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세태> 위기의 부부들 ‘충동 이혼’ 주의보

‘공포의 시월드’ 연휴 끝나고 남남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시월드(시댁+월드)’ ‘명절증후군’ 등 명절만 되면 결혼 이후 시댁과의 관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성인이 새로운 집안 분위기에 적응하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당연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점점 사회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명절 이혼’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하고 있다. 
 

최근 명절을 전후해 사이가 나빠지는 부부들이 증가하고 있다. 긴 시간 귀성, 귀경길을 버텨내고 명절음식을 준비하는 부인들의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최근에는 남편들이 처가와의 마찰 등을 이유로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명절만 되면 원수
검색어 ‘이혼’ ↑

30대 주부 A씨는 지난해 추석 후에 이혼을 결심했다. 시가에 방문해 세 살배기 아들 보랴, 차례 음식 준비하랴 정신없는 A씨를 두고 남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TV시청에만 열중했다. 

심지어 음식이 맛없다며 핀잔을 주기까지 했다. 오랜만에 모인 가족들 앞에서 언성을 높일 수는 없다는 생각에 꾹꾹 참던 A씨는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매년 반복되는 명절 스트레스 뿐 아니라 그동안 서로에게 서운했던 일까지 한꺼번에 풀어낸 A씨 부부는 결국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우지 못하고 갈라서기로 했다.


결혼 2년차인 B(33)씨도 지난 설 연휴에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떠난 아내와 크게 싸우고 부부관계를 청산했다. 처가와 자신의 부모 모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해 나름대로 노력해왔지만 서로의 가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아내를 더는 견딜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30대 C씨 부부 역시 명절을 어디서 보낼지를 두고 평소 자주 다퉜다. 지난해 설날을 앞두고 남편 C씨가 “당연히 우리집에서 명절을 지내야 한다”고 주장하자 아내는 “나도 우리집 딸인데 명절 때마다 시댁에만 간다”며 화를 냈다. 

결국 C씨는 어쩔 수 없이 남편 집에서 설을 보냈고 연휴가 끝난 후 부부는 “역시 대화가 안 된다”며 법원에 협의이혼 신청을 했다. 
 

40대 후반의 D씨는 지난해 추석 연휴에 처가에 들렀다가 이혼을 결심했다. 모처럼 들른 처가서 “돈을 많이 못 벌어서 부인을 고생시킨다”며 면박을 줬기 때문이다. 

‘명절 이혼’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명절을 전후한 부부 갈등이 깊어지는 경우가 잦다. 오랫동안 못 봤던 가족, 친척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명절이 어떤 부부에겐 다툼의 씨앗이 된다. 

돌싱 40% 이상 “명절 영향 있다”
남성도 명절 증후군…계속 증가

명절 연휴가 지나고 나면 기혼 여성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엔 부부끼리 다퉜다는 글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인터넷 포탈사이트서 ‘이혼’을 검색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네이버 트렌드’ 통계를 보면 지난해 추석 연휴의 다음 주에 ‘이혼’을 키워드로 검색한 빈도가 연휴가 낀 주보다 15.5% 늘었다. 추석 연휴의 다음다음 주에는 이 빈도가 전주 대비 22.0%나 증가했다. 연휴 이후에 ‘이혼’을 검색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네이버 트렌드는 네이버서 특정 키워드를 검색한 빈도를 보여준다. 

명절에 부부들의 명절증후군의 근본적인 원인은 서로 간의 인식 차이서 비롯된다. 

가부장적인 어른들은 며느리를 비롯한 여자가 각종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는 요즘 똑같이 일을 하면서도 명절 음식 준비 등 과도한 집안일이 여성에게만 부여하니 며느리들은 이런 상황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구시대의 풍습이 답답하지만 맞벌이 여성들은 직업과 크게 상관없이 ‘며느리’라는 굴레를 쉽게 벗어 던지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돌싱(결혼에 실패하고 다시 독신이 된 ‘돌아온 싱글’의 줄임말) 여성 10명 중 6명과 돌싱 남성 10명 중 4명 이상이 추석 같은 명절이 이혼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식 차이 비롯
이혼에 큰 영향

한 결혼정보회사가 전국의 (황혼)재혼 희망 돌싱남녀 472명(남녀 각 236명)을 대상으로 이메일과 인터넷을 통해 ‘추석과 같은 명절이 전 배우자와 이혼을 결심하는 데 영향을 미쳤습니까?’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다. 

이 질문에 대해 남성 응답자의 44.5%와 여성의 60.2%가 ‘영향이 매우 컸다’(남 9.8%, 여 20.8%)거나 ‘일부 영향을 미쳤다’(남 34.7%, 여 39.4%)와 같이 ‘명절이 이혼 결심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한편 ‘영향이 별로 없었다’(남 39.8%, 여 28.0%) 혹은 ‘영향이 전혀 없었다’(남 15.7%, 여 11.8%)고 부정적으로 답한 비중은 남성 55.5%, 여성 39.8%였다. 

명절이 이혼에 영향을 미쳤다는 응답에서 여성이 남성보다 15.7%포인트 더 높게 나타났다. 

설문을 실시한 결혼정보업체 관계자는 “남편 입장에선 1년에 두 번밖에 없는 명절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다”라며 “그러나 여성들은 평소 부부관계가 좋지 않은 상태서 추석과 같은 명절 때 스트레스가 급증하면 평소의 감정이 폭발해 이혼의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경기 침체에 따른 경제적 문제, 처가와의 갈등 등을 이유로 상담을 요청하는 남성들의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명절 증후군’하면 대부분 음식 준비와 친지 맞이로 정신적·육체적 피로가 쌓일 주부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러나 남성들도 명절 나기가 녹녹지만은 않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눈길을 끈다. 한 취업포털에선 ‘남자의 명절 증후군’이라는 주제로 회원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 응답자의 76%가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남자도 힘들다”
통계 보니 가관

남자들은 명절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선물 및 용돈 등 경제적 부담을 꼽았다. 이어 장거리 운전(12%), 주차장을 방불케하는 꽉 막힌 귀경길(11%), “결혼 안 해” “취업했니” 등 매년 반복되는 질문(9%), 명절 후 아내·여자친구·여자형제 등 잔소리(7%) 등을 선택했다. 

남자들은 ‘자신이 명절에 몇 점짜리 남편 혹은 아들인가’란 질문에 44%가 ‘10점 만점에 7점 이상’이라고 대답, 명절에 자신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평가한 것으로 보인다. 
 


‘스스로 가장 적극적으로 준비했던 명절 과정은 어떤 것이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응답자 30%가 음식 준비를 선정했다. ‘차례 준비를 한다(9%)’는 답변이 뒤를 이었다. 

‘추석에 가장 두려운 일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는 결혼 안 해? 취업했니? 등의 질문(14%), 자랑할 것이 없는 나의 처지(13%), 출근, 구직 등을 해야 할 일에 대한 걱정 및 부담감(12%)의 답변이 뒤를 이었다. 

연휴 이후 이혼 10% 이상 증가
평소 잘해도…쌓였던 불만 폭발 

그러나 남자들도 특별한 명절 스트레스 해소법은 찾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27%는 ‘해소방법이 딱히 없다’고 답했고 음주 가무를 즐긴다(13%), 좋은 얘기만 하고 좋은 것만 보며 좋은 것만 먹는다(12%)의 응답이 뒤를 이었다. 고향에 내려가지 않는다는 답변도 8%에 달했다. 

과거에는 명절 스트레스가 여성들의 몫이라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남편들도 이 같은 부담서 자유롭지는 못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측은 추석이 끝난 직후 접수된 가정불화 상담은 평소의 평균 40여건서 절반가량 늘어난다고 했다. 상담소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 직후에도 일일 평균 76건이 접수돼 평소 상담량보다 많았다. 명절이 끝나면 특이할 정도로 상담건수가 늘어난다”고 말했다. 

접수된 사례 중에는 제사 문제, 여성들의 시댁 노동, 친정 방문 여부와 관련된 불화가 많았다. 최근에는 명절날 부모를 방문하지 않는 자식들에 대한 불만, 황혼이혼에 대한 문의도 늘어났다. 
 

가정 사건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변호사들 또한 해마다 추석을 전후해 이혼 상담 건수가 급격히 늘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수도권에 거주 중인 한 변호사는 “명절 스트레스에 따른 불화와 관련한 상담 건수가 많다”며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던 부부들이 명절을 기점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사례가 잦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님과 친척 등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 후에 조용히 이혼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명절 이혼’은 통계로 입증된다. 

통계청이 발표한 ‘최근 5년 간 이혼통계’를 보면 명절 전후인 2∼3월과 10∼11월의 이혼 건수는 바로 직전 달보다 평균 11.5%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추석 연휴가 있던 9월과 그 다음 달인 10월의 이혼 접수 건수는 3179건서 3534건으로 늘어났다. 

2014년 10월은 3625건, 2013년 3807건, 2012년 3761건으로 각각 전달인 9월보다 7.7%, 22.5%, 10.3% 증가한 이혼소송이 접수됐다. 

평소에 잘해야…
소통·배려 필요

명절을 본래 의미대로 즐겁게 보낼 방법은 없는 걸까. 전문가들은 평소 배우자와 대화와 소통을 통해 명절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그동안 쌓였던 불만이 명절로 인해 폭발하는 계기가 되고 이기적인 현상들이 늘어나면서 이해대신 불만과 불통이 커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사랑하는 시간을 갖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누군가의 가슴이 상처로 멍들고 평생 남으로 살아가는 선택들을 하고 있다. 

한 사회학과 교수는 “전통이 중요한 명절 문화에선 여성이 상대적으로 소외되고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며 “서로 소통하고 배려하며 합의하려는 노력을 통해 갈등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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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