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야구선수의 재질(Ta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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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0.23 11:22:00
  • 호수 1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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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양대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었던 김한근 전 한양대 감독과 야구선수들의 재질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김한근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학교를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시 삼성라이언즈의 원년 선수로 활동했고, 1985년 빙그레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원년 선수로 활약했다.

후로 다시 1989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후 1990년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구상고와 한양대, 그리고 삼성 라이언즈를 거치는 동안 국내 야구의 역사상 불세출의 타격천재라 일컬어지는 고 장효조와 함께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같은 팀에서 활약했었고, 김 감독 본인 또한 장타력을 동반했던 타격의 재질이 뛰어났던, 수비의 보직으로는 주로 3루수를 맡아 보았던, 명 내야수였다.

그러했던 김한근 감독은, 가장 가까이서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았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의 예를 들어가며 야구선수의 재질과 그 원천이 되는 ‘야구선수의 신체적 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부산 태생인 장효조는 어린 시절 대구 이주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대구중학교를 거쳐 대구상고에 진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고교 2학년 재학 시절,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그리고 황금사자기 등의 메이저급 고교야구대회를 대구상고가 연달아 석권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 대회의 타격왕에 5할이 가까운 타율로 올랐고, 고교 재학 시절을 통틀어 다섯 번의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1975년 한양대 진학 이후 거의 모든 대회의 타격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1976년 국내 성인 야구팀들이 모두 출전하며 프로야구 출범 이전의 가장 큰 권위를 자랑했던 ‘백호기’대회에산 7할이 넘는 경이로운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그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해에는 그해 국내서 개최됐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출전으로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의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원년 참가를 못하고 1983년 시즌에 삼성 라이언즈의 프로선수로 데뷔 시즌을 치른 후 0.369의 타율로 데뷔 시즌 타격왕이 됐다.

1992년의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기까지 10시즌을 거치며 그가 세운 국내 프로야구의 통산타율(0.331)과 3년 연속의 타격왕 등극(1985∼1987)은 아직도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 밖에도 통산 네 번의 타격왕과 6번의 출루율 1위, 그리고 통산 100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야구선수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170cm, 70kg)을 지녔지만, 수비의 보직이었던 외야수로서 보살에 능했던 강견의 소유자였고, 그에 따른 힘과 스피드, 정확성, 수비력과 근성까지 갖췄던, 흔히 말하는 ‘야구의 5툴(Five Tools)’을 모두 가지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수치상의 기록은 없지만 장효조의 배트 스피드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모든 야구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모두 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타격시 상대하는 투수들의 공을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이 붙여 놓고 빠른 배트 스피드로 휘둘러 야구장의 좌 우측 어디든 자유자재로 타구를 보내는 그의 ‘부챗살 타법’은 그에게 ‘안타 제조기’ 혹은 ‘타격 기계’라는 별명까지 안겨줬다.


그날의 대화서 김한근 감독은 야구선수의 최고 재질로, 바로 선수 자신이 가진 ‘신체의 힘’을 꼽았다. 
 

투수로서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도, 타자로서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공을 쳐낼 수 있는 것도, 주루 시나 수비 시에 활용되는 빠른 주력과 스피드도 모두 신체적인 힘의 우위서 나온다는 지론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장효조는 체구가 작은 선수였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다른 선수들을 모두 압도하는 신체의 힘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효조는 이미 고교 시절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개인훈련의 과정에 지금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엘리트 야구서 조차 필수적이고 당연시 되는 훈련 프로그램의 개념이지만 국내 야구계에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이 도입되었던 시기는, 1990년 대 초반 무렵, 당시 LG트윈스의 감독으로 이른바 ‘자율야구’ 혹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이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서의 코치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도입해 야구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개념을 한 단계 진전 시키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그 이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우리나라 야구계는 물론이고 축구계까지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라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단지 전문적인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우는 개념만으로 이해해 야구나 축구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굳어져서 유연성을 잃고 경기력에 해가 된다는 미신적인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장효조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역기’를 활용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들의 예는 비단 장효조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현역 선수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동체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평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보며 외우려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TV 시청은 물론, 게임이나 휴대폰의 사용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야구선수에게 눈이란 생명과도 같은 신체 기능의 요소이다.

비슷한 예는 축구에도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을 3위로 입상 시키며 7골로 대회 득점왕이 되었던 가마모토 구니시케라는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차범근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선수인데 아직도 일본 축구대표팀 A매치 역사상 80골로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의 가마모토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왼발’에 의한 킥과 기술의 구사였다. 


오른발잡이였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왼발이 오른발만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러한 왼발을 좀 더 잘 사용하기 위해 평소의 훈련 때도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왼발의 킥과 기술을 연마했으나 노력만큼 왼발의 기술이 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학 관련 서적을 읽던 중 우연히도 사람의 인체 중 오른쪽은 왼편의 뇌가 그 활동을 지배하고 왼쪽의 신체는 오른편 뇌의 활동으로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이후 가마모토는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모두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신체를 조정하는 오른 뇌의 기능을 향상 시키면 왼발의 기능 또한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로부터 출발한 행동이었다.

가마모토는 또한 평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절대로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양쪽 발로 중심을 잡으며 신체의 밸런스를 잡는 감각을 훈련 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향상시키려 했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던 선수들은 몇 가지 공통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얽매여 자신의 훈련 방식과 한계를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훈련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서 이뤄지는 행동들조차도 훈련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 취했던 대표적인 행동은 숙소와 야구장을 오갈 때 차량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런닝으로 오가며 하체의 힘을 강화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신체적인 재질, 스피드와 민첩성, 힘과 유연성 등의 모든 신체적 행동의 요소들을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부여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달리 보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이, 자신의 훈련과 그 프로그램의 실행에 있어, 단지 기술을 배양하는 데에만 할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예를 들었던 최고 수준까지 도달했던 선수들처럼 일상서조차도 자신의 신체적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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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면죄부’ 역풍 맞은 중앙지검 막전막후

‘김건희 면죄부’ 역풍 맞은 중앙지검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도이치모터스 사건이 사실상 종결됐다. 항고가 남았으나 기소가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김건희 여사에게 면죄부를 던져준 꼴이다. 심우정 검찰총장은 특수통이 아닌 기획통 중심의 연말 인사를 단행할 전망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갑작스러운 물갈이가 검사 ‘줄사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브리핑도 그렇고 결론 자체가 참담하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의 말이다.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사건에 연루된 김건희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것에 대해 비판한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 여사의 핸드폰과 주거지 압수수색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으나 법원이 기각했다며 거짓말 논란을 자초했다.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수사 결론을 내놓은 데 이어 내부에 균열이 생기는 분위기다. 4년 넘게 맹탕 수사 검찰이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사건에 연루된 김 여사를 수사한 건 4년6개월이 넘는다. 증거와 법리를 따져 불기소 처분했다는 입장이지만 면죄부를 던져줬다는 비판은 현재진행형이다. 검찰은 김 여사가 권오수 전 도이치모터스 회장의 주가조작 범행을 간접적으로도 인식하지 못했다고 봤다. 그러나 관련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서 증거 확보 타이밍을 놓치고 엇갈리는 진술 등으로 인해 판단이 어려워졌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거세다. 이번 수사에 관여한 서울중앙지검 전·현직 검사장은 4명이다. 또 수사 실무를 총괄하며 일선 수사팀을 지휘한 부장검사도 4명이다. 이 사건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지난 2020년 4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범행에 김 여사 등이 가담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되면서 시작됐다. 김 여사는 현직 검찰총장의 부인이었다. 같은 해 9월 황희석 전 법무부 인권국장이 검찰에 출석해 고발인 조사를 받았고, 이후 사건은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에서 반부패수사2부로 재배당됐다. 이듬해 8월, 수사팀이 재정비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내놓고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것이 그해 6월,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확정된 것은 11월이다. 검찰은 2021년 12월 권 전 회장 등 일당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기며 사건을 일단락했다. 처분 대상서 빠진 유력 대선후보의 배우자 김 여사에 대해 검찰은 “주가조작 가담 여부를 계속 수사하고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지난 4월 총선서 야권이 압승하고 김 여사에 대한 소환조사 필요성이 연일 거론되면서 수사가 진척을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지난 7월20일 김 여사에 대한 대면 조사가 이뤄졌지만, 최종 처분은 권 전 회장 등에 대한 항소심 재판 선고 이후로 또다시 밀렸다. 앞서 김 여사는 검찰청사가 아닌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대통령 경호처 부속청사서 비공개 방문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서 서울중앙지검이 이원석 전 검찰총장에게 사후 보고한 점이 알려져 ‘패싱 논란’이 일기도 했다. 수사팀은 경호와 보안상 문제로 제3의 장소서 조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해명했으나 여타 사건의 피의자들과 다른 기준을 적용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4년6개월 수사하고 김건희 성역 인정한 꼴 “압수수색영장 법원 기각” 대놓고 거짓말 당시 검찰 안팎에서는 “사법부의 판단을 두고 보면서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건 정권 눈치 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검찰이 참고하겠다고 밝힌 서울고법 항소심 재판부는 김 여사와 유사한 ‘전주(錢主)’ 역할을 한 인물에게 주가조작 방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특히 김 여사가 주식거래로 인한 손실 금액 상당인 4000여만원을 1차 주포에게 입금받은 내역, 2차 주포인 김모씨가 도피 중에 또 다른 사건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서 김 여사를 언급한 정황 등이 알려진 바 있다. 이 같은 상황서 일각에서는 수사 결과의 공정성 논란을 불식시키기 위해 처분 전 수심위를 열어 외부 의견을 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수사팀은 수심위 없이 차·부장급 검사, 일부 평검사 15명으로 구성된 레드팀의 검토를 거쳐 결론을 내렸다. 수사팀과 서울중앙지검의 지휘라인 모두 이 사건은 수심위를 열기에 적절치 않다는 일치된 의견을 낸 것으로 파악됐다. 최종적으로 김 여사에게 면죄부를 던져준 셈이다. 사건 처분 지연 이유를 묻자 수사팀은 “수사 종결을 위해 김 여사에 대한 대면조사가 반드시 필요했다”며 “여러 차례 출석을 요구했지만, 지난 7월 가까스로 대면조사가 이뤄졌다”고 해명했다. 부장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권오수 전 회장을 비롯한 핵심 관련자들은 일사천리로 기소했는데 유일하게 김 여사에 대해서만 소극적으로 일관했다. 수십명의 검사들이 투입돼 4년이 넘는 시간 동안 했다는 게 겨우 대면조사”라며 “과연 최선을 다한 수사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검찰이 시간을 끌어온 게 제일 문제”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시간을 끈 것보다도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면서 거짓말을 한 사실도 문제로 떠올랐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지난 17일 브리핑서 “코바나컨텐츠와 도이치모터스 수사가 같이 진행돼 압수수색영장 같은 것에도 함께 범죄사실을 적었는데, 2020년 11월 김 여사 주거지, 사무실,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영장 청구가 기각됐다”고 설명했다. 모르고? 알고도? 기각된 영장 혐의를 묻자 “코바나 사건이 주되긴 했지만 결국 코바나와 도이치는 같이 수사 중이었다. 압색영장에도 범죄 혐의가 같이 들어갔다”고 말했다. 도이치 사건으로도 영장 청구가 있었던 것으로 해석됐다. 하지만 지난 18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은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김 여사 영장이 청구됐다가 기각된 건 코바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검찰은 논란이 일자 “전달 과정의 오해였을 뿐 거짓 내용을 브리핑한 적 없다”고 해명했다. 브리핑서 ‘김 여사는 기본적으로 계좌주’라고 전제한 후 “계좌주 중 압색영장을 청구한 사람이 없다”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각된 영장에 도이치 사건 혐의는 없었다’고 명확히 설명하지 않았던 만큼 브리핑이 부정확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김 여사의 자본시장법 혐의에는 한 차례도 강제수사를 시도하지 않은 것이라 수사 의지가 부족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수사팀은 “10년 지난 사건이고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강조했다. 재경지검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 입장서 ‘거짓말 논란’은 억울했을 수 있다. 그러나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지지 않은 건 수사가 적극적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소극적 수사로 꼽힐 수 있는 뼈아픈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중앙지검 한 검사도 “수사팀 내에서도 기소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었다. 코바나컨텐츠 영장이 기각되지 않았으면 도이치모터스 관련 추가 물증을 확보할 수 있었을 거라는데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애초 정치적 부담을 고려해 소극적으로 수사한 것으로밖에 안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이 김 여사에게 지난해 7월 2차 서면 질의서를 보내고 지난 7월 답변을 받기까지 1년이 걸린 점도 의구심을 키웠다. 수사팀 관계자는 “서면 답변을 안 주면 (검찰이)어떻게 하느냐”고 했지만 대응이 미온적이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용산 갈등 후 이원석 배제 검찰의 판단으로 논란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명품백 사건의 경우 고발인인 백은종 <서울의소리> 대표 등이 검찰 불기소 결정에 불복하는 항고 의사를 밝혔다.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경우도 고발인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이 항고장을 접수한다는 계획이다. 또 공수처 수사와 야당 측의 김 여사 특검 발의 등은 아직 진행 중이다. 공수처는 지난달 ‘국민의힘 공천 개입’ 의혹과 ‘명태균씨 여론조사 비용 부담’ 의혹을 수사4부(이대환 부장검사)에 배당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도이치모터스 사건과 명품백 사건, 명씨 여론조작 등 총 13개 의혹에 대한 특검법을 발의했다. 다만 검찰 항고가 통계적으로 인용되는 비율이 10%로 매우 낮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의 불기소 결론이 서울고검 등 이후 단계서 뒤집힐 가능성은 희박할 것으로 법조계는 내다보고 있다. 공수처가 인력 부족 등의 문제를 겪고 있는 점도 고려해 봐야 한다. 또 약 15년 전 벌어진 도이치모터스 사건을 새롭게 들여다봐야 한다는 물리적인 한계도 안고 있다. 심우정 검찰총장이 연말 검찰 고위 간부 인사를 단행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어그러진 조직 내부를 점검하고 분위기 전환에 나서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현재 공석인 광주고검장과 부산고검 차장검사 등 지휘부 재편이 목적일 수도 있지만 특수통이 아닌 기획·관리에 능한 검사 위주로 조직을 꾸릴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앞서 심 총장은 취임 직후 이뤄진 인사에서 신봉수 고검장이 광주고검장서 대구고검장으로, 임승철 검사장이 부산고검 차장서 광주고검 차장으로 각각 이동시켰다. 검찰 내부에서는 고위 간부보다 중간 간부 인사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난 5월 단행된 인사에서 사법연수원 38기 검사들의 부장검사 승진이 보류됐다. 올해를 넘기면 38기부터 1년씩 승진이 유예되는 탓에 인사 적체를 우려하는 검사들이 많다. 연말 고위 간부 인사 정권 수사 힘 빼기? 특수 지고 기획통 주류로…녹슨 칼 되나 명품백 사건과 도이치모터스 사건 수사팀 소속 검사들은 지난 인사에서 잔류해 이들의 승진·전보 인사 요인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단행된 검찰 인사 기조를 보면 특수통은 좌천되거나 주류서 제외됐다. 지난 5월 검찰 인사에서 특수통으로 꼽히는 송경호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 부산고검장으로 전보됐고, 기획통에 가까운 이창수 검사장이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발탁됐다. 심 총장 취임식 당일 발표된 인사에서는 전국 특수수사를 지휘하는 대검찰청 반부패부장에 기획통으로 불리는 구승모 검사장이 임명됐다. 향후 인사에서도 이런 ‘관리형 인사’ 기조가 반영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이유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나 이 전 검찰총장과 가까웠던 정통 특수통들이 인사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에 심 총장의 연말 인사 전후로 사직서를 던지는 중간 간부들이 적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이미 사직서를 쓰겠다고 말한 부장급 간부도 있다. 특수통 외면은 이미 6개월 전부터 시작됐다. 특수통이 외면받게 된 이면에는 대통령실 및 김 여사 관련 수사에서 힘을 빼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있다. 한마디로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칼을 미리 부러뜨리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이 이 전 총장과의 갈등 직후 특수통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는 게 복수의 검찰 관계자의 말이다. 구권력 신권력 윤 대통령과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는 한 변호사는 “여권이 친한(친 한동훈)과 친윤(친 윤석열)으로 나뉜 것처럼 검찰 내부도 구권력과 신권력 간의 충돌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난다. 중앙지검이 김 여사를 불기소하면서 불만이 쌓인 검사들이 상당히 많다”며 “지금 상황서 특수통을 중용하는 건 당연히 좋은 선택이 아니다. 심 총장이 고위 간부와 중간 간부 대부분을 기획과 정무 감각이 뛰어난 이들로 꾸릴 것으로 본다. 그렇다고 차후 있을 인사에서 내치면 반골 기질이 있는 특수통들이 가만히 있겠나. 특수통들은 항시 정권의 심장을 겨눠왔다. 지금 용산이라고 다르지 않다”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