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취재> 격세지감 ‘지하철 신풍속도’ 엿보기

단지 교통수단? 이젠 놀러오세요!

지하철이 확 달라졌다. 가까운 거리를 출·퇴근하거나 이동할 때만 타던 지하철이 이제는 여행을 위한 수단으로, 또 각종 문화시설을 겸비한 곳으로 바뀌며 이용객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이렇게 단지 교통시설로만 이용되던 것으로부터 이제는 즐길거리로 변모한 지하철, 그리고 대중들의 편의를 위해 더욱 발전된 모습의 지하철에 대해 취재했다.

지난 6월29일 2호선 왕십리역. 점심시간대인 12시15분. 신도림행 열차가 들어오고 한 70대의 노신사가 지하철에 탔다. 의자에 앉아있던 60대 가량의 할머니가 노신사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일어섰다. 이 노신사는 “내가 더 힘이 센 데 비켜주니 고맙다”며 “전화번호 좀 가르쳐줘”라고 말했다. 자리를 양보해 준 할머니는 노신사의 집요한 요구에 지쳐 다른 곳으로 자리를 피했다.

당일치기 여행 가능
어르신들 주로 이용

사실 이 노신사는 지하철을 타기 전에도 승강장에 있던 비슷한 연령의 할머니에게 “나이 먹어서 외로운데 전화번호 좀 알려 달라”고 말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렇게 나이든 어르신들에게 외로움은 달랠 수 없는 서러움이다.

하지만 최근 지하철은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재 65세 이상의 어르신들은 무료로 지하철을 탈 수 있다. 이들은 지하철로 이곳저곳을 무료로 여행한다. 예전 같으면 무료로 어딘가를 여행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현재 지하철은 저 멀리 충남 천안·아산, 강원도 춘천, 경기도 문산까지 운행되고 있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김모(73·남)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친구들과 같이 지하철을 타고 아산에 가서 온천을 하고 천안에 가서 맛있는 음식들을 먹고 온다”며 “옛날 같으면 버스로 왔을 거리를 지하철을 통해 편하게 오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지하철을 이용해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이러한 곳에서 성매매를 한다는 내용도 불거져 나오면서 더욱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2010년 12월에는 경춘선이 개통됨으로써 강원도로 향한 발걸음도 한결 쉬워졌다. 물론 이 개통으로 인해 추억 속의 춘천 가는 기차의 로망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누구나 더욱 쉽게 춘천을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사람들이 반기고 있다.

충청도·강원도까지 지하철 연결돼 여행하기 좋아
지하철역사에 각종 문화시설 대중공간으로 탈바꿈

특히 방학을 맞아 이날은 학생들로 더욱 붐볐다. 상봉역에서 만난 대학생 김모(23·여)씨는 “며칠 전에 시험이 끝나 남자친구랑 바람도 쐴 겸 춘천으로 놀러간다”며 “경춘선이 개통되고 나서는 당일치기로도 춘천에 가는 것이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지하철은 이제는 단지 교통수단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 혹은 친구, 가족과 함께 추억을 공유할 수 있는 여행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지하철은 여행수단만이 아니다. 이제는 지하철역 내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역이 단지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고 나오고 표를 사는 곳에 그쳤지만 지금의 모습은 너무 다르다. 각 거점이 되는 역사마다 각종 문화시설이 꾸며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면서 대중적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특히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는 한걸음 더 젊은 층과 교류하고 공감하기 위해 여러 행사들을 진행한다. 하루의 약 10번, 연간 2500회 정도의 예술무대를 지하철역에서 열어 발을 디딜 틈 없이 갑갑했던 지하철역사를 문화공연의 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무대에 서는 예술인들도 1년에 한 번 오디션을 통해 발탁돼 페루, 멕시코 등의 외국인 연주가에서부터 댄스동아리, 아카펠라그룹까지 다양한 콘셉트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고 있다. 이 외에도 3군데의 역에 미술관을 설치해 대중들에게 미술작품들을 쉽게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시민노래자랑 등도 개최해 장기를 뽐내도록 한다.

역에 미술관 장터 운영
친근감 느끼도록 해

이렇듯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에서 대중들이 다양한 문화체험을 할 수 있게 만듦으로 인해 지하철에 대한 이미지 자체를 예술적으로 바꾸고 있다. 5~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도시철도공사도 역사마다 새로운 재미를 부여한다. 주요 역사에 서점을 열어 미디어에 중독된 대중들에게 한 번쯤 책을 읽어볼 수 있는 신선한 기회를 제공한다.

또 팔도 농·특산물을 지하철역에서 판매하며 다양한 지역의 물품들을 맛 볼 수 있는 재미도 제공해준다.

이렇게 지하철역이 어두침침한 공간이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누구나가 즐기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의 이미지로 변모한 것에서 최근 지하철에 달라진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최모(44·여)씨는 “시대가 변할수록 지하철의 분위기도 점점 트렌드에 맞게 변하는 것 같다”며 “약속이 있어 지하철역에서 기다리고 있어도 주변에 구경할 만한 것들이 많아 결코 지루하지가 않다”고 답했다.    

지금은 지하철 문화가 다양하게 변모하며 대중들의 시선을 끌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하면 떠오르는 것은 ‘잡상인’들이었다.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던 지난 6월29일, 지하철에는 우연찮게 잡상인들이 보였다. 비오는 때를 맞춰서인지 우비·우산을 파는 사람들 일색이었다. “비오는 날의 필수품 우비, 집에 하나씩 갖다놓고 이 장마철에 대비해 보세요”라는 단련된 말투와 어색하지 않은 표정이 많은 연륜을 쌓은 듯 보였다.

최근 잡상인·구걸인들 집중 단속으로 많이 사라져
지하철 위치파악 실시간 가능, 스크린도어도 설치

예전에는 보통 파란색 단프라 박스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단속에 신경써서인지 여행용 캐리어 가방을 끌고 다니고 있었다.

잡상인들의 단속은 어제 오늘일이 아니다. 지하철이 생긴 이래로 꾸준히 단속하려는 역무원·공익요원과 단속에 걸려들지 않으려는 잡상인들의 숨바꼭질은 계속되어왔다. 하지만 최근 이들에 대한 집중 단속을 하면서 그 수는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예전 같으면 지하철을 탈 때마다 보이던 잡상인들이 지금은 눈 씻고 봐도 보이지 않을 정도다.

현재 지하철에서 적발되는 잡상인들은 스티커를 발부받고 벌금 10만원을 내게 된다. 잡상인들 외에도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는 등의 공공질서를 저해하는 사람들도 경범죄처벌법에 의거해 통상 3만원 정도의 벌금을 내도록 되어있다.

유모(36·남)씨는 “요즘에 지하철을 타면 전보다 구걸하는 사람이나 잡상인들이 많이 사라져 지하철 내부가 더욱 쾌적해진 것 같다”며 “일순간의 계도활동으로 끝나지 말고 지하철 관계자들이 더욱 관심을 가져 지하철을 이용하는 시민들에게 편안한 이동감을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잡상인 집중단속 효과
열차위치 모니터 편리

지하철역사의 첨단 편의시설도 눈에 띄게 달라진 부분 중 하나다. 지하철역 내 열차위치 모니터는 현재 열차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위치를 알려줌으로써 기다리는 불편함과 불안감을 해소시켜준다. 장모(39·여)씨는 “지하철을 타러가도 앞뒤 열차 간격까지 다 파악이 되고 어디까지 가는 열차인지도 알 수 있어 좋다”며 “이제는 지하철을 타도 여유있게 이용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한때 지하철역에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됐던 자살 문제도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그동안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지하철 선로에 뛰어내려 목숨을 끊는 등의 악순환이 이어져왔다. 지하철의 이미지가 안 좋았던 것도 이 때문. 이를 방지하고자 대부분의 역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했고, 이후 지하철로 인한 자살률도 현저히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이렇듯 지하철이 개통된 이후 생긴 많은 문제점들이 최근 문물의 발달과 시대의 요구와 함께 맞물려 해결되며 지하철에 대한 대중들의 이미지도 날로 좋아지고 있다.

하지만 최근 고속터미널·충무로역 등지에서 발생한 에스컬레이터 사고 문제는 다시 곱씹어볼 문제다. 주로 높은 연령층에서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지하철의 한 관계자는 “에스컬레이터 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발판에 발을 내디딜 시 좀 더 주의해야 한다”며 “그러나 에스컬레이터 자체에도 이상이 있는지에 대해서 세부적인 안전검사에도 조금 더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언급했다.

사당역에서 만난 금모(52·남)씨가 “앞으로 지하철이 대구·부산까지 연결되어서 전국을 하나로 묶는 연결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데서 지하철이 앞으로도 변화무쌍하게 달라질 모습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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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자승자박’ 정청래 리더십 위기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리더십이 위기다. 1인1표제가 통과된 이후 힘을 받나 싶더니,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문제와 2차 종합특검 후보 논란 등 악재가 겹치면서 연임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재명 대통령도 시시각각 리더십 시험대에 올랐지만 결국 대권가도의 길을 걸었다. 정 대표도 무사히 ‘이재명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를 ‘일시 중지’하기로 결론지었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의원총회서 민주당 의원들은 대체로 지방선거 전 합당 추진을 중단하자는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진다. 충분한 논의 없이 합당을 띄워 당을 혼란스럽게 하고, 당·청 관계까지 어색해진 만큼 ‘정청래 책임론’이 불거지면서 리더십은 타격을 입게 됐다. 더 좁아진 운신의 폭 이날 정 대표는 국회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연 뒤 브리핑에서 “오늘 민주당 긴급 최고위와 함께 지방선거 전에 합당 논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대신 지방선거 후 통합을 추진하기 위한 ‘연대와 통합을 위한 추진준비위원회(이하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을 결정하고, 혁신당에도 준비위를 구성할 것을 제안했다. 정 대표는 “당 대표로서 혁신당과 통합을 제안한 것은 오직 지방선거 승리와 이재명정부의 성공을 위한 충정이었다”며 “그러나 통합 제안이 당 안팎에서 많은 우려와 걱정을 가져왔고, 통합을 통한 상승 작용 또한 어려움에 처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 자리에서 의원들의 말씀을 경청했고 민주당 지지층 여론조사 지표도 꼼꼼히 살피는 과정에서 더 이상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당 안팎의 여론을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을 혼란케 한 점에 대해서도 사과했다. 정 대표는 “그동안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은 저의 부족함 때문”이라며 “국민 여러분과 민주당 당원들, 혁신당 당원들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초 이달 13일 입장을 밝히겠다던 혁신당은 날짜를 앞당겨 지난 11일 긴급 최고위원회를 열고 사안에 대해 입을 열었다. 혁신당 조국 대표는 통합추진준비위 구성에 동의하며 6월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열어뒀다. 민주당을 향한 뼈있는 말도 이어졌다. 조 대표가 “선거 후에는 통합의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하고 내용과 방식에 대한 논의를 책임감 있게 이어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그동안 혁신당은 민주당에 흡수되는 방법을 피하고자 했던 만큼 합치는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는 것이 합당의 최대 과제로 남아있다. 조 대표는 “양당 간 회동이 이뤄지면 먼저 민주당이 제안한 연대가 지방선거에서의 연대인지 아니면 추상적 구호로서의 연대인지 확인해야 한다”며 “지방선거 연대가 맞다면 추진준비위에서 그 원칙과 방법을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 모든 과정에서 양당은 상호 신뢰와 존중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한다”며 “특정 정치인 개인과 계파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면 반드시 역효과가 난다. 국민과 양당 당원께 또다시 실망을 드리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동 걸린 민주당-혁신당 합당…다음 복안은? ‘쌍방울 변호인’까지…제대로 꽂힌 ‘2연타’ 조 대표는 정 대표의 사과를 수용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조 대표는 “정 대표께서 혁신당 당원에게 표명한 사과를 받아들인다”며 “혁신당 당원은 당으로 향해지는 비방과 모욕에 큰 상처를 입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고 밝혔다. 혁신당 박병언 선임대변인도 회견 후 기자들과 만나 “(민주당이) 단순히 연대라고만 표현했는데 우당 간 레토릭적 연대를 의미하는지, 실질적으로 두 당이 지선을 치러낸다는 선거 연대인지 분명히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민주당의 답변을 요구했다. 앞서 민주당은 합당이 아닌 ‘지선 이후 통합’이라는 단어를 썼는데, 민주당의 답변에 따라 향후 당의 대응이 달라질 것으로 풀이된다. 합당 논의가 중지되면서 당이 숨 고르기에 들어가나 싶더니 2차 종합특검으로 추천된 전준철 변호사가 새로운 불씨가 됐다. 민주당이 추천한 전 변호사는 2023년 ‘불법 대북 송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된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등의 변호인으로 선임된 인물이다. 1심 이후 사임했지만, 친명(친 이재명)계에서는 “이재명 죽이기” “제2의 체포동의안 사태” 등 격하게 반발했다. 친청(친 정청래)계로 분류되는 이성윤 최고위원이 전 변호사를 추천하면서 반발이 더욱 거세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 변호사는 검사 시절 김건희 주가조작 사건, 한동훈 채널A 사건 등을 담당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 변호사가) 윤석열·김건희 수사를 할 때 서슬 퍼런 윤 총장하에서도 결코 소신을 굽히지 않고 강직하게 수사했다”며 “이번 2차 종합특검의 중요성에 비춰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확한 팩트 확인 없이 전 변호사가 김성태 대북 송금 조작 의혹 사건을 변호했고, 그런 변호사를 추천함으로써 마치 정치적 음모가 있는 것처럼 의혹이 확산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정·이 차이는? ‘윤정부에서 탄압을 받은 변호사’를 강조했지만, 민주당을 설득시킬 명분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자 이 최고위원은 “이번 2차 종합특검 추천 과정에서 조금 더 세밀하게 살피지 못한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앞으로는 더 세심히 살피겠다”고 사과했다. 정 대표도 거듭 고개를 숙였다. 정 대표는 해당 사태를 인사 검증 실패에 따른 ‘사고’로 규정하고 “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의 책임은 당 대표인 저에게 있다.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지도부가 진화에 나섰지만 사태는 이 최고위원을 향한 사퇴 압박으로 이어졌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인사 사고가 아닌 정청래 체제를 향한 불만이 표면화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무산과 후보자 논란으로 정 대표의 리더십이 2연타를 맞으며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연임 가능성도 불투명해졌다. 정 대표는 직접 연임 여부를 밝히지 않았지만 1인1표제 등 당원의 힘을 강화하는 작업에 공을 들이며 대권주자로 나서기 위한 입지를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우세했다. 혁신당과의 합당 이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끈다면 공은 정 대표에게 돌아간다. 그 성과를 토대로 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차기 대권까지 밟는 이른바 ‘이재명의 길’을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여의도가 바라본 이재명의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친문(친 문재인)계가 민주당을 꽉 쥐던, 시절 그는 한 줌의 계파도 없이 고군분투하며 기득권에 맞섰다. 온건파 사이에서 파격적인 개혁을 앞세워 당원들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들을 ‘개딸(개혁의 딸)’로 묶어 본격적인 팬덤 정치에 나섰다. 당 대표 시절에는 대선에 출마하려는 대표의 사퇴 시한인 ‘대선 1년 전’에 예외를 두는 내용의 당헌을 바꾸면서 극심한 내홍에 시달렸다. 그럼에도 당시 이재명 대표는 자신 있게 뜻을 밀어붙였고 전당대회서 최종 득표율 85.4%로 연임에 성공했다. 리더십 심폐소생 권력의 정점에 선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은 비주류에서 주류로 거듭나고 싶어하는 정치인들의 ‘롤모델’로 자리 잡았다. 정 대표는 그런 거친 이재명의 길 초입에 들어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사이다 화법’으로 지지 세력을 키우는 시도는 이 대통령과 매우 유사하다. 이 대통령도 성공하지 못했던 1인1표제를 정 대표는 해냈다”면서도 “서둘렀던 게 문제다. 합당도 시기가 적절하지 못했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어 “이 대통령은 당 대표이던 시절부터 모든 것이 순차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때는 민주당이 야당이었고 윤석열·김건희라는 공공의 적이 있으니 친명과 비명(비 이재명)이 매일같이 싸워도 봉합할 명분이 충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과 정 대표의 차이는 측근의 유무다. 이 대통령은 성남시장일 때부터 함께해 온 이른바 ‘성남 라인’이 존재했고, 김현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등 측근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다”며 “친청을 자처하는 의원들이 있지만 이들을 측근이라고는 볼 수 없다. 김어준·유승민 두 사람이 정 대표에게 영향을 주는 인물로 꼽히지만, 그들조차도 자기 정치에 당 대표를 쓰는 느낌이 든다. 누가 중심이고, 누가 휘둘리는지 알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한 지방선거가 정 대표의 마지막 리더십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지방선거에 사활을 걸어 ‘압승’을 끌어낸다면 무너진 리더십을 다지는 건 물론 8월 전당대회 출마 명분까지 얻을 수 있다. 당장은 정 대표가 타격을 받았지만 선거 국면을 통과하면서 과오가 희석되는 흐름에 기대를 건 셈이다. 민주당은 오는 4월 중순까지 모든 지방선거 공천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다만 경선 규칙과 공천 룰 등을 두고 계파 간 갈등이 재점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모든 권력에는 비판이 따르기 마련”이라는 한 정치권 관계자의 말처럼 반대 여론을 찬성 여론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리더십이 판가름 난다. 시계를 돌려 2024년 4월, 이 대통령 역시 당 대표이던 시절 공천 시즌을 앞두고 ‘비명횡사’ 논란에 휩싸였다. 현역 의원 의정평가 하위 20% 통보를 박은 이는 6명으로 모두 비명계였던 만큼 의원들 대다수가 ‘친명’을 내세워 마케팅을 이어갔다. 이, 비주류서 180석 야당 대표로 지선 앞둔 대표님의 큰 그림은? 공천 갈등은 당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졌고 민주당이 패배했던 2012년 총선이 되풀이될 것이란 당내 우려가 커졌다. 하루가 멀다고 나오는 사퇴 요구에 이 대표는 “툭 하면 사퇴 요구를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사퇴하면 1년 내내 대표를 바꿔야 한다”며 오히려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은 “환골탈태 과정에서 생기는 약간의 진통”으로 진단했다. 이 대표의 리더십이 총선의 최대 걸림돌로 여겨졌지만, 180석 공룡 야당을 탄생시키면서 여론을 뒤집었다. 정 대표 역시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합당 논란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지방선거 승리에 올인하겠다”며 반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어떤 기습 행동으로 당을 흔들지 종잡을 수 없어 잃어버린 신임을 되찾는 것이 지방선거를 앞둔 첫 번째 과제로 여겨진다. 정 대표는 ‘억울한 컷오프를 최소화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지난 11일에는 “공천 과정 전반의 불공정·불합리한 사례를 사전에 점검해 신뢰받는 공천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노력하겠다”며 공천신문고 구성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민주당이 합당 과정에 여러 가지 내홍을 겪고 걱정을 끼쳐드렸지만 그런 와중에도 할 일은 빈틈없이 해왔다”며 “민주당은 공정한 경선을 통한 공천, 투명한 공천이 지방선거 승리의 요체임을 여러 차례 밝혀왔다. 당 대표의 이 같은 의지가 (공천신문고) 제도를 통해서 충실히 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이재명 모델’로 노선을 잡았지만 ‘제2의 ○○○’이라는 꼬리표가 오히려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대선을 앞두고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은 이 대통령의 ‘중도 보수’ 전략까지 정 대표가 따라 할 수 있겠냐는 점에서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문재인 전 대통령에 실망한 사람들이 정권교체에 손을 들어줬다. 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칠 때 즈음이면 정권 유지든 교체든 국민의 마음속에 새로운 잣대가 세워질 것”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좌우 통합을 이뤄낼 지도자를 원할지, 지금보다 조금 더 강경한 지도자를 원할지는 현 정부에 달려 있다. 그 시대에 맞는, 또 국민이 원하는 사람이 차기 대권주자로 분류될 것”이라고 봤다. 신선한 뉴페이스? 이어 “이 대통령은 후임자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미래의 민주당은 당 대표도, 차기 대권주자도 ‘포스트 이재명’이 아닌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며 “이 대통령의 행보가 잘못됐다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 그림자에만 메어서는 민주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극단으로 치닫는 여야 갈등 지난 12일 이재명 대통령이 설을 앞두고 민생 회복과 국정 안정을 위한 초당적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여야 대표를 오찬에 초대했지만, 약속 시간을 한 시간 앞두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불참을 통보했다. 장 대표는 “(이번 회동이) 부부 싸움하고 둘이 화해하겠다고 옆집 아저씨 불러놓는 꼴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었다”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어 “오늘 회동에 가면 여야 합치를 위해 무슨 반찬을 내놨고, 쌀에 무슨 잡곡을 섞었고 그런 것들로 오늘 뉴스를 다 덮으려 할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시스템 무너지는 소리를 덮기 위해 여야 대표와 대통령이 악수하는 사진으로 모든 걸 다 덮으려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날 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른바 ‘재판소원법’과 ‘대법관증원법’이 국민의힘 반발 속에 여당의 주도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한 것에 대한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정청래 대표는 SNS를 통해 “국민과 대통령에 대한 예의는 눈곱만큼도 없는 국민의힘의 작태에 경악한다”며 “본인이 요청할 때는 언제고 약속 시간 직전에 이 무슨 결례인가. 국민의힘, 정말 ‘노답(답이 없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청와대도 “이번 회동은 국정 현안에 대한 소통과 협치를 위한 자리였다. 그런 취지를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데 깊은 아쉬움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