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 ‘GM 철수’ 적막한 도시 군산 가보니…

목줄 풀린 개만 왔다갔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마저 폐쇄가 결정되면서 군산은 그야말로 패닉에 빠졌다. 공장 폐쇄 결정 전까지만 해도 인근에 대학과 공장들이 있어 그나마 유동인구가 확보됐던 군산시 오식도동. 하지만 군산공장의 폐쇄가 결정된 지 한 달여가 흐른 상황에 찾은 이곳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만이 감돌았다.

한국GM이 군산공장 폐쇄를 결정한 지 한달여가 지났다. 그동안 청와대, 정부, 정당 등 사회 각계는 파국을 막기 위한 제각각의 행보를 지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다할만한 해결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군산은 현대중공업과 한국GM이 먹여 살린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이들 두 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했다. 하지만 군산조선소 가동 중단에 이어 GM공장까지 폐쇄되자 군산 지역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텅 빈 거리

한국GM 군산공장 주변의 왕복8차선도로에는 근근히 대형 트럭 몇 대만이 이동할 뿐 차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정문을 지나쳐 동문으로 이동할때까지 공장으로 들어가는 차량도 거의 없었다. 
한국GM지부 군산지회 관계자를 만나기위해 도착한 동문은 철제 바리케이트로 굳게 닫혀 있고 경비초소에 직원 한 명만 오고가는 차량들을 경계하며 지켜서 있었다. 직원은 언론사의 방문이 처음이 아닌 듯 명함을 받고 출입증을 건네왔다. 
 

공장 안으로 들어섰지만 그 넓은 공장 안에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GM 쉐보레 출고사무소 역시 황량한 모습이었다. 넓은 주차공간에는 몇 대의 차량만 남아 있었고, 텅 빈 공터의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까지 했다. 


공장 가동률은 20%를 밑돈 지 이미 오래다. 공장 관계자에 따르면 1500여명이 일하던 한국GM 군산공장에는 현재 100명 정도가 나와 잔무나 업무 마무리를 하고 있다. 벌써 800명 이상이 희망퇴직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산 시내는 물론 멀리는 전주와 익산까지 운행하던 36대의 통근버스도 5대로 줄었다. 

공장 안 천막에서 만난 한국GM지부 군산지회 유상협 교선실장은 “암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현재 군산공장의 폐쇄는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때와는 사정이 달랐다. 
 

현대 조선소 직원들의 경우 대부분 타 지역에서 일하러 온 사람들이었고, 군산공장의 경우 대부분이 군산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유 실장은 “군산에 이 정도 규모의 공장은 GM공장 하나뿐”이라며 “공장이 문을 닫을 경우 군산의 시장경제 자체가 뒤흔들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장폐쇄 여파…흡사 유령도시
실업률 증가와 지역상권 몰락

그는 “GM 군산공장 폐쇄는 전북 도내서 GM 군산공장 노동자 1500명뿐만 아니라 하청·협력업체 노동자 수만명의 생계를 앗아가는 결과를 낳는다”며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하청·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경우 당장 극심한 생활고에 빠질 가능성이 높지만 이들에 대한 현황 파악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유 실장은 “정부가 단호한 원칙 없이 GM의 문제를 풀려 한다면 문제는 더욱 꼬이게 될 뿐”이라며 “정부가 이번 사태를 적당히 봉합하려 든다면 3∼4년 내 훨씬 더 큰 파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GM공장을 빠져나와 시내로 향했다. ‘군산시민은 분노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가 웬말이냐’, ‘피눈물로 지켜온 군산공장 폐쇄결정을 철회하라’는 플래카드가 도시 곳곳서 눈에 띄었다. 

공장서 3km 정도 떨어진 인근에는 오식도동 상권이 자리잡고 있다. 군산국가산업단지서 일하는 직원들이 사는 원룸촌과 식당, 술집 등이 모여 있는 곳이다. 

골목과 대로를 몇 번이고 오갔지만 행인조차 보기 힘들었다. 목줄이 풀린 개 한 마리만 동네를 돌아다녔다. 

가게 앞에는 철지난 고지서가 쌓여있고 중국집, 고깃집 할 것없이 가게마다 ‘임대’라는 글자가 큼지막하게 붙어있었다.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외국인 자율방범 초소 역시 컨테이너 박스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풀옵션 원룸 임대 라는 글귀가 적인 플래카드가 나부끼는 원룸촌은 인적이 끊긴 지 오래된 듯한 모습이었다. 

같이 동행한 기자들의 의견은 하나같았다. 

“유령도시 같다.”

자조적인 목소리도 있었다. 한 지역상인은 “GM과 현대중공업에 완전히 의존적이었기 때문에 지역의 자생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 이 두곳이 문을 닫으면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살벌한 플래카드 곳곳에
시내외 버스도 팍 줄어

지역 상인들은 GM의 월급 지급이 중단되는 6월부터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군산 내 가장 번화가로 꼽히는 수송동 한 건물 1층 커피숍은 문을 닫은 후 6개월 지난 지금까지도 임차인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권리금도 없앴지만 문의조차 없다. 


한 고깃집 사장은 “수송동 먹자골목 80% 이상이 임대물건으로 나왔다”며 “길에 사람이 없어서 더이상 영업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한국GM은 지역의 대표적 향토기업으로 지역경제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뿐만 아니라 군산지역 수출의 50%, 전북 지역 수출의 30%를 차지하는 핵심 기업 중 한 곳이다.

공장의 위기론 철수설 등이 불거질 때부터 군산시와 군산시의회, 군산 상공인들은 앞다퉈 ‘I love 쉐보레’를 외치며 GM 차 애용 운동을 펼치며 응원의 손길을 보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국GM은 오는 5월 말이 되면 최소한의 관리 직원만 남기고 ‘쉐보레의 도시 군산’을 뒤로하고 기약없이 떠날 것이 확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GM 군산공장 폐쇄로 인한 대규모 실업 사태가 우려되는 군산을 산업위기 특별대응지역 및 고용위기 지역으로 지정할 방침이다. 또 협력업체와 소상공인 등에 대한 대규모 금융 지원과 함께 민생안정 경제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특별교부세와 전북도의 특별조정교부금이 지원된다. 

지역 붕괴


전북도는 특별자금을 긴급 투입해 도내 소상공인(영세 자영업자) 경영 안정화를 꾀하고 직원과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위기 상황에 따라 긴급복지 급여를 지원하기로 했다. 관세청은 GM 사태 피해 기업을 대상으로 특별 세정지원, 전북도교육청은 GM 실직자 자녀에게 교육비 지원 등 정부 부처나 지자체가 충격을 완화하려는 발빠른 움직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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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