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KT, 구조조정 뒤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

직원들 피 ‘쭉쭉’ 빨아 경영진 배 ‘빵빵’ 불려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KT의 치부가 낱낱이 드러났다. 무엇보다 충격적이었던 건 부진인력퇴출(CP)프로그램이다. 직원이 스스로 나가떨어지도록 유도하기 위해 온갖 비윤리적인 수단이 동원됐다. 이 프로그램엔 노동자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은 물론 기본적인 상식조차 없었다. 문제는 이런 방식으로 직원을 내보내 얻은 차익이 경영진의 배를 불리는데 쓰였단 것이다. 화들짝 놀란 KT는 CP프로그램은 절대 없다며 시치미를 뚝 떼고 있지만 그 정황과 증거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2001년부터 대규모 구조조정 단행…2003년 5500명
“소외감을 유발시켜라” 등 퇴출프로그램 등장해 경악

지난달 2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KT 민영화 폐해와 대안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선 ▲노동자와 소비자를 쥐어짜 수익 챙기는 투기자본 경영수법의 전형 ▲KT 민영화가 노동자 근로조건에 미친 영향 ▲한?미 통신산업 현황 및 한미FTA의 영향 분석 등 세 가지 사안을 놓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이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받은 건 노동자 근로조건과 관련된 부분이었다. 충격적인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어서다.

생소 업무에 투입
어려운 목표 지시

이날 주최 측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KT는 지난 2002년 완전민영화를 앞두고 열린 투자자 설명회에서 인건비와 투자비용을 낮춰 최대한 높은 이익을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KT는 지속적으로 구조조정 작업을 벌여왔다. 특히 2003년과 2009년에는 각각 5505명, 5992명의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노동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비윤리적 수단이 동원됐다는 점이다. 인력퇴출프로그램(CP)이 바로 그것이다. CP는 C-Player의 약자로 부진인력을 말한다.

CP프로그램의 첫 번째 공정은 대상자를 선정하는 것이다. 114잔류자, 민주동지회, 명퇴 거부자, 명퇴 기준 미달자 등이 주요 퇴출 대상에 포함됐다. 대상자 선정이 끝나면 해당 인원을 생소한 단독업무에 투입, 달성이 어려운 목표를 지시한다. 그리고 목표에 미달하면 더욱 강도 높은 업무량을 부여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못할 경우 징계조치하고 비연고지로 발령을 낸다. 그리고 이 같은 과정을 반복해 결국엔 스스로 나가떨어지도록 하는 게 CP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이날 공개된 ‘부진인력 퇴출 및 관리 방안’에는 ▲단독업무를 부여하되 개인별 취약점 등을 분석하여 부여하도록 할 것 ▲문서 등 법적 근거들을 확보해두도록 할 것 ▲업무실적이 탁월하거나 또는 비교분석이 불가능하여 조치가 어려운 경우 업무분장 변경 시행하도록 할 것 ▲2차 업무지시 때는 1차보다 기간을 짧게 하고 좀 더 강도 높은 업무량을 부여하도록 할 것 ▲기존의 업무지시서 및 실적과 근무태도에 관한 자료 등을 근거로 감사 실시 후 징계를 하되 지시불이행, 상사에 항거 등 그 동안 행위를 고과노트 등에 구체적으로 기록?관리 하도록 할 것 ▲법적 요건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가능한 최대한 중징계를 유도하도록 할 것 등 상세한 지침이 포함 돼 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KT는 수천명에 달하는 직원을 거리로 내몰았다. 마지막까지 버티는 인원에 대해서도 최소한의 ‘자비’는 없었다.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 해고하는 수순을 밟았다는 게 주최 측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KT는 “CP프로그램은 절대 존재하지 않고 현장에서 기관장 주도로 생산성 향상 차원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것은 맞지만 시행되지는 않았다”며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4월 열린 전 KT 관리자의 양심선언을 들여다보면 KT가 CP프로그램을 전사적으로 운용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자신을 1984년 11월 한국전기통신공사 공채 1기로 입사해 2009년말 퇴직한 관리자라고 소개한 반기룡씨는 “KT충북본부 충주지사 음성지점의 고객만족팀장으로 있었을 때인 2007년 2월 중순 당시 충주지사 모 팀장이 ‘부진인력 퇴출 관리방안’이라는 문서를 보냈다”고 주장했다. 반씨는 “2007년도 퇴출 목표는 충주지사가 5명이 배정됐고 충북본부 목표인원은 20명, 전사 목표가 550명이었다”고 설명했다.

반씨는 “부진인력 퇴출프로그램은 KT본사에서 기본 프레임을 만들어 각 지역본부에 하달하고 각 지역본부가 수정해 각 지사로 보내 각 지사에서 자체적으로 다시 수정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반씨는 “KT 본사가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업무체계상 본사 인력관리실과 본부 인사팀과 노사협력팀이 직접 지시하달 및 보고받는 체계라는 점과 KT 전체 퇴출 목표가 정해져 있고 본부에서 본사로 보고하게 돼 있는 등에서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씨는 “퇴출자로 낙인찍힌 자의 사생활을 조사하도록 돼 있고 모든 혜택을 금지시키고 교육조차 참석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직원들과 격리시켜 소외감을 주도록 명문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KT, “CP 절대 없다”
내부고발자 “절대 있다”

반씨는 자신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반씨는 “내키지 않았지만 팀장이라는 직책 때문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지침대로 담당직원 장모씨를 스트레스 주는 방식으로 관리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반씨는 장씨가 같은 고등학교 후배여서 가혹하게 하지 못해 불려가 ‘퇴출인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시 어떤 인사상의 불이익도 감수하겠다’는 각서를 작성하기도 했다고 한다.

반씨는 “본인도 회사 내에서 살아야하기 때문에 각서를 쓴 후부터 장씨에 대해서 가혹하게 관리를 시작했다. 이럴수록 스스로 스트레스가 심해져 2008년 1월부터 신경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반씨는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극해 달해 약물치료를 받다 중증 우울증으로 악화돼 2008년 11월 휴직했다. 이후 두 차례의 병원 입원치료를 받다 결국 2009년 12월 31일자로 명예퇴직했다.

이날 양심선언에는 CP프로그램의 피해자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이들은 증언을 통해 CP프로그램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2001년 114 분사 때 남았던 육춘임씨는 2006년 3월부터 선로유지보수 직무를 맡았다. 처음에는 차도 없이 온갖 장비를 메고 5㎞ 떨어진 곳에서 개통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의 몸으로 높은 전봇대에 오르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쥐가 나면 핀으로 허벅지를 찌르면서 일해야 했다. 육씨는 비연고지로 전출돼 현재 편도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으며 구조조정 때마다 어김없이 반복되는 퇴출면담에 심적 고통을 호소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인권 무시한 행위 자행돼
임원 보수한도 2001년 14억에서 2010년 65억 ‘껑충’


역시 114 분사 때 잔류한 한미희씨는 상품판매활동을 해오다 2006년말 선로 개통직으로 전보됐다. 여직원으로 전봇대를 타는 것을 두려워하자 전화국 국기게양대에 매달리는 연습을 시켰다. 교육이 끝나면 사람들 앞에서 혼자 시범을 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관리자는 국기게양대에 오른 한씨에게 ‘엉덩이를 뒤로 빼라’는 등 모멸감을 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고 한다. 한씨는 개통실적이 오르지 않자 결국 2008년 10월 해고 당했다 2009년 5월 구제신청이 받아들여져 복직됐다. 한씨는 법원에 당시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을 냈다.

법원도 CP프로그램이 자행됐다는 주장에 무게를 실어줬다. 법원은 한씨가 낸 손해배상 청구에 CP프로그램 운영이 본사의 암묵적 동의 아래 시행됐다고 봐야 한다는 판단을 최근 내놨다.

지난달 17일 재판부는 한씨가 “퇴출시나리오에 따라 부당 해고당한 만큼 5천만원을 지급하라”며 KT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지만, 본사의 묵인 아래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이 시행된 점은 인정했다고 밝혔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KT는 “부진인력관리프로그램을 기획?수립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피고 회사가 본사 차원에서 기획한 것은 아니더라도 지역본부와 지사 등에서 본사의 암묵적 동의 아래 자체로 프로그램을 마련해 시행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KT 서부본부와 충북 충주지사의 프로그램이 대동소이하고 회사 전체의 퇴출인원과 지역본부별 퇴출 목표인원이 설정돼 있는 것은 물론 이를 매주 본사에 보고하도록 한 점, 이 프로그램에 따라 서울, 전북, 경북 등에서 광범위한 퇴출이 이뤄진 점 등을 들었다.

상무급 이상 경영진
보수도 123.7% 인상

여기서 문제는 비윤리적 수단을 동원, 직원들을 거리로 내몰아 발생한 차익을 경영진의 배를 불리는 데 썼다는 점이다. 실제 민영화 이전 14억5000만원이던 이사의 보수한도는 구조조정과 맞물려 급증하기 시작했다. 민영화 다음해인 2003년 23억4000만원으로 61.3% 증가한 이후 꾸준한 급증세를 유지했다. 특히 2009년 45억원이던 보수한도는 대규모 인력감축이 단행된 뒤 65억원으로 44.4% 껑충 뛰었다. 같은 기간 181억2000만원이던 상무급 이상 경영진의 보수도 405억3800만원으로 무려 123.7% 인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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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노욕?’ 한덕수 대선행 진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대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 총리는 이미 내란죄 공범으로 지목돼 수사 대상에 올랐다. 그래서 살길을 열어야 한다는 절실함이 있다. 과연 그 절실함은 ‘방탄’이라는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 2일,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설은 지난해 9월부터 거론됐다. 한 전 총리가 국회 대정부질문 등 야당의 공세에 적극적으로 반박하면서 목소리를 키우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그 당시엔 윤석열 전 대통령이 건재했다. 따라서 모두가 차기 대선이 오는 2027년에 진행될 것이라고 여기던 시점이었다. 윤 어게인 대타 역할?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헌법재판소서 파면돼 정계서 사라졌다. 차기 대선은 오는 6월3일로 앞당겨졌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란 절대 강적을 이길 방법을 놓고,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에선 다양한 논의가 일어났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는 그 다양한 논의 중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비롯돼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 사이서 퍼졌던 ‘윤 어게인’이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 한 전 총리는 지난달 8일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이완규 법제처장을 헌법재판관으로 지명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의 주요 보직 임명 자체에 대한 논란도 있었지만, 이 처장이 내란 공모 혐의 피의자란 사실도 큰 문제였다. 한 전 총리와 이 처장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조사를 받았다. 지난 2월엔 소환 조사까지 받았다. 이 처장을 지명했던 시점은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였기 때문에 “한 전 총리가 추후 진행될지도 모르는 국민의힘 정당해산심판 방어에 협조한 것 아니냐”는 일각의 의심도 있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란 거대한 사건의 공범 의혹을 받는 사람들끼리 상부상조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의심이었다. 이는 곧 “윤 어게인의 구체적 구현일 수도 있다”는 흐름으로 연결됐다. 윤 어게인의 본질은 윤 전 대통령의 복귀 추진이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을 지냈고, 파면됐다. 헌법·국가공무원법에 따라 다시는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친윤(친 윤석열)계 진영 일각서도 이를 고려해 “윤 전 대통령의 정신과 노선을 계승한다는 취지를 본질로 삼아야 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한 전 총리의 대선 출마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 대신 출마하는 것”이란 해석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심지어 “한 전 총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윤 전 대통령을 총리로 지명할 수도 있다”는 설까지 나오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6년 중임제인 헌법 규정 때문에 지난 2008년엔 3선을 위한 출마를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통합 러시아 대표가 대신 출마해 당선됐고, 푸틴 대통령은 총리로서 실권을 휘둘렀다. 메드베데프 대표는 푸틴 대통령의 첫 대선 당시 선거대책위원장을 지내는 등 정치 경력이 있다. 하지만 한 전 총리는 정치 경험이 전혀 없다. 메드베데프 대표조차 대통령 재임 당시 바지사장·허수아비로 통했다. 따라서 한 전 총리가 설령 대통령으로 당선되더라도 독자적인 정치 행보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된다. 한 전 총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정치 기반은 국민의힘 내 친윤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현실적 구도 때문에 “윤 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처럼 총리로서 국정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관측까지 나온 것이다. 푸틴·메드베데프처럼… ‘윤 총리’ 임명 관측도 이 같은 조롱 섞인 관측에 굴하지 않고, 한 전 총리는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만 75세의 나이에 강한 정치적 집념을 보이는 이유로는 ‘내란 혐의 피의자’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언급된다. 김 전 장관은 수사기관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면서 “계엄법 규정대로 한 전 총리를 거쳐 윤 전 대통령에게 비상계엄을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사실이라면, 한 전 총리도 비상계엄 실행에 참여한 것이 된다. 물론 한 전 총리는 이를 일관적으로 부인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의 진술이 아니더라도, 한 전 총리는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 심의 소집 협조·참여 ▲계엄 해제를 위한 국무회의 소집 건의 회피의 다수 혐의를 받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내란죄 수사가 어떻게 진행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이제는 ‘내란 특검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사람도 없다. 이렇게 되면, 한 전 총리가 새 정부 출범 이후 수사기관에 줄곧 소환될 가능성이 크다. 법원 재판을 거쳐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따라서 한 전 총리로선 생존을 위해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후보의 집권을 막거나, 자신의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방법을 마련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스스로 대선에 출마해 이 후보의 경쟁자를 자처함으로써, 향후 진행될 가능성이 큰 수사에 대해 “대선 경쟁자에 대한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국민의힘에도 큰 여파를 남겼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수시로 대표·비상대책위원장을 교체하면서 집요하게 당 장악에 집착했다. 지난 2022년 7월엔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가 공개됐고, 윤 전 대통령은 여기서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를 일컬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지칭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반발하는 것을 ‘내부 총질’로 인식한 것이다. 이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여당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대통령이 당 장악에 집착하면, 내부서 차기 주자를 키우기 어렵다. 국민의힘의 인물난은 전직 대통령들의 지나친 당 장악 집착으로부터 비롯된다. 그러면서 외부인을 대선후보로 옹립하는 기조가 이어지는 악순환으로 연결됐다. 국민의힘이 한 전 총리에게 강한 시선을 두는 이유 중 하나로 윤 전 대통령으로부터 비롯된 반면교사를 거론할 수 있다. 권 원내대표 등 국민의힘 중진들은 겉으로는 윤 전 대통령에게 전혀 반기를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감정이 있다. 사실은 당권 경쟁?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지난 2022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자녀 수에 따라 대출금을 탕감하거나 면제한다”는 취지의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했다가,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일각의 반발에 부딪혔다. 이어 부위원장직서 해임됐고, 당 대표 출마마저 저지당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은 당 대표로 선출됐지만, 국민의힘 인요한 의원이 주도하던 혁신위원회와의 갈등 끝에 사퇴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게 대표직 유지를 조건으로 총선 불출마를 요구했지만, 김 의원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당시 윤 전 대통령은 김 의원에 대한 격노를 쏟아낸 것으로 알려졌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이 원내대표로 선출되던 날 윤 전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자 “뭐하는 거야, 이게 지금”이라고 말하는 등 순간적으로 반발 심리를 드러냈다. 이렇듯 국민의힘 주요 중진과 경선 출마자 중 상당수는 윤 전 대통령과 상당한 갈등 끝에 손해를 본 기억이 있다. 이들이 윤 전 대통령 같은 강성이 대통령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원할 가능성은 적다. 이번 대선서 범 국민의힘 계열 대선후보들은 이 후보와의 승부서 이길 가능성이 적으므로, 경선은 사실상 당권 경쟁으로 인식되는 측면이 있다. 대권후보들도 당권에 강한 아쉬움이 있다. 당 대표에 취임했다가 당내 주류들과의 갈등 끝에 힘없이 물러났던 경험이 있고, 당으로부터 등을 떠밀려 출마했던 선거서 패배해 치욕을 겪은 적이 있다. 이들이 다시 당권주자로 등장하는 것을 중진들이 원할 가능성도 크지 않다. 따라서 당 대표를 다시 세운다고 하더라도, 의원들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풀어나갈 사람을 선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평생 관료로 살았고, 국민의힘·민주당 정권서 모두 총리를 지냈던 한 전 총리는 이들에게 매력적인 카드라고 할 수 있다. 비록 헌법재판소가 위헌이 아니라고 인정했다지만, 한 전 총리는 “여당 대표와 정기적으로 회동하면서 책임총리의 권한을 행사한다”는 과도 정부체제를 발표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들은 적도 있다. 국민의힘으로선 “한 전 총리가 이래도 따르고, 저래도 따를 것”이라고 인식했을 여지가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에게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을 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수사 피해 대선 출마? 자당 대선후보와 외부 대선후보 단일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자당 대선후보에 대한 적대감으로부터 비롯된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새누리당 정몽준 전 의원의 단일화도 노 전 대통령에게 적대적인 당시 새천년민주당 일부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이하 후단협)를 구성해 노 전 대통령을 압박한 후 진행됐던 것이었다. 이 갈등은 노 전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해소되지 않으면서 노 전 대통령은 직계 의원들과 함께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다. 그러자 새천년민주당은 한나라당과 협조해 노 전 대통령을 탄핵했다. 이 같은 연유로 당시의 후단협은 지금도 안 좋은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런데도 당의 비상대책위원장이 외부 정치 원로에게 단일화 지원을 요청했단 것은 당내 대권주자들과의 불신·갈등을 외부로 드러내는 것과 다름없다. 약점이 있는 사람은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없다. 한 전 총리는 현재 내란중요임무종사자란 의심을 받고 있다. 형법 제87조 제2호에 따르면, 내란중요임무종사자는 최대한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무거운 처벌을 받을 수 있는 혐의가 적용돼 수사를 받고 있어서 국민의힘의 지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그 지원을 매개로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은 하나가 될 수 있다.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이란 구호로 함께 묶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점이 있다고 해서 아무 목소리도 못낼 것이란 기대는 섣부른 것일 수도 있다. 한 전 총리 못지않게 많은 이야기가 나오는 사람은 한 전 총리의 부인 최아영 여사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해 12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최 여사는 화가이자 미술계의 큰손”이라며, “무속에 너무 심취해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김건희 여사·김 여사의 모친 최은순 여사와 끈끈한 관계를 맺고 있는데, 무속의 지배를 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부인 무속·해몽 일화 정치 공세 가능성도 최 여사에 대해선 한 전 총리의 인사청문회서도 같은 논란이 제기됐던 적이 있다. 민주당 이해식 의원은 “최 여사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어느 여성이 강남에 있는 유명 점집을 함께 드나드는 사이란 제보가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한 전 총리는 “공직 생활 동안 명리학에 대한 배우자의 관심이 공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친 일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최 여사가 무속에 관심을 가진단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공개적으로 거론됐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4년 8월 <조선일보> 연재 칼럼 <조용헌 살롱>서 최 여사의 해몽 과정을 언급했다. 칼럼에 따르면, 최 여사는 한 전 총리가 무역협회장이 되기 전 이명박 전 대통령 부부가 자신의 침실로 들어오는 꿈을 꿨다.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장이 되기 전엔 헬리콥터 조종사가 권총으로 부부를 쏘는 꿈을 꿨다. 부총리가 되기 전엔 스프링 콩콩을 타고 뛰는 꿈을 꿨다. 현재 소유 중인 주택을 사들이기 전엔 집이 물에 잠겨 물바다가 되는 꿈도 꿨다. 최 여사는 특이한 꿈을 꾸면 ‘영험한 해몽가’로 알려졌던 고 임훈씨와 해몽 상담을 했다고 전해진다. 최태민씨 일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일가에 접근한 연결고리 중 하나가 해몽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심상치 않은 대목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아울러 역사적으로 해몽은 야심을 동반한단 측면서 의미심장하다. 신라 원성왕과 조선 태조 이성계 등 권좌에 오른 사람의 설화 중엔 꿈과 해몽이 곁들여진 사례가 많다. 최 여사가 정기적으로 해몽가를 방문했단 것이 사실이라면, 야심을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이 대목이 사실이라면, 두 전직 대통령의 전례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민의힘이 세 번째 배신을 당할 가능성으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은 임기 내내 주변인의 구설수로부터 야당의 공세가 시작돼 파면됐단 공통점이 있다. 대선서 낙선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정당들로부터 파상 공세를 당해 체면을 구기거나 끊임없이 이어질 정치 공세의 소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문제는 한 전 총리까지 포함한 빅텐트를 친다고 해서, 밝은 미래를 장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 후보는 시종일관 강고한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직후 기자들과 만나 “명백한 중범죄자를 봐주는 것이 정치적으로 바람직한지는 국민 판단에 따를 일”이라고 말했다. 압도적 의석 이재명 경고 “정치 보복을 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던 이 후보가 윤 전 대통령 등 비상계엄 관련 사안에 대해선 이를 적용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비친 것이다. 이 후보가 집권한다면, 압도적 의석을 가진 여당과 그 여당을 일극 체제로 지배하는 대통령을 배경으로 진행될 각종 수사 등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특히 이 후보는 한 전 총리에 대해서도 “내란 주요 종사자들과 부화뇌동자들이 여전히 정부의 중요 직책을 갖고 남아있는 것 같다”며 “내란 세력이 끊임없이 귀환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강조했다. 대선후보로 선출된 직후의 발언이기 때문에 의미심장하다. 한 전 총리와 국민의힘의 ‘몸부림’은 이를 막는 방패가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