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③대전 대흥동과 소제동

도시가 품은 시대를 산책하다다

“철도관사촌이 독특하고, 골목에 문학과 예술이 담겨 있다.” 부산서 소문을 듣고 소제동에 온 길이라 했다. 저녁 무렵 대흥동 어귀서 그들을 다시 만났다. 낡았지만 어딘가 세련된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 눈치다. 대전 대흥동과 소제동이 뜨고 있다. 모두 오래된 풍경을 간직한 곳으로, 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 
 

두 동네는 최근 10여년간 도시 균형 발전을 위한 재생 작업이 꾸준히 진행돼 도시가 걸어온 시간을 풍성하고 멋스런 이야기로 들려준다. 근대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을 타박타박 걸으며 만나고 싶다면 대흥동과 소제동을 찾아라. 대전역을 기준으로 대흥동은 서쪽, 소제동은 동쪽에 있어 연계해 둘러보기 좋다.
 

대전역 광장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이어지는 중앙로 왼쪽이 대흥동이다. 1990년대만 해도 공공기관 이전과 상권 이동으로 침체에 빠졌는데, 지금은 다시 북적이는 거리가 됐다. 

빼놓을 수 없는 ‘벽화 투어’

2006년부터 도시 재생 사업을 꾸준히 진행한 데다 이곳에 둥지를 튼 젊은 문화 활동가와 예술가들이 노력한 결과다. 무엇보다 대흥동에는 시간에 시간이 더해진 풍경이 잘 남았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 문화 가치를 더한 도시 재생이 주효했다고 말한다. 
 

여행 포인트는 크게 세 가지다. ▲근대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새롭게 활용한 건물 찾기 ▲오래된 건물 외벽에 그려진 그림 찾기 ▲낡은 건물을 리노베이션해 빈티지한 카페나 갤러리 찾기. 먼저 대흥동 일대는 근대건축물을 문화 공간으로 재활용한 곳이 많다. 


대전 충청남도청 구 본관(등록문화재 18호)은 지역 근현대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대전근현대사전시관으로, 대전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구 충청지원(등록문화재 100호)은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로, 초록 지붕이 우아한 대전여중강당(대전문화재자료 46호)은 대전갤러리로 다시 태어났다. 

테미고개 인근에 있는 충청남도 관사촌도 눈에 띈다. 충청남도지사공관(대전문화재자료 49호)을 비롯한 관사 10여 동이 문화 공간으로 변신할 예정이다. 
 

대흥동에선 벽화 투어도 빼놓을 수 없다. 대부분 2012년 대전시립미술관이 기획한 ‘예술을 통한 도시 재생전’의 결과물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카페 ‘여전히 잘’(옛 산호다방) 건물 외벽에 흰 스웨터 벽화가 상징처럼 남아 있다. 낡은 담이나 배관에도 작은 그림이 보인다.
 

오래된 주택이나 상가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빈티지 공간 역시 매력 있다. 카페 ‘초록지붕’ ‘여전히 잘,’ ‘희나리’ ‘하이드아웃’ ‘안도르’, 문화공간주차 ‘파킹’ 등이 그곳이다. 안도르는 대한제국 시대 대전부윤(지금의 대전시장)의 관사였고 파킹은 오래된 여관 주차장이었다. 
 

저물녘에는 으능정이문화의거리 쪽으로 길을 잡아보자. 이곳에 도심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스카이로드가 있다. 도로 위에 대형 LED 영상 시설물을 세워 화려한 밤 풍경을 연출한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10~3월) 매시 정각에 50분씩 다양한 영상물이 머리 위로 흐른다(월요일 휴장). 오가는 길에 튀김소보로가 유명한 ‘성심당’이 보이면 잠시 들러 맛봐도 좋다. 
 

대전역 뒤쪽은 소제동이다. 1920~1930 년대 일본 철도 노동자의 집단 거주지로, 전란과 개발을 용케 피한 관사 40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근현대를 거치며 집을 허물지 않고 형편이 허락하는 대로 조금씩 품을 넓혀, 조금은 삐뚤빼뚤하고 담장이 살짝 기울었다. 

대흥동,  근대건축물 문화공간으로 재활용
소제동,  빈집 손질해 창작·전시 공간으로


담장마다 키 큰 나무가 무성하고 길가에 구멍이 숭숭 뚫린 나무 전봇대가 여러 개다. 한자리에서 60년 세월을 보낸 ‘대창이용원’도 정겹다. 흔히 보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 찬 동네다. 
 

이런 독특한 풍경에 소제창작촌이 자리한다. 지난 2012년 대전시 철도 문화유산 활용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운영하기 시작한 레지던시로, 빈집을 살짝 손질해서 활용하는 게 핵심이다. 

현재 활용 중인 공간은 ▲소제창작촌(작가 창작 공간) ▲재생공간293(전시 공간) ▲시울마실(게스트하우스) ▲시울2길 골목길(공동체 공간) 등 네 곳. 

소제창작촌의 유현민 프로그램디렉터는 “소제창작촌은 예술가들이 무상이나 저렴한 임대료로 빌린 집을 활용해 전시회를 열고, 때로 축제도 개최하며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곳”이라며 “올해는 특별히 시와 그림과 퍼포먼스로 소제동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흥동과 달리 주거지이므로 조용히 둘러봐야 하고, 재생공간293은 전화로 개방 여부를 확인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시간이 넉넉하면 관사촌을 짓기 위해 매립했다는 소제호 방죽을 흔적 따라 걸어도 괜찮다. 허름한 골목을 품은 관사촌과 잘 어울리는 길이다. 
 

하루 종일 지치도록 도시 골목을 거닐었다면 도심에 깃든 자연으로 발걸음을 옮겨보자. 동구 가양동에 있는 우암사적공원은 소제동이란 이름을 지은 우암 송시열 선생이 제자에게 학문을 가르친 곳이다. 

버드나무가 울창한 연못이 남간정사(대전유형문화재 4호)나 기국정과 어우러진 풍치가 곱다. 남간정사 조금 위에는 우암 선생의 발자취가 담긴 유물관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도시를 보면 색다른 맛이 있다. 대동하늘공원과 보문산, 식장산이 멀리서 바라본 도시가 아름다운 곳이다. 대전역서 2.3km 정도 거리에 있는 대동하늘공원은 풍차 뒤로 대전 시내가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언덕이다. 

밤이면 풍차에 조명이 들어와 일대가 더욱 찬란해진다. 대전 시민이 ‘보물산’으로 부르는 보문산과 드라이브 코스로 소문난 식장산도 도시를 조망하기 좋다. 식장산은 임도로 정상부까지 오를 수 있어 야간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여독은 온천욕으로 풀자. 대전에는 <동국여지승람>에 나올 정도로 역사가 깊은 유성온천이 있다. 대규모 온천 단지에 마련된 무료 족욕체험장이 지친 여행자를 반긴다. 

여독은 온천욕으로

유성온천역서 가까워 찾기 쉽고, 오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4~ 10월) 뜨끈뜨끈한 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 



<여행 정보>

당일 여행 소제동→대전근현대사전시관→대흥동 일대→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1박2일 여행 코스
[첫째 날] 대전근현대사전시관→대흥동 일대→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둘째 날] 소제동→우암사적공원→대동하늘공원  

관련 웹 사이트 주소
- 대전관광(대전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http://www.daejeon.go.kr/tou/ index.do
- 대전근현대사전시관 http://www.daejeon.go.kr/mor/main.do
- 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http://www.skyroad.or.kr
- 대전문화재단 http://www.dcaf.or.kr
- 대전시립미술관 http://dmma.daejeon.go.kr
- 소제창작촌 http://www.facebook.com/sojaechangjakchon
- 동구축제관광 http://tour.donggu.go.kr/html/tour
- 중구문화관광 http://tour.djjunggu.go.kr
- 유성구문화관광 http://tour.yuseong.go.kr
- 문화공간주차 ‘파킹’ http://www.spaceparking.aub.kr

문의 전화
- 대전광역시청 관광진흥과 042)270-3972
- 대전광역시청 도시재생과 042)270-6303
- 대전종합관광안내센터 042)861-1330
- 대전역관광안내소 042) 221-1905
- 소제창작촌 010-5263-7729
- 으능정이문화의거리(스카이로드) 042)252-7100
- 대전시립미술관 창작센터 042)255-4700
- 문화공간주차 ‘파킹’ 042)254-5954
- 우암사적공원 042)673-9286
- 보문산 042)270-7860
- 식장산 042)274-1877
- 유성온천 족욕체험장 042)611-2114

대중교통 정보
[기차] 서울역-대전역, KTX 하루 70여회(05:05~23:30) 운행, 약 1시간 소요. 용산역-서대전역, KTX 하루 10~11회(06:15~20:50) 운행, 약 1시간 소요. 수서역-대전역, SRT 하루 40회(05:30~22:40) 운행, 약 50분 소요. 
*문의: 레츠코레일 1544-7788, http://www.letskorail.com SR 1800-1472, http://etk.srail.co.kr 
[버스] 서울-대전복합, 서울고속버스터미널서 하루 60여회(06:00〜다음 날 00:10) 운행, 약 2시간 소요. 
*문의: 서울고속버스터미널 1688-4700 고속버스통합예매 
http://www.kobus.co.kr 대전복합터미널 1577-2259, http://www.djbusterminal.co.kr  


자가운전
경부고속도로 대전 IC→동부네거리 금산·옥천 방면 좌회전→가양네거리 대전역 방면 우회전→성남네거리 금산·옥천·대전역(동광장) 방면 좌회전→계족로 850m→대전역(동광장) 방면 우회전→중앙로역 방향 직진→대전근현대사전시관 

숙박 정보
- 베니키아호텔대림: 중구 대종로505번길, 042)251-9500, http://www.daelimhotel.com
- 토요코인호텔 정부청사점: 서구 둔산중로134번길, 042)545-1045, http://www.toyoko-inn.com/korea
- 호텔그레이톤 둔산: 서구 둔산중로, 042)482-1000, http://www.graytone.co.kr
- 이안레지던스호텔: 서구 둔산로65번길, 042)487-3939, http://www.eanhotel.co.kr
- 레지던스호텔라미아: 서구 둔산로51번길, 042)334- 0100, http://www.hotellamia.com
- 크리스탈레지던스호텔: 중구 대종로452번길, 042) 255-2933, http://www.crystalht.co.kr
- 호텔아드리아: 유성구 온천로, 042)828-3636, http://www.hoteladria.co.kr
- 호텔리베라 유성: 유성구 온천서로, 042)823-2111, http://www.shinan.co.kr/yusong/index_yuseong.asp
- 장태산자연휴양림: 서구 장안로, 042) 270-7883, http://www.jangtaesan.or.kr  

식당 정보
- 성심당(튀김소보로·부추빵): 중구 대종로480번길, 1588-8069, 
http://www.sungsimdang.co.kr
- 진로집(두부두루치기·오징어두루치기): 중구 중교로, 042)226-0914
- 현대식당(닭볶음): 중구 중앙로130번길, 042)223-8922
- 내집식당(올갱잇국): 중구 대흥로121번길, 042)223-5083
- 대전갈비(돼지갈비): 중구 대전천서로, 042)254-0758
- 광천식당(두부두루치기·오징어두루치기): 중구 대종로505번길, 042)226-4751
- 신도칼국수(칼국수): 동구 대전로825번길, 042)253-6799
- 대선칼국수(칼국수·두부두루치기): 서구 둔산중로40번길, 042)471-0317
- 소나무집(오징어칼국수): 중구 대종로460번길, 042)256-1464
- 사리원면옥(냉면): 중구 중교로, 042)256-6506, 
http://www.sariwonfood.com
- 태화장(짬뽕): 동구 중앙로203번길, 042)256-2407

주변 볼거리
뿌리공원, 오월드, 한밭수목원, 이응노미술관, 대전 회덕 동춘당, 한밭교육박물관, 엑스포과학공원, 국립중앙과학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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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