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호 칼럼> 야구선수의 재질(Tal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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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7.10.23 11:22:00
  • 호수 11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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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한양대학교의 야구부 감독이었던 김한근 전 한양대 감독과 야구선수들의 재질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의견을 나눈 적이 있었다. 

김한근 감독은 대구상고(현 대구상원고)와 한양대학교를 거쳐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 시 삼성라이언즈의 원년 선수로 활동했고, 1985년 빙그레이글스(현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원년 선수로 활약했다.

후로 다시 1989년 태평양 돌핀스로 이적한 후 1990년 시즌이 끝난 후 현역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대구상고와 한양대, 그리고 삼성 라이언즈를 거치는 동안 국내 야구의 역사상 불세출의 타격천재라 일컬어지는 고 장효조와 함께 현역 시절의 대부분을 같은 팀에서 활약했었고, 김 감독 본인 또한 장타력을 동반했던 타격의 재질이 뛰어났던, 수비의 보직으로는 주로 3루수를 맡아 보았던, 명 내야수였다.

그러했던 김한근 감독은, 가장 가까이서 오랜 세월 동안 지켜보았던 ‘타격의 달인’ 장효조의 예를 들어가며 야구선수의 재질과 그 원천이 되는 ‘야구선수의 신체적 힘’에 관해 이야기를 들려줬다.

원래 부산 태생인 장효조는 어린 시절 대구 이주 후 초등학교 4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고, 대구중학교를 거쳐 대구상고에 진학하면서 전국적인 인지도를 갖게 되는 선수로 발돋움했다. 


고교 2학년 재학 시절, 대통령배와 봉황대기, 그리고 황금사자기 등의 메이저급 고교야구대회를 대구상고가 연달아 석권하는 데 주역으로 활약하면서 두 개 대회의 타격왕에 5할이 가까운 타율로 올랐고, 고교 재학 시절을 통틀어 다섯 번의 타격왕을 거머쥐었다.

1975년 한양대 진학 이후 거의 모든 대회의 타격상을 휩쓸었는데 특히 1976년 국내 성인 야구팀들이 모두 출전하며 프로야구 출범 이전의 가장 큰 권위를 자랑했던 ‘백호기’대회에산 7할이 넘는 경이로운 타율로 타격왕을 차지했고, 그해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해에는 그해 국내서 개최됐던 ‘세계야구선수권대회’의 출전으로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 당시의 다른 국가대표 선수들과 마찬가지로 원년 참가를 못하고 1983년 시즌에 삼성 라이언즈의 프로선수로 데뷔 시즌을 치른 후 0.369의 타율로 데뷔 시즌 타격왕이 됐다.

1992년의 시즌이 끝난 후 은퇴하기까지 10시즌을 거치며 그가 세운 국내 프로야구의 통산타율(0.331)과 3년 연속의 타격왕 등극(1985∼1987)은 아직도 역대 최고의 기록으로 남아 있으며, 그 밖에도 통산 네 번의 타격왕과 6번의 출루율 1위, 그리고 통산 1009개의 안타를 기록했다.

야구선수로는 상대적으로 작은 체격(170cm, 70kg)을 지녔지만, 수비의 보직이었던 외야수로서 보살에 능했던 강견의 소유자였고, 그에 따른 힘과 스피드, 정확성, 수비력과 근성까지 갖췄던, 흔히 말하는 ‘야구의 5툴(Five Tools)’을 모두 가지고 있던 선수로 회자된다. 

수치상의 기록은 없지만 장효조의 배트 스피드는 아직도 우리나라의 모든 야구선수들 중 가장 빨랐다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모두 볼”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천부적인 자질을 가지고 타격시 상대하는 투수들의 공을 자신의 몸에 가장 가까이 붙여 놓고 빠른 배트 스피드로 휘둘러 야구장의 좌 우측 어디든 자유자재로 타구를 보내는 그의 ‘부챗살 타법’은 그에게 ‘안타 제조기’ 혹은 ‘타격 기계’라는 별명까지 안겨줬다.


그날의 대화서 김한근 감독은 야구선수의 최고 재질로, 바로 선수 자신이 가진 ‘신체의 힘’을 꼽았다. 
 

투수로서 빠르고 강한 공을 던질 수 있는 것도, 타자로서 빠른 배트 스피드를 이용해 공을 쳐낼 수 있는 것도, 주루 시나 수비 시에 활용되는 빠른 주력과 스피드도 모두 신체적인 힘의 우위서 나온다는 지론이었다.

그의 오랜 친구였던 장효조는 체구가 작은 선수였지만 자신보다 체구가 훨씬 큰 다른 선수들을 모두 압도하는 신체의 힘을 소유했었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고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장효조는 이미 고교 시절이었던 1970년대 초반부터 개인훈련의 과정에 지금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도입했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고등학교 엘리트 야구서 조차 필수적이고 당연시 되는 훈련 프로그램의 개념이지만 국내 야구계에 훈련과정의 일환으로 웨이트 트레이닝이 도입되었던 시기는, 1990년 대 초반 무렵, 당시 LG트윈스의 감독으로 이른바 ‘자율야구’ 혹은 ‘신바람 야구’를 이끌었던 이광환 감독이 미국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서의 코치 연수 경험을 바탕으로 도입해 야구선수들의 피지컬 트레이닝에 대한 개념을 한 단계 진전 시키면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전혀 과학적인 근거가 없는 개념이었지만, 그 이전,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우리나라 야구계는 물론이고 축구계까지 선수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절대 안 된다 라는 비과학적인 개념이 지배했던 시기가 있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단지 전문적인 보디빌더들이 근육을 키우는 개념만으로 이해해 야구나 축구 선수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 근육이 굳어져서 유연성을 잃고 경기력에 해가 된다는 미신적인 속설이 있었다. 

그런데 장효조는 이미 고교시절부터 ‘역기’를 활용해 자신의 힘을 키우는 것에 주력했었다는 사실은 그가 얼마나 최고의 선수가 되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자신의 자질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선수들의 예는 비단 장효조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에게서도 얼마든지 찾아 볼 수 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지금까지도 미국의 메이저리그에서 현역 선수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일본의 전설적인 야구선수 스즈키 이치로가 동체시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평소 지나가는 자동차들의 번호판을 보며 외우려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자신의 시력을 보호하기 위해 TV 시청은 물론, 게임이나 휴대폰의 사용조차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야구선수에게 눈이란 생명과도 같은 신체 기능의 요소이다.

비슷한 예는 축구에도 있다.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일본을 3위로 입상 시키며 7골로 대회 득점왕이 되었던 가마모토 구니시케라는 선수가 있었다. 우리나라의 차범근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선수인데 아직도 일본 축구대표팀 A매치 역사상 80골로 최다 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일본 최고의 축구 스타플레이어 중 한 명이었다.

어린 시절의 가마모토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그의 ‘왼발’에 의한 킥과 기술의 구사였다. 


오른발잡이였던 그는 언제나 자신의 왼발이 오른발만큼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것에 대해 불만이 많았고, 그러한 왼발을 좀 더 잘 사용하기 위해 평소의 훈련 때도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해 왼발의 킥과 기술을 연마했으나 노력만큼 왼발의 기술이 늘지 않아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의학 관련 서적을 읽던 중 우연히도 사람의 인체 중 오른쪽은 왼편의 뇌가 그 활동을 지배하고 왼쪽의 신체는 오른편 뇌의 활동으로 지배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날 이후 가마모토는 밥을 먹을 때도, 글씨를 쓸 때도 모두 왼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왼쪽의 신체를 조정하는 오른 뇌의 기능을 향상 시키면 왼발의 기능 또한 자연스럽게 향상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과학적 근거로부터 출발한 행동이었다.

가마모토는 또한 평소 버스나 전철을 이용할 때도 절대로 자리에 앉거나 손잡이를 잡지 않았다고 한다. 오로지 양쪽 발로 중심을 잡으며 신체의 밸런스를 잡는 감각을 훈련 시간에서 뿐만 아니라 평소의 생활에서도 향상시키려 했었던 노력의 일환이었다.

시대와 종목을 막론하고 최고의 수준에 도달했던 선수들은 몇 가지 공통된 개념들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얽매여 자신의 훈련 방식과 한계를 설정하지는 않는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한 가지는 훈련의 시간뿐만 아니라 모든 일상의 시간서 이뤄지는 행동들조차도 훈련의 일종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LA 다저스 시절의 박찬호가 마이너리그로 강등된 후 취했던 대표적인 행동은 숙소와 야구장을 오갈 때 차량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런닝으로 오가며 하체의 힘을 강화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스포츠 선수들에게 요구되는 신체적인 재질, 스피드와 민첩성, 힘과 유연성 등의 모든 신체적 행동의 요소들을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서 부여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맞는 말이지만 달리 보면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모든 스포츠 종목의 선수들이, 자신의 훈련과 그 프로그램의 실행에 있어, 단지 기술을 배양하는 데에만 할애를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위에서 예를 들었던 최고 수준까지 도달했던 선수들처럼 일상서조차도 자신의 신체적 기능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노력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를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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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