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동계올림픽> ‘미리 보는 평창’ 북한 참가 관전포인트

손잡고 입성하지만…미녀 응원단만 보이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평창동계올림픽 개막이 다가올수록 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올림픽이라는 무대서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한데다 국제무대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북한 선수들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 작용한 덕분이다. 다만 급작스럽게 이뤄진 결정이라 남북 단일팀 구성을 두고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이하 평창올림픽)은 한국 스포츠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대형 이벤트다. 개최국으로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남과 북이 단일팀으로 올림픽을 치른다는 점이야말로 평창올림픽에 차별성을 부여한다. 

어려워 보였던
 단일팀 구상

당초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았다. 북핵 문제로 긴장이 고조된 까닭이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를 통해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한 의지를 드러낸 뒤 상황이 급반전됐다. 

북한의 참가 수순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역대 올림픽 최초 남북 단일팀 성사가 최종 결정됐다. 

지난달 21일 스위스 로잔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평창 참가 남북회의서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평창올림픽에 참여하는 북한 선수단의 규모를 46명으로 승인했다고 말했다. 북한 역대 동계올림픽 최대 규모다. 


애초에 북한은 선수 10명, 임원 10명을 파견할 예정이었지만 논의 끝에 선수 22명, 코치를 포함한 임원 24명으로 선수단 구성을 완료했다.  

피겨스케이팅 페어 2명, 쇼트트랙 2명, 알파인과 크로스컨트리 각 3명씩 이름을 올렸다. 북한 선수들은 5개 종목에 출전한다. 여자 아이스하키 팀에는 전체 북한선수 인원의 절반이 넘는 12명이 포함됐다. 

단일팀 구성이 확정되면서 한국 선수 23명을 포함한 총 35명의 여자 아이스하키 엔트리도 확정됐다. 

순식간 매듭진 단일 결론 
북한 선수들 메달은 글쎄

올림픽에 남북이 단일팀으로 나서는 것은 이번이 최초지만, 국제적인 이벤트나 세계선수권서 남북은 종종 단일팀을 구성한 적이 있다. 남북 최초 단일팀 구성은 1991년 일본 지바서 열린 탁구 제41회 세계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남한 현정화와 북한 이분희를 주축으로 하는 남북단일팀은 여자 단체전에 나서 중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또 한 번의 단일팀은 축구였다. 1991년 포르투갈서 열린 20세 이하(U-20)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였다. 당시 북한 안세욱 감독, 남한 남대식 코치와 함께 18명으로 구성된 단일팀은 조 2위로 8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현실적으로 평창올림픽에 출전하는 북한 선수들은 참가에 의의를 둔다고 봐야 한다.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은 2010 밴쿠버 대회 이후 8년 만인데 이번에 평창에 올 북한 선수들은 대부분 국제대회서 중하위권에 머물러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선수는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에 나서는 렴대옥-김주식 조다. 이들은 세계선수권 대회서 15위권 정도의 성적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3월 열렸던 2017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서도 15위를 기록했고, 2016년 4대륙 선수권에선 7위를 차지한 바 있다.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북한 선수들
메달 가능성은?

쇼트트랙 남자 500m와 1500m에 출전하는 최은성과 정광범은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했고, ISU에 프로필조차 등록돼있지 않다. 최은성은 지난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선 준준결승까지 진출했고, 올 시즌 월드컵 1,2차 대회에 개인전 전 종목에 참가했다. 

한국서 열렸던 4차 월드컵에는 참가하지 않았다.

알파인 스키에 출전하는 최명광, 강성일, 김련향도 국제대회 출전 경력이 많지 않다. 최명광은 지난해 이란서 열린 슈퍼-G 대회 출전해 11명 가운데 한 번은 10위, 한 번은 11위를 기록해 최하위권을 기록했다. 

김련향은 같은 대회서 10명 중 8위, 11명 중 10위에 그쳤다.

크로스컨트리 남자 15㎞ 프리스타일에 출전하게 된 한춘경과 박일철, 여자 10㎞ 프리스타일의 리영금은 지난해 4월 러시아서 열렸던 대회에 출전한 것이 마지막이다. 이들은 모두 92명의 선수 가운데 90위권을 기록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화제성과 별개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메달 가능성 역시 희박하다. 북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의 세계 랭킹 25위에 불과하다. 약체로 분류되는 한국보다 3계단 밑이고 전체적인 실력서도 한국 대표팀에 비해 밀린다는 평가다.  

이미 지난해 4월 강릉서 열렸던 세계선수권 대회 디비전 2그룹A 4차전서 한국에 0-3으로 패했다. 세라 머리 대표팀 총감독은 지난달 16일 “아이스하키 3-0의 스코어는 축구의 3-0 스코어 차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북한의 올림픽 참여와 단일팀 구성은 화제성을 높이는 데 일조했고 이는 흥행에 긍정적인 요소다. 

여기에 한국서 열리는 올림픽서 남북 단일팀이 함께 뛴다는 상징성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평창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지칭하고 이전 정부서 무너졌던 남북 관계를 다시금 회복하겠다는 입장을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에 대해 대외 여론도 대체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미국 연방 상·하원은 지난달 29일 평창올림픽 성공 개최를 기원하는 초당적인 결의안을 각각 발의하고 의회 차원 지지를 모았다. 

이번 결의안에는 한미 정상간 평화·안전 올림픽 개최 노력 합의,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 평창 올림픽 지지 및 안전 올림픽의 확고한 공약 재확인, 한반도·동북아 평화와 번영 기대,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 기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확실한 상징성
호의적인 시선

국내서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의견이 61%로 나타났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는 지난달 31일 ‘평창 동계올림픽 관련 시민 인식 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설문조사 전문업체인 마켓링크에 의뢰해 진행했다. 조사대상자는 연령과 거주 지역을 고려한 할당표집으로 선정했다. 응답률은 15.3%며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0% 포인트다.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 1074명 가운데 북한 선수단 참가, 남북 공동 응원에 대해 각각 61%, 58%가 긍정적 의견을 밝혔다.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는 예상치 못한 잡음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단일팀을 구성하기로 한 여자 아이스하키팀이 문제였다. 기존에 국가대표로 피땀 흘려 노력했던 선수들의 박탈감은 고려하지 않고 단일팀을 밀어 붙이는 모양새는 공정한 경쟁을 무시한 북한의 무임승차로 비춰졌다.

 아이스하키 단일팀이 출전하는 경기에는 엔트리 22명 가운데 북한 선수 3명이 의무적으로 포함돼야 한다. 결국 우리 선수 3명이 엔트리서 제외되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이 촉박한 부분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단일팀을 구성하는 데 있어 소통이 부족했고 일방적인 비난이 들끓었다. 여기에 이낙연 총리의 “어차피 메달권이 아니다”라는 발언까지 겹치면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졌다.   

화해 분위기 조성 상징성 충분
올림픽 끝나면 다시 ‘안갯속?’

공교롭게도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가가 확정된 직후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취임 후 처음으로 60%대 아래로 떨어졌다. 

<리얼미터>가 지난달 22∼24일 전국 성인 1509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95% 신뢰 수준에 표본오차 ±2.5%포인트)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해 ‘잘한다’고 평가한 응답자는 지난주 주간집계보다 6.2%포인트 내린 59.8%로 집계됐다. 
 

이를 두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청와대로 입성한 문재인정부가 단일팀 구성 과정서 역풍을 맞았다는 분석이 뒷따랐다.

평창올림픽을 기점으로 완화된 남북 긴장관계가 순식간에 돌변하지 말란 보장도 없다. 평창서 보여준 남북의 우호기류가 올림픽 이후 급격하게 식을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미 북한은 대회 개막 하루 전인 오는 8일 건군절 열병식을 치르겠다고 공표했다. 이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평창을 주시하고 있을 때 다시금 자신들의 존재감을 보여주겠다는 북한의 전형적인 이중적 행보라는 평가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남북의 사이가 악화되면 현 정부는 역풍을 피할 수 없다. 

한편 평창동계올림픽에는 대규모 북한 응원단이 파견된다. 오는 8일과 11일 각각 서울과 강릉서 북한예술단 공연이 잡혀 있다. 태권도시범단의 경우 서울 공연은 물론이고 평창올림픽 개막식 식전 공연 여부도 합의 중이다. 

공정성 흠집
예상 못한 잡음

하지만 남아 있는 남북 합의 사항이 모두 순조롭게 이행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북한의 일방적인 취소 통보가 이어지고 있는 만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2014 인천아시안게임 때도 개막을 20여일 앞둔 상황서 응원단 파견을 철회한 전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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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