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코너 몰린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2.05 10:58:14
  • 호수 1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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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게 살았다 간증 ‘사실일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깨끗하게 살았다.” 안태근 전 검사가 교회 간증서 이같이 밝혔다. 그런데 현직 여검사가 8년 전 안 전 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공개적으로 폭로했다. 스스로 고백 한대로 그의 인생은 정말 깨끗했을까. 
 

“2010년 10월30일 한 장례식장서 법무부장관을 수행하고 온 당시 법무부 간부 A검사로부터 강제추행을 당했다. 옆자리서 허리를 감싸 안고 엉덩이를 쓰다듬는 행위를 상당 시간 동안 했다. 모욕감과 수치심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서지현 폭로에 
검 내부 발칵

서지현(사법연수원 33기)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는 검찰 내부 통신망에 8년 전 법무부 간부 A검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A검사는 바로 안태근 전 검사다. 당시 법무부 정책기획단장으로 재직 중이었다. 서 검사는 이 이 사건 이후 인사 불이익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사건은 서 검사가 안 전 검사의 사과를 소속 검찰청 간부를 통해 받는 선에서 정리됐다. 하지만 안 전 검사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2014년 사무감사서 검찰총장 경고를 받은 뒤 2015년 원치 않는 지방 발령을 받았다. 이 인사 발령 배후에 안 전 검사가 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 검사는 지난 1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성폭력 피해는 결코 피해자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걸 깨닫는 데 8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서 대부분 성폭력 피해자들은 혹시나 피해가 자신 탓은 아닌지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한다. ‘자신이 근무했던 조직, 그럴 것 같지 않았던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었을 경우 더욱 그렇다. 

서 검사 역시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아닌가”하는 자책감에 휩싸였다고 했다.

서 검사가 8년이나 지난 일을 폭로한 까닭은 뭘까.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그는 우선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다고 했다. 또 ‘검찰 개혁을 위해서’라고 말했다. 아울러 서 검사는 안 전 검사의 ‘위선’도 폭로에 이르게 한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안 전 검사는 최근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10월29일 온누리교회서 간증(신앙고백)을 했다. 안 전 검사는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이 종교에 귀의한 배경에 대해 털어놨다. 

안 전 검사는 “30년 동안 공직자로 살아오며 나름대로 깨끗하고 성실하고 열심히 순탄하게 공직생활을 해왔다”며 “그러다 뜻하지 않은 본의 아닌 일로 공직을 그만두게 됐고, 주변의 많은 선후배·동료·친지들이 ‘너무 억울하겠다’며 같이 분해하기도 하고 위로해줬다”고 밝혔다.  

이른바 ‘돈봉투 만찬’ 사건으로 옷을 벗게 된 일을 언급한 것(관련 사건은 뒤에서 자세한 설명이 이어진다). 당시 안 전 검사는 신앙고백 중 북받침을 참지 못하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울먹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서 검사 폭로로 검찰이 대규모 진상 조사단을 꾸리고 의혹 규명과 제도 개선에 나섰다. 대검찰청은 지난달 31일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을 구성해 운영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진상조사 및 제도 개선이라는 두 갈래로 활동한다. 

한 장례식장서 강제추행 폭로
허리 감싸고 엉덩이 쓰다듬어

조사단은 우선 진상규명을 하고 향후 제도 개선에 전력을 다하게 될 것이라고 대검 측은 설명했다. 활동 기한은 따로 두지 않고 근절될 때까지 활동한다고 덧붙였다. 

조사단은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을 단장으로 하고 여성 부장검사를 부단장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조 지검장은 검찰 내에서 각종 ‘여성 1호’ 기록을 세웠다. 2013년 여검사로는 처음으로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차관급)이 됐다.

여성 성폭력 사건 수사에서 전문성을 쌓은 여성 검사 및 수사관 등이 조사단에 합류한다고 대검 측은 소개했다. 사무실은 서울동부지검에 두기로 했다. 

조사단은 서 검사가 폭로한 안 전  국장의 성추행 의혹 사건을 중심으로 검찰 내에서 발생한 각종 성범죄 사건을 조사하며 필요한 경우 수사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서 검사와 안 전 검사의 경우 조사단 구성이 완료되면 참고인으로 불러 진술을 들을 계획이다. 
 

대검 관계자는 안 전 검사장이 비록 현직 검사 신분은 아니지만, 강제조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안 전 검사 의혹 사건 외에도 서 검사가 추가로 폭로한 성추행 의혹도 조사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또 전직 여성 검사들이 폭로한 성추행 의혹 사건도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억울하다 
 기억 없어”  

하지만 안 전 검사에 대한 처벌이나 검찰 징계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성추행 사건이 불거진 2010년 10월 성추행죄 관련 규정 때문이다. 

당시에는 성추행죄가 친고죄로 규정돼 피해자가 6개월 이내에 고소해야 처벌이 가능했다. 이 규정은 2013년 1월 폐지됐지만, 행위 시 법을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안 전 검사 사건에는 소급적용될 수 없다. 

또 안 전 국장은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감찰 대상도 아니다. 공무원법상 징계 시효 3년이 이미 지나 징계처분 가능성도 없다. 

다만 업무 실적 등에 근거하지 않은 부당한 인사가 확인될 경우 관련자들에게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죄는 공소시효가 10년이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처벌이 가능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안 전 검사는 ‘기억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안 전 검사는 “보도를 통해 상황을 알게 됐다”며 “오래 전 일이고 술을 마신 상태여서 기억나진 않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여야 정치권도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미투(Me too)운동을 지지한다’며 응원을 보내고 있다. 나아가 검찰 내 성범죄 특별수사팀을 구성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미투 운동’은 온라인에 ‘나도 피해자(me too)’라며 자신이 겪은 성범죄를 고백하고 그 심각성을 알리는 캠페인으로 지난해부터 미국 할리우드를 시작으로 전 세계 곳곳서 벌어지고 있다. 

서 검사는 인터뷰서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미투 운동에 영향을 받아 용기를 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여성 의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 기자회견을 열고 서 검사의 폭로에 대해 ”법조계 내 #미투(Me too) 운동을 지지한다“고 응원했다. 그러면서 검찰을 향해 검찰 내에 성범죄 특별수사팀을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정춘숙·권미혁·남인순·박경미·송옥주·유승희·유은혜·이재정·진선미 의원 등은 “용기 있는 서 검사의 성폭력 피해 드러내기를 응원하며 용기 있는 피해자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함께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고 강조했다.  

이들 의원들은 서 검사의 이번 폭로에 대해 “법조계 #미투 캠페인의 시작”이라며 “소위 말하는 전문직, 가장 폐쇄적 집단인 법조계 내에서의 성 범죄 피해자의 고백은 집단으로부터 외면당하기 부지기수였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역시 “서지현 검사의 ‘미투’에 국민의당은 존경과 박수를 보낸다”고 응원했다. 

조용범 부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단순한 양성평등을 넘어 폭넓은 젠더 감수성 논의가 요구되고 있는 현 시점서 이번 서 검사의 결단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성폭력 피해자의 떳떳한 자발적 폭로를 의미하는 ‘미투 운동’의 서막을 알리는 역사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민의당은 양성 평등을 넘어서 보다 근원적인 젠더의 문제에 좀 더 성찰적으로 깊이 있게 다가설 것이며, 이를 실천하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서 “법무부와 검찰은 서 검사 관련 사건과 함께 추가 의혹이 제기된 검찰 내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 성역 없는 수사와 함께 가해자들에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피해 여성들의 용기 있는 고백에 정치권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보라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한국당은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고 갑질 성범죄가 근절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데 적극 노력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신 원내대변인은 “갑질 성범죄는 피해자가 승진, 인사 등 각종 불이익을 우려해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운 점이 악용된다”며 “조직 내 강압과 쉬쉬하는 분위기에 피해자가 참아야만 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사건으로 안 전 검사의 이력도 주목 받고 있다. 

1966년 출생해 영동고등학교,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나와(서울법대 85학번)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조인이 됐다. 서울지방검찰청 검사를 시작으로 법무부 검찰국 과장, 법무부 정책기획단장, 법무부 기획조정실 실장 등 검찰 내 핵심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우병우 봐주기
돈봉투 만찬도

안 전 검사는 검찰 내에서 소위 ‘잘 나가는 검사’였다. 서울중앙지검 검사로 처음 법조계에 발을 들인 뒤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2부장·법무부 정책기획단장·대검 정책기획단당·서울서부지검 차장·법무부 인권국장 등 법무부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 요직만을 두루 거친 ‘엘리트 중의 엘리트’로 꼽혔다. 

안 전 검사는 퇴임 전 법무부 검찰국장까지 올랐다. 이 자리는 고검장 승진 1순위인 자리일 뿐 아니라, 장차 법무부 차관을 바라볼 수 있는 요직이다. 안 전 검사의 위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국회 법사위 답변을 보면 더욱 잘 알 수 있다. 

2016년 법무부 검찰국장 시절 안 전 검사는 법무부장관과 함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나왔다.

노회찬 정의당 의원은 당시 ‘부산 엘시티 비리 관련 의혹 사건’과 관련해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에게 보고한 적이 있느냐고 질문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자신의 국정 농단 수사에 몰리는 시선을 돌리기 위해 부산 엘시티 비리의혹 사건 엄정 수사를 지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노 의원에게 질문을 받은 안 전 검사는 “기억에 없습니다” “보고를 안 했을 수도 있고요” “모르겠습니다” 등의 불성실한 답변으로 일관해 도마에 올랐다. 이에 노 의원이 “막장입니다. 막장이에요”라고 질타로 질의를 마쳤다.

안 전 검사가 의원 앞에서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그의 뒷배가 박근혜정권의 실세 중 실세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는 ‘우병우 사단’으로 분류됐다.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2013년 검사장 승진에 실패해 검사복을 벗었다. 하지만 우 전 수석은 ‘박근혜 청와대’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후 인사 불이익 “사건 더 있다”
부랴부랴 진상조사단 꾸리고 조사

돌아온 우 전 수석은 검찰·국가정보원에 ‘우병우 라인’을 대거 포진시키며 사정기관을 장악했다. 우 수석은 검찰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 역시 자기 사람으로 채웠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안 전 검사다. 안 전 검사는 우 전 수석의 핵심 측근이었다.

검찰 주요 요직에 우 전 수석의 측근들이 포진하다 보니 당시 우 전 수석에 대한 수사는 난항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거듭된 구속영장 기각에 압수수색 등 수사 정보가 새나가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던 특검은 우 전 수석의 휴대전화 통화기록을 분석한 결과 그가 수사 받을 당시, 안 전 검사와 4개월 동안 1000여차례나 통화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검찰은 우 전 수석의 가족회사 ㈜정강 등을 압수수색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안 전 검사가 우 전 수석과 수사와 관련해 통화해 관련 정보를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 전 검사는 “우 수석과 업무상 통화했다”고 했지만 하루 평균 8통 이상(4개월간 1000여차례)의 통화는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안 전 검사는 지난해 4월, 우병우 전 수석이 불구속 기소된 뒤 나흘 만에 해당 수사팀 간부 6명을 데리고 저녁 식사를 했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별다른 반응 없이 바로 불구속 기소를 해 ‘부실 수사’ 여론이 일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자리에선 위로·격려의 말과 함께 술잔이 돌았고,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이었던 안 전 검사가 먼저 수사팀 간부들 개개인에게 50만∼100만원이 들어있는 금일봉을 건넸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됐다. 

‘부실 수사’
다시 수면 위로 

당시 사건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안 전 검사 등에 대한 감찰을 법무부와 검찰청에 지시했고 안 전 검사는 곧장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감찰 중이라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고, 대구고검 차장검사로 좌천됐다. 이후 지난해 6월 법무부는 검사징계위원회를 열어 안 전 검사에게 면직 처분을 내렸다. 면직이 되면 2년간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똥 튄 최교일, 왜?

2010년 벌어진 현직 여검사 성추행 사건 당시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재직하며 이를 덮으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최교일 자유한국당 의원이 진상조사단이 만들어진 만큼 모든 것이 조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의원은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사건의 경위를 떠나 검찰국장 재직 시 불미스러운 사건이 발생한데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며 저의 이름이 거명되는 것에 대해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 의원은 “최근의 사건과 관련해 저는 서지현 검사를 추행한 사실도 없고, 성추행 의혹사건 현장에 참석한 사실이 없지만 당시 검찰국장으로 근무한 것은 사실”이라며 “당시 서지현 검사는 서울북부지검서 근무했고, 저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지금까지 서지현 검사와 통화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연락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평검사 인사 때 통상 검찰국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경위는 잘 모르지만 저의 검찰국장 재직 시 인사에도 특별한 불만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제가 최근 검찰국장 재직 시 같이 근무했던 부속실 직원 및 검사 여러 명에게 이 사건에 관하여 물어봤으나 전부 당시 들어본 적이 없는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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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