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새로운 영웅 정현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29 11:07:10
  • 호수 11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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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스물한 살…앞날 창창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 새 역사를 썼다. 22세 테니스 소년, 자신의 우상이자 한때 세계 1위였던 노박 조코비치 마저 꺾으며 8강에 올랐다. 한국 테니스 역사의 신기록이다. 하지만 테니스 소년의 라켓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다음 상대도 꺾으며 4강(준결승)에 진출했다. 그의 아름다웠던 도전은 4강전서 멈췄지만 온 국민은 테니스 왕자 정현에 열광하고 있다. 
 

한국 테니스의 간판 정현(58위·한국체대)이 한국 선수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정현은 지난 24일 호주 멜버른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5500만호주 달러·약 471억원) 남자단식 8강(준준결승)서 테니스 샌드그렌(97위·미국)을 3-0(6-4 7-6(5) 6-3)으로 완파하고 한국 선수 최초로 그랜드슬램 4강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영원한 영웅
조코비치 넘다

1905년 출범한 호주오픈서 남자단식 4강에 오른 아시아 선수는 1932년 사토 지로(일본) 이후 86년 만이다. 프로 선수들의 메이저 대회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로는 아시아 선수가 호주오픈 남자단식 4강에 진출한 적은 없었다. 

대만계 미국인 마이클 창이 1996년 준우승을 차지했지만 그의 국적은 미국이었다. 여자 단식에서는 리나(중국)가 2014년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서 정현은 연일 강자들을 격파하며 파란의 주인공이 됐다.


대회 3회전서 알렉산더 즈베레프(4위·독일)를 제압했고 16강전에선 2년 전 같은 대회서 0-3 완패 굴욕을 당한 전 세계랭킹 1위 노박 조코비치(14위·세르비아)까지 물리치며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았다. 

8강서 정현과 맞붙은 샌드그렌 역시 이번 대회서 무서운 상승세를 보였던 선수다. 세계랭킹은 낮지만 대회 9번 시드 스탄 바브린카(8위·스위스)와 5번 시드 도미니크 티엠(5위·오스트리아) 등 톱10 선수를 잇따라 제압했다.   

이번 대회 돌풍의 주인공끼리 맞붙은 대결은 시작 전부터 관심 대상이었다. 

정현은 이날 1세트 게임스코어 1-1서 샌드그렌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3-1로 기선을 제압했다. 이후 자신의 서브 게임을 착실히 지키며 1세트를 6-4로 따낸 정현은 2세트서도 게임스코어 2-0으로 앞서기 시작했다. 

하지만 중간 자신의 서브 게임을 두 차례나 내주며 샌드그렌에게 3-5까지 뒤졌다. 정현은 9·10번째 게임서 승리하며 반격에 나섰고, 강력한 스트로크로 상대의 범실을 유도하며 두 번째 세트마저 제압했다. 

2세트 고비를 넘긴 정현은 3세트 게임스코어 2-1서 샌드그렌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 벼랑 끝으로 내몰았고 결국 2시간30여분 만에 4강 진출을 확정지었다. 

‘파죽지세’ 호주오픈 이변·돌풍
단숨에 세계랭킹 20위권 ‘껑충’


준결승 진출로 정현은 88만호주달러(약 7억5600만원)의 상금을 확보했다. 이번 대회 전까지 정현의 총상금은 170만9608달러(약 18억3200만원). 남자복식 16강 상금 4만9000호주달러(약 4200만원)까지 더하면 이번 대회서만 누적상금의 43.5%를 벌어들였다. 

만약 정현이 결승에 진출해 준우승만 해도 200만호주달러(약 17억1800만원)를 받을 예정이었다. 이번 호주오픈의 우승상금은 400만호주달러(약 34억3500만원)에 이른다. 

정현은 이번 한국 테니스 역사상 세계랭킹이 가장 높은 선수가 됐다. 현재 랭킹 포인트 857점인 정현은 이번 승리로 랭킹 포인트 615점을 추가로 확보했다. 합계 1472점. 

향후 발표될 남자프로테니스(ATP) 세계랭킹을 발표할 때 1472점으로 세계 29위에 오른다. 이는 이형택이 2007년 8월6일 기록한 36위를 뛰어 넘는 한국 선수 최고 기록이다.  
 

한국 남자 테니스 선수 중 최초로 세계랭킹 300위 안에 이름을 올린 선수는 김봉수다. 그는 1988년 1월4일 300위를 기록했고, 1998년 12월11일 129위까지 랭킹을 끌어올렸다. 김봉수는 총 189주 동안 한국 선수 최고 랭킹 자리를 지켰다. 이는 이형택(631주)에 이어 한국 선수 가운데 두 번째로 긴 기간이다.

정현의 파죽지세에 세계도 놀랐다. 미국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이날 ‘정현의 놀라운 활약은 호주오픈 준결승에도 계속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세계랭킹 58위 정현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에 진출한다”며 “2004년 호주오픈 준결승에 진출한 마라트 사핀 이후 준결승행에 성공한 가장 낮은 랭커다”고 전했다. 

<AP통신>은 “만 21세인 정현은 2010년 호주오픈 마린 칠리치 이후 그랜드슬램 준결승에 진출한 가장 어린 선수”라며 정현의 진기록에 놀라움을 표했다. 

테니스 집안
약시가 계기

정현은 8강전 경기 직후 이뤄진 코트 내 인터뷰서 ‘4강서 누구와 만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잠시 난감해하다 “50대 50”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영국 <가디언>은 정현의 화술이 능숙하다고 평가하면서 “그는 탁월한 젊은 선수일 뿐만 아니라 외교관”이라고 보도했다.

일본 언론도 정현에 엄지를 치켜세우며 4강 진출을 집중 조명했다. 

일본 포털사이트 야후 재팬은 스포츠 섹션 메인에 정현의 기사를 배치했다. 일본 스포츠 종합 매체 <THE ANSWER>는 정현의 승리 후 “초신성 정현이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했다. 아시아권서 니시코리 케이 이후 쾌거”라고 보도했다. 

니시코리는 현재 아시아 테니스의 최강자다. 세계랭킹 24위에 지난 2014년 US오픈 결승에 올라 준우승을 거두며 역대 아시아 선수 최고 성적을 냈다. 


하지만 니시코리는 2018 호주오픈에는 불참했으며 지난해 8월 손목 부상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은 이날 승리 후 공식 기자회견서 ‘가는 데까지 가보겠다’고 4강전에 임할 자세를 밝혔다. 또 22세의 어린 나이답지 않은 노련한 경기 운영과 관련해서도 솔직히 자기 생각을 털어놨다.

정현은 “운동선수는 속마음을 들키면 안 된다고 배웠다”며 “들키면 상대에게 기회를 주게 되는 만큼 모든 선수가 속마음을 숨긴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 정현은 동행하는 사람들 일부는 결승 진출, 나아가 우승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날 8강전에는 바짝 긴장한 모습도 드러냈다. 경기 직전 느닷없이 사이렌이 울려 경기가 잠시 중단되고 일부는 대피하려 자리서 일어나기도 했으나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경기에 임했다고 했다.

튼튼한 허벅지가 외국 기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다는 질문에는 “따로 허벅지 훈련을 하지 않고 있다”며 “시합을 많이 하고 있으며 시합이 최고의 훈련이라는 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서 수영의 박태환이나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와 비교될 만큼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는 말에는 어느 정도 실감한다고도 했다.

그는 “요즘 하루에 300개의 메시지를 받는다”며 “꼭 답변해주는 성격이라 시간을 많이 쓰고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최근 활약상으로 후원업체가 더 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러길 희망하고 있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현재 정현에겐 5개 업체가 후원하고 있다. 영어가 부쩍 늘었다는 말에 “특별히 영어 인터뷰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자신의 괄목할 만한 성적에 관해 “한국의 주니어가 따라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현이 테니스를 시작한 것은 약시를 교정하기 위해서였다. 1996년생인 정현은 7세에 약시 판정을 받았고 녹색을 많이 보라는 의사 권유를 받아 들여 테니스를 시작하게 됐다. 

약시는 안과적 검사 상 특별한 이상을 발견할 수 없는데 교정시력(안경이나 콘택트렌즈 등으로 교정한 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시력을 말한다. 시력표서 양쪽 눈의 시력이 두 줄 이상 차이가 있을 때 시력이 낮은 쪽을 약시라고 한다. 

또 정현은 아버지와 형 모두 테니스 선수 출신인 ‘테니스 집안’ 막내다. 특히 실업 테니스 선수 출신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선수의 길에 입문했다. 친형도 테니스 선수로 활동 중이다. 

여담이지만 형인 정홍은 국내 대학 남자 테니스 선수로는 넘버 원을 다투는 실력을 가졌는데 둘은 공식경기서 두 번 만나 정현이 2승을 거뒀다.

이렇게 테니스 선수 가족이지만 정현의 부모님은 두 아들 중 한 명은 테니스 대신 공부를 시킬 생각이어서 처음에 정현이 테니스를 하는 것을 반대했다고 한다.

정현은 테니스 선수로서의 시작은 본인의 고집과 신체적인 이유와 겹친 것으로 전해진다. 정현의 아버지가 실업 테니스 선수였다가 은퇴한 후에 테니스 지도자 생활을 하게 되면서 형인 정홍을 자연스럽게 테니스 선수로 키웠다. 

한국 테니스 
새 역사 쓰다

집에선 차남인 정현이 테니스보다는 공부를 했으면 했는데 형이 테니스를 하는 것을 보며 자신도 공부보다 테니스를 치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여기에 정현 본인이 초등학교 1학년 때 상당히 심한 약시(정확하게는 원시, 난시, 약시가 모두 있었다고 한다)가 있다는 것을 부모님과 함께 알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엔 치료를 위해 시작했지만 이후 정현은 2008년 주니어급 테니스 대회 중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오렌지볼 12세부서 우승, 2011년 오렌지볼 16세부서 우승을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냈다. 
 

학창 시절에는 수원북중학교의 시즌 전관왕을 이끌기도 했다.

고등학교는 아버지가 감독으로 있는 삼일공고로 진학했다. 특히 2013년 7월에는 그랜드슬램 대회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윔블던 주니어 남자 단식서 준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2014년에는 퓨처스 대회 3번과 창삿 방콕 오픈 대회서 우승하면서 본격적인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방콕 오픈은 첫 챌린저급 대회다. 이후 2014년 미국 오픈 대회에 데이비스 컵 한국 대표팀으로 나서 두 번의 경기서 이겼다. 

그는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서 복식 금메달까지 거머쥐어 군면제까지 받았다. 특히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단식/복식 금메달, ATP 가오슝 챌린저 테니스 단식 우승 등 정현은 매 경기마다 뛰어난 활약을 보여주며 세계 테니스계서 주목받는 선수로 거듭났다.

정현의 맹활약으로 그의 플레이 스타일도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전형적인 ‘베이스라이너’.

조코비치와 경기서 안정적인 스트로크와 절묘한 패싱 샷으로 그를 여러 차례 수세로 몰았다. 특히 시합 도중 33번의 랠리 접전 끝에 포인트를 따냈던 것은 이날 경기의 백미. 정현은 냉정하리만치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수차례의 랠리서 조코비치에 우위를 점했다. 

86년 만에 아시아인 남단식 4강
역대 한국 선수 중 최고 신기록 

평소에도 정현은 빠르게 네트에 접근하기보다는 스트로크 플레이를 통한 안정적 경기 운영을 펼치는 것이 특징이다. 이렇게 코트 뒤 베이스라인(Baseline) 근처 깊숙한 곳에서 그라운드 스트로크를 통한 랠리를 이어가는 타입의 선수를 '베이스라이너(Baseliner)'라고 한다. 

베이스라인 플레이를 위해서는 코트 전반을 커버할 수 있는 빠른 발과 강인한 체력을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한다. 플레이 스타일 상 경기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코트를 전반적으로 넓게 볼 수 있는 시야도 갖춰야 한다. 긴 스트로크와 리턴을 통해 상대의 범실을 유발하는 것도 베이스라이너들이 갖춰야 할 덕목 중 하나다. 

정현과 조코비치는 물론, 강철 체력을 과시하는 현 세계 랭킹 1위 라파엘 나달(호주 오픈에선 8강전서 마린 칠리치에게 발목이 잡혀 탈락)도 대표적인 베이스라이너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1990년대 미남 스타 안드레 애거시도 베이스라이너의 교과서 같은 선수다. 베이스라이너와 대비되는 ‘서브 앤 발리(Serve & Volley)’ 플레이어도 있다. 서브 앤 발리는 강한 서브를 통해 상대방을 흔들고, 네트 쪽으로 빠르게 접근해 리턴된 볼을 발리로 마무리 짓는 스타일이다. 

서브 앤 발리는 서브가 빠른 속도로 상대방 구석에 정확히 꽂힐 경우 경기를 순식간에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볼의 속도가 빠른 잔디 코트서 위력을 발휘한다. 

대개 강력한 서브 능력을 장착한 선수들이 즐겨 사용한다. 최근 정현과의 호주오픈 단식 1회전서 기권했던 미샤 즈베레프가 서브 앤 발리를 자주 구사한다. 또 1990년대 세계 테니스를 석권했던 피트 샘프라스도 전형적인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최근 서브 앤 발리 플레이어의 비율은 크게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라켓 기술 발전 및 경량화로 선수들의 서비스 리턴 능력이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테니스 공식 사용구 크기 확대에 따른 범실 가능성이 크게 감소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열광
외신도 흥분

베이스라인 및 서브 앤 발리 플레이를 적절하게 조화시킨 ‘올 라운더(All Rounder)’ 타입의 선수도 있다. 사실상 대부분 선수들이 이에 속하며, 기술의 숙련도에 따라 특색이 없는 선수가 될 수도 있고, 매우 강력한 선수가 될 수도 있다. 

역사상 최고의 테니스 선수로 손꼽히는 현 세계 랭킹 2위 로저 페더러는 대표적 무결점 올 라운더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페더러는 경기 흐름에 따라 베이스라인과 서브 앤 발리 플레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현 신드롬’ 아이템 찾는 사람들

최근 ‘정현 신드롬’이 유행하고 있다. 정현에 대한 관심은 그가 경기서 착용한 의상, 고글에도 관심이 쏠릴 정도로 뜨겁다. 놀라운 체력과 감각적인 플레이로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쓰고 있는 정현의 패션 아이템을 소개한다.

정현이 경기서 착용한 의상은 프랑스 스포츠 브랜드 ‘라코스테’(LACOSTE)의 제품이다. 

라코스테는 프랑스의 전설적 테니스 선수 르네 라코스테가 설립한 스포츠 브랜드다. 라코스테는 보다 편안한 테니스 경기를 위해 세계 최초로 피케 소재 반소매 셔츠를 개발하기도 했다. 정현이 2016년 라코스테와 5년 간의 공식 후원 계약을 맺으면서 그의 유니폼엔 라코스테의 로고 ‘악어’가 함께하게 됐다.

정현이 지난 23일 호주오픈 8강에 진출한 뒤 가진 인터뷰서 착용한 시계도 화제다. 이날 인터뷰서 정현은 라코스테의 블랙 점퍼에 굵직한 밴드의 손목시계를 착용했다. 

이는 스위스 명품 시계 브랜드 라도(Rado)의 하이퍼크롬 캡틴쿡 45㎜로, 가격은 286만원이다. 오버사이즈 인덱스와 두툼한 화살형 바늘, 1960년대 라도 스타일인 닻 장식이 있다. 

정현은 차세대 테니스 스타를 발굴해 후원하는 라도의 ‘라도 영스타 프로그램’의 후원을 받고 있다. 

어릴 때 고도근시와 약시 판정을 받았을 정도로 시력이 좋지 않은 정현은 테니스 선수들이 잘 착용하지 않는 고글을 애용, ‘교수’라는 별명도 붙었다. 

테니스 코트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고글' 스타일은 정현만의 시그니처 스타일이 됐다. 정현이 이번 경기 때 착용한 고글은 아이웨어 브랜드 오클리의 ‘플락 베타’로, 렌즈에 따라 가격이 다르지만 20만원 중반대 제품이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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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여당 최대 변수 송영길,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돌아왔다. 3년의 옥살이 끝에 무죄를 선고받은 만큼 명분과 서사를 모두 거머쥐었다. 두 팔 벌려 환영했지만 송 전 대표를 바라보는 정청래 지도부의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앞으로 치러질 각종 선거의 변수가 된 송 전 대표의 쓰임새는 무엇일까? 지난달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의 무죄가 확정됐다. ‘돈봉투 사건’을 주도하고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검찰이 상고를 포기하면서다. 송 전 대표는 “돈봉투 의혹 사건, 2심 무죄에 이어 최종 무죄가 확정됐다”며 “긴 시간 함께 걱정해 주시고, 흔들림 없이 믿어주시며 끝까지 곁을 지켜주신 많은 분의 성원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진실은 결국 가려지지 않았다. 이제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책임 있게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강조했다. 돌아온 큰형님 송 전 대표는 지난 2021년 민주당 전당대회 경선을 앞두고 6000만원의 상당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역 본부장에게 현금이 든 돈봉투를 건네고, 민주당 윤관석 의원을 통해 국회의원에게 나눠줄 돈봉투 6000만원을 제공하는 데 개입한 혐의 등을 받았다. 아울러 그의 외곽 후원 조직인 ‘사단법인 먹고사는문제 연구소(이하 먹사연)’를 통해 기업인 7명으로부터 후원금 명목의 불법 정치자금 총 7억6300만원을 챙긴 혐의 등도 있다. 당초 1심 재판부는 송 전 대표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으나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윤성식)는 이를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원심 판단이 돈봉투 사건과 먹사연 사건 범죄 사실의 관련성을 인정한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먹사연 사건 관련 공소 사실의 경우 압수물이 영장 없이 증거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송 전 원내대표의 복귀는 화려했다. 무죄가 선고된 날 서울고등법원 현장에는 민주당 강득구·김교흥·김상욱·박선원·부승찬·전현희 의원 등 10여명이 모였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역시 자신의 SNS에 “송 대표의 무죄 판결을 축하한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다”며 “검찰 전횡을 바로잡는 검찰개혁에 더 매진하겠다”고 작성했다. 이 판결로 송 전 대표는 ‘정치 검찰의 희생양’이라는 강력한 명분을 얻었다.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정치 검찰의 서슬 퍼런 칼날을 이겨내고 돌아오신 송 전 대표를 환영한다”며 “이재명정부 성공을 향해 연대와 통합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송 전 대표는 이날 민주당 인천시당을 찾아 복당 신청서를 제출했고, 그달 27일 최종 의결됐다. 정 대표는 “송 전 대표의 복당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앞으로 민주당 발전과 이정부의 성공을 위해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정 대표는 “탈당 후 당의 요청이 아니면 다른 경선에서 20% 감산되는 불이익을 받는데, 당 대표인 제가 요청해 (감산이 없도록) 처리하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인천시당에 복당을 신청한 것이 서울시당으로 이첩됐던 것을 중앙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로 보내라고 지시해 복당했다”고 말했다. “정치 검찰 피해자” “이재명의 은인” 정점 찍은 서사…‘송 사용법’ 고심 송 전 대표는 2021년 전당대회서 당의 주류였던 친문(친 문재인)계를 꺾으며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났다. 그런 그에게는 이재명 대통령과 끈끈한 연결고리가 있다. 같은 해 치러진 민주당 대선 경선 과정서 두 사람의 관계가 본격화됐고, 송 전 대표가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밀어줬다는 이른바 ‘이심송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이재명 후보를 국회로 이끈 인물 역시 송 전 대표다. 그는 2022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인천 계양을 지역구에서 사퇴했고, 그때 이 후보가 보궐선거를 통해 당내에 입성했다. 당시 그는 이 후보의 전략공천을 환영하는 입장을 밝히며 “당의 단단한 결정과 이재명 (당시) 상임고문의 결단이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됐다. 이 상임고문은 우리 민주당과 현재 한국 정치에 큰 자산”이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지방선거 승리의 큰 구심점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후보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고 당 대표직을 따내는 등 정치인으로서 성공가도를 걸었던 반면, 송 전 대표는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배하며 정치적 치명상을 입게 됐다. 이때부터 민주당 지지자 사이에서는 송 전 대표가 ‘자신을 희생하고 후배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정치인’이라는 인식으로 남았다. 2023년 두 사람에게 본격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돈봉투 의혹 수사가 송 전 대표를 덮쳤고, 이재명 대표는 거리를 두는 전략을 택했다. 민주당은 당 전체의 타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송 전 대표의 자진 탈당을 압박했고, 송 전 대표 역시 당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당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3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은 송 전 대표가 자신의 서사를 어떻게 활용할지 이목이 쏠린다. 과거의 영광을 누렸던 그가 복귀하자 현 수장인 정 대표의 셈법만 복잡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지방선거, 전당대회, 나아가 다음 대선까지 송 전 대표가 차후 진행될 모든 선거의 변수가 됐다. 6월 치러지는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가 첫 번째 관문이다. 복당 이후 송 전 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계양을로 이사오면서 이곳에서 치러질 보선에 출사표를 던질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계양구는 송 대표의 정치적 고향으로, 지난 2000년 해당 지역에서 당선돼 16대 국회에 입성한 뒤 17·18·20·21대 총선까지 내리 승리했다. 이때 쌓은 조직력을 기반으로 2010 민선 5기 인천시장에도 당선됐다. 굴리는 주판알 인천 계양에 출마가 유력한 김남준 청와대 대변인과의 교통정리 여부가 변수다. 송 전 대표는 YTN과의 인터뷰서 김 전 대변인도 계양을 출마 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당 지도부가 잘 판단하고 결정할 것”이라며 “지역구라는 게 정치인들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국민과 당원의 뜻이 중요하다. 당 지도부가 여러 가지를 검토해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중진과 대통령의 최측근인 신인 정치인의 대결구도가 예상되는 만큼 시선은 지도부의 교통정리에 쏠렸다. 정 대표와의 신경전도 예상된다. 정 대표가 당 대표 연임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한 가운데 송 전 대표가 국회에 입성하면 차기 당권을 노릴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송 전 대표가 실제 당권에 도전할 경우 정 대표를 비롯해 ‘차출설’이 제기되는 김민석 총리와 함께 3파전 구도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조사에서는 벌써 송 전 대표의 이름이 거론된다. 지난달 26일 <뉴스토마토>가 23일부터 24일까지 이틀간 만 18세 이상 전국 성인남녀 1034명을 대상으로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다음 세 사람이 맞붙는다면, 누가 민주당을 이끌 차기 당대표로 적합하다고 보는지’를 묻는 말에 답변은 ▲정청래 대표 21.6% ▲송영길 전 대표 19.4% ▲김민석 국무총리 18.8%로 집계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0%이며 ARS(RDD) 무선전화 방식으로 진행됐다. 응답률은 1.8%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강경 개혁파로서 외연 확장성이 부족하다는 게 단점으로 지적돼 왔다. 정 대표의 강경 노선이 지지층 결집에는 효과적이지만, 중도층과 무당층을 포섭해야 하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는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제기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 대통령과 비슷한 중도·실용주의적 성향인 송 전 대표는 민주 당원의 또다른 선택지가 될 수 있다. 이미 온라인 공간에서는 ‘뉴이재명’ 그룹이 송영길 역할론에 불을 지피면서 그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상황이다. 거침없는 저격수 따라서 송 전 대표 본인이 나서지 않더라도 정 대표의 리더십에 불만을 가진 세력이 정청래 VS 송영길 구도를 만드는 등 당내 경선을 앞두고 판이 깔릴 가능성이 제기된다. 결국 모든 권력투쟁의 종착지가 그렇듯 그가 2027년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송 전 대표는 복귀와 동시에 활발한 활동을 이어갔다. 최근 친청(친 정청래)·친문으로 분류되는 김어준씨의 유튜브 채널 ‘뉴스공장’을 정면으로 비판하는가 하면,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을 두고 ‘대국민 사기’라며 문재인 전 대통령의 책임을 거론하기도 했다. 그는 한 라디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 공소 취소 거래설’의 근원지인 ‘뉴스공장’을 향해 “괴물과 싸우다가 괴물이 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라”고 충고했다. 송 전 대표는 “(‘뉴스공장’에) 섭외를 받아도 안 나가고 싶다”며 “특정 언론 유튜브에 국회의원들이 줄 서서 알현하듯이 있는 모습이 좋은 건 아니다. 우리가 국민의힘에 대해서 고성국이나 전한길 비판하듯이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볼 면이 있다”고 꼬집었다. 여기에 친명인 강득구 의원도 김씨의 방송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면서 그에게 힘을 실었다. 강 의원은 “큰 틀에서 송 전 대표의 문제 제기에 뜻을 같이 한다”며 “(최근) 김씨는 김 총리의 미국 출장을 두고 ‘차기 주자 육성 프로그램처럼 보인다’고 해석했다. 해석은 자유이지만 다소 자의적인 판단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8월 전대 ‘정·송·김’ 3파전? 6월 지선·재보선 첫 번째 관문 코로나 백신 논란에 대해서는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 조국 대표가 참전하면서 사태를 키웠다. 조 대표는 “송 전 대표는 두 가지 음모론을 여전히 믿고 주장하고 있다. 첫째, 극우 변희재가 주장한 최순실 태블릿 PC 조작론. 둘째, 코로나 백신 국가적 사기론”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송 전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최순실 태블릿PC 조작설’을 주장해 온 변희재씨와 손을 잡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JTBC와 검찰, 특검이 태블릿 PC 조작을 통해 박근혜 탄핵 수사에 활용했다는 의혹이) 법률가인 제가 보기에도 일리 있는 주장이라 공감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조 대표의 부산 출마’ 필요성을 언급한 송 전 대표를 비판했다. 조 대표는 “최근 송 전 대표께서 느닷없이 저와 혁신당을 향해 ‘호남 이삭줍기 말고 영남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호남 출마자들이 어떻게 이삭이냐”며 “모욕과 폄훼”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혁신당 후보들은 지난 총선 시기에 송 전 대표가 손을 잡았던 극우 인사 변희재·최대집씨보다 훨씬 훌륭한 사람들”이라며 다시 한번 송 전 대표의 과거 행적을 거론했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송 전 대표는 ‘뉴이재명 바람’에 올라탔다. 지난 15일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이 개최한 ‘뉴이재명 토론회’ 현장에 나타나 지지자와 인사를 나눴다. 송 전 대표의 축사가 끝나자 지지자들은 연신 “송영길”을 외치기도 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송 전 대표는 이 대통령이 쓸 수 있는 최고의 칼”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송 전 대표와 이 대통령, 두 사람은 혁신과 쇄신을 강조하는 등 성격이 비슷하다”며 “정부·여당에 타격을 입히는 ‘당정 갈등설’을 부인하는 것도, 논란을 만드는 것도 정 대표다. 이정부의 성공을 바라는 지지층이 봤을 때 이 대통령이 어떤 의중을 전달할 때 정 대표가 아닌 송 전 대표의 입을 빌리는 편이 쉬울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쏘리재명’ ‘쏘리영길’ 그러면서 “뉴이재명은 송 전 대표에 대한 부채 의식이 있다. 3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했다는 미안함과 이 대통령에게 지역구를 물려준 일 등, 송 전 대표의 희생정신을 높게 평가할 것”이라며 “이런 여론이 확산하면 앞으로 치러질 모든 당내 선거에서 송 전 대표가 승산이 있다고 계산해 어떤 방식이든 (출마를) 결심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송영길 소나무당 어디로?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전 대표가 지난 2024년 옥중 창당했던 소나무당이 해체했다. 송 전 대표는 무죄를 선고받자 “소나무당을 해산하고 더불어민주당으로 복당하겠다”고 말했다. 소나무당 시도당위원장 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입장문을 내고 송 전 대표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협의회는 “송영길 대표의 소나무당 해산 및 더불어민주당 복당 천명은 바로 그 위임에 따른 책임 있는 정치적 결단”이라며 “이는 개인의 정치적 유불리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소나무당이 존재했던 이유와 역할을 다른 방식으로 완성해 나가겠다는 결정이라 우리는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소나무당은 해산하지만,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정치적 신뢰와 연대의 경험은 각자의 자리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라며 “송 대표의 정치적 결단을 존중하며 그의 정치적 행보를 함께 지켜보고 응원하는 시민들과 새로운 방식의 역할을 모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