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과 묻힌 그때 그 사람들

피해자만 있고 가해자는 없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고 장자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 재수사를 검토 중인 가운데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다. 재수사가 거론되자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사람들은 다시 긴장하고 있다.
 

지난 26일,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장자연 사건에 대한 재수사, 가해자들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요합니다’라는 청원에 1300명 넘게 서명했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 2009년, 당시 신인배우였던 그가 갑작스러운 사망과 함께 메가톤급 폭로로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이다.

신인 배우의 폭로
상납 강요에 자살

장자연 사건은 2009년 3월 드라마 <꽃보다 남자>서 이국적인 외모와 안정적인 연기로 주목받던 신인배우 장자연이 유력 인사들의 성 상납 강요를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로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라는 문건을 남겨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녀가 남긴 문건에는, 끊임없는 술자리 강요로 정신과 치료를 받은 일, 방안에 갇힌 채 손과 페트병 등으로 머리를 수없이 맞았고, 협박과 함께 온갖 욕설과 구타를 받았다는 충격적인 내용과 함께 언론사 대표, 방송사 PD, 연예기획사 대표, 제작사 관계자, 금융인, 기업인 등의 실명이 명시돼있었다. 

장자연의 소속사 대표 김씨와 매니저 유씨는 장자연에 대한 폭행·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명령 160시간을 선고받았다. 유죄로 인정해 1년의 형을 선고하면서 2년간 집행을 미루고 사회봉사를 160시간 하라는 의미다. 


특정한 사고 없이 2년이 지나면 1년 형의 선고는 효력을 잃는다. 

하지만 장자연이 폭로했던 술 접대와 성 상납 상대들, 일명 ‘장자연 리스트’의 유명 인사들에 대한 판결은 ‘혐의없음’이었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분당경찰서는 수사를 4개월 간 진행한 끝에 ‘장자연 리스트’에 거론됐거나 유족에 의해 사자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당한 기획사 대표부터 대기업 대표 및 금융업체 간부, IT 업종 신문사 대표 간부, 일간지 신문사 대표, 드라마 외주 제작사 PD, 영화감독 등 20여명을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송치했다. 

하지만 이 유명 인사들은 증거 부족 등의 이유로 ‘혐의없음’ 처리됐다. 고인이 직접 자필 편지로 폭로했던 유명 인사들을 제외한, 소속사 관계자들만 유죄 판결을 받고 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당시 유력 인사의 이름이 적힌 ‘장자연 리스트’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지만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이렇게 잊혀지는 듯했던 장자연 사건은 편지와 함께 다시 살아났다. 편지는 모두 50여통. 

성상납 사건 재수사 청원 시끌시끌
과거사위원회 부인에도 가능성 고조

편지를 갖고 있던 전모씨는 이 편지가 장자연으로부터 받은 친필 편지라고 주장했다. 


편지는 장자연이 자살하기 3년 전부터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곱 장 분량으로 알려진 2년 전 문건에 비해 분량이 방대했다. 기본적인 골격은 같다. 소속사 대표 김모씨의 강요로 언론계와 기업계의 유력 인사들에게 성 상납을 포함한 접대를 해야 했고 그 과정서 엄청난 고통을 느꼈다는 내용이다. 

성 상납을 받은 것으로 지목된 해당 인사들의 실명은 편지에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직업과 직장은 나온다. 편지에 담긴 감정의 강도는 격렬하고 표현은 적나라했다. 성 접대를 강요한 김씨와 성 접대를 받은 이들을 향한 분노가 선명하다. ‘악마’ ‘복수’ 등의 단어가 자주 사용됐다. 
 

편지에 따르면 접대는 두 가지였다. 술 접대와 성 접대다. 술자리만으로 끝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소속사 대표 김씨로부터 정기적으로 술과 성을 제공받았다고 지목된 사람들은 감독, PD, 대기업·방송사·언론사·금융·증권·일간지 신문사 등의 대표·간부들이다.

여기에 다른 기획사 대표들도 포함돼있다. 이들의 수는 가장 적게 잡아도 31명이다. 

장소는 여럿이다. 특히 자주 언급되는 장소는 회사 3층 접견실이다. 접견실은 술자리를 할 수 있는 공간과 밀실, 욕실 등을 갖추고 있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태국 여행과 관련된 언급도 눈에 띈다. 편지의 어느 대목서 “여행도 아닌, 태국 여행을 다녀와서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를 거야. 여행도 아닌 그거…그거를 위한…”이라고 묘사돼있다. 

편지는 태국 여행과 관련해 특정인을 지목했다. 

“태국 여행 때 나를 데리고 갔던 감독은… 정말 얼마나 머리가 아픈지, 나 말고도 힘없는 연기자들 (상대로) 상습적이야. 내가 아는 애들도 태국 여행… 그 감독에게 노리개처럼… 10명도 넘어. 모두 다 출연 미끼. 스타 되는 거 시간 문제라는 둥 그런 말에….” 

편지와 유서
봐주기 수사

하지만 이 편지는 국과수 감정 결과 ‘가짜’로 판명이 났고 문건 자체가 조작으로 밝혀짐에 따라 당시 경찰은 재수사를 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이 사건은 피해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는 사건으로 남겨졌다.

과거 이종걸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장자연 사건과 관련된 발언과 활동도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종걸 당시 민주당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의서 ‘장자연 사건’을 언급하며 “장자연 리스트에는 신문사 대표가 포함돼있다.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이유는 경찰이 이들의 눈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신문사 대표의 실명을 거론했다. 이에 이달곤 당시 행정안전부장관은 “사건의 전체적인 내용은 보고 받았지만 구체적인 사안은 알지 못한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내용이 담긴 동영상은 현재 인터넷상에 널리 퍼져있는 상태다. 

실명이 언급된 신문사는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며 이종걸 의원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지만, 서울중앙지법은 이 의원에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판결 이후 이 의원은 “장자연씨의 가엾은 영혼을 위해 진실이 밝혀지고 암묵적으로 행해지던 연예계의 고질적 병폐가 근절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또 거대 언론사에 맞서 헌법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 모든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 의원은 또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장씨의 편지를 통해 당시 경찰, 검찰 수사는 진실이 은폐되고 축소됐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그것이 자필문건이라는 것은 확실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유력언론사주가 조사를 받지 않고 한 달 정도 수사가 지연되고 왜곡되는 것에 대해 대정부 질문 때 실명을 거론했지만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왜 수사가 힘 있는 사람에 의해 흐려지냐를 질의하는 과정서 나왔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장씨의 편지는 당연히 재수사의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당시 경찰은 그때 나왔던 편지나 ‘장자연 문건’ 내용 자체가 의지와 다르게 조작됐고 해당 인사들은 장씨와 면식도 없었던 사람이 꽤 많다고 해서 의미 없이 됐지만 당시에도 이 편지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편지를 잘 살펴서 하나의 새로운 수사자료로 써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떠도는 명단
부인하기 급급

검찰이 재수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성 상납 리스트 명단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6일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라는 제목으로 게시물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는 고 장자연씨에게 성 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는 명단이 공개돼있어 네티즌의 시선을 끌었다. 

하지만 일부 네티즌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서 퍼지고 있는 글을 완전히 믿을 수 없다”며 명단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출처와 진위가 확실하지 않은 정체불명의 ‘장자연 리스트’도 떠돈 지 오래다. 여기에는 거대 드라마 제작사 대표와 PD들뿐 아니라 재계와 언론의 깜짝 놀랄 만한 인물들 이름까지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이들에 대한 마녀사냥식 실명 찾기가 벌어질 조짐이다. 자칫 엉뚱한 인사가 이런 식으로 ‘장자연 리스트’에 포함된 것으로 잘못 알려질 경우, 엉뚱한 희생자가 벌어질 가능성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에 올라온 장자연 성 상납 리스트에 따르면 대기업 임직원과 방송사 PD, 언론사 고위간부 등 10여명의 실명과 직책이 등장한다. 

장씨의 소속사 대표인 김씨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력인사들이 대부분인데 드라마 제작사의 A 대표를 비롯해 유명 드라마 PD인 B와 C가 포함돼있으며 일간지 D사의 고위 관계자,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E, F, G사의 고위관계자도 들어있다. 

문건에 등장하는 몇몇 인사들은 “접대받은 게 아니라 행사자리에 불려 나가 합석했을 뿐”이라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 상납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해당 기업들은 좌불안석이다. ‘도마’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경영상 치명타를 입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자연 리스트’에 기업 오너들이 오르내렸을 당시 기업들은 자체 정보망을 확대하는 등 철저한 대비책을 강구하느라 분주했다. 시치미를 뚝 떼면서도 한편으론 ‘혹시나’하는 마음에 속을 까맣게 태웠다. 

가라앉은 의문점은?
당사자들 좌불안석

당시 장자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이들이 소속된 기업에서는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한 그룹 홍보실은 온종일 기자들의 확인 취재 전화를 받느라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 그룹의 오너는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지목받는 인물이다. 

룸살롱 에이스 접대부만 골라 자신의 별장으로 불러 ‘뜨거운 밤’을 즐기는 것으로 소문이 난 그는 한 접대부에게 거처를 마련해 주고 들락날락한 사연이 대중에 노출돼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다른 그룹 오너 역시 단골 스캔들 메이커로 유명하다. 그는 화류계에서 ‘밤의 황제’라 불린다. 매일같이 유흥가에서 새벽이슬을 맞는 이유에서다. 

그룹 측은 “리스트의 진위조차 확인되지 않은 데다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서 섣불리 뭐라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사건 진행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경찰 수사를 예의 주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일어난 스캔들을 보면 대부분 실체가 불분명한 소문으로 흐지부지 끝나거나 슬그머니 자취를 감춰 이번 사건도 그렇게 흘러가지 않겠냐”고 조심스러워했다. 

아예 구설에 오른 것조차 부인한 그룹도 있다. 이 그룹은 오너가 장씨와 술자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지만 전혀 무관하다고 발뺌했고 기사화될 시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에 들어갈 것이라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지난 27일 과거사위원회가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통화서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장자연 리스트 사건 수사와 관련해서 논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위원장: 송두환 전 헌법재판관)의 업무를 지원하는 검찰개혁추진단의 한 관계자도 “장자연 리스트 사건 재수사 여부는 결정된 것이 없다”며 “대검찰청 산하 검찰개혁위원회의 위원 몇 명이 개인적으로 의논한 것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보도가 나온 이후 이날 하루 종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장자연 리스트’ ‘장자연 사건’ 등이 상위에 랭크됐고 재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은 빗발치고 있다. 

“논의한 적 없다”
재수사 요구 빗발

만약 검찰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사건을 선정한다면 8년 전 남았던 의문점들이 이번에야말로 해결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재조사 결과가 일부 스타들을 제외하고 여전히 열악한 노동환경에 노출된 연예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도 기대를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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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