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중 야구부 윤무선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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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1.06 10:24:36
  • 호수 113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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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평생 지도자로…‘필드 야전군’

영남중학교 야구부는 그동안 박병호(MLB 미네소타 트윈스), 이동현(LG 트윈스), 고영민(두산 베어스), 진야곱(두산 베어스), 박상언(한화 이글스), 민성기(NC 다이노스), 김유신(LG 트윈스) 등 야구인재를 배출해 왔다. 그러나 선수 수급에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침체를 거듭해왔다. 지난 3월 취임한 윤무선 감독은 딱 한 시즌 만에 모두를 놀라게 하는 변화와 성적을 거뒀다. ‘2017 LG배 서울 중학교 야구대회’와 ‘2017 U-15 전국유소년 야구대회’ 문무리그서 준우승한 것. 그 비결이 뭘까. 윤 감독에게 물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본인의 이력과 경력은?

▲서울 장안초등학교서 야구를 시작해 장충중학교와 장충고등학교를 거치며 현역 선수생활을 했다. 초등학교 때는 포수를 주포지션으로 맡았고, 중학교 때는 2루수를 맡았다. 체격이 굉장히 작은 편이었는데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는 투구자세가 좋다는 평을 받았다. 군대 전역 후 23세의 나이로 광명리틀야구단의 감독을 맡으며 지도자로서의 야구인생을 시작했다. 

영일초등학교 야구를 비롯한 몇몇 초등학교 야구부 코치와 충청도 세광중학교 야구부의 코치생활을 거쳐 서른 살 무렵에 배재고등학교의 투수코치로 재직했다. 영남중학교 야구부에는 10여년 전에 코치로 부임, 오늘에 이르게 됐다. 거의 반평생을 지도자로서 필드서만 보낸 야전군(?) 출신이다.(웃음)

-부임하자마자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감독이 혼자서 팀을 변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탭들과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뒷바라지 하는 학부모님들과 학교 당국의 지원, 이 세 가지 요소가 서로 야구부 발전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원활한 각자의 역할을 해줄 때 비로소 팀은 변화하고 전력이 강해진다. 


우리 야구부는 먼저 학교장이신 조용훈 교장님의 전폭적인 야구부 지원이 뒷받침되었다. 교육청의 체육담당 장학사를 역임하셨던 교장님의 야구부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영남중학교에서 십여 년 동안 재직해 온 나 또한 깜짝 놀라운 정도고, 이 기회를 빌려 정말 감사드리고 싶은 마음이다. 

야구부를 학교와 연계해 물심양면의 행정적 지원을 해주고 있는 고재상 야구부장 선생님도 정말 고마운 존재이다. 이 분은 내가 선수들의 지도와 경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모든 행정적인 업무와 뒷받침을 전담해주고 있다.

-학부모들과의 소통은?

▲사실 중학교에 야구선수 아들을 키우고 있는 모든 학부모님들의 주된 관심사는 고등학교의 진학 문제다. 희망학교와 실제로 배정되는 학교에 있어 괴리감이 발생하면 부모님들은 당연히 불만을 갖게 되고, 이는 곧바로 지도자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진다. 

나는 일단 부임하자마자 3학년 학부모님들과의 수차례 면담들을 통해서 그분들이 희망하는 고등학교에 대한 파악과 내가 평가하는 선수들의 실력 수준에 대한 조정을 도모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듯이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은 소위 야구의 명문 고등학교라고 불리는 고등학교로의 진학을 희망하고, 그런 학교들을 1차 배정의 희망학교로 지원을 하려 한다.

부임 첫 시즌에 놀라운 성적
변화·혁신으로 새바람 일으켜

문제는 현재 해당 선수들의 경기력과 실력인데, 내가 지도자로서 판단하는 그들의 실력 수준과 지원 희망 고등학교가 잘 조합돼 선수들이 고등학교 진학 이후에도 실력이 향상되고 보다 많은 출장 기회를 얻어낼 수 있도록 하는 학교를 추천, 진학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학부모님들의 불만들이 줄어들고 거의 모든 학부모님들과 선수들이 만족할 만한 지원학교로의 배정지원을 얻어내며 신뢰를 얻어낼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팀의 운영에 안정성이 생겼다.

-선수들에 대한 지도관은?

▲가장 강조하는 것은 훈련 중의 성실성과 게으름에 대한 것이다. 실력 수준의 높고 낮음을 떠나 훈련장에서 어슬렁거리며 아무런 목표 의식이 없이 훈련하는 선수는 용납할 수 없다. 부임 후 선수들과의 미팅 때마다 훈련의 성실도에 따라서 경기의 기용 기준으로 삼겠다는 것을 강조했다.

실제로 경기 때도 실력의 수준보다 훈련의 성실성 정도로 선수들을 우선 기용하려 노력했다. 다행스럽고 고맙게도 선수들 또한 감독의 마음을 헤아려주며 훈련에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임해줬다. 이러한 자세들이 팀의 분위기를 빠르게 변화시켰다.

한 시즌이 끝나가는 지금 영남중 야구부의 훈련장서 걷는 선수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실력이 좋은 선수도 훈련의 태도에 문제가 있으면 경기에 기용되지 않는다는 의식들이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히 중대한 변화다. 그러한 변화가 올 시즌 서울 지역과 전국적인 규모의 대회에 준우승할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확신한다.

-현 인원과 코치진 현황은?

▲현재 총원 51명이다. 3학년 15명, 2학년 14명, 1학년 22명으로 구성돼있다. 이제 시즌이 끝나고 3학년 15명이 졸업을 하면 내년도 2018 시즌 1학년 신입생으로 10명의 선수를 체육특기자로 배정해줄 것을 교육청에 신청했다. 현재 1학년의 인원(22명)이 많은 상태라서 이들의 훈련과 고학년이 되었을 때의 기용, 그리고 고등학교 진학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내년도 신입생들의 인원을 줄이게 됐다.

-선수들 수급은?

▲우리 관내에는 초등학교 야구부가 없기 때문에 이웃의 관내에 있는 도신초등학교와 영일초등학교, 인헌초등학교와 강남초등학교 등의 선수들이 배정지원을 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고, 관내에 주거하는 리틀야구단 소속의 선수들도 지원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훈련 등 앞으로 일정은?

▲야구부가 강해지려면 시즌 중의 훈련뿐만 아니라 오프 시즌(Off-season) 중의 훈련이 많은 영향을 미친다. 영남중학교 야구부는 다가오는 겨울철의 동계훈련 기간을 통해 다시 한 번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예정이고, 총 40일 정도의 기간 동안 3차에 걸친 전지훈련과 프리 시즌(Pre-season) 대회의 참가를 계획하고 있다. 

일단 1차 전지훈련을 강원도 속초 지역으로 12월29일부터 내년 1월31일까지 실시할 예정이다. 이후 전북 군산서 개최대는 ‘군산리그’ 대회에 참가한 후, 3차 전지훈련으로 대전의 한밭중학교 야구부 훈련장을 사용하는 훈련프로그램을 실시할 예정이다. 그리고 2018 시즌을 맞이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가장 먼저 올 시즌 우리 선수들을 잘 지도하며 감독인 나를 잘 보필해준 우리 코치진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이들의 헌신적인 지도가 우리 팀을 변화시키는 것에 지대한 역할을 해줬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야구부 전원에게는 ‘예의’를 강조하고 싶다. 

감독과 코치 간의 예의, 선수와 지도자들 간의 예의, 선수들도 동기들끼리의 예의, 그리고 선후배들 간의 예의. 이러한 예의를 잘 지켜나가며 서로를 존중해준다면 우리 영남중학교 야구부는 아주 훌륭한 야구부로 반드시 발전을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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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기사> 경북고 배지환 애틀란타와 계약

경북고등학교 배지환(3학년, 유격수)이 미국 메이저리그(MLB)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Atlanta Braves)와 계약을 맺고 입단했다. 계약금 추정액은 미화 30만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는 지난 2016년 베네수엘라의 유격수 출신 ‘케빈 마이탄(Kevin Maitan)’과의 계약 체결 이후 최고 클래스의 외국인 루키를 2년 연속 영입했으며 아시아권의 신인 선수 영입은 근 20년 이래 처음 맺은 계약이다.


스카우트 팀장 존 코포렐라는 “배지환을 오랫동안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으며, 이번에 계약을 맺게 돼 대단히 만족한다”고 밝혔다.

대구 출신의 배지환은 1999년 생으로 대구 본리초등학교서 야구를 시작, 대구중학교를 거쳐 현재 경북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다.

182cm의 신장과 체중 77kg, 우투좌타의 유격수를 맡고 있다. 지난 9월 제28회 세계 청소년 야구대회(U18)서 우리나라의 준우승에 크게 기여한 선수다. 올 시즌 국내서 23경기에 나가 109타석 86타수 40안타(홈런 1개, 3루타 5개, 2루타 1개)의 성적으로 타율 0.465를 기록했다. 

도루 29개, 28득점을 기록하는 동안 삼진은 7개밖에 당하지 않았다. 황금사자기 전국 고교야구대회서 최다도루상과 최다득점상을 수상한 기대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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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⑥좌파 14명 체포 실패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12·3 계엄 당일 내란 주동자들은 정치인과 판사 등 자신들이 반국가 세력으로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위해 서둘렀다. 하지만 준비가 된 것은 각 군의 사령관들뿐이었다. 계엄사령부와 합동수사본부의 설치는 훈련 상황서도 24시간가량 걸리는데 이를 간과한 것이다. 미리 계엄을 준비했다는 증거가 계속해서 나오는 상황에 실무진에게 준비시키지 않은 점이 의문점으로 남아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내란 주도자들이 정치인과 판사 등 ‘좌파세력’이라고 지칭한 14명의 체포를 시도했지만 무산됐다. 그 내막에는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이하 합수본)의 미설치가 있다. 진술 나오자 다른 전략 <일요시사>가 검찰 진술 조서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계엄이 시작된 계기와 14명의 체포 미수 및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불법 점거의 실패 이유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를 꼽았다.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 국회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립은 심각했다. 과반 의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야당은 자기들끼리 뭉쳐서 법안을 통과시켰고 윤 전 대통령은 재의요구권을 사용했다. 또 야당은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를 수사한 검찰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하고 김건희씨와 관련한 특검법을 계속 발의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27일경, 윤 전 대통령이 관저 식사 자리서 “수사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검사를 탄핵하고, 재판받다가 마음에 안 든다고 판사를 탄핵하고, 헌법재판소가 마음에 안 들면 정족수를 자르고, 이게 나라냐.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국가 세력의 준동에 관해 청주간첩단 및 창원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수사 과정서 잡은 인원들을 판사 기피 신청이 들어오면 단기간에 결정하는 것이 상식인데 6개월이나 결정을 하지 않아 간첩들의 구속 기간이 끝나 다 풀려나 돌아다니는데도 이런 것을 방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나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미래 세대에 제대로 된 나라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비상계엄)이 필요하겠다”고 강조했다. 일주일이 지난 후 윤 전 대통령은 김 전 장관에게 “야당의 패악질로 나라의 미래가 없다. 국가 비상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들은 비상계엄 관련 논의를 했다. 이때 체포 명단인 이른바 ‘좌파 세력’ 14명의 명단과 군대를 어떻게 투입할지 등을 확정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체포 명단의 사람들의 신병을 확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게다가 내란 주동자들은 검찰 진술과 형사 법정 등에서도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합수부 미설치로 체포 불가” “합수부 없어 시작부터 위법” 김 전 장관은 검찰에 “주요 정치인 등에 대한 검거를 시도한 바 없다. 혐의가 있어야 검거를 시도하지 않겠냐”며 “언론에 나오는 위치 추적 등은 포고령에 따라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있는 상황이니 주요 정치인 몇 분과 부정선거 등과 관련해 사회서 의혹이 제기되는 사람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하라고 이야기한 것일 뿐”이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과 작전에 투입된 군인들의 진술로 체포 명단이 실제로 존재했으며 체포를 지시하고 시도했다는 것마저 모두 드러났다. 체포 시도가 있었다는 진술이 계속해서 나오자 내란 주동자들은 다른 전략을 세우게 된다. 바로 ‘합동수사본부 미설치’다. 김 전 장관은 검찰 진술서 합수본이 미설치돼 체포가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엄사령부와 합수본이 설치되는 과정이라 검거가 불가능하다”며 “합수본이 설치되려면 검찰과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체포부터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은 계엄 직후 선관위에 국군 정보사령부 부대원들을 보내 선거인 명부 관리 서버를 장악하고 선관위 당직자들에 대한 통신 제한(휴대전화 압수)과 감금이 위법한 수사 활동임을 나타내고 있다. 계엄이 터지면 통상적으로 합수본 역할을 맡는 국군 방첩사령부 관계자도 검찰 진술 당시 선관위 투입은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영희 방첩사 비서실 1과장은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방첩사 소속 군인들로 하여금 중앙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도록 지시하거나 계엄 해제 이후 관련 증거를 제거하도록 시킨 것은 자신들의 정당한 권한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성 미리 알고? 박성하 방첩사 기획조정실장은 “현장에 나가 있던 소위 체포조에 대해서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면서도 “하지만 전시에도 방첩사가 일부 범죄에만 수사권이 있기 때문에 전시나 계엄 상황이라도 관할권이 없는 선관위나 정치인 등 체포나 점거는 경찰의 협조가 필요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게다가 합수본(방첩사)은 직접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통합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하는데 지역 합수단서 해야 할 일을 방첩사 인원으로 진행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한 군검찰 출신 변호사는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임명하는 군사경찰 관리, 경찰공무원, 국가정보원 직원 중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 그 밖에 사법경찰 관리의 직무를 수행하는 자로 구성된다”며 “또 합수본은 계엄사령관이 지정한 사건의 수사와 정보기관 및 수사기관의 조정·통제업무를 관장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하지만 선관위로 투입된 인원들은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지도, 임무를 하달받지도 않았다”며 “게다가 합수본까지 설치되지 않았다고 한다면 시작부터 위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사와 방첩사 모두 계엄사령군(군사경찰)이 아니기에 정당한 절차가 없었다면 반란군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여기서 의문이 드는 점은 계엄 업무를 해본 김 전 장관이 왜 무리수를 뒀는지다. 김 전 장관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부서 작전본부장을 역임한 바 있다. 합참 작전본부에는 계엄과가 편제돼있기 때문에 김 전 장관이 계엄군과 합수본 지정 및 운용 등을 몰랐다고 보기 힘들다. 합참 계엄과서 편찬하는 계엄실무편람에도 잘 나와있기 때문이다. 김 전 장관은 논란을 줄이기 위해 계엄이 선포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화상으로 개최하면서 박안수 전 육국참모총장을 계엄사령관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합동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하지만 일부 사령관 등에게만 공유됐던 12·3 계엄 작전은 계엄사령부가 설치되기도 전에, 합수본이 설치되기도 전에 끝났다. 사령부만 알았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 조서에 따르면, 김 전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부 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을 하면서 방첩사에 합동수사본부를 구성해서 임무 수행을 하라고 지시했다. 김 전 장관이 방첩사에 지시한 임무는 경찰과 국방부 조사본부에 100명씩 인원을 요청하고 선관위로 먼저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가 접수한 선관위 서버를 꺼내오라는 지시였다. 국방부 조사본부와 경찰에 인원 요청을 한 것은 정치인, 판사, 등 민간인 체포를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조사본부는 방첩사가 요청한 수사관 지원 요청을 4차례 거절했다. 조사본부 한 관계자는 검찰 조사 당시 “지난 3일 계엄령 선포 이후 방첩사로부터 수사관 100명 지원을 네 차례 요청받았지만, 근거가 없다고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며 “이후 합수본 실무자 요청에 따라 시행 계획상 편성돼있는 수사관 10명을 지난해 12월4일 오전1시8분 출발시켰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의 수사관 파견 요청에는 불응했고, 계엄 시행 이후 방첩사를 중심으로 꾸려지는 합수본 요청에는 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수사관이 파견된 시간은 이미 계엄 해제 의결이 이뤄진 뒤였다. 합수본이 계엄 해제와 비슷한 시기에 모양새라도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김 전 장관이 계엄 직후 전군주요지휘관회의서 여 전 사령관에게 합수본 설치를 지시했지만 설치가 늦어진 이유가 있다. 방첩사에 내려진 지시는 좌파세력 체포와 합수본 설치, 검찰과 경찰 및 국방부 조사본부 등에 협조 요청 등으로 내란 주동자들에게는 어느 것 하나 미룰 수 없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 기획조정실장은 “부대에 도착해보니 OOO회의실에 여 전 사령관이 이경민 참모장, 이창엽 비서실장과 같이 있었다”며 “합수본 설치 지시를 받으려 사령관에 물어봤지만 답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여 전 사령관이 다른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는데 ‘합수본부장으로 임명됐다. 우리 대원들은 다 나가 있다’고 말하며 통화에만 집중했을 뿐 합수본 설치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계엄 6개월 전부터 준비 실무진만 ‘닭 쫓던 개’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국가적으로 엄중한 상황이 될 텐데 방첩사는 계엄 선포 예정 사실을 알고 준비하지 않았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계엄이 선포되면 합수본을 설치해야 하는 사람이 나다. 하지만 나는 해당 사실을 알지 못했다”며 “체포조를 운영한 수사단장도 해당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답했다. 그는 “방첩사 비상소집이 완료된 시간이 지난해 12월4일 오전 1시4분”이라며 “합수본은 기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상태서 계엄이 해제됐다”고 말했다. 방첩사 인원들이 전원 소집되는 시간에 이미 계엄은 해제된 것이다. 방첩사의 작전 계획상에는 상황실 설치에 8시간, 합수본 설치에 24시간을 예정하고 있는데 비상계엄이 3시간 만에 해제됐다. 본부 설치에만 24시간이 걸리며 계엄사령관으로부터 임명을 받아 합수본을 완전히 구성하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한 군사학과 교수는 “계엄 선포에 대해 사령관과 참모진 외에 실무자에게도 공유가 됐다면 미리 합수본 설치를 준비하고 있다가 계엄이 선포된 후 바로 체포를 진행했을 것”이라며 “이번 계엄의 패착은 이전 계엄과 달리 빠르게 대처한 국회를 막지 못한 것과 계엄사령부부터 합수본까지의 실무자들이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방첩사 사령부에서는 미리 계엄 준비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방첩사 소속 간부 A씨는 검찰 조사에서 “방첩사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체결한 MOU에 언급된 ‘합동수사본부’는 계엄 시 설치되는 합수부가 맞다”고 진술했다. 방첩사와 국수본은 지난해 6월28일 ‘안보범죄 수사 협력에 관한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합동수사본부 설치 시 편성에 부합하는 수사관 등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방첩사가 계엄을 오래전부터 준비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지휘부에서 최초에는 지난해 5월 초순경 3주안에 체결하라는 지시를 했다”며 “보통 미국 국방정보국(DIA) 등 해외정보수사기관과 이런 MOU를 맺고, 국내 기관은 관련 법령이 있어 MOU를 맺지는 않는다. 국내 기관과 MOU를 맺은 건 이번이 처음이고, 굳이 이런 MOU를 맺는 게 의아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다만 조지호 경찰청장은 해당 MOU에도 불구하고 계엄 당일 수사관 지원 요청을 이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조 청장은 지난 5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긴급 현안 질의에 나와 “방첩사 주관으로 수사본부가 꾸려질 수 있으니 경찰서 필요한 인력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제가 준비하겠다고 했다”고 밝혔으며 계엄 당일 수사관 81명이 방첩사 요청으로 대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두환과 구상 흡사 내란 주동자들은 경찰력을 대거 방첩사로 파견해 합동수사본부를 꾸리고 정치인 체포 작전을 벌일 계획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79년 비상계엄하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 피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만든 합수본과 흡사한 구상이다. 당시 합수본은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에 대한 정보 기능을 도맡아 12·12 군사 반란의 수괴인 전두환씨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다. <kcj5121@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계엄 사령부 구성도 완전 실패 <일요시사>가 확보한 검찰 진술조서에 따르면 계엄사령부는 구성조차 못했다.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은 계엄이 선포된 후 김용현 전 국방부장관으로부터 ‘계엄사령부 설치를 도와라’라는 지시를 받았다. 이에 그는 육군 본부 참모진들이 올라올 때까지 계엄사 상황실 구성 준비를 했다. 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사에는 2실(비서실, 기획조정실) 8처(정보처, 작전처, 치안처, 법무처, 보도처, 동원처, 구호처, 행정처)를 구성하도록 돼있으나. 권 전 과장이 계엄사 상황실을 구성하고 있을 당시 국회에서는 ‘비상계엄해제 요구결의안’이 가결됐다. 당시 권 전 과장이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에게 “(계엄해제 요구안이 가결됐으니) 법률상 지체 없이 계엄을 해제하도록 돼있다”고 말하자 박 전 총장은 “그런 것을 조언할 것이 아니라 일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일머리가 없다”며 “올해 연습을 두 번이나 했다고 하면서 구성을 왜 빨리 못하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는 내란 주동자들이 2차 계엄을 생각하고 있었으며 계엄사 구성의 역할이 합참에 있었다는 것을 내포하는 대목이다.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