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4주민투표 후폭풍>오세훈이 남긴 파장 & 서울시 과제

철없는 ‘강남시장’ 자존심에 혈세 500억 날렸다

[일요시사=이주현 기자]여권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투표율 미달(25.7%)로 투표함 개봉조차 하지 못하고 끝났다. 이는 오 전 시장의 사퇴시기를 둘러싼 당 지도부와 청와대의 입장차, 차기 시장 재보선 문제, ‘오세훈 표’ 정책의 제동 등 정치권에 메가톤급 후폭풍을 몰고 왔다. 하지만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강한 오 전 시장은 끝끝내 자진사퇴를 강행했다. 이로써 여·야 할 것 없이 차기 서울시장 후보 물색에 분주한 모습이고, 10월 국정조사 이후 사퇴를 주장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오세훈의 덫’에 빠졌다는 평가와 함께 깊은 한숨을 내쉬는 모양새다.

청와대·한나라당의 반대에도 끝끝내 사퇴 강행해
홍준표, 오 전 시장 문전박대 “더 이상 볼일 없다” 

오세훈은 역시 ‘강남시장’이었다. 전체 투표율 25.7%를 기록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30%이상을 기록한 곳은 서초구(36.2%), 강남구(35.4%), 송파구(30.6%) 3곳에 불과했다. 더구나 주민투표 개표 가능 마지노선을 넘은 곳은 두 곳에 그쳤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투표율 25.7%를 보인 이번 주민투표가, 작년 6·2지방선거 때 오세훈 후보를 찍은 유권자의 수를 웃돈 점을 들면서 내년 총선에도 ‘청신호’가 켜졌다고 기대 섞인 평가를 내놓았다.

한나라당은 내년 총선에는 기대감을 나타냈지만 10월 재보선에 대해서는 불안감을 나타내며 4월 재보선을 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 전 시장의 전격 사퇴로 10·26 재보선이 확정되고 당내 갈등과 혼선이 이어지며 여권 전체는 혼란에 빠졌다.

약속 깬 ‘오세이돈’
격분한 ‘홍반장’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 무산이 공식 확정된 후 굳은 표정으로 서울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시민들의 뜻이 오롯이 담겨있는 그 투표함을 개봉조차 할 수 없게 돼서 참으로 안타깝다”며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어 “투표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여러 가지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불구하고 투표에 참여해주신 서울시민 여러분, 그리고 유권자 여러분께 고개 숙여서 감사드린다”며 자신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에게만 고마움을 표시했다.
 
투표 직후 거취를 밝히겠다고 밝힌 오 전 시장이었지만 그는 이 같은 말만 남기고 일문일답도 없이 서둘러 기자회견장을 빠져 나갔다.

서둘러 자리를 옮긴 오 시장은 서울의 모처에서 홍준표 대표, 임태희 대통령실장, 김효재 청와대 정무수석과 심야 회동에 참석해 거취문제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홍 대표·임 실장·김 수석 모두 “당장 사퇴는 안된다. 사퇴시점을 10월로 넘겨야 한다”며 시장직 사퇴 시점 연기를 강력히 촉구했다.

특히 홍 대표는 투표 무산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오 시장이 승리 했다고 본다”고 궤변(?)을 늘어놓으면서까지 오 전 시장을 감싸며 사태를 추스리려 애썼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오 전 시장의 고집은 꺾지 못했다.

오 전 시장은 주민투표 무산 이틀뒤인 지난 8월 26일 긴급 기자회견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한다”며 “이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밝히며 사퇴를 강행했다.

이는 홍 대표를 격노하게 만들었다. 오 전 시장이 사퇴한 26일 조찬 간담회를 가진 홍 대표는 “어젯밤(25일) 10시쯤 오세훈 시장이 집으로 찾아왔기에 쫓아내면서 ‘앞으로 다시는 볼 일 없을 것’이라고 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오 전 시장에 대해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홍 대표는 이어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특히 비공개회의에서 오 전 시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그는 “어떻게 개인의 명예만 중요하냐. 오 시장이 당이나 국가를 도외시하고 자기 모양만 중요시한다”며 “당이 어떻게 되든, 10월 재보선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것 아니냐. 그런 식으로 하려면 혼자 정치하지, 왜 조직으로 하느냐”고 쏘아붙였다.

홍 대표는 앞서 오 전 시장의 즉각 사퇴 방침을 전해 듣고 “오 시장한테 세 번 농락당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 대표가 언급한 ‘세번 농락’은 당과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주민투표를 강행한 것, 주민투표율과 시장직을 연계한 것, 10월초 사퇴약속을 번복하고 즉각 사퇴를 결행한 것 등으로 당 지도부는 이들 사안에 대해 모두 강력 반대했었다.

김기현 대변인은 “홍 대표의 설명을 듣고 간담회의 참석자들 모두 ‘이제서야 수긍이 간다’는 분위기였다”며 “지도부 책임론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홍 대표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10월 보궐선거가 치러지면 홍 대표로선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만약 한나라당이 패배해 야권에 시장직을 빼앗길 경우 가장 먼저 지도력 문제가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사태를 잘 수습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오 시장의 결단으로 인해 보수세력이 결집한 만큼 오 시장만 ‘보수의 아이콘’으로 주목 받을 뿐 승리의 공이 홍 대표 몫으로 돌아갈 공산은 거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내년 총선에서의 ‘홍준표식 공천’을 통해 ‘홍당’ 체제를 굳히고 내심 차차기를 도모하고 있는 홍 대표로선 중대한 변수이자 차질이 불가피하다.

홍 대표로서는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관계없이 오 전 시장이 기획하고 주도한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인해 시련의 시간을 맞고 있는 셈이라 화가 날 만도 하다.

오세훈 파장
당·청 대혼란 야기

오 전 시장의 사퇴 불똥은 청와대에도 튀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8월 18일 선거를 독려하며 부재자투표를 했고, 라디오 연설에서 “선심성 복지로 국가부도 위기에 이른 남유럽 국가들의 사례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다”고 지원사격을 했음에도 주민투표에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투표 후 최측근인 임 실장과 김 수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퇴를 감행한 것은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는 증거라는 분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주민투표는 무상급식 확대에 대한 의사를 묻는 정책투표”라며 “투표 결과를 향후 정국운영과 연결지어 확대 해석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선을 그었다.

친박계에서 제기한 의혹도 청와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올해 초 박형준 사회특보가 ‘무상급식 문제를 복지포퓰리즘과의 대결구도로 몰고 가면 보수층을 결집시켜 우리가 이길 수 있다’며 도와달라고 요청했다”며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를 하자고 권유한 사람은 박 특보인 걸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박 특보는 지난해 말 서울시의회와 극한적으로 대립하던 오 전 시장에게 ‘주민투표에 부쳐 승부수를 띄워라. 이기면 보수의 영웅이 된다. 박근혜 전 대표의 대항마가 될 수 있다’는 취지의 얘기를 했다는 게 여권에 퍼져 있는 정설”이라고 주장했다.

친박계의 한 중진의원도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주민투표에 거부반응을 보인 것도 박 특보의 의도를 의심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차원에서 주민투표에 개입한 적은 없다”고 말했고 박 특보도 “어이없는 마녀사냥”이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조기 등판론’ 무르익어, 10·26재보선 활약?
급제동 걸릴 오세훈표 정책과 복지, 어떻게 되나?


당내분란도 불가피해 보인다. 무엇보다 “주민투표는 서울시민의 일”이라며 오 전 시장의 지원 호소 러브콜을 끝끝내 거절한 박 전 대표의 책임론을 거론하는 목소리가 높다.

실제 친이계를 중심으로 당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가 너무 수수방관했다”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친박계 의원들이 반발하고 나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화해무드 속에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던 계파갈등이 재현될 우려도 점쳐지고 있다.

10월 재보선에 박 전 대표의 ‘조기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는 본격적인 대선행보의 시점을 내년 초로 설정하고 있는 박 전 대표에게 여간 부담스러운 대목이 아니다.

반면 민주당은 선거 승리로 정국의 주도권을 가져오며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

내년 총선과 대선의 최대 화두로 떠오른 복지에서 승리했다는 의미도 있다. 투표 불참 운동을 주도해 성공하면서 제1야당의 명분을 지켰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시작된 상승세를 이어간 점도 수확이다.

주민투표 결과는 여야의 내년 총선·대선 전략에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무상급식’을 ‘복지 포퓰리즘’으로 선을 그은 여권도 복지 확대를 요구하는 민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앞으로 ‘복지경쟁’이 가열될 공산이 커 보이는 이유다.

전면 중단, 축소 위기
‘오세훈표 정책, 복지’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오 전 시장의 전격 사퇴로 그동안 추진되던 한강르네상스, 뉴타운, 서울형 그물망 복지 등 이른바 ‘오세훈표 정책’에 급제동이 걸릴 전망이라는 것이다.

권영규 행정1부시장 권한대행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서울시는 시의회가 강력 반발하고 있는 일부 사업의 경우 전면 중단 또는 축소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먼저 오 시장이 애착을 갖고 추진해온 한강 르네상스(한강 공공성 회복 선언) 사업은 궤도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한강 르네상스는 한강을 시민 품으로 돌려준다는 취지로 한강 주변 경관과 문화시설, 생태계 복원 등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서울항, 한강예술섬, 세빛둥둥섬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사업내용에 대해 시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등 야권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고 환경 파괴가 예상된다며 줄기차게 반대해 왔다.

압구정·여의도·합정·성수·이촌 등 한강변 5곳에 대한 재개발사업도 차질이 예상된다. 당초 시는 땅 일부를 기부채납 받아 공공용도로 활용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기부채납 비율을 두고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사업 추진동력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뉴타운사업도 재검토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사업성이 나빠지면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뉴타운 내 존치구역을 해제하고 휴먼타운 조성 등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대안을 내놨지만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디자인서울도 일부 수정될 공산이 커졌다. 막대한 사업비와 야권의 반발 등에 부딪쳐 있기 때문이다. 주요 사업은 서울신청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광화문광장, 디자인서울거리 등이다. 다만 이미 상당부분 진행 중인 신청사나 DDP 등은 그대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한강 북측인 북한산과 남산, 용산을 거쳐 남측인 관악산에 이르기까지 녹지축을 조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남산 르네상스사업도 고비를 맞았다. 주민 반발, 경제적 효과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김창수(건설위원회) 시의원은 “오 시장이 자신의 치적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하던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서울 등의 사업은 재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당론”이라며 “현실적으로 전면 중단이 쉽지 않은 뉴타운사업이나 정책효과가 드러난 장기전세주택 등의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복지정책은 크게 흔들리지 않을 전망이다. 현재 ‘서울형 그물망 복지’라는 이름으로 추진되는 정책은 저소득층 저축액의 2배를 돌려주는 ‘희망플러스·꿈나래 통장’과 ‘일자리플러스센터’ 등의 정책이 있다.

이처럼 오 전 시장은 야권에 대한 신랄한 비난과 자신을 지지한 유권자들에게만 사과의 말을 남기고 홀연히 물러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은 말이 아니라 커다란 후폭풍과 크나큰 파장이다. 과연 10·26재보선에서 서울의 민심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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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벼랑 끝’ 장동혁 옹립의 정치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구 친윤(친 윤석열)계 핵심으로 분류됐던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들의 공개 갈등엔 ‘옹립의 정치학’이 숨어 있다. 특정 세력이 정변을 일으키거나 지도자 교체를 시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지도자 옹립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정당성·생존 본능이 적절하게 조화해야 한다. 그래서 복잡한 조건이 가미된다. 지도자 옹립을 위한 조건으로는 대체로 ▲적절한 상징성 ▲새 기득권이 될 주도 세력과의 조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 등을 들 수 있다. 아무나 못 갖는 지도자 조건 이 중 가장 어려운 숙제는 ‘지도자의 약한 권력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새 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의지를 강하게 밀어붙이면, 새 기득권 세력과의 충돌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새 지도자는 자신의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생존 본능은 강한 권력 의지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비전을 실천하려는 정치적 의지가 강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자신을 옹립한 주도 세력과 마찰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빈번하다. 왕은 왕권을 강화하려고 했고, 귀족은 이를 막으려고 했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왕과 귀족은 끊임없이 정치적 다툼을 벌였다. 이 때문에 많은 왕이 교체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옹립된 지도자는 대체로 권위가 약하다. 옹립된 지도자는 지배 질서가 규정한 정통성이 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옹립되는 과정 자체가 지도자로선 주도 세력에게 빚을 진 격이 되는 사례도 많다. 조선 태종은 정변을 일으켜 아버지를 몰아낸 후 즉위했다. 태종은 태조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다. 적장자 승계를 중시하는 유교 질서에선 도저히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태조는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는 악수를 뒀고, 사병을 혁파하려고 했다. 새 질서를 왕이 직접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했고,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침범하려고 한 것이다. 태종은 적장자 대접을 받던 형 정종을 세자·왕으로 옹립한 후 형의 양자로서 왕위를 승계해 질서를 지키는 모양새를 갖췄다. 제1차 왕자의 난에서 주축은 주도 세력이 동원한 사병이었는데, 태종은 이들에게 빚을 진 셈이다. 하지만 그는 주도 세력 중 상당수를 정계에서 일시 퇴출시킨 후 사병을 혁파했다. 자신과 왕조의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안전판을 확실하게 확보한 것이다. 경제적 이권까지 거둬들이려고 해선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 태종은 공신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행을 적당한 선에서 눈감아줬다. 태종의 킹메이커 하륜은 도성 안에 조성된 신덕왕후의 능이 이장되자, 주변의 좋은 땅을 선점하기 위해 사위들을 동원했다. 하륜에겐 지금도 유능한 신하·부정부패의 상징이란 평가가 함께 따라다닌다. 조선 중종도 형 연산군 폐위 이후 옹립된 임금이었다. 엉겁결에 왕위에 올라 큰 빚을 졌기 때문에 중종은 공신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핵심 공신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병사했다. 이후 중종은 조광조·김안로 등 대리인을 내세웠다가 토사구팽하는 정치술을 반복했다. 너무 유능해도, 너무 무능해도 안 된다 출마설 도는 주호영·윤한홍의 장 직격 조광조 일파는 중종이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숙청됐다. 김안로는 아들의 초례가 예정된 날 체포됐다. 주도 세력으로선 왕이 너무 유능하거나 정치에 밝으면 곤란하다. 그렇다고 너무 무능하거나 막 나가도 안 된다. 지나치게 막 나가서 폐위된 대표적인 왕은 고려 충혜왕이었다.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이 양위해서 즉위했다. 당시 고려 왕은 원나라 사신이 하루아침에 폐위해 귀양을 보낼 수 있을 정도로 권위가 없었다. 고려 친원파의 권력은 왕보다 더 강했다. 그리고 고려엔 원나라 제2황후 기황후의 오빠 기철이 있었다. 고려 왕은 정상적으로 즉위하더라도 원나라·친원파가 사실상 인준해야 왕 노릇을 할 수 있었다. 즉위하는 임금마다 옹립된 지도자나 다름없었다. 충혜왕은 즉위 후 아무나 성폭행하는 기행을 저질렀다. 성폭행 대상 중엔 서모 경화공주도 있었다. 이 사실은 원나라 사신에게도 알려졌다. 결국 충혜왕은 폐위돼 귀양 가던 중 사망했다. 한편으로 충혜왕은 폭력배들을 자신의 측근 세력으로 양성한 후 권문세족이 독점하던 유통구조 개선을 통해 재정을 확충하려고 했다. 아울러 권문세족의 사유지를 혁파하려 하는 등 이들의 경제기반을 뒤흔들려고 했다. 충혜왕이 폐위된 결정적인 계기는 기철의 건의였다. 원나라는 기철의 건의를 받아들여 충혜왕을 폐위했다. 충혜왕은 폐위되던 순간 사신으로부터 발길질을 당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주도했던 12·3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사과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 대부분은 소장파 성향의 초·재선 의원들이었다. 이들은 지난 1년 동안 꾸준히 당에 비상계엄 관련 사과와 당의 혁신을 요구했기 때문에 딱히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원조 친윤’ 중 1명으로 평가받는 국민의힘 3선 윤한홍 의원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게 비상계엄 관련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윤 의원은 지난 5일 진행된 국민의힘 ‘이재명정권 6개월 국정평가 회의’ 도중 장 대표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인연과 골수 지지층의 손가락질을 다 벗어던지고, 계엄 굴레에서 벗어나자”고 요구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비상계엄이 잘못됐단 인식을 아직도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계엄을 벗어던지고, 국민께 어이없는 판단의 부끄러움을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앞에서 사과 요구 이는 장 대표가 지난 3일 비상계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려던 계엄이었다”고 주장한 것에 대한 반박이었다. 장 대표는 이날 윤 의원의 비판을 들은 후 고개만 살짝 숙인 채 굳은 표정을 유지했다. 국민의힘 6선 주호영 국회부의장도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은 지난 8일 대구 지역 언론인과의 정책토론회 중 장 대표를 일컬어 “자기 편을 단결시키는 과정을 밟다가 중도가 도망간다면 잘못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장 대표는 ‘12월3일까진 지켜봐 달라’고 말했고, 그 이후엔 민심에 따르는 조치가 있을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런 말을 하지 않아서 당내 반발이 많다”고 강조했다. 주 부의장은 “윤 전 대통령은 폭정을 거듭하다가 탄핵당했다”며 “비상계엄도 김건희 여사 특검을 막으려던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라는 등 윤 전 대통령도 강하게 비판했다. 주 부의장과 윤 의원은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주 부의장은 이날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 “준비는 많이 해왔고, 이른 시일 안에 의견을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윤 의원은 지난 2021년 경남도지사 출마 의사를 내비쳤다가 입장을 선회했던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지난 2월 공개한 명태균씨의 전화 통화 녹취엔 “윤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윤 의원의 경남도지사 출마를 막았다”는 취지의 대화가 공개됐다.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다. 주 부의장처럼 출마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지방선거는 국회의원에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이벤트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두는 방법엔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 ▲중앙정치에 지역 이해관계 반영 등이 있다. 지방선거에선 국회의원이 공천·조직 동원 등에 행사하는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민주당 이상헌 의원은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형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현재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박순자 전 의원도 기초의원 공천 대가로 수천만원을 받은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지난 3월 징역형을 확정받았다. 힘 못 쓰는 2가지 이유 국민의힘 대표를 지냈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2월 <일요시사>와 만나 “국민의힘은 김종인 선거대책위원장·이준석 대표 체제 외엔 선거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지난 2016년 이후 지난 2022년 대선·지방선거 외엔 참패를 거듭했다. 국민의힘이 선거에서 힘을 못 쓰는 이유로는 크게 2가지가 거론된다. 하나는 자체적으로 선거 후보를 양성하는 게 아니라, 선거가 임박해 외부 명망가를 데려와 주요 선거 후보로 옹립하는 특성이다. 다른 하나는 영남·강원 등 핵심 텃밭에 자리 잡아 중앙정치보다 지역구 기반 다지기에 집중하는 정치인 집단이다. 세간에선 이들을 일명 ‘언더 찐윤’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선거 참패가 이어지면, 중앙정치에 끼칠 수 있는 영향력도 줄어든다. 영향력이 줄면, 지역의 이익을 중앙정치에 반영하기 어렵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이익을 거둘 방법·영향력을 모두 잃는다는 것은 언더 찐윤 의원들에게 매우 치명적이다. 아무리 중앙정치·전국 단위 선거에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이 정권 획득 가능성이 아예 없는 수준으로 추락하는 것은 매우 곤란하다. 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과 이해관계를 교환해야 할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21세기 이후 국민의힘에서 배출한 대선후보는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 ▲이명박·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 ▲홍준표 전 대구시장·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 등이다. 이들의 대체적인 공통점은 ▲전국적 인지도 ▲정치적 상징성 ▲낮은 당 장악력 등이다. 대선 출마 당시 “당 장악력이 낮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던 대선후보는 이 전 총재·박 전 대통령밖에 없었다. “당 장악력이 낮다”는 명제는 국민의힘 친윤계 의원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당 장악력이 높은 대통령·대권주자는 의원들과 굳이 이익을 주고받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대표 등 수도권에 기반해 중도 공략 의지가 강한 정치인과의 불화가 잦다. 이들과 이해관계·성향·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많아서 당권을 다투거나 알력이 있을 가능성도 큰데, 결국 화합하기 어렵다. 살기 위해 충돌하는 장 VS 친윤 “우리끼리 총구 안 돼” 의견 고수 언더 찐윤 의원들이 언론 노출을 꺼리는 성향도 ‘당 장악력이 낮은 적절한 대권주자’를 선호하는 현상과 맞물린다. 언더 찐윤의 관점으로 보자면, 윤 전 대통령은 자멸해서 사라졌다. 한 전 대표·안 의원은 수도권 엘리트 성향이 강하다. 지난 8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했던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은 언더 찐윤 성향 의원들을 청산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런 상황에서 두드러진 사람이 바로 장 대표였다. 장 대표는 정치 경력이 짧으면서도 한 전 대표와 결별한 이력이 있다. 지난 2월엔 백봉신사상을 수상할 정도로 신사적 이미지도 강했다. 국민의힘 내 강성 보수 성향 당원들은 장 대표를 선택했다. 이후 장 대표는 범보수 대권주자로 주목받았다. 코리아정보리서치가 지난 6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범보수 차기 대선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도 21.3%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겐 정치적 기반이 없다. 대권주자에게 필요한 것은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다. 대선에 출마하지 않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기반이 없으면 정치 생명을 길게 유지할 수 없다. 장 대표는 장외집회 개최 위주로 정치활동을 이어갔다. 장외집회에선 이재명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하는 강성 발언을 주로 내놨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 장외집회에서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불법이었고, 국민의힘은 그 불법을 방치했다”고 주장했다가 강경 보수 성향 당원의 비난을 받았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을 강경 보수의 길로 이끄는 ‘투톱’이다. 그런데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둘 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지방선거는 이들의 정치적 삶과 죽음을 좌우할 가능성이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의원들이 충돌하는 결정적인 지점은 살고자 하는 의지다. 윤 의원이 장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은 “국민의힘 구 친윤계가 장 대표를 통제불능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으로 연결된다. 강경 보수 성향이 짙어지면, 선거의 캐스팅보트로 인식되는 중도층의 선택을 받지 못한다. 친윤계 의원들에겐 당과 개인의 이익이 모두 줄어드는 악순환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조 의원은 지난 8월 <일요시사>와 만나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선택지는 어차피 국민의힘밖에 없다”면서 중도 공략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이 지방선거를 6개월 앞두고, 친윤계 의원들이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한 이유와 맞물릴 가능성이 크다. 장 대표의 실질적 임기는 지방선거 결과에 달렸다. 따라서 장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은 6개월 정도다. 장 대표는 이 안에 강경 보수 세력을 자신의 독자적인 기반으로 삼으려 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옹립하는 세력과 옹립되는 수장은 각자의 삶과 죽음이 걸려 있어 긴장 관계가 될 수밖에 없다. 장 대표에 대해선 “국민의힘, 나아가 보수 진영의 진정한 1인자가 될 만한 기반이 부족하다”는 다수의 분석이 나온다. 장 대표와 친윤계의 이해관계는 여기서 엇갈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남은 6개월 빠듯한 시간 새누리당 정옥임 전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신중한 사람이지만 현실감각이 굉장히 빠르다”며 “장 대표는 화장을 지운 여자의 얼굴처럼 다 보여줘서 장 대표 체제 종언은 이제 뚜껑만 열리면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에게 남은 시간은 불과 6개월이다. 부족한 것은 결국 시간이다. 하지만 장 대표는 윤 의원·주 부의장의 비판에 “우리끼리 총구를 겨눠선 안 된다”며 “싸워야 할 대상은 이재명 독재정권”이라고 반박했다. 장 대표는 흔들리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장 대표와 구 친윤계는 과연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