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진실 물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7.11.13 10:30:52
  • 호수 11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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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람 잡고 이제 와서 남탓

[일요시사 취재1팀=박창민 기자]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이하 국정원 TF)가 이명박정부 시절 국정원의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여를 조사한 결과 MB 국정원이 이 전 부장에게 수사 가이드라인과 노 전 대통령 망신주기 언론플레이 지침을 준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맞물려 이 전 부장은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최근 ‘논두렁이 시계’보도가 국정원 작품이라고 폭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사항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논두렁이 시계 수수 보도는 국정원이 흘렀다”고 폭로했다. 

MB라인 검사 
잘 나갔었는데

먼저 ‘논두렁이 시계’는 노 전 대통령 일가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받은 피아제 시계를 논두렁이에 버렸다는 허위 사실이 보도된 사건이다. 2009년 4월 KBS가 논두렁 시계를 다룬 기사를 단독보도 형식으로 내보냈다. 

보도 취지는 ‘검찰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을 수사하던 중 2006년 8월 노 전 대통령의 회갑을 맞아 명품시계 2점을 선물했다는 단서를 잡고 수사에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SBS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해당 시계가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권양숙 여사가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해당 보도 열흘 뒤 투신해 서거했다.


이 사건에 대해 국정원 TF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을 수사하던 검찰 간부에게 ‘고가시계 수수 건’을 언론에 흘려 망신주기에 활용하라고 말한 것으로 확인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관여 의혹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2009년 4월19일과 20일 내부 회의서 “동정여론이 유발되지 않도록 온·오프라인에 노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 및 성역 없는 수사의 당위성을 부각시키겠다”는 취지의 보고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원 전 국정원장의 측근이었던 한 간부는 4월 21일 이인규 당시 대검 중수부장을 만나 ‘불구속 수사’ 의견을 전달하며 “고가시계 수수 건 등은 중요한 사안이 아니므로 언론에 흘려서 적당히 망신 주는 선에서 활용하시고, 수사는 불구속으로 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국정원 직원들이 언론사를 상대로 직접 협조 요청을 한 사실도 확인됐다. 

2009년 4월, 원 전 국정원장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중적 행태를 부각하라’는 방침에 따라 국내정보부서 언론담당 팀장 등 국정원 직원 4명이 SBS 사장을 접촉, 노 전 대통령 수사상황을 적극 보도해줄 것을 요청했다. 

노에 비수 꽂은 ‘논두렁 시계’ 보도
배후 누구? 검찰 재수사 결과 주목

KBS 담당 요원은 KBS 측에 2009년 5월7일자 <조선일보>의 ‘국정원 수사개입 의혹’ 기사를 보도하지 말아달라고 협조요청을 하면서 고대영 당시 KBS 보도국장에게 현금 200만원을 전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검찰은 현재 국정원 TF의 의뢰로 해당 사건에 대한 수사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와 맞물려 이 전 부장이 지난 8월 돌연 미국으로 출국했다. 

이 때문에 이 전 부장이 ‘수사 가이드라인’을 받았다는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발표가 나온 시점과 맞물려 ‘사실상 해외로 도피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 이와 관련해 국정원TF가 조사를 시도했지만 이 전 부장은 조사관과의 통화서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이 많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전 부장은 자신이 형사팀장으로 있던 ‘법무법인 바른’도 그만뒀다. 법조계에선 국내서도 최고로 꼽히는 로펌의 형사팀장이 50대 후반에 돌연 사직한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입 모았다. 

일각에서는 이 전 부장이 1만달러 이상 도피자금을 갖고 미국 워싱턴DC 인근 버지니아주 페어팩스에 머물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서울신문>은 복수의 워싱턴 소식통을 인용해 이 전 부장이 지난 8월25일 대한항공 KE093편으로 인천공항서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으로 입국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전 부장은 부인으로 추정되는 50대 후반 여성과 함께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장이 당시 덜레스 공항서 입국 심사 중 거액의 달러를 신고했으며 이는 도피자금으로 준비한 것일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넷 수사대 추적
현상금까지 걸려

앞서 교민 커뮤니티 사이트서도 이 전 부장을 페어팩스의 한 한인 상점서 목격했다는 제보가 들어왔으며 북미 민주포럼 등 교민단체들은 500달러가량의 제보 현상금을 내걸고 그의 행방을 뒤쫓기도 했다.

이 전 부장이 아무런 비자도 없이 관광비자(ESTA)로 입국했다면 90일 이상 미국에 체류할 수 없기 때문에 유효기간이 끝나는 이달 말에는 제3국으로 향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선 이 전 부장이 1997∼1999년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의 법무협력관으로 근무하면서 대사관에서 가깝고 지인들과 연락이 닿아 페어팩스 인근에 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관측했다. 

국내에선 이 전 부장의 해외 도피설이 줄기차게 제기됐다. 

그러자 이 전 부장은 지난 7일 국내 언론들에 A4 용지 2장 분량의 글을 보내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불법적이거나 부당한 일을 한 사실은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수사 기관의 요청을 받을 경우 귀국해 조사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전 부장은 또 “일하던 로펌을 그만둔 후 미국 여러 곳을 여행 중에 있다”며 “만일 노 전 대통령 수사와 관련해 제가 잘못한 점이 있어 조사 요청이 오면 언제든지 귀국해 조사를 받겠다”고 말했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 수사 당시 국가정보원 직원들과 만난 일도 직접 설명했다. 

이 전 부장에 따르면 2009년 4월14일, 퇴근 무렵 강모 당시 국장 등 국정원 직원 2명이 찾아와 “원세훈 원장의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을 불구속하되 시계 수수 사실을 언론에 흘려 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가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 전 부장은 “원장께서 검찰 수사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다. 내일 오전 기자 브리핑서 이러한 사실을 알려 감사한 마음을 표시하겠다”며 완곡하게 거절 의사를 밝혔다. 이에 국정원 직원들이 “왜 이러시냐”고 따졌고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이렇게 해도 되느냐”고 화를 냈다.

이 전 부장이 격하게 반응하자 국정원 직원들은 “실수한 것 같다. 오지 않은 것으로 해달라”고 사죄한 뒤 황급히 돌아갔다고 한다. 

이메일서 이 전 부장은 “국정원이 노 전 대통령 시계 수수 관련 수사 내용을 어떻게 알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들의 언행이 너무 어처구니가 없었다”며 “이런 사실을 위에 보고했다”고 말했다. 

몰리자 뒤늦게 
“국정원 작품”


이어 “시계수수 사실과 논두렁에 시계를 버렸다는 보도가 연이어져 나름대로 확인해 본 결과 그 근원지가 국정원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됐다”며 “일부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서 보도하지 않을 것을 전제로 관련 사실을 언급한 것인데 약속을 어기고 보도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치권에서는 이 전 부장의 신병을 확보해 신속히 조사에 착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8일 “검찰이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의 신병을 확보해 지체 없이 소환조사해 진실을 가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 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해외 도피 의혹을 받고 있는 이인규 전 대검 중수장이 국정원서 언론에 논두렁 시계를 흘리라고 했지만 자신은 하지 않았다”며 “책임을 국정원으로 떠넘겼다”고 주장했다.

이어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과정서 망신주기, 수모주기로 연일 수사과정을 부풀려 생중계하며 불법적으로 피의 사실을 공표했던 대검 중수부장으로서 할 소리가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당시 국정원의 책임도 크겠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이명박정권 하의 검찰 중수부장이 이제 와서 ‘네탓 타령’으로 발뺌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변인은 “(이 전 중수부장은) 검찰의 조사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 귀국해 조사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며 “국정원 역시 철저한 조사에 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이 전 부장은 현재 홈앤쇼핑 연루설도 제기되고 있다. 이 전 부장이 홈앤쇼핑에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이다. 

지난 8월 돌연 미국행
“도피성 출국 아니냐”

지난 10월16일 산업통상자원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국감 증인으로 참석한 강남훈 홈엔쇼핑 대표에게 질의를 통해 강 대표와 이 전 부장 간 인사청탁 등 부당행위에 관한 내용을 확인했다.

당시 이 전 부장 처조카 김모씨가 홈앤쇼핑 근무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권 의원이 강 대표에게 이 같은 의혹에 대해 질문하자 강 대표는 “인사청탁은 아니지만 이 전 부장 소개로 들어온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또한 이 전 부장 부인의 홈앤쇼핑 주식 취득 여부에 대한 질문에 강 대표는 “개인 정보라 일일이 답변할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 전 부장은 홈앤쇼핑 강 대표와 서울 경동고등학교 동창이며 중소기업중앙회 자문위원, 홈앤쇼핑 사외이사, 중소기업연구원서 지난 6년간 이사로 재직한 사실도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다. 지난 16일 국감에선 권 의원과 같은 당인 박범계 의원(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은 “강 대표에 대한 비리 수사를 이 전 부장과 국정농단 주역으로 의심받고 있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이 가로 막았다”며 박상기 법무부장관에게 철저한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연구원에 의하면 이 전 부장이 지난 2010년 7월 사외이사로 선임돼 한차례 재임 과정을 거쳐 6년 간 사외이사 자리를 맡아왔다. 당시 중소기업중앙회에 재직 중이던 김기문 전 회장이 이 전 부장을 중소기업연구원(이하 중기연) 사외이사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0일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입수한 중기연의 지난 2010년 제1차 이사회 의사록을 살펴보면 같은 해 2월 당시 김 전 회장 겸 중기연 이사장은 이사회 이사들로부터 사외이사 추천권한을 받아 이 전 부장을 후보자로 추천했다.

이 같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일각에선 ‘이인규-강남훈-김기문’ 3자간 커넥션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수차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전 부장은 1958년 용인 출생이다. 이명박정부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을 역임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일 때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3차장 검사를 지냈고 대검 기획조정부장을 지냈다. 

2003년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장으로서 SK그룹 분식회계 사건을 맡았다. 이어 대선자금 수사팀에 합류해 대기업의 분식회계와 비자금 조성을 수사했다. 2006년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 재직 당시 황우석 박사를 줄기세포 조작사건으로 사기와 횡령, 생명윤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이 전 부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지난 1999년 조지워싱턴대학서 객원연구원으로 일하던 시절 검찰 파견직으로 워싱턴 영사관서 일하며 당시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이었던 신재민 전 문체부 차관의 소개로 각별한 인연을 맺었다. 

이명박정권이 출범하면서 이 전 부장은 검찰 요직인 중수부장에 임명돼 모두 정권의 실세로 등장했다.

2009년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사를 맡았다. 이 전 부장은 노 전 대통령의 주변 인물, 일가족을 모조리 소환하며 무리하게 수사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변호인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은 자서전 <운명>서 “이인규 중수부장이 대통령을 맞이하고 차를 한잔 내놨다. 그는 대단히 건방졌다. 말투는 공손했지만 태도엔 오만함과 거만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고 회고했다. 

일가족은 몇 차례나 소환됐고 수사 현황은 실시간 언론에 브리핑됐다. 급기야 노 전 대통령 일가가 고가의 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는 등 허위 사실이 매체에 유포되면서 심적 고통을 견디지 못한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이 전 부장은 ‘박연차 리스트’ 수사 결과를 5분 만의 발표로 종결했으며 노 전 대통령 혐의를 ‘뇌물수수’라고 밝혔다. 하지만 구체적 증거도 없이 “역사적 진실은 수사기록에 남겨 보존하겠다” “수사 과정서 법과 원칙에 따라 최선을 다했다” 등 수사의 정당성만 주장했다. 

“지금 밝히면 
다칠 사람 많다”

당시 문 대통령은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을 두 번 욕보이는 행태에 분노를 느낀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변호인단은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 이번 수사결과 발표는 책임 회피와 자기 변명으로 일관됐다고 비판했다.

이 전 부장은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자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고 검찰에 물러났다. 그런데 그는 “생을 검사로만 살고 싶었는데 그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저승에 가서 노 전 대통령을 만나면 왜 그랬느냐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빚을 갚으라고 말할 것”이라는 말을 남겨, 정치권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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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단독] 캄보디아 주범 ‘리광호’ 정보기관 추적,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캄보디아를 향한 정부의 압박이 매섭다. 피해자이자 피의자인 한국인 수십명을 발 빠르게 송환한 데 이어 캄보디아에 대한 경제적 지원도 옥죌 계획이다. 정보·수사기관은 제일 먼저 대학생 피살 사건 핵심 인물인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리광호는 이미 캄보디아를 떠나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파악됐다. “리광호는 지난주에 이미 떴어요.” 리광호에게 대포통장을 만들어준 보이스피싱 조직원 A씨가 <일요시사>와의 연락에서 한 말이다. 리광호는 캄보디아 대학생 박모씨 피살 사건 주범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이미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 밀입국했다. 정보·수사기관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이다. “지난주에 이미 떴다” 리광호의 신상은 이미 이달 중순부터 텔레그램과 SNS 등을 통해 공개됐다. 1991년생인 리광호는 중국 길림성 훈춘시 출신이다. 키는 160㎝로 단신이며 각진 턱과 짧은 머리가 특징이다. 최종 학력은 초등학교(소학교) 졸업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수사당국은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중국 국적 조직원 3명을 체포했다. 앞서 박씨는 지난 7월17일 “현지 박람회에 다녀오겠다”고 한 뒤 캄보디아로 출국한 뒤 연락이 두절됐다가 3주 뒤 깜폿 보코산 인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캄보디아 캄폿지방검찰청은 지난 10일 박씨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으나 핵심 인물은 따로 있다. 이들 조직원 3명은 박씨의 시신을 옮길 때 현장에 있었을 뿐이었다. A씨는 “캄보디아 경찰이 박씨를 살해한 혐의로 리광호를 잡기 위해 지난 8월 그의 은신처를 급습했었는데 리광호가 몇 시간 전에 미리 알고 도주했다”고 말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국내 인터폴, 경찰, 국정원 등 정보·수사기관도 캄보디아와의 공조를 통해 리광호를 추적 중이다. 그는 이달 초 캄보디아 시아누크빌에서 라오스로 밀입국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라오스로 넘어갈 때 캄보디아 국경을 관리하는 공무원들에게 수천만원을 줬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넘어가기 직전에 대포 통장과 핸드폰을 급하게 만들어달라고 한 이후에 연락이 끊겼다. 지금은 미얀마로 넘어갈 준비라는 소문이 파다하다”고 주장했다. 수사기관 관계자도 “관련 첩보를 입수하고 추적 중인 건 맞다”며 “현지 경찰과도 공조 중이다. 자세한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했다. 리광호는 5년 전 베트남 하노이에서 보이스피싱 조직의 중간 관리자였다고 한다. 조직 내 수익을 빼돌리려는 계획이 탄로나자 잠시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해 자신과 친분을 쌓은 이들을 모아 시아누크빌에 자리 잡았다. 리광호와 친분을 쌓은 인물 대부분은 조선족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리광호는 조직에서 간부급은 아니었다. 납치 담당, 고문·협박 담당 등 맡는 일이 다 다른데 리광호는 가리지 않았다. 머리가 좋지 않아서 몸으로 하는 일을 주로 했다”고 설명했다. 라오스 북부 통해 미얀마 밀입국 준비 다른 주범 김, 강남 마약 음료 총책 이어 “조직 간부인 중국인들에게 무시당할 때마다 구금된 여자를 강간하거나 남자들에게 강제로 마약을 먹이고 폭행한다. 이건 리광호만 그런 게 아니다. 그러다가 구금된 이들이 죽으면 시신을 태운다”고 주장했다. 리광호는 현재 영등포경찰서와 인천지검의 수배 대상자다. 인터폴에서도 적색수배 상태로 확인됐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중국에서도 마약 밀수 혐의로 수배에 오른 인물이다. 중국에 다시는 못 들어간다. 들어갔다가 걸리면 사형”이라고 말했다. 국내 정보·수사기관은 리광호 외에 김모씨도 추적 중이다. 김씨는 리광호와 함께 박씨 사건 주범으로 의심되는 인물이다. 특히 리광호와 김씨는 2년 전 강남 대치동에서 발생했던 마약 음료 사건의 유통책으로 확인됐다. 마약 음료 사건은 지난 2023년 이모씨 등이 필로폰과 우유를 섞어 만든 음료를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제공하고 마시게 했던 사건이다. 당시 이씨 일당은 마약 음료 수백병을 만든 뒤 2023년 4월 대치동 학원가에서 ‘집중력 강화 음료’ 시음 행사라며 미성년자 13명에게 제공하고 실제 9명이 마시게 했다. 이후 음료를 마신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당신 자녀가 마약 음료를 마셨으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해 금품을 뜯으려고 시도했다. 불특정 다수의 미성년자를 속여 급성 중독성 마약을 투약하고 부모까지 노린 신종 보이스피싱 범죄라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을 불렀다. 중국에 있던 주범 이씨는 사건 발생 50여일 만인 2023년 5월 중국 지린성 내 은신처에서 중국 공안에 검거돼 강제로 송환됐다. 대법원은 지난 4월 이씨에게 징역 23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마약 음료 제조자 길모씨는 징역 18년, 마약 공급책 박모씨는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진짜 두목 따로 있다 당시 필로폰을 공급한 중국 국적 총책은 검거돼 캄보디아 법원에서 26년형을 선고받았다. 정보기관 관계자는 “리광호와 김씨는 수사를 통해 추적해 왔던 인물이다. 필로폰 4kg 이상을 밀반입하는 걸 주도했고 그걸 이씨와 박씨가 국내에 뿌렸던 사건으로 파악됐다”고 전했다. 리광호가 속한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웹사이트 중 일부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구축한다는 게 <일요시사>와 접촉한 이들의 설명이다. 또 다른 조직원 B씨는 “전부 다 북한 애들이 하진 않는다. 허술한 웹사이트는 북한 전문가들의 작품이 아니다. 한국인 범죄자들은 피싱으로 중국 조직에 1억원의 수익을 안겨주면 수수료로 7~10%의 수고비를 받는다. 북한과 조선족은 더욱 싸다. 3~5% 정도면 굉장히 열심히 한다”며 “중국 조직 입장에서는 한국인들보단 북한이나 조선족을 동원하는 경우를 선호한다”고 했다. 최근 정부는 김진아 외교부 2차관을 단장으로 정부 합동 대응팀을 캄보디아에 파견했는데 여기에는 경찰청, 국정원 등이 참여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캄보디아 스캠 범죄를 매우 심각하게 여기고 국정원에 “발본색원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조직의 사활을 걸고 확실하게 해결해 국민 걱정을 덜어드려라”는 특별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정보기관 내부에서는 리광호와 김씨와 같은 조직원들 추적에 사활을 건 분위기다. 국정원은 캄보디아 스캠 범죄조직은 중국 등 다국적 범죄조직이 캄보디아로 침투해 만들어진 것으로서 프놈펜, 시아누크빌을 비롯해 총 50여곳에 약 20만명의 조직원이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 조직들의 범죄수익은 2023년 기준 125억 달러(약 18조원)로 캄보디아의 국내 총 GDP의 절반 수준에 달했다. 다국적 범죄조직 이들 조직은 과거 카지노 자금 세탁 등을 했던 조직으로 코로나 팬데믹 이후 국경이 폐쇄되면서 캄보디아로 침투해 스캠 범죄로 범죄를 변경했다. 이들 조직은 자체적으로 무장경비원까지 배치하고 있다. 비정부 무장단체가 장악한 지역이나 경제특구 등 캄보디아의 다양한 지역에 분포돼있어서 캄보디아 정부도 단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국정원은 한국인들의 현지 방문 인원과 스캠 단지(웬치) 인근 한식당 이용 현황 등을 통해 스캠 단지에 있는 한국인 범죄 가담자를 1000~2000명가량으로 추산했다. 국정원은 이들에 대해 “100%는 아니지만, 피해자라기보다는 범죄에 가담한 사람들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캄보디아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의 자금을 관리하는 배후로는 프린스그룹과 후이원이라는 현지 기업이 언급된다. 이 두 기업은 웬치에서 감금, 사기 행각을 벌이거나 북한 해킹 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는 등 전방위 범죄를 저지르며 천문학적 수익을 벌어들였다. 프린스그룹은 캄보디아 최대 범죄 거점으로 지목된 ‘태자 단지’를 운영하는 등 조직적 인신매매와 불법 감금, 사기 등의 배후로 알려졌다. 중국에서도 불법 도박이나 성매매 등으로 범죄 자금을 벌어들였다. 베트남 국경 지역에 있는 진베이 단지는 중국 9개 성의 법원에서 심리된 83건의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다. 천즈 프린스그룹 회장이 기업을 성장시킬 수 있었던 배경에는 훈 센 전 총리 등 캄보디아 고위층과 긴밀한 유착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천즈는 수많은 논란에도 훈 센 전 총리 정권에 막대한 자금을 바치며 캄보디아의 최고위층 귀족 칭호인 ‘옥냐’를 캄보디아 국왕으로부터 수여받았다. 국내 은행사가 이들의 범죄 자금을 유통·세탁하는 데 이용됐을 우려도 나온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국민은행·전북은행·우리은행·신한은행·IM뱅크 등 국내 금융사의 캄보디아 현지 법인 5곳은 프린스그룹과 총 52건의 거래를 진행했다. 거래액은 1970억4500만원에 달한다. 아직 9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여전히 현지에 남아 있다. 보이스피싱·스캠 조직 웹사이트 서버 북한이? 국정원·정보사 해외 파트·대북팀 동원해 추적 후이원은 범죄조직의 자금을 세탁하며 회사의 규모를 키웠다. 후이원은 ‘캄보디아의 알리페이’라고 불리는 후이원페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결제, 정보기술(IT) 서비스 복합 기업이다. 이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활용해 국제 해킹 조직이 사이버 사기, 랜섬웨어 등으로 얻은 범죄수익을 세탁해 왔다. 후이원페이는 훈 센 전 총리의 조카인 훈 토가 주요 주주로 등록된 회사이기도 하다. 정보기관에 따르면 이 기업은 북한 정찰총국 산하 해킹 그룹 ‘라자루스’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후이원은 공개·비공개 텔레그램 등 채팅방을 이용해 사기 조직과 자금 세탁범을 연결하고 범죄수익을 해외로 유출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2021년 이후 700억~890억 달러 규모의 가상화폐 거래를 중개했고 일부는 라자루스로 흘러 들어갔다. A씨는 “북한 IT 전문가들이 피싱·스캠 관련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시작한 건 4~5년 전부터”라며 “북한이 제작한 사이트의 경우 퀄리티가 상당하다. 그 대가로 후이원이 스테이블코인을 만들어 북한 쪽에 수익을 전달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국정원 해외 파트인 해외정보국과 대북 업무 담당자 상당수는 이미 캄보디아를 포함한 동남아 곳곳에서 관련 첩보를 입수 중이다. 국정원은 1차장이 해외 파트, 2차장이 대북·대공 업무를 담당한다. 2차장은 특히 북한 정보수집·분석 등 국정원의 대북 분야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외에도 국군정보사령부 동남아팀 휴민트(HUMINT·인간정보)들도 현지서 국정원과 정보를 공유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정보사 출신 한 군 고위 관계자는 “캄보디아 수도권에 대남공작원들이 많긴 하지만 웬치에 북한 대사관 관계자나 공작원들이 있진 않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단지 대가를 받고 캄보디아 범죄조직 사이트를 만들어주거나 불법적으로 벌어들인 자금으로 세탁해 주는 게 북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배후? 북한 연루설 다른 정보기관 관계자도 “국정원을 비롯한 정보사가 이번 캄보디아 사건에서 할 수 있는 건 보이스피싱·스캠 조직으로 인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본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와 북한에도 그 금액이 흘러 들어갔는지, 북한과 관련된 인물들이 얼마나 있는지 등이다. 캄보디아에서의 대남 관련자들은 절대로 개인적으로 특정 행위를 하지 않는다. 예시로 캄보디아 무역 또는 사업가, 식당을 운영하는 인물 등이 대남공작원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