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귀환’ 전 LIG 감독 이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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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8.01.02 11:15:42
  • 호수 11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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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쉼표 없는 배구인생

“아직도 내 머리에는 수 백 가지의 배구 전술이 존재한다.” 거포 강만수와 컴퓨터 세터로 불리던 김호철의 조합을 가졌던 한양대학교 배구부는 남자배구의 철옹성으로 오랫동안 군림했는데, 그러한 한양대학교 배구부를 제압하며 1980년대 새로운 대학배구의 강자로 떠오른 학교가 바로 경기대학교였다. 그 중심에는 강만수 이래 최고의 거포였던 장윤창(현 경기대학교 교수)과 콤비를 이루던 세터 이경석(전 LIG 그레이터스 감독)이 있었다.
 

지금은 고교 배구선수들조차도 강한 스파이크 서브를 날리고, 후위 라인에서의 백어택으로 스파이를 때리고 있지만 1980∼1990년대 그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국내 배구선수로는 거의 장윤창이 유일했다. 공격이 가능하게끔 플레이 메이킹을 해주었던 세터 포지션의 선수가 바로 이경석이었다.

‘거포 도우미’ 국대 세터로 활약
장윤창 등과 고려증권 전성시대

인천의 신흥초등학교 2학년 때 배구에 입문해 중고등학교 시절 배구의 방랑자로 전국을 떠돌며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이 전 감독은 경기대학교에 진학하며 어린시절 같이 배구해왔던 장윤창과 재회, 이후 그와 콤비를 이뤄 국내 성인 배구계를 경기대학교 천하로 만들어낸다.

대학 졸업 후 고려증권서 장윤창을 비롯한 경기대 출신 선수들과 다시 남자배구계에 고려증권 신화를 만들었고, 현역 은퇴 후에는 1997년부터 모교인 경기대학교의 감독으로 재임하며 현재 국내 배구계서 맹활약 중인 제자들을 숱하게 양성했다.

2011년부터 현 KB손해보험 배구팀의 전신인 LIG그레이터스 배구팀의 감독으로 프로구단 지도자로서 데뷔한 후 2012년 시즌 우승까지 거머쥐는 등 강팀 조련과 우승을 불러일으키는 명장으로 명성을 날리다 2013년 시즌 중 갑작스런 경질로 다시 야인으로 돌아왔다. 


현재 한국배구연맹(KOVO)의 경기위원이다. 선수 시절부터 지도자 재임 시절까지 그의 쉼표 없는 배구인생을 들어봤다.

▲ 현역시절의 포지션(세터)으로 짐작했을 때 신장이 크지 않을 거라 추측했었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참 큰 신장의 소유자다.

-신장은 186cm이다. 세터로서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의 배구선수로도 작은 키는 아니다. (웃음) 컴퓨터 세터라고 불리던 김호철 선배는 정말 작았었다.

▲선수 시절에는 어땠나?

-지금은 작고하신 배구선수 출신의 누님을 두고 있었다. 이 때문에 어려서부터 배구공을 장난감 삼아 다뤘고 누님을 통해 초보적인 리시브나 토스 등의 기술을 익혔다. 인천의 신흥초등학교 2학년 재학 시절부터 배구에 입문했고, 중학교는 인천남중으로 진학했다가 경기도 화성의 송산중학교 배구부로 전학을 갔다. 

그때 전학하며 1년을 유급했었는데 학번은 내가 뒤지만 경기대학 시절 장윤창과는 어릴 때부터 배구를 같이 하던 동기다.
 

고등학교는 부산 성지공고로 진학을 했는데 재학 중 배구부가 해체돼 다시 부산 동성고로 전학했고 경기대학교로 진학했다. 초중고 시절에는 공격수와 세터의 포지션 모두를 소화하다가 대학 진학 이후 전문적인 세터의 역할을 했다. 


대학졸업 후에는 군에 입대해 당시 창단된 상무 소속의 창단 멤버로 뛰었고 전역 후에는 고려증권 배구단에 입단해 장윤창, 정의탁 등 당대의 선수들과 더불어 고려증권 전성시대를 일궜다. 1994년도 시즌을 마친 후 현역서 은퇴했으니 약 27년 동안 선수생활을 했었다.

▲은퇴 후 지도자로서의 생활은?

-1997년부터 2011년까지 15년 동안 모교인 경기대학교서 감독으로 재임했다. 재임 중에도 2006년 청소년 대표팀의 감독을 비롯해 유니버시아드, 동아시안게임 등의 국제대회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었고, 경기대학교를 이끌면서는 거의 모든 대회의 우승을 독식했었다. 

당시 내가 경기대서 양성했던 제자들이 후인정(전 KT&G), 문성민(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박승석(대한항공), 최홍석(우리카드), 이민규(OK저축은행) 등이다. 그후 2011년 시즌에 프로배구 LIG그레이터스 감독으로 프로팀 지도자 데뷔를 했고 2012 시즌에 소속팀 우승을 차지했다. 2013 시즌 중에 경질됐다.

▲우승 후 시즌 중 경질됐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다. 어떤 일이 있었는가?

-어떤 일이라고 하기보다는 팀 성적이 나빠서 그만뒀다.(웃음) 원래 국내 배구계가 그만큼 경쟁이 심한 곳이고 잠시도 여유를 부릴 만한 곳이 아니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해당 시즌 전 외국 용병의 선발을 잘못했던 것에 기인할 수 있겠다. 용병을 잘못 선택하면서부터 시즌이 잘 풀리지를 않았다.

▲현재 국내 프로배구에 용병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절대적인 것 같다.

-우승의 향방을 결정할 만큼 용병의 존재는 절대적인 것이 돼 버렸다. 어쩌면 국내 배구계가 안고 가야 할 난제다. 다른 종목처럼 용병의 존재는 흥행에 도움이 되지만 국내 배구계의 근간이 되는 엘리트 배구선수의 양성에는 걸림돌로 존재하게 된다. 그리고 전술의 배구, 스피드의 배구 등 포메이션과 전략적인 문제까지 등한시할 수 있는 문제를 낳게 할 수 있다.

▲ 본인이 생각하는 전술의 배구란 것은 어떠한 것인가?

-감독으로서의 내 머릿속에는 수 백 개의 배구 전술로 가득 차 있다. 전위와 후위로 나뉘어 위치하는 배구에서 나의 지론을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백어택에 의한 공격도 속공으로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백어택의 속공을 전제로 하면 수반되는 여러 가지 전술이 나온다. 일단 전위서 블로킹을 세 선수 모두가 붙을 수 있고 수비의 빈 지리는 후위의 선수들이 커버할 수 있다.

국내 프로배구 용병 비중 절대적
엘리트 선수 양성에 걸림돌 지적

배구에서 3명의 블로킹은 감독 시절 내가 처음으로 도입했었다. 그리고 이런 배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모든 선수들이 충분한 스피드를 보유하고 있어야 하며 선수 선발과 기용 역시 그러한 기능을 가진 선수들 위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 명의 전위 선수가 블로킹으로 붙었을 때 후속 동작의 공격 형태가 바로 후위의 백어택이고, 그러한 공격이 속공의 형태로 나타난다면 그 위력이 배가되며 공격 옵션이 하나 더 생긴다. 이런 예가 바로 내가 추구하는 배구 전술이다. 이 모든 과정은 연습을 통해 실전서 언제든 반사적으로 나올 수 있게끔 팀워크를 연마해야 한다.

▲좋은 배구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조건을 갖춰야 하나?

-내가 생각하는 좋은 배구선수의 조건은 세 가지다. 일단 배구를 좋아하고 사랑해야 한다. 이것은 상식적이지만 필연적이기도 하다. 두 번째로는 신체조건을 갖춰야 할 것이다. 물론 현행 배구의 룰에는 리베로라는 포지션도 있고, 세터의 기능에 관해서는 신장보다 센스와 기술이 더 필요할 수 있겠지만 배구는 역시 높이의 스포츠이기 때문에 신장을 비롯한 신체조건이 좋아야한다. 

마지막으로는 선수로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내심이야말로 모든 스포츠 종목을 망라해서 가장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사항 아닌가.

▲지금도 아주 훌륭한 신체조건을 유지하고 있는데 배구선수 시절 다른 종목으로 전환하고 싶었던 생각은 없었나?

-나는 이제까지 배구 이외의 운동을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배구는 내 인생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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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단독] ‘또다시 나타난 그때 그 사기꾼’ 케이삼흥은 왜 서울시 팔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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