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②재벌총수들의 ‘여름나기 밥상’ 공개

“세끼 꼬박 챙겨먹는 게 최고의 보양식!”

[일요시사=송응철 기자] 전례 없던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람들은 상승하는 기온과 반대로 기력이 떨어져만 간다. 스태미나를 보충해줄 삼계탕 한 그릇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요즘이다. 재벌 총수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수많은 임직원을 거느리고 기업을 이끌어가야 하는 탓에 정신적?육체적 체력소모가 누구보다 심할 수밖에 없다. 총수들 대부분이 고령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체력관리가 필수다. 특히 입맛을 잃기 쉬운 여름철엔 ‘수라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더운 여름, 총수들의 기력을 빵빵하게 채워줄 ‘그들만의 밥상’을 들여다봤다.

90세 재계 맏형 신격호 회장, 돌솥비빔밥 예찬론 펼쳐
이건희 회장 서민적 입맛에 눈길…“된장찌개가 최고”

올해 90세의 신격호 롯데그룹 총괄회장은 명실상부한 재계의 ‘맏형’이다. 신 총괄회장의 공식적인 나이는 1922년생이지만, 실제론 1918년생이란 얘기도 있다. 지난 2월 차남 신동빈에게 회장직을 넘겨주면서 ‘명예회장’이라는 직함 대신 ‘총괄회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왕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신 총괄회장은 1970년대 중반부터 한일 양국을 오가는 이른바 ‘현해탄 경영’을 시작, 3?11 대지진 직전까지 홀수 달엔 ‘신격호’가, 짝수 달엔 ‘시게미쓰 다케오’가 됐다. 현재 4개월째 한국에 머물고 있지만 거의 매일같이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로부터 주요 경영현안과 관련한 업무보고를 받는 등 왕성한 경영활동을 펴고 있다. 그만큼 ‘건강’에 자신 있다는 반증이다.

강신호 회장
건강비결 ‘소식’

그는 평소 한식과 일식을 즐긴다. 40년 넘게 해온 셔틀 경영패턴이 식탁 위로 고스란히 이어진 셈이다. 아침은 통상 죽으로 해결하지만 점심과 저녁은 한식과 일식을 번갈아가며 먹는다.

그런 신 총괄회장이 으뜸으로 꼽는 여름 건강식은 돌솥비빔밥이다. 별다른 양념 없이 7가지 야채와 갈비만으로 맛을 낸다. 여름철 무더위로 잃어버렸던 입맛을 되찾아 준다는 게 그 이유다. 신 회장은 “무더운 여름철에는 부담을 주지 않는 담담한 맛이 좋다”며 돌솥비빔밥 예찬론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보양식보다 규칙적인 생활습관이 건강관리에 가장 중요하다는 게 신 회장의 지론이다. 신 회장은 아무리 급한 현안이 있어도 식사시간만큼은 정해진 시간에 거르지 않는다. ‘밥이 보약’이라는 생각에서다.

신 회장 다음으로 재계 큰형님 위치를 지키고 있는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도 85세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강 회장은 재계의 여러 모임에 거의 빠짐없이 참석해 골프를 즐길 정도의 ‘건강맨’이다. 골프 정규홀을 이동카트 없이 장장 6시간 동안 걷는가 하면 동아제약이 주최한 국토대장정에 참가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특별한 보양식을 즐기진 않는다. 다만 강 회장은 ‘소식’을 건강비결로 꼽는다. 그는 식사량을 80%로 엄격히 제한한다. 총 식사량을 100으로 보면 ‘아침 30, 점심 40, 저녁 30’이 강 회장의 식사 비율이다. 짜고 매운 음식은 절대로 입에 대지 않는다. 특히 아침은 필수. ‘토스트, 인절미, 주스…’가 강 회장의 아침 식단이다. 자사에서 만드는 건강음료나 건강보조식품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올해 70세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식단은 ‘재계 1위 기업 총수’라는 타이틀과 달리 굉장히 서민적이다. 어떤 음식보다 전통 한식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된장찌개를 가장 선호한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외식을 할 때 주로 찾던 신라호텔의 된장찌개가 국내에서 가장 맛있었다는 후문이다. 이 식당은 현재 없어진 상태다.

이 회장은 여름철 별미로 콩국수를 즐긴다. 실제,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이 이 회장을 위해 삼성본관 부근 식당에서 냉콩국수용 국물을 사가는 모습이 이따금씩 포착되기도 했다. 간식으로는 곰보빵, 단팥빵, 크림빵 등을 즐겨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창시절 추억 때문이라는 게 삼성그룹 측 설명이다.

67세인 구본무 LG그룹 회장 역시 소탈하고 검소한 입맛을 가졌다. 구인회 창업자부터 내려온 근검절약 정신이다. 그래서 구 회장도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 식성 또한 왕성하다. 여름철 보양식으로 과거 보신탕을 즐겼지만 선친 구자경 명예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로는 거의 먹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소식을 원칙으로 찌개와 생선류 등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섭취한다. 구 회장의 간식거리는 수제비와 칼국수 등이다.

강철체력 박삼구
가리는 것 없어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재계 대표 강골이다. 타고난 건강체질인 정 회장은 젊은 시절부터 럭비, 레슬링 등으로 몸이 단단히 다져져있다. 74세인 지금도 젊은 시절의 유연성과 근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의 활발한 현장경영 행보는 현재 건강 상태를 대변하기에 충분하다. 국내외 사업장 등을 점검하기 위해 해외출장도 자주 나갈 정도로 건강만큼은 자부하고 있는 것.

재계 대표 강골 정몽구 회장, 가리는 것 없는 잡식성
조양호·조석래 회장 보양식보다 운동 등으로 건강관리

선천적으로 건강한 때문인지 특별한 보양식을 챙기진 않는다. 삼시세끼를 꼬박 챙겨 먹는 게 전부다. 딱히 가리는 음식도 없다. 뭐든 잘 먹는 잡식성(?)이다. 임직원들과 직원식당을 찾는 모습도 자주 눈에 띌 정도로 서민적인 식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굳이 선호하는 음식을 꼽자면 김치찌개가 있다. 해외출장 중에도 오로지 김치찌개를 먹기 위해 현지 한식당을 찾을 정도다. 정 회장은 라면을 자주 먹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해외 출장길에 오르는 정 회장의 가방 한켠엔 늘 라면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도 정 회장 못 지 않은 ‘강철 체력’의 소유자다. 매일 아침 5시면 집을 나와 조깅과 헬스로 아침을 시작한다.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에 그룹 임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만능 스포츠맨 회장님’. 특히 수영과 골프는 즐기는 수준을 넘어 프로급 실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체력만큼이나 식성도 정 회장과 큰 차이가 없다. 평소 ‘음식을 가리지 말고 잘 먹자’고 강조하며 한·중·일·양식을 가리지 않는다. 비서실에서 식사예약을 할 때 딱히 주문하는 메뉴가 없다는 게 그룹 측 관계자의 설명이다.

‘젊은 회장님’ 이웅렬 코오롱그룹 회장은 ‘젊은 입맛’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전통 한식을 좋아한다. 눈에 띄는 점은 다른 총수들과 달리 자극적인 음식을 선호한다는 것. 매운 볶음류 등을 자주 먹는다. 종종 사무실에서 햄버거나 피자 등 패스트푸드를 시켜 먹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한다. 올해 56세로 다른 기업 총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를 감안하면 공감되는 식단이다. 다만 아침식사는 ‘정도’를 지킨다.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밥, 국, 찌게에 생선류 등 다양한 반찬을 곁들인다.

올해 52세인 최태원 SK 회장은 숨가뿐 현장경영으로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최 회장의 밥상은 잘 차려진 성찬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차려진다. 특히 현지 사업장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할 때가 많다. 고생하는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가리는 음식이 거의 없으며 워낙 바빠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먹기보다 하루 세끼를 빠뜨리지 않고 챙겨 먹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 회장은 아침을 빵과 주스로 대신한다. 미국 유학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행사가 있을 때는 장소에 따라 양식, 한식, 일식을 가리지 않는다. 요즘 같은 여름엔 삼계탕과 대구탕 등 얼큰한 탕 종류를 즐긴다.

서경배(49) 아모레퍼시픽 사장은 추어탕으로 여름을 버텨낸다. 홍보 및 비서실 관계자에 따르면 추어탕과 함께 복요리를 즐겨 먹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계탕도 가끔 먹지만 보신탕은 가까이 하지 않는 다는 게 관계자의 귀띔이다.

이웅렬 회장
젊은 입맛 눈길

이밖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63)은 특별한 보양식을 찾기보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골고루 제때 먹는 스타일이다. 대신 걷기를 운동 이상 취미 활동으로 즐기며 건강을 챙기고 있다. 운동을 겸해 각지를 돌며 찍은 사진을 달력으로 만들어 매년 지인들에게 선물할 정도다.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77)도 마찬가지다. 음식보다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는 목욕법으로 건강을 관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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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