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건국대 사태’ 내막

엄마 나가니 딸이…대학도 대물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학교에 일이 터지면 피해는 학생에게 미친다. 사학비리를 엄중하게 처단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0여년간 건국대는 수많은 사건들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학교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손에 쥐고 휘둘렀다. 숱한 비리 의혹으로 불거진 소송전은 명문 사학을 꿈꾸던 건국대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건국대 사태를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건국대학교(이하 건대)는 지난해 개교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건대 출신 한류스타들이 총출동해 행사를 뜨겁게 달궜고 학생들은 학과별로 저마다 능력을 발휘해 학교의 생일을 축하했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으로 감싼 건대 내부는 곪은 상처로 가득했다.

건대의 모태는 상허 유석창 선생이 1946년 설립한 조선정치학관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유석창 선생은 진실과 지성(誠), 사회생활의 근간(信), 정의와 용기(義)를 창학정신으로 삼았다. 

화려한 외관
문제 많은 내부

건대는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바탕으로 ‘지성인, 미래지향적인 전문인, 공동체 발전의 선도자 양성’을 교육 목적으로 내세웠다. 목표는 2020년까지 국내 5대 사학, 아시아 100대 대학으로의 진입이었다.

그랬던 건대가 최근 10년새 빠르게 무너졌다. 


건대 재학생, 동문, 교수 등 학교 관계자들은 “김경희 전 이사장이 학교를 망가뜨렸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 전 이사장은 설립자 유석창 선생의 작고한 맏아들의 부인, 즉 맏며느리다. 김 전 이사장은 2001년 취임 이후 올해 4월 물러날 때까지 16년간 건대를 좌지우지했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법인 평이사로 취임하면서 학교 경영에 참여했다.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동생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면서 ‘이사장 김경희의 시대’가 열렸다. 

취임 직후 김 전 이사장은 개발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규모 부동산개발 사업인 스타시티 프로젝트, 실버타운인 더 클래식 500 등 각종 수익형 사업이 김 전 이사장 때 첫 삽을 떴다.

김 전 이사장은 대학 야구장 부지를 최고 58개층 주상복합건물 4개동과 쇼핑몰·체육시설·문화시설 등으로 구성된 생활·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스타시티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이어 건대 병원 투자, 스타 교수 영입 등 숨 가쁜 행보가 이어졌다. 

전국에 몇 안 되는 여성 이사장의 과감한 움직임에 언론은 그를 가리켜 ‘건대 르네상스’를 이룬 주인공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건대가 내세운 ‘건국 르네상스’ ‘재정이 튼튼한 대학’의 기치는 얼마 못 가 민낯을 드러냈다. 
 

건대 교수협의회, 동문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노동조합, 설립자 유창석 선생의 자녀 모임 등으로 구성된 ‘건국대학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013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교육부는 2013년 11월25일부터 12월9일까지 학교와 법인에 대한 회계부분 감사를 실시했다.


김경희 대법원 판결로 이사장직 상실
이사회는 기습적으로 연봉 1억원 올려

교육부는 감사를 통해 ▲수익용·교육용 기본재산 관리 ▲부당한 자금차입 ▲회계 비리 총장 의원면직 처리 ▲부당한 미국대학 경영권 인수 ▲부당한 실습지 이전비용 교비 지출 ▲이사장 업무추진비와 개인 소송비용 집행 부당 등을 지적했다.

김 전 이사장은 학교법인이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 입주민들과의 협상서 스포츠센터를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해 242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혔다. 또 더 클래식 500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법인 산하의 임대사업체인 건국 AMC의 자본금 867억원을 부실 수익사업체에 출자했다. 

이 과정서 김 전 이사장은 의사회 의결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이 더 클래식 500의 펜트하우스를 5년8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실도 감사 결과 적발됐다. 여기서 6억39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관리비 8000만원과 부가세 1억2656만원은 법인회계서 납부됐다. 

이뿐만 아니라 김 전 이사장은 김진규 전 총장에게도 실버타운 객실 2채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관리비 등 6325만원은 교비로 부담시켰다.

김 전 총장은 학교 돈을 횡령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이사회서 해임이 의결됐지만 김 전 이사장은 2012년 5월 그가 사표를 제출하자 징계절차 없이 의원면직으로 처리했다. 또 이사회 의결 없이 미국 Pacific States University(PSU)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모 교수를 파견해 급여를 교비회계서 집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08회에 걸쳐 판공비 명목으로 3억2777만원을 수령해 용도불명으로 사용한 일도 있었다. 법인카드로는 19회에 걸쳐 1156만원을 썼다. 자신의 개인 소송에 대한 비용도 법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감사 결과에 따라 2014년 2월, 김 전 이사장을 각종 사립학교법 위반과 횡령·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25일 임원취임승인 취소 처분을 내리고 김 전 이사장이 사용한 용도불명의 업무추진비 등 15억4356만원을 회수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건대는 교육부의 후속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 김 전 이사장이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임원승인취소 처분 취소 청구 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1년 김 취임
공격투자 이어져

재판부는 교육부가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제기한 임원취임승인 취소 사유 중 대부분이 인정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임원 취임을 취소할 경우 김 전 이사장이 얻게 될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서도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부는 “김 이사장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무상으로 스타시티 시설을 사용했다”며 임원취임승인 취소 사유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김 이사장이) 학교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고 그로 인해 재정 상태가 개선되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건대와의 행정소송 원심과 항소심서 모두 패소한 교육부는 ‘과잉 감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뒤따랐다. 교육부는 242억원의 업무상 배임, 회계비리, 수억원의 재단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김 전 이사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지난 2014년 8월 11억4000만원의 업무상 배임, 3억6500만원의 횡령, 2억5000만원의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만 김 전 이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스타시티 펜트하우스에 재단 자금 5억7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뒤 2007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검찰은 이러한 업무상 배임액이 11억4000만원에 이른다고 봤다.

검찰은 이사장 판공비 2억3500만원과 해외출장비 1억3000만원 등 총 약 3억6500만원의 재단 자금을 자신과 딸의 대출금 변제, 개인여행 경비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점에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이사장은 2억5000만원을 받고 법인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김씨를 법인 비상임감사와 부속병원 행정부원장에 임명하고, 법인 사무국장 정씨를 상임감사에 선임해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사 청탁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배임수재에 해당한다.

김 전 이사장은 공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학교법인의 재산을 운용하는 데 있어 미숙한 부분이 있고 절차를 숙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불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사장을 맡은 후 스타시티의 수익 등으로 병원을 신축하고 학교 법인의 재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죽을 각오로 뛰었을 뿐”이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검찰은 교육부가 고발한 8건의 혐의 중 3건만 기소해 2015년 10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법원에서는 그마저도 다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5년 12월 판공비 5320만원, 업무추진비 8400만원 등 총 1억3700만원의 횡령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이사장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건네 배임증재 혐의를 받았던 김씨와 정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의혹 많았지만…
전부 해소 안 돼

지난해 7월 서울고법 형사4부는 김 전 이사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형량은 그대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유지했다. 그 후로 올해 4월 대법원은 김 전 이사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형량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김 전 이사장은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 판결을 받은 사람은 사립학교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다.
 

김 전 이사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2002년 3월 학교법인 소유 교육용 부동산 매각 대금 등 35억5000만원을 교육부가 지정하지 않은 용도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후 1심 재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됐다. 당시 재판부는 “10억여원의 교비 회계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인정되나 개인적인 이득을 전혀 취하지 않은 점과 학교 법인이 처한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실형을 선고한 1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인정된다”는 감형 이유를 밝혔다.

2007년에는 학력 위조 의혹까지 불거졌다. 김 전 이사장은 건대 이사로 있던 2000년 교육부에 낸 이력서에 1970년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해 1982년 미국 마운트세인트메리 칼리지 대학원을 수료하고 1985년 로스앤젤레스시티 대학교 서양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한양대에 정식 입학하지 않고 청강생으로 학교를 다녀 정식 학사 학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운트세인트메리 칼리지의 경우도 학사 편입했지만 중퇴했고 로스앤젤레스시티 대학교는 통신 수업을 진행하는 비인증 대학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이사장의 임용 시점이 업무방해죄 공소시효(5년)를 지났고 이사장 임용 이후 허위학력을 이용, 또 다른 공직을 맡는 등의 추가 혐의를 찾을 수 없다며 수사 가능성이 없다고 전했다. 

법은 면죄부를 줬지만 횡령 혐의로 인한 벌금, 학력 위조 등의 논란으로 김 전 이사장은 경영 능력과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이사장은 교육부와 행정 소송까지 벌이며 올해 4월까지 이사장직을 유지했다.

명문사학 꿈꿨지만
정상화 아직 요원해

대법원 판결로 저무는 듯했던 ‘김경희 체제’는 그의 장녀 유자은씨가 후임 이사장으로 결정되면서 지속 가능성이 제기됐다. 건대는 지난 4월26일 개최한 이사회서 유자은 건대 상임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2014년 9월 법인 이사로 선임됐던 유 이사장은 당시에도 세습 논란을 일으키며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2013년부터 김 전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해 왔던 비대위(현 건국대학교개혁추진협의회)는 유 이사장의 선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사장직서 퇴출된 김경희 전 이사장의 딸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함으로써, 김 전 이사장이 배후서 유자은 이사장을 조종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된다”며 “유자은 이사장은 이사장이 되기 전 어떤 기관이나 업체서 일한 적이 없으므로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기습적으로 인상된 이사장 연봉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건대는 김 전 이사장이 지난 4월 횡령죄가 확정돼 물러나기 직전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연봉을 1억원 인상했다. 

건대는 총장 연봉이 1억원가량 인상돼 관행상 이사장 연봉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재정 파탄”(학교 관계자) 상태인 학내 상황상 이유도 시기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억원이 인상된 이사장의 연봉은 3억5000만원에 이른다. 비대위는 “대법원 판결 직후 밀실에서 가족 세습의 이사장 선임을 자행한 이사회 역시 동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24일 비대위는 두 번째 성명서에서 임대보증금 보전 처분에 대한 법인의 대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21일부터 12월7일까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중 임대보증금 예치 현황을 감사했다. 전체 289개 학교법인 중 40개 4년제 대학 학교법인이 교육부의 허가를 받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고 임대보증금을 법인운영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대는 여기에 포함됐다.
 

교육부장관은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라 법인재산에 실질적 감소를 초래한 미예치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액 393억원을 보전하라고 건대에 지시했다. 건대는 올해 31억5900만원, 내년 83억1600만원, 2019년 89억원, 2020년 92억8200만원, 2021년 96억7600만원 등 5년에 걸쳐 393억원을 보전하겠다는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비대위는 “건대의 보전방안은 가해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그 피해를 보전하는 모순된 방안”이라며 “393억원의 손해는 이사장과 이사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결과이므로 피해자인 법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 반발
“개혁할 것”

또한 “기본적인 규범도 준수하지 않고 설립자의 건학이념이나 설립목적을 훼손하면서 특정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해 사학비리를 감싸고 있는 이사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고 천명했다. 김 전 이사장의 퇴장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건대 사태는 유 이사장의 취임으로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10년 넘게 ‘윗분’들의 손에 휘청거리던 건대가 ‘학생들의 학교’로 정상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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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