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의 MB맨 배신의 MB맨 ‘총정리’

정승이 죽으면 개도 안 온다더니…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 조사를 마쳤다. 이 전 대통령은 혐의를 대부분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스는 누구 겁니까?’를 시작으로 그를 향한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전 대통령은 ‘보복성 정치공작’이라며 의혹 자체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포토라인에 서서 “국민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지난 14일, 이 전 대통령은 검찰에 출두하기 전 사저서 ‘MB맨’들을 만났다. 10여명의 관계자들이 사저로 향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이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또 다른 ‘MB맨’들이 있다. 그들은 반대로 이 전 대통령의 의혹에 힘을 실어줬다. 여러 의혹들이 검찰 소환 조사의 증거가 된 배경에는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 그들도 한때 ‘MB맨’이었다.

MB에 치명적
진술 쏟아내

지난 14일 이 전 대통령은 100억원대 뇌물수수와 20개가 넘는 범죄 혐의로 검찰에 소환됐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조사에서 본인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낸 측근들에 대해 “죄를 경감받기 위해 나한테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진술했다. 

이 전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기자회견에서 “모든 책임은 나에게 물어 달라”며 본인의 책임을 강조한 것과는 상반되는 입장이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MB의 집사’로 불린다. 그는 이 전 대통령과 고려대 동문으로 40년 이상 인연을 맺어왔다. 


김 전 기획관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이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을 함께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인수위 비서실 총무 담당 보좌역, 청와대 총무비서관,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지냈다.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을 지근거리서 수십 년 보좌하고 그의 재산을 관리했다. 

그러다 지난 1월 검찰은 국정원 특수활동비(이하 특활비)를 불법으로 수수한 혐의로 김 전 기획관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김 전 기획관은 특활비 관련 혐의에 대해 “기억이 없다”며 일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지난 1월17일 “국정원 돈을 받는 과정서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다”며 기존의 증언을 뒤집었다. 

이후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김 전 기획관은 3월14일 열린 첫 번째 공판에서 국정원 자금 수수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희중 전 대통령 제1부속실장의 진술 역시 결정적이었다. ‘MB의 영원한 비서관’으로 통하는 김 전 실장은 오랜 시간 이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김 전 실장은 1997년 이 전 대통령이 초선 의원이었던 시절 비서관으로 그를 보좌했다. 이어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에 당선됐고 그는 의전비서관으로 수행했다. 

이명박정부 시절에는 대통령 제1부속실장으로 재임기간 5년을 그와 함께했다. 김 전 실장은 지난 1월12일 국정원 특활비를 불법으로 상납 받은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그는 조사 과정서 “국정원 직원에게 받은 특활비 10만달러를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 측 행정관에게 직접 건네줬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 내용을 진술하기 전 이 전 대통령의 한 측근에게 “나도 살아야겠다”며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김 전 실장은 최근 JTBC와의 인터뷰서 “자신이 생각해도 (증거의 구체성 정도가) 심하다고 생각할 정도였다”며 “이 전 대통령도 조사에 임하면 (태도가)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변하지 않은
영원한 측근

이 전 대통령은 다스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또한 이 전 대통령의 의혹 상당수는 다스를 기반으로 한다. 그 연유로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주라는 것을 밝히는 데 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서 검찰은 MB의 최측근들로부터 결정적인 진술을 받게 된다.

김성우 전 다스 사장은 ‘MB의 오른팔’로 불린다. 김 전 사장은 이 전 대통령이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시절부터 함께했다. 명실상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다스의 설립과정을 알고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김 전 사장은 다스의 120억원 횡령과 관련해 피의자로 입건됐다. 그는 검찰 조사 중 자수서를 제출했다. 김 전 사장은 “2007년 검찰수사와 2008년 특별검사팀 수사 때 다스와 관련해 거짓진술을 한 부분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2008년 특검 당시 “도곡동 땅과 다스는 MB와 관련이 없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이번엔 스스로 당시 진술을 부정하면서 이번 조사 때는 제대로 답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김 전 사장은 “다스는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한 것”이라며 “다스 창업자금도 지원받았다”는 진술도 내놨다. 또한 이 전 대통령이 다스의 인사와 회계에 관련한 사안을 보고 받았다고 했다.

‘MB의 금고지기’로 불리던 이병모 청계재단 사무국장은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을 관리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검찰 조사에서 “도곡동 땅 매각 대금 중 일부를 다스 지분을 매입하는 데 썼다”며 “일부는 논현동 사저를 수리하는데 사용했다”고 진술했다. 

도곡동 땅 매각 대금이 다스 지분 매입에 쓰였다는 것은 다스의 실소유주 파악에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 검찰은 도곡동 땅의 실제 주인을 이 전 대통령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MB의 자금관리사’로 통하는 이영배 금강 대표의 구속 역시 이 전 대통령을 사면초가의 위기에 놓이게 했다. 금강은 다스의 협력업체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아들 시형 씨가 대주주로 있는 에스엠(SM)의 자회사 ‘다온’에 16억원을 무담보 저리 대출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대표가 100억원에 가까운 비자금을 조성해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넨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의 최대주주는 이 전 대통령의 처남인 고 김재정씨의 부인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금강 지분을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4일 MB 측근들은 이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했다.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서 호흡을 맞췄던 전직 관료부터 현역 국회의원들까지 약 1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출두 직전 자신의 소회를 풀어낸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조사 후에도 이들은 MB 곁을 지켰다.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MB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그는 2011년 청와대 정무수석에 임명됐다. 2012년에는 ‘한나라당 돈봉투 사건’으로 자리서 물러났다. 김 전 수석은 지난달 1월 한 방송사 프로그램에 출연해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은 누군가의 기획”이라며 비판했다. 

김 전 수석은 이 전 대통령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조사 하루 전날에는 언론 브리핑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재정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선임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미디어 출연
비호에 앞장

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2007년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 때 이 전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다. 이 전 수석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의 공보특보를 맡았다. 당선 이후 그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대변인과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홍보수석 그리고 언론특별보자관을 역임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은 청와대 정무수석 정무 2비서관과 대통령실 메시지기획관, 청와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다. 2011년에는 청와대 홍보 수석의 자리에 올랐다. 


지난달 18일 김 전 수석은 CBS 라디오에 출연했다. 그는 “보수에 대한 반감과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한풀이”라며 수위 높은 발언으로 여권과 현 정부를 비판했다. 그러면서 “올해가 개띠의 해”라며 “저희들도 이전투구를 한번 해 볼까요?”라고 다소 거친 발언을 내뱉었다.

류우익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반도 대운하 입안자’로 알려져 있다. 이후 주중대사와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게 된다. 또한 류 전 실장은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과 함께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으로 꼽힌다.

정정길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류 전 실장의 뒤를 이어 2대 대통령 실장에 내정됐다. 그러나 2010년 7월 6·2지방선거서 한나라당이 패배하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김효재, 이동관, 김두우, 류우익…
여론 눈치 안보고 끝까지 지켰다

임태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2010년 고용노동부장관서 3대 대통령 실장으로 내정됐다. 임 전 실장 역시 MB맨으로 알려져 있다. 

'UAE 원전 의혹’이 불거진 시점에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임 전 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이명박정부의 비위를 캐내려는 것이 아니다”고 해명할 정도로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통한다.

하금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4대 대통령 실장으로 이 전 대통령 임기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하 전 실장은 이 전 대통령과 동문으로 ‘고대 후배’로 통한다. 하 전 실장은 ‘노무현 4주기 추도식’ 날 이 전 대통령과 골프를 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을 빚었다.

장다사로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이상득 전 의원의 보좌관 출신이다. 이 대통령은 당시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장 전 기획관을 청와대 총무기획관에 임명했다. 

당시 이 전 의원 보좌관의 거액 수뢰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의 심복인 장 전 기획관의 임명은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한병도 정무수석이 전달한 평창동계올림픽 초청장을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것도 장 전 기획관이다.
 

맹형규 전 행정안전부장관은 청와대 정무수석과 대통령 정무담당특보를 역임했다. 그는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는 이 전 대통령을 검찰까지 수행했다. 맹 전 장관은 “5년 동안 MB정부서 일했던 사람으로서 대통령이 어려울 때 자리를 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수행 이유를 밝혔다.

자유한국당 권성동, 김영우, 주호영 의원은 ‘MB키즈’로 통한다. 권 의원은 이명박정부 때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지냈다. 그는 검찰청까지 가서 이 전 대통령을 배웅했다. 

김 의원은 ‘안국포럼’ 출신이다. 안국포럼은 2007년 대선서 이 전 대통령의 친위그룹 역할을 했다. 김 의원은 이 전 대통령 사저 앞에서 “문재인정권은 이 전 대통령을 포토라인에 세우기 위한 치졸한 꿈을 오늘 이뤘다”며 강하게 비난했다. 

주 의원은 이명박정부 시절 초대 특임장관과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된 이 전 대통령의 사저에 방문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정치적 리스크가 존재하지만 그만큼 ‘정통 친이계’라는 걸 스스로 증명한 셈이다. 

김백준, 김희중, 김성우, 이병모…
최측근서 내부고발자로 ‘뒤통수’

자유한국당 이재오 상임 고문은 ‘친이계의 좌장’ 또는 ‘MB 정권 2인자’로 불린다. 이 고문은 2007년에 늘푸른한국당을 이끌었다가 지난달 12일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했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에 대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정권처럼 보인다”며 그를 옹호했다. 이 전 대통령의 검찰에 출두한 후에는 YTN 라디오에 출연해 “이 전 대통령은 부패하지 않다”며 그를 비호했다.

김대식 여의도연구원장은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령 예비후보캠프 대외협력총괄단장과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 사회교육문화분과위원회 인수위원을 역임한 친이계 인사로 분류된다.

안경률·최병국 전 국회의원은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서 당시 이명박 후보를 지지해 이들 역시 친이계 인사로 나뉜다.  최 의원은 이재오 상임 고문과 함께 늘푸른한국당 소속이었다. 최 의원은 자유한국당으로 복당해 상임고문을 맡게 됐다.

조해진 전 국회의원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이었던 시절 서울시장 비서실 정무보좌관이었다. 그는 15일 JTBC <뉴스룸>서 “여권 쪽에서는 공공연하게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얘기를 했다”며 “이번 검찰수사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정치보복”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조 전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청와대 출신
현역 의원까지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행보도 눈에 띈다. 유 전 장관은 검찰 조사 후 귀가하는 이 전 대통령을 마중했다. 유 전 장관은 이 전 대통령을 모티브로 한 인물을 연기했다. 그 과정서 그는 이 전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 유 전 장관은 이명박정부 시절 문체부장관에 임명됐다. 그러나 다소 거친 성격으로 막말과 욕설 논란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kjs0814@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성동조선 부실 책임은?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이 전 대통령에게 건넨 22억여원 중 20억원 가량이 성동조선해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전 회장의 수첩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와 사위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 이 전 대통령의 형인 이상득 전 의원에게 돈이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경영위기 상황이었던 성동조선서 비자금이 나온 만큼 이 전 대통령이 그 책임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검찰은 이 돈의 대가로 이 전 대통령이 성동조선의 부실경영을 방관한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동조선은 지금까지 9조6000억원을 수혈 받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경영정상화의 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


<기사 속 기사> 자충수 된 MB 행보

이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 과정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한 만큼 구속영장 발부가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이 전 대통령은 명백한 증거들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은 만큼 증거인멸의 우려가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스스로 구속영장 청구 가능성을 높인 셈이다. <수>


<기사 속 기사> MB 변호인단은?

지난 14일 검찰 조사를 받은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을 확충 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는 데다 사안이 복잡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지난 13일 MB의 측근 김효재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 전 대통령은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며 재정적 어려움으로 변호사 선임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 전 대통령이 변호인단을 보강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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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관세 협상’ 일본과 비교해보니⋯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트럼프발’ 통상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서 못 박은 시한은 끝났다. 우리나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기 전날 타결했다. 이제 협상 결과를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 할 때다. 일본과 유럽연합(EU), 그리고 한국. <일요시사>가 세부 내용을 들여다봤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전부터 각국에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미국을 상대로 돈을 번, 즉 대미 무역 흑자를 거둔 나라들이 표적이 됐다.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부터 전 세계는 ‘트럼프발’ 통상 전쟁에 휘말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숫자를 외칠 때마다 세계 경제가 요동쳤다. 하루 전 극적 타결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다소 늦게 통상 협상을 시작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지난 6월 조기 대선이 치러질 때까지 ‘무정부’ 상태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탄핵심판 등 대형 정치 이슈가 거듭되면서 미국과 협상을 하고 싶어도 테이블에 앉을 사람이 마땅치 않은 상태였다. 실제 한덕수 전 국무총리나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 등이 협상에 나섰지만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 새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제동을 걸었다. 또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 선언, 최 전 부총리 탄핵안 상정 등의 상황이 겹치면서 미국과의 협상은 큰 진전 없이 시간만 흘렀다. 이후 이재명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나라는 좀처럼 미국 실무진과 접점을 찾지 못했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모든 한국산 제품에 대해 산업별 관세와는 별도로 25%의 일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시한은 지난 1일로 못 박았다. 우리나라는 미국과 FTA 체결로 사실상 무관세 수준이었기에 관세 부과가 현실화하면 경제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등 핵심 수출 품목에 붙는 관세 외에도 비관세 장벽(관세 이외의 수단으로 무역을 제한하는 조치)을 허물라는 압박도 가해졌다. 쌀이나 소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 개방, 정밀 지도 반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것으로 예상됐다. 국내 상황과 맞물려 쉽게 내주기 어려운 조건들이었다. 일·EU와 같은 15%로 막아 대미 투자는 3500억달러로 협상도 난항을 겪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2 통상 협상을 하루 앞두고 출국하려다 미국 측의 취소로 불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앞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부 장관이 방한을 닷새 앞두고 일정을 취소하기도 했다. 미국 고위급 인사들과의 만남이 잇따라 무산되면서 ‘한미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차례로 미국과 협상을 타결하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커졌다. 특히 일본의 협상 결과가 공개되면서 우리나라가 최소한으로 맞춰야 할 기준이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와 일본은 자동차 등 수출 품목이 일부 겹치기에 일본보다 관세가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이 망가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2일 일본과 무역 협상을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밝힌 일본산 수입품에 부과하는 상호관세는 15%다. 기존 25%에서 10%포인트 줄어들었다. 일본이 미국에 5500억달러(약 759조원)를 투자할 것이고 이 중 90%의 수익을 미국이 받게 된다고도 했다. 동시에 자동차와 농산물을 일부 개방한다는 조건도 달렸다. 지난달 27일에는 미국과 EU가 관세 협상을 타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EU로부터 수입되는 모든 품목에 대해 일괄적으로 1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미국산 에너지 7500억달러(약 1030조원) 구매 및 대미 투자 6000억달러(약 820조원) 확대 방안을 담은 ‘무역협정 틀’에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일본과 EU의 협상 타결로 미국의 협상 전략이 윤곽을 드러냈다. 관세를 낮추는 조건으로 무엇을, 얼마나 내놓느냐가 관건이 된 것이다. 관심이 집중된 부분은 대미 투자액이었다. 애당초 통상 전쟁 자체가 타국이 얻는 대미 무역 흑자를 줄이겠다는 명목으로 시작된 터라 트럼프 대통령은 상대국에 대미 투자라는 일종의 ‘청구서’를 요구한 셈이다. 일본이 5500억달러, EU가 6000억달러를 미국에 각각 투자하기로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에 날아올 청구액에 관심이 쏠렸다.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언론보도 등을 통해 3000억달러, 4000억달러 등의 추측이 난무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제멋대로’ 외교에 우리나라 협상팀이 휘둘리고 있다는 말도 나왔다. 쌀 소고기 지켰다는데 우리나라는 협상 시한을 하루 앞둔 지난달 31일 한국산 제품에 대한 상호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내용을 골자로 협상을 타결했다. 일단 일본, EU와 동일한 수준으로 관세 인하를 이끌어낸 것이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 관세율은 15%, 철강·알루미늄·구리는 기존 관세율(50%)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와 의약품 관세 부과 시 최혜국 대우도 약속받았다. 다른 나라보다 불리한 관세를 적용받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 부분도 일본, EU와 같은 합의 내용이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민감한 품목으로 분류됐던 쌀과 쇠고기 등의 개방은 하지 않는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해 향후 변동 가능성을 지켜봐야 한다. 대미 투자액은 3500억달러(약 490조원)로 결정됐고 1000억달러(약 140조원) 상당의 액화천연가스(LNG) 또는 기타 에너지 제품을 수입하기로 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한국과 일본의 대미 무역 상황은 지난해 기준 각각 660억달러 흑자, 685억달러 흑자로 규모가 유사한 상황에서 일본보다 작은 규모인 3500억 달러 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며 “기업이 주도하는 조선펀드 1500억달러를 제외하면 우리 펀드 규모는 2000억달러로 일본의 36%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합의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미국과 조선업 분야 협력을 확대하기로 한 것”이라며 “한미 조선협력펀드 1500억달러는 선박 건조, MRO(유지·보수·정비), 조선 기자재 등 조선업 생태계 전반을 포괄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협상팀은 조선 협력을 내세운 게 협상 타결의 ‘키’였다고 자평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주미 한국대사관에서 브리핑을 하며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가 협상 타결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뜻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 구호인 ‘매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에서 따온 표현이다. 자동차는 관철 못 해 아쉬운 부분으로는 자동차 관세를 꼽았다. 이전까지 우리나라 자동차는 관세가 0%였다. 2.5%였던 일본과 비교해 근소하게 가격 경쟁력을 가졌다. 하지만 이번 협상 타결로 일본과 똑같은 15% 관세가 결정되면서 자동차 업계는 가격 경쟁력을 잃게 됐다. 우리나라 협상팀이 끝까지 자동차 관세 12.5%를 요구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 15%’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큰 고비를 하나 넘었다”며 “이번 협상으로 정부는 수출 환경의 불확실성을 없애고 미국 관세를 주요 대미 수출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맞춤으로써 주요국들과 동등하거나 우월한 조건으로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다”고 평했다. 협상 결과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일단 ‘최악은 면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협상 타결이 이뤄지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놓쳐 관세 25%를 맞을 수도 있다고 우려한 것에 비하면 나름 ‘선방했다’는 의견이다. 동시에 미국이 내민 청구서의 구체적인 부분을 더 살펴야 한다는 신중론도 존재한다. 일본 등은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타결 발표와 실제 합의 내용이 다르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결정된 사항을 즉흥적으로 바꾸는 등 외교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면모를 보인 적이 여러 차례 있다.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협상 기술을 사용한다는 평이다. 정밀 지도·국방비 등 안보 이슈 백악관서 만나 대통령끼리 담판?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의 협상 타결 내용을 발표하면서 언급한 정상회담이 ‘진짜’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는 “한국이 투자 목적으로 상당한 금액을 추가 투자하기로 합의했다”면서 2주 내로 이재명 대통령과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투자액이 발표될 것이라고 했다. 추가 청구서가 나올 수 있다는 뜻이다. 이번 통상 협상에서 논의되지 않은 정밀 지도 반출 문제가 협상 테이블에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 김용범 정책실장은 지도 반출 등 안보 사안은 한미 정상회담에서 별도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도 반출과 관련해) 우리가 계속 방어해왔다. 추가 양보는 없다”고 말했다. 미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2025 국가별 무역 장벽 보고서>에서 정밀 지도 반출 제한을 한국과의 디지털 무역 장벽 중 하나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정부는 군사기밀 유출을 우려해 정밀 지도의 국외 반출을 막아왔다. 정밀 지도에 해외 기업이 가진 위성사진을 결합하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지도 정보로 완성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 정계와 IT업계는 정밀 지도를 반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협상에서는 다뤄지지 않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로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 방위비 분담금, 국방비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국들에 국내총생산(GDP) 대비 5% 이상을 국방비 예산으로 잡으라고 압박했다. 우리나라에도 대선 후보 시절부터 방위비 분담금으로 100억달러를 내야 한다고 여러 차례 말하는 등 전방위로 요구한 바 있다. 추가 청구 나올까? 한미 정상회담은 이 대통령의 ‘외교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G7 정상회의에 참석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지 못했다. 나토 회의에는 이 대통령 대신 위성락 안보실장이 참석했다. 이번 정상회담이 ‘안보’ 회담이 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딜을 벌일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