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실 물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1.13 10:30:52
  • 호수 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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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람 잡고 이제 와서 남탓

[일요시사 취재1팀=박창민 기자]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TF)가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여를 조사한 결과 MB 국정원이 이 전 부장에게 수사 가이드라인과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 언론플레이 지침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맞물려 이 전 부장은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최근 ‘논두렁이 시계’보도가 국정원 작품이라고 폭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사항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논두렁이 시계 수수 보도는 국정원이 흘렀다”고 폭로했다. 

MB라인 검사 
잘 나갔었는데

먼저 ‘논두렁이 시계’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이에 버렸다는 허위 사실이 보도된 사건이다. 2009년 4월 KBS가 논두렁 시계를 다룬 기사를 단독보도 형식으로 내보냈다. 

보도 취지는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수사하던 중 2006년 8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명품시계 2점을 선물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SB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당 시계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권양숙 여사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해당 보도 열흘 뒤 투신해 서거했다.


이 사건에 대해 국정원 TF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검찰 간부에게 ‘고가시계 수수 건’을 언론에 흘려 망신주기에 활용하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관여 의혹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09년 4월19일과 20일 내부 회의서 “동정여론이 유발되지 않도록 온·오프라인에 노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 및 성역 없는 수사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 전 국정원장의 측근이었던 한 간부는 4월 21일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만나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하며 “고가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시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직접 협조 요청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2009년 4월, 원 전 국정원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를 부각하라’는 방침에 따라 국내정보부서 언론담당 팀장 등 국정원 직원 4명이 SBS 사장을 접촉, 노 전 대통령 수사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에 비수 꽂은 ‘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 누구? 검찰 재수사 결과 주목

KBS 담당 요원은 KBS 측에 2009년 5월7일자 <조선일보>의 ‘국정원 수사개입 의혹’ 기사를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협조요청을 하면서 고대영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현금 200만원을 전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현재 국정원 TF의 의뢰로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와 맞물려 이 전 부장이 지난 8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때문에 이 전 부장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받았다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사실상 해외로 도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이와 관련해 국정원TF가 조사를 시도했지만 이 전 부장은 조사관과의 통화서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이 많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장은 자신이 형사팀장으로 있던 ‘법무법인 바른’도 그만뒀다. 법조계에선 국내서도 최고로 꼽히는 로펌의 형사팀장이 50대 후반에 돌연 사직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입 모았다. 

일각에서는 이 전 부장이 1만달러 이상 도피자금을 갖고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이 전 부장이 지난 8월25일 대한항공 KE093편으로 인천공항서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전 부장은 부인으로 추정되는 50대 후반 여성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장이 당시 덜레스 공항서 입국 심사 중 거액의 달러를 신고했으며 이는 도피자금으로 준비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넷 수사대 추적
현상금까지 걸려

앞서 교민 커뮤니티 사이트서도 이 전 부장을 페어팩스의 한 한인 상점서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으며 북미 민주포럼 등 교민단체들은 500달러가량의 제보 현상금을 내걸고 그의 행방을 뒤쫓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이 아무런 비자도 없이 관광비자(ESTA)로 입국했다면 90일 이상 미국에 체류할 수 없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끝나는 이달 말에는 제3국으로 향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전 부장이 1997∼1999년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의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사관에서 가깝고 지인들과 연락이 닿아 페어팩스 인근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국내에선 이 전 부장의 해외 도피설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그러자 이 전 부장은 지난 7일 국내 언론들에 A4 용지 2장 분량의 글을 보내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 기관의 요청을 받을 경우 귀국해 조사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부장은 또 “일하던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다”며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국가정보원 직원들과 만난 일도 직접 설명했다. 

이 전 부장에 따르면 2009년 4월14일, 퇴근 무렵 강모 당시 국장 등 국정원 직원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원장의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전 부장은 “원장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다”며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에 국정원 직원들이 “왜 이러시냐”고 따졌고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화를 냈다.

이 전 부장이 격하게 반응하자 국정원 직원들은 “실수한 것 같다. 오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다고 한다. 

이메일서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이런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몰리자 뒤늦게 
“국정원 작품”


이어 “시계수수 사실과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며 “일부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서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관련 사실을 언급한 것인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부장의 신병을 확보해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검찰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신병을 확보해 지체 없이 소환조사해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해외 도피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장이 국정원서 언론에 논두렁 시계를 흘리라고 했지만 자신은 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국정원으로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서 망신주기, 수모주기로 연일 수사과정을 부풀려 생중계하며 불법적으로 피의 사실을 공표했던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할 소리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당시 국정원의 책임도 크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명박정권 하의 검찰 중수부장이 이제 와서 ‘네탓 타령’으로 발뺌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 전 중수부장은) 검찰의 조사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며 “국정원 역시 철저한 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이 전 부장은 현재 홈앤쇼핑 연루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 전 부장이 홈앤쇼핑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다. 

지난 8월 돌연 미국행
“도피성 출국 아니냐”

지난 10월16일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국감 증인으로 참석한 강남훈 홈엔쇼핑 대표에게 질의를 통해 강 대표와 이 전 부장 간 인사청탁 등 부당행위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당시 이 전 부장 처조카 김모씨가 홈앤쇼핑 근무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권 의원이 강 대표에게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질문하자 강 대표는 “인사청탁은 아니지만 이 전 부장 소개로 들어온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또한 이 전 부장 부인의 홈앤쇼핑 주식 취득 여부에 대한 질문에 강 대표는 “개인 정보라 일일이 답변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전 부장은 홈앤쇼핑 강 대표와 서울 경동고등학교 동창이며 중소기업중앙회 자문위원, 홈앤쇼핑 사외이사, 중소기업연구원서 지난 6년간 이사로 재직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16일 국감에선 권 의원과 같은 당인 박범계 의원(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은 “강 대표에 대한 비리 수사를 이 전 부장과 국정농단 주역으로 의심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가로 막았다”며 박상기 법무부장관에게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의하면 이 전 부장이 지난 2010년 7월 사외이사로 선임돼 한차례 재임 과정을 거쳐 6년 간 사외이사 자리를 맡아왔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에 재직 중이던 김기문 전 회장이 이 전 부장을 중소기업연구원(이하 중기연)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0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중기연의 지난 2010년 제1차 이사회 의사록을 살펴보면 같은 해 2월 당시 김 전 회장 겸 중기연 이사장은 이사회 이사들로부터 사외이사 추천권한을 받아 이 전 부장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선 ‘이인규-강남훈-김기문’ 3자간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전 부장은 1958년 용인 출생이다. 이명박정부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검사를 지냈고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으로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맡았다. 이어 대선자금 수사팀에 합류해 대기업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을 수사했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재직 당시 황우석 박사를 줄기세포 조작사건으로 사기와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전 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지난 1999년 조지워싱턴대학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하면서 이 전 부장은 검찰 요직인 중수부장에 임명돼 모두 정권의 실세로 등장했다.

2009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맡았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 일가족을 모조리 소환하며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놨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가족은 몇 차례나 소환됐고 수사 현황은 실시간 언론에 브리핑됐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 허위 사실이 매체에 유포되면서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전 부장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5분 만의 발표로 종결했으며 노 전 대통령 혐의를 ‘뇌물수수’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도 없이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 “수사 과정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등 수사의 정당성만 주장했다.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 많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

이 전 부장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검찰에 물러났다. 그런데 그는 “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라는 말을 남겨,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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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