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건국대 사태’ 내막

엄마 나가니 딸이…대학도 대물림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학교에 일이 터지면 피해는 학생에게 미친다. 사학비리를 엄중하게 처단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10여년간 건국대는 수많은 사건들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일부 관계자들은 학교를 마치 자신의 것인양 손에 쥐고 휘둘렀다. 숱한 비리 의혹으로 불거진 소송전은 명문 사학을 꿈꾸던 건국대를 바닥까지 끌어내렸다. 건국대 사태를 <일요시사>가 짚어봤다.
 

건국대학교(이하 건대)는 지난해 개교 7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식을 열었다. 건대 출신 한류스타들이 총출동해 행사를 뜨겁게 달궜고 학생들은 학과별로 저마다 능력을 발휘해 학교의 생일을 축하했다. 하지만 화려한 외관으로 감싼 건대 내부는 곪은 상처로 가득했다.

건대의 모태는 상허 유석창 선생이 1946년 설립한 조선정치학관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였던 유석창 선생은 진실과 지성(誠), 사회생활의 근간(信), 정의와 용기(義)를 창학정신으로 삼았다. 

화려한 외관
문제 많은 내부

건대는 설립자의 창학정신을 바탕으로 ‘지성인, 미래지향적인 전문인, 공동체 발전의 선도자 양성’을 교육 목적으로 내세웠다. 목표는 2020년까지 국내 5대 사학, 아시아 100대 대학으로의 진입이었다.

그랬던 건대가 최근 10년새 빠르게 무너졌다. 


건대 재학생, 동문, 교수 등 학교 관계자들은 “김경희 전 이사장이 학교를 망가뜨렸다”고 입을 모았다. 김경희 전 이사장은 설립자 유석창 선생의 작고한 맏아들의 부인, 즉 맏며느리다. 김 전 이사장은 2001년 취임 이후 올해 4월 물러날 때까지 16년간 건대를 좌지우지했다.

김 전 이사장은 1994년 법인 평이사로 취임하면서 학교 경영에 참여했다. 남편은 불의의 사고로 사망했고, 이사장을 맡고 있던 시동생 역시 건강상의 이유로 물러나면서 ‘이사장 김경희의 시대’가 열렸다. 

취임 직후 김 전 이사장은 개발사업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대규모 부동산개발 사업인 스타시티 프로젝트, 실버타운인 더 클래식 500 등 각종 수익형 사업이 김 전 이사장 때 첫 삽을 떴다.

김 전 이사장은 대학 야구장 부지를 최고 58개층 주상복합건물 4개동과 쇼핑몰·체육시설·문화시설 등으로 구성된 생활·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하는 스타시티 프로젝트를 밀어붙였다. 이어 건대 병원 투자, 스타 교수 영입 등 숨 가쁜 행보가 이어졌다. 

전국에 몇 안 되는 여성 이사장의 과감한 움직임에 언론은 그를 가리켜 ‘건대 르네상스’를 이룬 주인공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러나 건대가 내세운 ‘건국 르네상스’ ‘재정이 튼튼한 대학’의 기치는 얼마 못 가 민낯을 드러냈다. 
 

건대 교수협의회, 동문 교수협의회, 총학생회, 노동조합, 설립자 유창석 선생의 자녀 모임 등으로 구성된 ‘건국대학교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는 2013년 3월과 5월 두 차례에 걸쳐 교육부에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교육부는 2013년 11월25일부터 12월9일까지 학교와 법인에 대한 회계부분 감사를 실시했다.


김경희 대법원 판결로 이사장직 상실
이사회는 기습적으로 연봉 1억원 올려

교육부는 감사를 통해 ▲수익용·교육용 기본재산 관리 ▲부당한 자금차입 ▲회계 비리 총장 의원면직 처리 ▲부당한 미국대학 경영권 인수 ▲부당한 실습지 이전비용 교비 지출 ▲이사장 업무추진비와 개인 소송비용 집행 부당 등을 지적했다.

김 전 이사장은 학교법인이 분양한 주상복합 아파트 입주민들과의 협상서 스포츠센터를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해 242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혔다. 또 더 클래식 500의 누적 적자를 해소하기 위해 법인 산하의 임대사업체인 건국 AMC의 자본금 867억원을 부실 수익사업체에 출자했다. 

이 과정서 김 전 이사장은 의사회 의결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김 전 이사장이 더 클래식 500의 펜트하우스를 5년8개월 동안 개인적으로 사용한 사실도 감사 결과 적발됐다. 여기서 6억3900만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관리비 8000만원과 부가세 1억2656만원은 법인회계서 납부됐다. 

이뿐만 아니라 김 전 이사장은 김진규 전 총장에게도 실버타운 객실 2채를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관리비 등 6325만원은 교비로 부담시켰다.

김 전 총장은 학교 돈을 횡령하는 등의 비리를 저질러 이사회서 해임이 의결됐지만 김 전 이사장은 2012년 5월 그가 사표를 제출하자 징계절차 없이 의원면직으로 처리했다. 또 이사회 의결 없이 미국 Pacific States University(PSU)의 경영권을 인수한 뒤 모 교수를 파견해 급여를 교비회계서 집행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8년부터 2013년까지 108회에 걸쳐 판공비 명목으로 3억2777만원을 수령해 용도불명으로 사용한 일도 있었다. 법인카드로는 19회에 걸쳐 1156만원을 썼다. 자신의 개인 소송에 대한 비용도 법인이 부담하도록 했다. 

교육부는 감사 결과에 따라 2014년 2월, 김 전 이사장을 각종 사립학교법 위반과 횡령·배임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어 같은 해 4월25일 임원취임승인 취소 처분을 내리고 김 전 이사장이 사용한 용도불명의 업무추진비 등 15억4356만원을 회수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건대는 교육부의 후속 조치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서울행정법원 제5부는 김 전 이사장이 교육부를 상대로 제기한 임원승인취소 처분 취소 청구 소송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 

2001년 김 취임
공격투자 이어져

재판부는 교육부가 김 전 이사장에 대해 제기한 임원취임승인 취소 사유 중 대부분이 인정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임원 취임을 취소할 경우 김 전 이사장이 얻게 될 불이익이 지나치게 크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항소심서도 재판부는 김 전 이사장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고등법원 행정1부는 “김 이사장이 이사회 의결을 거치지 않은 채 무상으로 스타시티 시설을 사용했다”며 임원취임승인 취소 사유를 일부 인정하면서도 “(김 이사장이) 학교 발전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고 그로 인해 재정 상태가 개선되기도 했다”고 판단했다. 

건대와의 행정소송 원심과 항소심서 모두 패소한 교육부는 ‘과잉 감사’라는 지적을 받았다.

검찰의 기소 과정에서는 ‘봐주기 수사’라는 의혹이 뒤따랐다. 교육부는 242억원의 업무상 배임, 회계비리, 수억원의 재단자금 횡령 등의 혐의로 김 전 이사장을 고발했지만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검찰은 지난 2014년 8월 11억4000만원의 업무상 배임, 3억6500만원의 횡령, 2억5000만원의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만 김 전 이사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스타시티 펜트하우스에 재단 자금 5억7000만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진행한 뒤 2007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자신의 주거 공간으로 사용했다. 검찰은 이러한 업무상 배임액이 11억4000만원에 이른다고 봤다.

검찰은 이사장 판공비 2억3500만원과 해외출장비 1억3000만원 등 총 약 3억6500만원의 재단 자금을 자신과 딸의 대출금 변제, 개인여행 경비 등 사적인 용도로 사용한 점에 업무상 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김 전 이사장은 2억5000만원을 받고 법인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한 김씨를 법인 비상임감사와 부속병원 행정부원장에 임명하고, 법인 사무국장 정씨를 상임감사에 선임해줬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사 청탁을 대가로 돈을 받은 것은 배임수재에 해당한다.

김 전 이사장은 공판 내내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학교법인의 재산을 운용하는 데 있어 미숙한 부분이 있고 절차를 숙지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은 불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이사장을 맡은 후 스타시티의 수익 등으로 병원을 신축하고 학교 법인의 재산 가치를 높이기 위해 죽을 각오로 뛰었을 뿐”이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검찰은 교육부가 고발한 8건의 혐의 중 3건만 기소해 2015년 10월 징역 4년을 구형했다. 법원에서는 그마저도 다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지난 2015년 12월 판공비 5320만원, 업무추진비 8400만원 등 총 1억3700만원의 횡령 혐의만을 유죄로 판단,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김 전 이사장에게 인사 청탁 명목으로 2억5000만원을 건네 배임증재 혐의를 받았던 김씨와 정씨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의혹 많았지만…
전부 해소 안 돼

지난해 7월 서울고법 형사4부는 김 전 이사장의 항소심 선고공판서 양측의 항소를 모두 기각했다. 형량은 그대로 징역 10개월 집행유예 2년을 유지했다. 그 후로 올해 4월 대법원은 김 전 이사장의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의 형량을 확정했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김 전 이사장은 이사장직을 상실했다. 사립학교법에 따르면 금고 이상 판결을 받은 사람은 사립학교 임원으로 재직할 수 없다.
 

김 전 이사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2002년 3월 학교법인 소유 교육용 부동산 매각 대금 등 35억5000만원을 교육부가 지정하지 않은 용도에 사용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이후 1심 재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으나 2심에서 벌금 1000만원으로 감형됐다. 당시 재판부는 “10억여원의 교비 회계자금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 인정되나 개인적인 이득을 전혀 취하지 않은 점과 학교 법인이 처한 현재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실형을 선고한 1심의 형량이 무겁다고 인정된다”는 감형 이유를 밝혔다.

2007년에는 학력 위조 의혹까지 불거졌다. 김 전 이사장은 건대 이사로 있던 2000년 교육부에 낸 이력서에 1970년 한양대 건축학과를 졸업해 1982년 미국 마운트세인트메리 칼리지 대학원을 수료하고 1985년 로스앤젤레스시티 대학교 서양학과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고 기록했다. 

그러나 김 전 이사장은 한양대에 정식 입학하지 않고 청강생으로 학교를 다녀 정식 학사 학위는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운트세인트메리 칼리지의 경우도 학사 편입했지만 중퇴했고 로스앤젤레스시티 대학교는 통신 수업을 진행하는 비인증 대학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관계자는 당시 김 전 이사장의 임용 시점이 업무방해죄 공소시효(5년)를 지났고 이사장 임용 이후 허위학력을 이용, 또 다른 공직을 맡는 등의 추가 혐의를 찾을 수 없다며 수사 가능성이 없다고 전했다. 

법은 면죄부를 줬지만 횡령 혐의로 인한 벌금, 학력 위조 등의 논란으로 김 전 이사장은 경영 능력과 도덕성에 큰 타격을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전 이사장은 교육부와 행정 소송까지 벌이며 올해 4월까지 이사장직을 유지했다.

명문사학 꿈꿨지만
정상화 아직 요원해

대법원 판결로 저무는 듯했던 ‘김경희 체제’는 그의 장녀 유자은씨가 후임 이사장으로 결정되면서 지속 가능성이 제기됐다. 건대는 지난 4월26일 개최한 이사회서 유자은 건대 상임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2014년 9월 법인 이사로 선임됐던 유 이사장은 당시에도 세습 논란을 일으키며 학내 구성원들의 반발을 샀다.

2013년부터 김 전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해 왔던 비대위(현 건국대학교개혁추진협의회)는 유 이사장의 선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사장직서 퇴출된 김경희 전 이사장의 딸을 새 이사장으로 선출함으로써, 김 전 이사장이 배후서 유자은 이사장을 조종하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혹이 제기된다”며 “유자은 이사장은 이사장이 되기 전 어떤 기관이나 업체서 일한 적이 없으므로 검증되지 않은 경영능력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금치 못하고 있다”고 정면 비판했다.

기습적으로 인상된 이사장 연봉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건대는 김 전 이사장이 지난 4월 횡령죄가 확정돼 물러나기 직전 이사회를 열어 이사장 연봉을 1억원 인상했다. 

건대는 총장 연봉이 1억원가량 인상돼 관행상 이사장 연봉도 올릴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재정 파탄”(학교 관계자) 상태인 학내 상황상 이유도 시기도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1억원이 인상된 이사장의 연봉은 3억5000만원에 이른다. 비대위는 “대법원 판결 직후 밀실에서 가족 세습의 이사장 선임을 자행한 이사회 역시 동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촉구했다.

지난달 24일 비대위는 두 번째 성명서에서 임대보증금 보전 처분에 대한 법인의 대응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감사원은 지난해 11월21일부터 12월7일까지 학교법인의 수익용 기본재산 중 임대보증금 예치 현황을 감사했다. 전체 289개 학교법인 중 40개 4년제 대학 학교법인이 교육부의 허가를 받지 않거나 신고하지 않고 임대보증금을 법인운영비 등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건대는 여기에 포함됐다.
 

교육부장관은 감사원의 감사결과에 따라 법인재산에 실질적 감소를 초래한 미예치 임대보증금 임의사용액 393억원을 보전하라고 건대에 지시했다. 건대는 올해 31억5900만원, 내년 83억1600만원, 2019년 89억원, 2020년 92억8200만원, 2021년 96억7600만원 등 5년에 걸쳐 393억원을 보전하겠다는 계획을 교육부에 제출했다.

비대위는 “건대의 보전방안은 가해자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고 피해자가 자신의 재산으로 그 피해를 보전하는 모순된 방안”이라며 “393억원의 손해는 이사장과 이사들의 위법행위로 인한 결과이므로 피해자인 법인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 반발
“개혁할 것”

또한 “기본적인 규범도 준수하지 않고 설립자의 건학이념이나 설립목적을 훼손하면서 특정인의 사조직으로 전락해 사학비리를 감싸고 있는 이사회를 전면적으로 개혁하겠다”고 천명했다. 김 전 이사장의 퇴장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던 건대 사태는 유 이사장의 취임으로 새로운 변곡점을 맞았다. 10년 넘게 ‘윗분’들의 손에 휘청거리던 건대가 ‘학생들의 학교’로 정상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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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