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고 내는’ 적십자 회비의 이면

“안내면 큰일 나는 줄 알았죠”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한적십자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발송하는 지로통지서를 두고 국민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공과금 또는 세금 고지서처럼 적십자회비 지로통지서가 발송되는 데다 대한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어떻게 알고 지로통지서를 발송하는지에 대한 의문 때문이다. 일각에선 적십자의 ‘구시대적’이고 ‘반강제성’을 띤 모금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적십자사가 매년 연말연시에 발송하는 회비 고지서를 ‘지로 고지서’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 논란이다. 고지서가 세금이나 공과금 등과 똑같이 구성된 탓에 ‘의무 납부’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의무로 알고…

최근 시민 A씨는 적십자로부터 우편물 한 통을 받았다. 우편에는 ‘지로 고지서’ 형태로 발송된 적십자사 회비 고지서가 들어 있었다. 고지서가 세금이나 공과금 등과 똑같이 구성된 탓에 A씨는 적십자 회비를 의무로 착각하고 올해도 납부했다. 

A씨 외에도 많은 국민들이 연말연시면 항상 날아오는 적십자 회비가 ‘의무 납부’인 줄 알고 매년 회비(1만원)를 납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적십자는 고지서 내에 “적십자 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시는 국민 성금입니다”라는 문구를 넣어놨지만 얼핏 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또 회비 고지서의 색깔이나 용어 등 구성 역시 우리가 내는 세금·요금 고지서와 똑같아 착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적십자사가 걷은 회비는 지난 2014∼16년까지 1500억원에 달한다. 

물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한 적십자의 모금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앞서 소개한 문구처럼 적십자 회비는 의무적으로 내는 요금이 아닌 개인이 선택해 내는 성금이다. 하지만 고지서 형태로 발송돼 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을 줘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문제는 적십자사 측이 “사안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다”면서도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며 적십자사 회비 납부율은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굳이 내지 않아도 되는 돈이라는 인식이 지속적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적십자사는 여전히 소득에 상관없이 25∼75세의 모든 세대주에게 회비 고지서를 발송하고 있다. 12월에 1차로 고지서를 발송하고 납부하지 않은 세대에 한해 이듬해 2월 2차 발송하는 방식이다. 

이처럼 본인이 원하지 않음에도 고지서 형태로 발송해 독촉하는 느낌을 준다면 이는 강제성을 띤다고 볼 수 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원한다면 적십자사가 고지서 수령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대구시민단체연대회의는 지난해 초 성명을 내고 적십자의 반강제적 회비모금 방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대구참여연대와 우리복지연합 등이 참여하는 연대회의는 당시 “적십자의 특혜모금 방식에 대해 강력히 항의한다. 행정기관에 개인정보 요구를 중지하고 반강제성 지로 납부제를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지로통지서 두고 세금고지서와 혼동
“반강제성 납부제 폐지해라” 목소리

적십자회비 모금은 1953년 한국전쟁 고아와 전상자들의 구호를 위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성원을 당부하는 선포문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당시만 해도 국가 예산이 부족했기 때문에 적십자 모금에 국가가 개입했을 수 있었다. 

실제 적십자 활동은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적십자는 60년 이상이 지난 현재까지도 과거와 같은 낡은 방식 그대로 국가행정기관의 손을 빌려 모금활동을 하고 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금이 아닌 지로 납부제 모금 방식은 앞으로 계속 저항을 받을 것이고, 모금액 역시 줄어들 것이라고 연대회의 측은 지적했다.

적십자회비라는 명칭이 강제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회비’라고 기부금을 지칭하는 것은 자발적 성금의 성격과는 맞지 않다는 것이다. 

연대회의는 “회비는 모임의 개설이나 유지를 위해 회원이 내는 돈이다. 적십자는 회원도 아닌 전 국민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반강제적인 지로 용지를 배포하고 있다”며 “회비라는 말을 사용하지 말고 ‘성금’ 등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적십자회비는 1996년까지 통·반장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수납해 사실상 세금인 것처럼 모금됐다. 이 부분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자 지금의 지로 용지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지금도 통장이나 반장, 공무원들이 각 세대나 법인을 찾아 회비 모금을 하고 있다.

지로 용지도 공과금 고지서와 유사하게 납부기한을 명시한 형태인 데다 통·반장이나 공무원들이 납부를 독촉하기 때문에 준조세(세금은 아니지만 의무적으로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최근 적십자회비 고지서를 받았다는 한 직장인은 “납부 실적이 저조하다면 투명한 경영과 적극적인 홍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 낼 수 있도록 해야지, 무조건 내라는 식으로 고지서만 발부하면 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전 세계 198개국 적십자 중 세금 같은 지로 용지를 세대주·사업자·법인에 발송하는 방식으로 모금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일본은 적십자 지사에 가입신청서를 제출하거나, 적십자 관계자의 가정방문을 통해 회원가입을 신청한 경우에만 회비를 납부하고 있다. 미국은 공동모금단체(United way)나 홈페이지를 통해 모금하고 있다. 프랑스·독일 역시 적십자 회원에 한해서만 회비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적십자 측은 “여러 문제점을 고려해 1996년 제도개선위원회를 거쳐 지로제도가 선택됐고 2000년부터 현행의 지로 용지 배부 방식으로 전환된 것”이라며 “지로 용지상에 ‘적십자회비는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국민성금입니다’라고 안내하고 있으며 2018년 2월 중 시행할 2차 모금부터 그 문구를 확실히 인지할 수 있도록 글자 크기를 확대해 정면에 노출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집주소 어떻게?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국가기관이 아닌 특수법인 대한적십자사가 세대주의 이름과 주소를 어떻게 알고 지로통지서를 발송하느냐는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1953년부터 주민등록법 및 시행령, 대한적십자사조직법 및 시행령에 의거해 행정안전부로부터 개인정보를 제공받는다. 연간 약 400만건의 개인정보가 행정안전부서 대한적십자사로 제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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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케이삼흥 사태가 대국민 사기극으로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피해자가 최소 1000여명, 피해액은 수천억원에 이르는 등 실체가 드러날수록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상황이다. 피해자들은 무엇에 홀려 돈을 넣었을까? 무엇이 그들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안겨줬을까? “징조도 없었어요. 2월까지는 돈이 잘 들어왔거든요. 3월25일하고 27일에 원금하고 배당금이 안 들어오면서 난리가 난 거죠.” <일요시사>와 연락이 닿은 한 케이삼흥 투자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이 없는 듯했다. 이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에게도 투자를 권유했다고 한다. 현재 원망 그 이상의 감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2월까진 괜찮았다 최근 케이삼흥 사태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2021년 설립된 부동산 투자플랫폼업체 케이삼흥은 월 최소 2% 수익을 보장하겠다며 투자자를 끌어모았다. 연 단위로 따지면 24%의 고수익 투자상품인 셈이다. 피해자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의 말에 현혹된 것으로 보인다. 케이삼흥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개발 예정인 토지를 매입한 뒤 개발사업이 확정되면 소유권을 넘겨 보상금을 받는 방식으로 수익을 만들 수 있다고 홍보했다. ‘토지 보상 투자’라는 용어가 나왔다. 직급에 따라 수익금을 차등 지급하는 다단계 방식으로 업체를 운영해 전형적인 ‘다단계금융 사기’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번 사태서 의문이 제기된 부분은 횡령 등의 혐의로 복역한 경험이 있는 김현재 케이삼흥 회장이 어떻게 또다시 수천명에 이르는 투자자를 끌어모았는지다.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의 창시자로 불린다. 토지를 싼 가격에 사들인 뒤 개발 호재 등이 있다고 소문내 이를 쪼개 파는 방식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이 과정서 투자금 200억원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2006년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여년이 지난 2021년 김 회장은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울 등 전국에 7개 지점을 둔 케이삼흥은 언론 광고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 투자자를 모았다. 한 케이삼흥 직원에 따르면, 7개 지점서 일하는 직원은 300~350명가량이었다. 직원들은 이른바 가족·지인 영업을 통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월 2% 수익 약속에 수천명 투자 20년 전과 과정도 결과도 같다? 대부분의 직원은 중·장년층으로 인터넷 기사 등을 통해 공개된 김 회장의 과거를 잘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 회장의 사기 전과를 알고 있던 피해자 역시 “원래 무죄였다”거나 전직 대통령을 거론하는 김 회장의 말솜씨에 넘어갔다고 한다. 훈장, 공적비, 기부 기사 등은 김 회장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따박따박 통장에 찍히는 배당금은 김 회장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만들었다. 투자금의 1.5~2%에 이르는 배당금이 매달 입금되고 계약에 따라 만기가 되면 원금이 들어오는 구조였다. 예를 들어 1000만원을 투자하고 3개월 만기로 계약을 맺었다면 1060만원을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요즘 같은 저금리 시대에 파격적인 수준이었다. 김 회장은 본인의 사재를 털어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있다고 직원들에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면서 직원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투자자를 모집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에 따르면, 김 회장은 자신의 재산이 1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수익이 나기 전까지 자신의 돈으로 원금과 배당금을 일부 주고 있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꾸준히 원금과 배당금을 받은 대부분의 피해자는 더 많은 돈을 재투자했다. 피해액이 천문학적인 수준으로 불어난 이유다. 하지만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방식의 사업구조는 자금 순환이 막히면서 결국 무너져 버렸다. 피해자는 지난 2월까지 원금과 배당금을 정상적으로 받았기에 케이삼흥 사태를 예측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피해자 중장년층↑ 하지만 경고음은 분명히 존재했다. 회계법인은 케이삼흥에 대해 ‘감사 의견 거절’을 냈다. 감사 의견 거절은 ▲감사인이 감사보고서를 만드는 데 필요한 증거를 얻지 못해 재무제표 전체에 대한 의견 표명이 불가능할 때 ▲기업의 존립에 의문이 들 때 ▲감사인의 독립성 결여 등으로 회계 감사가 불가능한 상황에 제시한다. 기업 내부 사정이 심상찮다는 소리다. 케이삼흥의 경우 ‘회계연도의 현금흐름표 및 재무제표에 대한 주석을 받지 못했다’가 감사 의견 거절의 근거가 됐다. 그럼에도 수많은 피해자는 김 회장을 철석같이 믿었다. 오히려 정관계 인사를 잘 안다는 김 회장의 말이 피해자의 투자심리를 부추겼다. 과거에도 김 회장은 기획부동산 사기로 검찰 조사를 받던 시기에 정관계 로비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당시 김 회장이 횡령한 돈 일부가 정치자금으로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정치권 등의 유력인사를 언급해 투자자의 믿음을 사는 김 회장의 수법은 이번 케이삼흥 사태서도 반복된 것으로 보인다. 한 피해자는 “(김 회장이)정치인 인맥이 많다는 말을 하곤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통로로 정보를 얻는 젊은 층에 비해 정보에 어두운 중‧장년층은 김 회장이 주장하는 인맥에 신뢰를 보냈다. 사기 전과 있는데도…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과의 친분도 주장했다. 강연 과정서 서울시 고위공무원의 직책을 언급하면서 그를 통해 협조 약속을 받았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 과정서 토지나 주택 등을 관리하는 공공기관의 이름도 등장한다. 투자자에게 수익금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로 파악된다. 김 회장은 “작년에는 부동산 경기 자체가 불투명하니까 1년 동안 거의 안했어요. 착공 들어가려면 제일 먼저 하는 게 보상 업무잖아요. 올해 작년 것까지 합쳐서 하고 있어요. 사업계획 세워놓은 것은 차질이 없다고 하니까”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공공기관,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을 말하면서 “(서울시 고위공무원 직책이)그걸 관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은 서울시서 주택, 재난안전 등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김 회장은 “(서울시 고위공무원을)만나서 사업이 진행되면 케이삼흥 것을 우선적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고 했다. 토지 보상을 하는 과정서 케이삼흥에 우선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주진입도로’ 등을 언급하면서 “2단계든, 3단계든 관계없이 케이삼흥 것을 먼저 협조해주겠다고 그 약속까지 제가 다 받아냈으니까. 하반기에 보상 나오는 것은 확실합니다”라고 강조했다. 강연에 참석한 투자자들은 중간중간 호응하다가 김 회장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치면서 환호했다. 정치인 인맥·훈장 자랑 당사자는 “처음 들었다” 서울시 관계자는 사실 확인을 요청하는 <일요시사>에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이 언급한 직책의 인물은 지난 8일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김현재라는 이름은 지금 처음 듣는다”고 전했다. 케이삼흥이라는 회사명도 이날 처음 들었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과는 사적 친분은 물론이고 전혀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현재 케이삼흥 사태는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서 수사하고 있다. 김 회장 등 케이삼흥 경영진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과 유사수신행위 규제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는다. 지금까지 파악된 피해자와 피해액은 최소 규모로 시간이 가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직원으로 불린 모집책이 가족이나 지인 등을 상대로 투자를 권유한 경우가 많아 가정이 파탄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피해자 가운데 일부는 가족의 병원비 등을 투자금으로 넣은 경우도 있었다. 피해자들은 수사기관에 고소하거나 집회를 준비하는 등 개별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빠른 수사가 관건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피해자가 받는 정신적 고통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 케이삼흥 사태와 같은 대형 사건서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거나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게 독촉을 받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빠른 수사 피해 복구는? 한 피해자는 “가족과 지인 돈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자했다. 원금만이라도 제발 돌려받고 싶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얼굴을 들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직원이면서 동시에 투자자인 이 피해자는 5억원 이상을 투자금으로 넣었다고 고백했다. 김 회장의 입장을 듣기 위해 문자메시지, 전화 등을 통해 연락을 취했지만 닿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