 <하우스 오브 카드> <센스8> <기묘한 이야기> 등이 있다. 이 시리즈 들은 콘텐츠 질적인 면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하우스 오브 카드>는 골든 글로브 2회 수상과 에이미 상을 7회 수상했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데어데블> <기묘한 이야기> 같은 다른 시리즈들도 각종 유명 콘텐츠 시상식에 여러 차례 거명되고 수상한 바 있다.

독자 콘텐츠 제작은 작품의 완성도와 플랫폼의 역량이 뒷받침돼야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전략이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과감한 투자와 매니지먼트를 통해 지속적인 신규 가입자들을 유치하고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는 현재 높은 브랜드 가치를 구축한 상황이다. 투자확대가 새로운 가입자를 유치하는 순환 구조를 계속 강화시켜 나갈 것으로 보인다.

스트리밍 시장 
몰리는 기업들

넷플릭스는 현재 매출의 약 50%를 콘텐츠 제작비로 사용하고 있다. 현금 기준으로는 매출의 80%를 제작비로 사용해 발생하는 손실을 투자금으로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넷플릭스가 계획한 콘텐츠 제작비용은 8조원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가입자 유입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고 있다.

삼성증권 리서치센터 양승우 CFA는 “넷플릭스는 가입자당 콘텐츠 비용은 일정 수준에 유지되고 있는 반면 가입자당 매출은 지속 증가하고 있어 영업 레버리지 효과가 강하게 나타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며 “콘텐츠 비용 상승에 따른 높은 부채비율이 주요 리스크 요인으로 판단되지만 오리지널 콘텐츠를 통한 가입자 유입 효과가 극대화 되면서 가입자당 콘텐츠 비용이 안정화되고 있어 콘텐츠 투자가 완만해지는 시점부터 가파른 이익 성장이 예상된다”고 평가했다.


<kimseh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뉴욕증시 3대장 넷플릭스-아마존-페이스북

중국과 미국의 무역전쟁, 유럽의 정치적 불확실성 같은 악재 속에도 넷플릭스, 아마존, 페이스북 주가는 오히려 오르고 있다.

지난달 29일(현지시각) CNN머니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은 1530억달러(약 163조3000억원)로 디즈니와 컴캐스트를 앞질렀다. 넷플릭스의 주가는 올해만 85% 상승했다. 현재 아마존의 시가총액은 약 7800억달러(약 842조6500억원)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을 앞선다.

현재 아마존보다 시가총액이 높은 회사는 애플 뿐이다. 아마존은 올해 들어 40% 가까운 성장세를 보였다.

지난 미 대선 국면서 가입자의 정보를 공화당쪽에 흘렸다는 혐의로 지난 3월 홍역을 치른 페이스북도 10%가까이 떨어진 주식을 5%까지 끌어 올렸다. 

뉴욕 증권가가 급격한 하락과 반등을 반복하는 가운데 이 종목들의 안정적인 상승은 눈여겨 볼만하다. 투자자들은 넷플릭스, 아마존, 페이스북이 최소한 하루아침에 폭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이날 CNN머니는 “어느 날 사람들이 넷플릭스서 좋아하는 채널을 보지 않고, 아마존서 식료품을 더 적게 구매하고, 페이스북에 포스팅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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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