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비오너가 CEO 연수입 순위 TOP10 <전격공개>

걸어 다니는 기업 “신화 한두 개는 기본?!”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양반과 천민으로 구분되던 신분제 폐지 후 현대판 신분제가 생겼다. 계급을 분류하는 기준은 경제력. 이를 바탕으로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양분된다. ‘있는 자’들의 정점엔 ‘재벌’이 있다. 이들은 부의 세습을 통해 자신의 신분을 견고히 지켜 나가고 있다. ‘없는 자’로선 이들의 자리를 넘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서민으로 태어나 재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들이 있다. 비오너가 최고경영자(CEO)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출신성분을 거부하고 ‘그들만의 리그’에 당당히 입성한 이들의 ‘벌이’는 과연 얼마나 될까.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 반도체 신화 초석 만들어
‘애니콜 신화’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왕의 남자’

국내 대기업의 비오너가 최고경영자(CEO)들의 연수입이 공개됐다. 수입은 임원보수에 보유 자사주(스톡옵션 포함) 매각 수입과 현금 및 주식 등의 연말 배당금을 더해 구했다.

1위부터 4위까지는 모두 삼성계열 CEO들이 꿰차고 있었다. 그 가운데서도 최고는 지난해 무려 419억5000만원을 벌어들인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었다. 이 부회장은 작년 임원 보수 59억9000만원에 삼성전자 자사주 스톡옵션 매각 차익금 358억5000만원, 배당금 1억1000만원 등의 수입을 올렸다. 이는 지난 2006년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이 갖고 있었던 역대 최고기록(196억5000만원)의 2배 이상에 이르는 규모다.

1위부터 4위까지
삼성 CEO가 꿰차

삼성이 이 부회장을 이처럼 극진히 ‘모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지난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를 만들어낸 인물이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968년 삼성그룹에 입사, 1977년부터 삼성전자 삼성반도체 생산과장으로 근무했다. 이후 삼성반도체통신 이사, 상무이사 겸 반도체 기흥공장장을 지냈다. 특히 삼성전자가 처음으로 메모리 사업에 진출한 1983년 이후 고전을 했던 5년여를 고스란히 메모리 공장에서 연구에 바치기도 했다. 이후 1992년에는 메모리 사업 총괄 부사장을 역임했다.

1994년부터 반도체 총괄 대표이사 부사장에 오른 이후 15년간 대표이사로 재직했다. 100대 상장사 현직 가운데 최장수 전문경영인이기도 하다.

이어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스톡옵션 2만434주를 처분해 119억2000만원의 차익을 실현하는 등 총 180억1000만원의 수입을 올려 2위를 차지했다.
최 부회장의 이력 역시 범상치 않다. 지난 197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최 부회장은 반도체, 디지털미디어, 정보통신총괄 등 핵심 사업부서를 모두 거치며 삼성전자의 모든 것을 거의 꿰뚫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6년 ‘보르도TV’로 삼성전자를 세계 디지털TV시장 세계 1위에 올려놓았다. 또 지난 2007년에는 수익성 악화로 고전하던 휴대폰 사업을 맡아 ‘제2의 애니콜 신화’를 쓰기도 했다.

최 사장은 ‘독일병정’ ‘디지털 보부상’으로 통한다. 정확한 업무처리와 절도 있는 생활로 붙여진 별명이다. 최 사장은 또한 마케팅 능력과 기술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바탕으로 기술과 영업을 모두 이해하는 CEO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디지털미디어총괄 사장 당시 해외 전시행사 등에 참가할 때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동행하는 장면이 수차례 포착되며 ‘황태자의 남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3위에는 윤주화 삼성전자 사장이 올랐다. 윤 사장은 자사주를 처분해 얻은 차익과 임원 보수, 배당금 등을 합쳐 모두 71억원을 벌었다. 윤 사장은 삼성전자의 ‘돈줄’을 쥐고 있는 인물로 통한다. 윤 사장은 1978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줄곧 가전부문에서 일하다 1988년 경영지원실 재경팀 경영지원그룹장으로 재무파트에 발을 들여 놓은 이후 재무와 관리 부문에서만 일했다.

2000년에 경영지원팀장 상무로 승진한 이후 2년 간격으로 전무와 부사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고 2004년부터 경영지원팀장 부사장으로 일 해오다 지난 2009년 경영지원총괄본부가 해체되면서 사장급인 감사팀장으로 승진했다.

그 뒤로 정연주 삼성물산 사장이 임원 보수 32억6000만원과 배당금 1억8000만원 등 총 34억4000만원의 수입을 올리면서 4위를 기록했다.
정 사장은 1976년 삼성그룹에 입사한 이래 삼성물산에서 줄곧 일했다. 지난 1997년 삼성물산 건설부문 경영지원실 재무담당 이사를 지낸 후 이듬해부터 2002년 초까지 삼성SDI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2003년 3월부터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 사장은 삼성엔지니어링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임 중이던 지난 2003년 2억4362만달러에 불과했던 해외 수주액을 지난 2009년 89억8727만달러까지 끌어올리는 등 괄목한 성과를 올렸다. 또 당시 최악의 경제 위기 속에서도 건설업계와 엔지니어링업계를 통틀어 업계 1위를 차지하는 등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이 때문에 삼성물산 내부에서도 정 사장에 거는 기대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졌다.

뒤이어 지난 3월 CJ제일제당의 대표이사에서 물러난 김진수 전 사장이 33억9000만원으로 5위를 차지했다. 김 전 대표는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로 통한다. 제일제당 마케팅부를 시작으로 줄곧 ‘마케팅’ 한 우물만 파왔다. 제일제당 마케팅 실장 시절 대상(미원)과의 조미료 전쟁에서 ‘다시다’로 역전을 이뤄냈고, CJ 식품본부장 시절엔 ‘쁘티첼’ ‘햇반’ ‘팻다운’ 등 히트상품을 연이어 개발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또 CJ홈쇼핑 대표로 재직 중에는 중국 진출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김진수 전 사장
마케팅 한우물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30억9000만원을 벌어들이면서 6위에 랭크됐다. 구 사장은 세계 최대 석유 회사인 엑슨모빌의 전략연구소에서 일한 ‘국제통’이다. 에너지 분야에서의 전문성과 경험을 인정받은 그는 2008년 12월 SK에너지 총괄사장으로 임명된 데 이어 이듬해 3월부터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정철길 SK C&C 사장, 경영철학 ‘SKMS’의 대가 
강유식 LG 부회장, 가지 않는 길 걸어 성공 이뤄


글로벌 에너지 기업 전략 전문가로 활동해온 그가 SK에너지의 대표이사에 오른 건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사례다. 금융,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외국계 출신이 CEO에 오른 경우는 있었지만, 에너지업계에서는 거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입사 1년 만에 사장 타이틀을 단 초고속 승진 역시 SK그룹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큼을 알 수 있다.

7위는 28억2000만원을 벌어들인 홍기준 한화케미칼 사장이 차지했다. 홍 사장은 1975년 경인에너지에 입사한 후 유화산업 한 분야에서 터를 닦아온 업계의 대표 전문가이자 정통 ‘한화맨’이다.

경인에너지 입사로 직장생활의 첫 발을 내딛은 후 한국종합에너지(옛 한화에너지) 대표이사와 드림파마 대표이사, 한화케미칼 부사장을 거쳐 2009년 1월 한화케미칼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SK 경영철학인 ‘SKMS’의 대가 정철길 SK C&C 사장이 27억원으로 8위에 올랐다. 지난 1979년 유공에 입사해 석유개발과 신규사업 등 에너지 분야와 정보통신 분야에서 사업개발 관련 추진력과 기획, 마케팅 역량을 두루 인정받았다.

전략의 수립과 강한 실행력의 소유자라는 평가다. 특히 지난 2004년 SK경영경제연구소 경영연구실장으로 역임하는 동안 SK그룹의 가장 큰 경쟁력이라 할 수 있는 SKMS의 근간을 마련하고 SK그룹의 독특한 기업문화를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정 사장은 지난 2005년 경영지원부문장으로 SK C&C에 합류, 공공금융사업부문장 사장, IT서비스사업총괄 등을 맡았다. 정 사장은 그동안 SK C&C 매니지먼트 인프라 개선과 대외사업 구조 혁신, 글로벌 진출 교두보 확보 등을 이뤄내며 회사의 지속적인 성장 모멘텀 마련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LG그룹 2인자’ 강유식 LG 부회장은 26억5000만원으로 9위였다. 구본무 LG 회장을 보좌하면서 LG의 미래사업 포트폴리오 전략 구상에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강유식 부회장은 차세대 LG그룹의 성장을 견인할 인물로 ‘부드러운 원칙주의자’라는 평을 받고 있다.

평소 그의 표정은 온화하다. 임직원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지난 10여년에 걸친 LG의 구조조정과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 계열분리 등을 진두지휘할 때 보여주었듯이 일에 관한 한 매사에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이다.

이석채 KT 회장
정통 관료 출신

강 부회장은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걸어가 성공을 이뤄낸 케이스다. 지난 1998년 LG구조조정본부를 맡으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외자유치, 선진기업과의 합작경영, 우량기업에 대한 기업공개 등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재무구조를 개선하고 경영투명성을 높였다. 특히 당시에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국내 대기업 가운데 최초로 시도해 선진적인 기업지배구조를 구축하는 데 일조했다.

마지막으로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해 임원 보수 15억1000만원과 상여금으로 받은 자사주 1만4087주, 배당금 5100만원 등 총 22억6000만원의 소득을 올리면서 10위를 기록했다. 이 사장은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정통 관료 출신이다. 해박한 지식과 논리적인 사고를 갖췄으며 업무추진력과 소신이 강하다는 평가다.
69년 행정고시 7회로 재정직 공채에 합격한뒤 대통령 지역균형발전 기획단 부단장,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농림수산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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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