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쇠고랑 찬 최경환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1.11 14:45:34
  • 호수 1148호
  • 댓글 0개

날던 새도 떨어뜨린 그가 떨어졌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날아다니던 새도 떨어뜨렸다. 아무도 건들지 못했다. 최경환 자유한국당 의원은 친박(친 박근혜) 핵심으로 최고의 실세였다. 그런 그가 국가정보원으로부터 1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최근 구속됐다. 권력이 얼마나 덧없는지 보여주는 가장 드라마틱한 정치인으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최경환 의원은 박근혜정권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던 2014년 국정원이 특수활동비를 빼내 조성한 돈 1억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4일 서울중앙지법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범죄혐의가 소명되고 증거를 인멸할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최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온탕 냉탕
왔다 갔다

지난해 5월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이후 현역 의원이 구속되는 것은 최 의원(같은 날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도 구속됐다. 관련 내용은 박스 기사 참고)이 처음이다. 20대 의원 중에는 부산 해운대 엘시티 금품비리 의혹에 연루돼 구속된 같은 당 배덕광 의원 이후 두 번째 사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양석조)는 최 의원에 대해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뇌물) 혐의로 지난달 11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최 의원은 박근혜정부 시절 국정원으로부터 특수활동비 1억원을 상납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헌수 전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부터 지난 2014년 10월 이병기 전 국정원장의 승인을 받아 최 의원에게 직접 1억원을 전달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이 전 원장도 관련 혐의를 인정하는 자수서를 제출했다.


검찰은 당시 야권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축소를 요구하자 국정원이 당시 예산 편성권을 가진 기획재정부장관이었던 최 의원에게 로비 일환으로 특수활동비를 건넨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사건이 불거졌을 당시만 해도 최 의원은 강하게 부인했다. 지난해 11월 자유한국당 의원총회 자리서 “검찰이 나를 죽이는 데 혈안이 돼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뇌물 혐의가) 사실이라면 동대구역서 할복 자살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뇌물 받았으면 할복하겠다더니…
국정원 돈 1억 수수 혐의로 구속

최 의원은 의원총회 참석 등의 핑계를 대며 3차례에 걸쳐 검찰의 소환통보에 불응했다. 그러다 “12월5일 또는 12월6일로 일정을 조정해주시면 성실히 수사받겠다”고 했다가 지난달 6일에야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검찰은 최 의원의 재조사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20시간에 걸친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최 의원은 3시간가량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았다. 그의 구속으로 ‘국정원 특활비’ 수사에 활로가 열린 양상이다. 검찰은 앞으로 최장 20일간 최 의원 신병을 확보한 상태서 보강 조사를 벌인 뒤 재판에 넘길 계획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가정보원으로부터 30억원대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지난 4일에 검찰이 추가 기소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원서 받은 돈을 ‘비선 실세’ 최순실씨가 운영한 의상실 관리비, ‘문고리 3인방’등 측근 격려금, 삼성동 사저 관리비, 기치료 주사 등 비선 진료비로 쓴 것으로 검찰은 파악했다. 

또 국정원 상납금 가운데 상당액이 최순실씨에게 흘러간 흔적도 포착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업무상 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구속된 데에 대해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사필귀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별다른 공식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바른정당·정의당 등 원내 주요 정당들은 이에 일제히 논평을 내고 사법당국의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다. 

김현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서 “최경환·이우현 의원의 구속은 사필귀정”이라며 “자유한국당은 함구하지 말고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김 대변인은 특히 “두 의원의 신병처리 과정서 자유한국당의 태도 또한 비판받아 마땅하다”며 “여야 3당이 합의했고 ‘대선 공통공약’이었던 개헌특위 연장 문제를 시작으로 민생법안을 가로막으며 임시국회를 파행시켜 결과적으로 방탄국회라는 오명을 남겼던 바 있다”고 꼬집었다. 

사필귀정 지적
당은 묵묵부답

지난달 임시국회 파행 국면을 언급하며 ‘현행범이 아닐 경우 회기 중 국회 동의 없이 체포·구금되지 않는다’는 면책특권(불체포특권)에 따라 사법 처리가 미뤄져왔음을 재차 지적한 것이다.

국민의당과 정의당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은 “사필귀정이다. 전 정권 최고 실세였던 두 의원이 국민이 부여한 자리와 권한을 남용해 본인들의 사리사욕 채우기에 급급했던 정황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며 “국회의원직과 정부직을 이용한 범죄라면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엄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자유한국당의 핵심 세력들이 연일 검찰수사 대상에 오르고 있다”며 “‘국정원 특활비’ ‘공천헌금’ 모두 자유한국당을 넘어 전 정권과 연관된 적폐인 만큼, 검찰은 이번 구속수사를 통해 혐의와 관련자들을 명명백백히 드러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대변인은 “자유한국당 또한 정치보복이라는 식의 물타기는 그만두고, 무거운 책임감으로 수사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적폐본산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구 여권이던 바른정당도 최·이 의원에 대한 검찰 수사를 촉구하는 정치권 동향에 함께하는 모습이다. 

권성주 바른정당 대변인은 “안타깝고 부끄럽다”고 논평을 시작하면서도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솔선수범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불법을 자행한 것은 일벌백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권 대변인은 이어 “부패한 권력남용이 만든 환부를 뿌리까지 도려내고 국민 신뢰의 씨앗이 심겨지길 기대한다”라며 “검찰은 철저하고 균형 잡힌 수사를 통해 정치권의 잘못된 폐습을 도려내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최 의원과 이 의원 구속은 개인적인 불명예인 동시에 정권 교체를 전후해 가속화한 친박 세력의 ‘정치적 몰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역대 정치권에서 실세로 꼽힌 인물은 많다. 하지만 최 의원만큼 공식·비공식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발휘한 이는 많지 않다.  

최 의원은 수많은 친박 정치인 중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절대적 신임을 얻은 핵심 실세로 꼽힌다. 그는 전 정권 기간 옛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역임하며 막강한 정치적 권한을 손에 쥐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박 전 대통령은 사석서 그에게 “성이 최씨라 최측근이냐”는 농담도 했다. 

최 의원은 1955년 2월27일 경북 경산서 태어났다. 1973년에 대구고를 졸업하고 같은 해 연세대학교 경제학과에 진학, 재학 중인 1978년 제22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했다.

1980년에 청도군청서 행정사무관 시보로 근무하다가 1980년부터 1994년까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 대외경제조정실서 근무했다. 경제기획원 근무 중인 1984년에 위스콘신대 대학원에 입학, 1986년에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고 1991년에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4년 재정경제원 국고국 서기관으로 근무하다가 1995년 런던에 있는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선임연구원으로 일했다. 귀국해 1997년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실 보좌관, 1998년 4월부터 1999년 5월까지 예산청 기획관리실 법무담당관으로 승승장구했다. 

그는 이후 “공무원 생활이 답답하다. 다른 일을 하겠다”며 <한국경제신문>에 들어갔다. 1999년 5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2002년 4월부터 2002년 9월까지 <한국경제신문> 편집국 부국장을 맡았다.

나락으로∼
전 정권 실세

그를 정치권으로 이끈 건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 보수의 아이콘이었던 이회창 전 총리였다.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이 전 총리의 경제특별보좌관이 됐다. 

2004년 17대 총선 때 고향인 경북 경산·청도에 출마해 배지를 달았고, 20대까지 네 번 내리 당선됐다. 2004년 6월부터 한나라당 정책위원회 제4정책조정위원장과 수도이전문제특별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본선보다 예선이 더 치열했던 17대 대선 전 2007년 한나라당 경선서 그는 박근혜 캠프의 종합상황실장을 맡았다. 

당시 캠프서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형성한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박 전 대통령과 멀어졌지만, 그는 초지일관 최측근이자 실세였다. 보스 기질이 있어 단순 참모 역할 그 이상을 했다. 

적장이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를 눈여겨봤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경제2분과 간사로 발탁했다가 2009년엔 아예 지식경제부장관에 앉혔다. 당시 친이(친 이명박)계가 친박계를 배려하는 상징성을 가진 인사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의 박 전 대통령을 향한 충성심은 변하지 않았으며 2012년 대선 때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다. 자연스레 박근혜정부 출범 뒤엔 최고 실력자가 됐다.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가, 그 1년 후엔 기획재정부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됐다.

온갖 의혹서도 살아남았는데… 
2년 만에 실세 부총리서 추락

명실상부한 경제정책의 컨트롤 타워였다. 당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지경부장관 시절 기획조정실장), 서승환 국토해양부장관(연세대 경제학과 75학번 동기), 최양희 미래부장관(지경부 산하 R&D 전략기획단원) 등은 모두 최 의원과 인연이 있었다. 

시중에선 최 의원의 이름을 빗댄 ‘초이 노믹스(Choinomics)’란 말이 등장했다.

장관의 이름을 딴 경제 정책은 사상 처음이었다. 주택담보 인정비율(LTV)·총부채 상환비율(DTI) 완화 등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41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등 부동산 살리기에 올인하다시피 했다. 
 

20대 총선 당시 그는 이른바 ‘진박 감별사’가 됐다. 총선을 앞두고 박 전 대통령이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도록 해주시기 부탁드린다”고 발언한 뒤 최 의원이 지원유세를 간 후보는 진실한 친박, 곧 진박 후보가 됐다. 

총선 결과는 자유한국당의 패배. 이후부터 최 의원의 정치 인생도 내리막길을 탔다. 탄핵국면이 시작되면서는 추락하는 데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혐의로 지난해 3월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다. 최 의원 사무실서 일했던 인턴이 중소기업진흥공단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에 대해 당시 이사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그동안 외압을 부인해왔다. 

그런데 법정에선 최 의원이 그냥 채용하라며 외압을 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이사장은 법정서 “두 번이나 성적을 조작했고 ‘그냥 해!’라며 강제로 면접서 통과시켰다”고 증언을 한 것. 

다음은 누구?
정치권 긴장

최 의원은 “그런 사람을 만난 적도 없고 채용 부탁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3월 검찰은 최 의원이 자신의 의원실서 인턴으로 근무했던 이를 채용토록 중소기업진흥공단에 강요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최 의원이 국정원 특수활동비 1억원 수수혐의가 유죄 팔결이 날 경우, 그의 화려한 정치 인생은 막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1억원 이상의 뇌물을 받았을 경우 무기 또는 징역 10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구속된 또 다른 친박 이우현 의원 혐의는?

자유한국당 이우현 의원이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 등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신자용 부장검사)는 4일 새벽 이 의원을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정치자금법 위반 등 혐의로 구속했다. 

서울중앙지법 오민석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거쳐 이 의원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오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발부 사유를 밝혔다. 

이 의원은 20여명의 지역 정치권 인사나 사업가 등으로부터 10억원 넘는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미 2014년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당 공천관리위원을 지낸 이 의원에게 시장 공천 청탁과 함께 여러 차례에 걸쳐 5억5000만원을 건넨 전 남양주시의회 의장 공모씨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또 국토교통위원회 위원 등을 지낸 이 의원에게 한국철도시설공단, 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이 발주한 공사를 수주하도록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1억2000만원을 제공한 전기공사 업자 김모씨도 뇌물공여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한전산업개발 임원을 지낸 윤모 전 한국자유총연맹 부회장이 이 의원에게 약 2억5000만원을 준 혐의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 의원의 옛 보좌관 김모씨와 불법 다단계 업체 IDS홀딩스의 유착 관계를 수사하는 과정서 '금품수수 리스트'를 확보해 관련 의혹을 수사해왔다. 이 의원의 신병을 확보한 검찰이 정치권으로 수사를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전망이 법조계 일각에서는 제기된다.

이 의원이 받은 자금 가운데 일부는 이른바 '공천헌금'의 성격이 의심되는 데다 이 의원이 친박계 중진의 최측근으로 분류된다는 점에서 IDS홀딩스와의 관계 등을 고리로 수사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원은 일부 돈이 오간 정황은 인정하면서도 정당한 후원금일 뿐 대가성 있는 돈이 아니었으며 공여자들과의 접촉은 보좌관이 한 일이라며 의혹을 부인해왔다. <창>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