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쇠고랑 찬 최경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11 14:45:34
  • 호수 11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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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던 새도 떨어뜨린 그가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날아다니던 새도 떨어뜨렸다.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친박(친 박근혜) 핵심으로 최고의 실세였다. 그런 그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의원은 박근혜정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던 2014년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빼내 조성한 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최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온탕 냉탕
왔다 갔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역 의원이 구속되는 것은 최 의원(같은 날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도 구속됐다. 관련 내용은 박스 기사 참고)이 처음이다. 20대 의원 중에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금품비리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같은 당 배덕광 의원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최 의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지난달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의원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상납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지난 2014년 10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아 최 의원에게 직접 1억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원장도 관련 혐의를 인정하는 자수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당시 야권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축소를 요구하자 국정원이 당시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최 의원에게 로비 일환으로 특수활동비를 건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최 의원은 강하게 부인했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자리서 “검찰이 나를 죽이는 데 혈안이 돼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뇌물 혐의가)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서 할복 자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뇌물 받았으면 할복하겠다더니…
국정원 돈 1억 수수 혐의로 구속

최 의원은 의원총회 참석 등의 핑계를 대며 3차례에 걸쳐 검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했다. 그러다 “12월5일 또는 12월6일로 일정을 조정해주시면 성실히 수사받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6일에야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검찰은 최 의원의 재조사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20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최 의원은 3시간가량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았다. 그의 구속으로 ‘국정원 특활비’ 수사에 활로가 열린 양상이다. 검찰은 앞으로 최장 20일간 최 의원 신병을 확보한 상태서 보강 조사를 벌인 뒤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3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4일에 검찰이 추가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서 받은 돈을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운영한 의상실 관리비, ‘문고리 3인방’등 측근 격려금, 삼성동 사저 관리비, 기치료 주사 등 비선 진료비로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또 국정원 상납금 가운데 상당액이 최순실씨에게 흘러간 흔적도 포착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구속된 데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사필귀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원내 주요 정당들은 이에 일제히 논평을 내고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최경환·이우현 의원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라며 “자유한국당은 함구하지 말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특히 “두 의원의 신병처리 과정서 자유한국당의 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여야 3당이 합의했고 ‘대선 공통공약’이었던 개헌특위 연장 문제를 시작으로 민생법안을 가로막으며 임시국회를 파행시켜 결과적으로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던 바 있다”고 꼬집었다. 

사필귀정 지적
당은 묵묵부답

지난달 임시국회 파행 국면을 언급하며 ‘현행범이 아닐 경우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불체포특권)에 따라 사법 처리가 미뤄져왔음을 재차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사필귀정이다. 전 정권 최고 실세였던 두 의원이 국민이 부여한 자리와 권한을 남용해 본인들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했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며 “국회의원직과 정부직을 이용한 범죄라면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엄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의 핵심 세력들이 연일 검찰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며 “‘국정원 특활비’ ‘공천헌금’ 모두 자유한국당을 넘어 전 정권과 연관된 적폐인 만큼, 검찰은 이번 구속수사를 통해 혐의와 관련자들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변인은 “자유한국당 또한 정치보복이라는 식의 물타기는 그만두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수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적폐본산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구 여권이던 바른정당도 최·이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정치권 동향에 함께하는 모습이다. 

권성주 바른정당 대변인은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논평을 시작하면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불법을 자행한 것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부패한 권력남용이 만든 환부를 뿌리까지 도려내고 국민 신뢰의 씨앗이 심겨지길 기대한다”라며 “검찰은 철저하고 균형 잡힌 수사를 통해 정치권의 잘못된 폐습을 도려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최 의원과 이 의원 구속은 개인적인 불명예인 동시에 정권 교체를 전후해 가속화한 친박 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역대 정치권에서 실세로 꼽힌 인물은 많다. 하지만 최 의원만큼 공식·비공식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발휘한 이는 많지 않다.  

최 의원은 수많은 친박 정치인 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핵심 실세로 꼽힌다. 그는 전 정권 기간 옛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역임하며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손에 쥐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서 그에게 “성이 최씨라 최측근이냐”는 농담도 했다. 

최 의원은 1955년 2월27일 경북 경산서 태어났다. 1973년에 대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 재학 중인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80년에 청도군청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근무하다가 1980년부터 1994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서 근무했다. 경제기획원 근무 중인 1984년에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입학, 1986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91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재정경제원 국고국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귀국해 1997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보좌관, 1998년 4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후 “공무원 생활이 답답하다. 다른 일을 하겠다”며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갔다. 1999년 5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2002년 4월부터 2002년 9월까지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을 맡았다.

나락으로∼
전 정권 실세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이회창 전 총리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경북 경산·청도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20대까지 네 번 내리 당선됐다. 2004년 6월부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과 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했던 17대 대선 전 2007년 한나라당 경선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시 캠프서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한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지만, 그는 초지일관 최측근이자 실세였다. 보스 기질이 있어 단순 참모 역할 그 이상을 했다. 

적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눈여겨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발탁했다가 2009년엔 아예 지식경제부장관에 앉혔다. 당시 친이(친 이명박)계가 친박계를 배려하는 상징성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으며 2012년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자연스레 박근혜정부 출범 뒤엔 최고 실력자가 됐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그 1년 후엔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됐다.

온갖 의혹서도 살아남았는데… 
2년 만에 실세 부총리서 추락

명실상부한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였다. 당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지경부장관 시절 기획조정실장),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동기), 최양희 미래부장관(지경부 산하 R&D 전략기획단원) 등은 모두 최 의원과 인연이 있었다. 

시중에선 최 의원의 이름을 빗댄 ‘초이 노믹스(Choinomics)’란 말이 등장했다.

장관의 이름을 딴 경제 정책은 사상 처음이었다. 주택담보 인정비율(LTV)·총부채 상환비율(DTI)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4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살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20대 총선 당시 그는 이른바 ‘진박 감별사’가 됐다.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도록 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발언한 뒤 최 의원이 지원유세를 간 후보는 진실한 친박, 곧 진박 후보가 됐다. 

총선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패배. 이후부터 최 의원의 정치 인생도 내리막길을 탔다. 탄핵국면이 시작되면서는 추락하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3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최 의원 사무실서 일했던 인턴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이사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그동안 외압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법정에선 최 의원이 그냥 채용하라며 외압을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사장은 법정서 “두 번이나 성적을 조작했고 ‘그냥 해!’라며 강제로 면접서 통과시켰다”고 증언을 한 것. 

다음은 누구?
정치권 긴장

최 의원은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채용 부탁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최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이를 채용토록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강요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 수수혐의가 유죄 팔결이 날 경우, 그의 화려한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속된 또 다른 친박 이우현 의원 혐의는?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등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4일 새벽 이 의원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이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 의원은 20여명의 지역 정치권 인사나 사업가 등으로부터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미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당 공천관리위원을 지낸 이 의원에게 시장 공천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5억5000만원을 건넨 전 남양주시의회 의장 공모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이 의원에게 한국철도시설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2000만원을 제공한 전기공사 업자 김모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한전산업개발 임원을 지낸 윤모 전 한국자유총연맹 부회장이 이 의원에게 약 2억5000만원을 준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의원의 옛 보좌관 김모씨와 불법 다단계 업체 IDS홀딩스의 유착 관계를 수사하는 과정서 '금품수수 리스트'를 확보해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다. 이 의원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이 정치권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이 의원이 받은 자금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공천헌금'의 성격이 의심되는 데다 이 의원이 친박계 중진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IDS홀딩스와의 관계 등을 고리로 수사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일부 돈이 오간 정황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후원금일 뿐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었으며 공여자들과의 접촉은 보좌관이 한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해왔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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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